< -- 161 회: 5 -- >
김순경이 생각하기에 사랑하는 남자가 쓸데없이 오기부리는 것 같았다. 저토록 애원하며 매달리는데 슬쩍 넘어갈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나까와의 편을 들며 끼어들었다.
"성기씨. 당신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요. 설마 좁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성기씨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누워계신 어머니도 생각해 보라고요. 그리고 당신을 좋아하는 여자들까지 생각하면 당장 필요한 것이 집이잖아요."
그녀는 말을 쏜살같이 내뱉고 목이 마른지 냉수를 연신 들이켰다. 성기 역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김순경이 재차 입을 열었다.
"게다가 만약 아이들까지 낳는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게 키울거에요? 그러니 성기씨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현실적으로 판단해주었음 싶어요. 그냥 편히 빌린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요?"
김순경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자존심만 앞세우다 사람들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도 동네에서는 수군거리는 판이니 말이다. 성기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어머님과 여자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울먹거리는 도나까와를 일으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제의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울지 말아요."
"네, 고맙습니다. 성기씨!"
"고마운 쪽은 접니다. 도나까와씨, 정말 고맙습니다."
"전 성기씨 곁에 평생 살고 싶습니다."
"네, 같이 살기만 하면 되죠."
성기는 고마운 한편으로는 징그러운 생각이 동시에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자신에게 선뜻 집을 준다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기도 어려운 이때에 생판 모르는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고마운 것은 사실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누운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다. 성기의 어머니는 역정을 내셨지만 이사 가는 것에 대해서는 성기보다 더 좋아라. 하셨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많은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흉을 보았으면 이사 가는 것을 저리 좋아하실까. 성기는 괜스레 눈이 붉어졌다.
그렇다. 한국 사회는 흉을 잘 보는 사회였다. 이웃이 땅을 사도 멀쩡한 배가 아파오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고 마음이다. 우리 한국인의 삶 가운데 참 아쉬운 한 부분이 있다면 용서의 윤리, 혹은 용서의 전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전반을 꿰뚫는 유교는 일종의 율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율법 같은 유교의 지배를 받아서 형성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 “조선 시대의 역사는 남인이 서인을 죽이고, 서인이 남인을 죽이고, 노론이 소론을 죽이고 소론이 노론을 죽이는 보복의 역사였다”고 지적한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이런 보복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힘 있는 사람은 복수로, 힘없는 사람은 푸닥거리로 원과 한을 풀어온 것이 한국의 근세 사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콩쥐 팥쥐 이야기를 알 것이다.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슷하다. 엄마가 일찍 죽어서, 계모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계모와 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배다른 여동생의 핍박 속에서 삶. 핍박 가운데서 짐승이나 어느 신령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겨가는 것도, 꽃신과 유리 구두를 한 짝씩 잃어버리는 것이 판박이처럼 닯아있다.
마을 사또와 왕자에 의해 신발 임자로 찾아져서 해피엔딩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콩쥐 팥쥐 이야기에서는 맨 마지막에 콩쥐가 자기 남편과 함께 팥쥐를 길 한복판에 끌어내어 수레 양쪽에서 팔을 잡아당겨서 찢어 죽이는 복수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실 콩쥐 팥쥐는 처절한 복수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와 아주 유사한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결말이 다르다. 서양인들의 전통에서 탄생한 신데렐라 이야기와 유교의 전통에서 나온 콩쥐 팥쥐 이야기의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을 한쪽으로는 매우 정겨운 민족으로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도록 잔인한 이중성을 가진 민족이 되게 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소령과 김중위는 자기들도 보름간 휴가이기 때문에 주소이전 같은 행정 처리는 자신들이 하겠다고 나섰다. 여자들에게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한 후 이삿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성기의 어머니도 나서서 짐을 챙겼다.
그날 저녁 무렵 트럭이 집 앞에 꾸린 짐을 싣고 도나까와가 알려주는 주소를 향해 떠났다. 뒤를 이어 봉고차가 와서 성기와 어머니와 여자들을 태우고 동네를 떠났다.
간 곳을 보니 평창동의 산 밑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대문도 어지간히 커서 차 석대가 동시에 들어갈 정도로 컸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정원이 나왔는데 그 거리가 무려 100미터가 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면 전신주 세 개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들은 정원을 지나 저택 입구에 시동을 끄고 멈추었다. 그제야 내리게 된 성기의 어머니와 성기는 차에서 내려 놀란 눈으로 저택을 살펴보았다. 이 정도면 한국의 재벌 일가가 사는 정도일 것이라 성기는 생각하며 부담감과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성기의 어머니는 또 화를 내셨다.
"이 놈아! 너 도둑질 했냐? 이게 집이냐? 궁궐이지?"
성기의 귀를 잡아당기며 성기의 어머니는 추궁했다.
"바른대로 말 안 해? 어서!"
"아니라니깐. 엄마는 왜 말도 안 듣고......아악! 아프다고. 놓고 말해!"
"이놈의 새끼가 다 컸다고 어미 말을 듣지도 않네. 빨리 말해! 너 도둑질 한거면 내가 가만 안둘 거야."
"아악! 아니라니깐......"
차에서 내린 여자들도 저택 크기에 놀란 것인지 입을 턱 벌리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머님이 성기의 귀를 잡아당기는 것을 본 김순경이 재빠르게 나섰다.
"어머님. 아니에요. 여기 이 집은 저 분이 빌려주신다고 했어요."
"정말이여? 우리가 뭘 했다고 빌려준다는 것이여?"
"그게 저 분이....."
김순경은 딱히 핑계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직업이 순경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순경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다. 성기는 답답함을 느끼며 입을 놀렸다.
"도둑질한 거 아니라니깐. 저 사람이 그냥 외로워서 자기랑 살아달라고 했어."
"그려? 그럼 내가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래, 이따 확인해. 그니깐 빨리 손 놓으라고. 엄마! 나 귀 떨어지면 알아서 해! 아악! 악!"
"이 놈이 뭘 잘했다고 바락바락 떠드는 겨! 동네 창피해서 나가지도 못하게 해놓고 말이야."
"그것은 내가 잘못했어. 그니깐 손 놓고 애기 하자고. 엄마! 악!"
이윽고 보다 못한 여자들이 어머니를 말렸다. 그제야 어머니는 손을 떼셨다. 성기는 아픈 귀를 만지작거리며 저택의 크기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대충 살만한 집이겠거니 예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이것은 대충이 아니었다.
저택은 오층 구조로 일층이 제일 넓고 이층이 삼층보다는 넓은 계단식 5층 건물이었다. 후에 도나까와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한진그룹의 회장 저택이었다고 했다.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의 저택이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 유인학 의원의 압박 때문이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 불어 닥친 재벌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강도 높게 시작되면서 재벌들은 위축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신호탄으로 대권에 도전한 정주영이 시범 케이스로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각종 혐의를 뒤집어썼다.
뒤를 이어 한진그룹에 대해 세무조사가 벌어졌으며 그와 더불어 재벌들의 변칙 상속과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도 여론은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과 30대 재벌의 주식 이동을 모두 밝히라고 연일 언론은 떠들었다.
한진은 조사결과 자본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변칙 증여한 사실이 밝혀져 과세를 매겼고 3자 명의로 된 부동산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괘씸죄를 적용받아 야권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더불어 언론은 은행돈으로 재벌들 배를 불리나라고 연일 기사를 실었다. 국회의원들도 나서서 금융당국과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사에 따르면 삼성, 대우, 럭키금성, 현대, 한진등 국내 30대 재벌그룹의 76개 주력업체들이 자기 계열 및 여타업체들에 빚보증을 서준 규모가 38조 4천 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이들 주력업체들의 전체 자기자본의 3배를 웃도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지급 보증 대상 계열사가 부도위기에 몰릴 경우 당국의 규제 없이 은행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주력업체들의 은행대출금이 이들 계열사로 유용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수서 택지 특혜분양으로 물의를 빚은 한보주택이 부도 위기에 몰리자 채무지급보증을 선 한보철강이 이 채무를 대신 떠안아 연쇄부실화 됐으며 고려시스템의 부도 위기 때문에 한국화약측이 160억의 채무를 대신 물어주는 등 계열사에 대한 빚보증으로 인해 주력업체들이 함께 자금사정이 악화되기도 했다.
여자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기와 도나까와, 그리고 경호원들은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도나까와가 데리고 왔던 50명의 꽃다운 미모의 아가씨들이 공손히 반기고 있었다. 모두 다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정부 같기도 한데, 외모와 몸매로 봐서는 절대로, 결코 가사를 좋아할 스타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었는지 또 성기를 찾아 혼내려고 등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요즘 내 닉을 사칭하는 애들이 있다고 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달달한자두> <뜨거운자두> <달콤한자두> <시커먼꼭지>
<연분홍자두> 언급한 모든 닉은 제 닉이 아니고 유사품이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 요즘 괜찮은 작품이 있어 추천합니다.
로노에 <구해줘>
괜찮아요. 강추하니깐 읽어보세요, 맨 깽판판타지 읽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