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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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사를 끝내고 편히 쉬다가 성기 어머니가 깨어나 한바탕하시고 또 쓰러져 주무셨다. 잘못한 것도 있고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성기는 어머니가 편히 쉬게 담요를 끌어올려주고는 조용히 방을 열고 나왔다.

여자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실이 무척이나 비좁아 보였다. 성기는 자신의 방에서 쉬기보다는 여자들과 함께 쉬었는데 여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나, 집은 어떻게 하지라는 현실적인 고민에 잠이 오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피곤해서 자려는데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성기는 밖으로 나갔다. 비행기에서 보았던 도나까와가 경호원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징그러워서 성기는 피하고 싶어 열어줄까 말까 망설였다.

뒤따라 나온 김순경이 말했다.

"어머, 저 사람 또 왔네. 성기씨 없는 동안 여러 번 왔거든요. 올 때마다 과일이며 돈을 놓고 가셔서 어머님이 얼마나 놀라셨는지 몰라요. 성기씨! 혹시 저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죠?"

"아니에요. 그나저나 큰일인데. 나 일본어도 못하는데."

"내가 있잖아요."

라고 말하며 김순경이 팔짱을 껴왔다. 풍만한 젖가슴이 눌려지며 팔 전체에 그 촉감이 느껴졌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벌써 몽둥이는 꿈틀대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도 나오려 했지만 성기는 제지했다. 그리고는 김순경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까 수군거리던 동네 사람들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몇몇은 남아 있어 불편했다. 성기는 도나까와와 집에서 애기하기도 그래서 동네 밖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도나까와는 성기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독의 BMW 735i 승용차에 성기와 김순경을 태우고 골목을 벗어났다. 가는 동안 성기는 이런 고급차를 몰고 가는 쪽발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당시 국산 승용차는 기아의 포텐샤, 현대의 뉴그랜저, 대우의 임페리얼은 모두 3000CC 급인데 뉴그랜저가 3천 1백 90만원, 포텐샤가 3천 1백 30만원원 선이었다. 

3000CC급에서 기아의 머큐리세이블이 당시 같은 급 국산 승용차보다 가격이 다소 싸고 기능과 안전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계약후 1~3개월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머큐리의 가격은 2천 7백 50만원이어서 대기업 간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차였다. 

서독의 BMW사의  735i가 8천 2백 50만원, 아우디 V8 이 8천 2백만 원이어서 87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승용차로 인해 한국인들은 점점 외국산 고급 승용차를 사기 시작했다. 가격이 웬만한 집 한 채 값인 점을 감안하면 계층 간 위화감의 조성, 과소비의 조장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결코 경시할 수 없었고 신문과 TV에서 가끔씩 그것에 대한 경고성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번 돈 내가 쓴다는 데 말이 많다며 상류층과 지역 유지들은 코웃음을 쳤다. 성기가 있는 지역만 해도 십년 전까지 소박하고 운치있는 단독주택이 많았었다. 연못까지 있어 비오는 날에 더 경치가 좋았던 주택들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전국에 불어 닥친 다세대 열기로 인해 집장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단독을 헐어버리고 다세대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많은 집들이 헐리고 새로 들어서서 연일 전국의 동네는 공사장을 방불케 할 정도 레미콘 차량과 트럭, 굴삭기 등의 중장비 기기들이 들락거렸다. 어린 시절 동네마다 있던 한옥과 예쁘장한 양옥들이 그때 다 부서져 버리고 차갑고 볼품없는 네모난 성냥갑으로 들어차자 성기는 못내 아쉬웠다.

왜 어른들은 그렇게 집을 부수고 새로 지을까. 아파트도 많다면서 말이다. 또 그렇게 집장사를 통해 떼돈을 번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들이 바뀌고 심지어는 한 집에 여러 대를 보유하는 현상도 벌어지기 시작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성기 역시 남자라 차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집에는 차가 없어 늘 차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한 녀석은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를 다녀서 티코로 등하교를 해 친구들 가운데 제일 운전 실력이 좋았다. 그 친구네 아버지도 자영업을 하시는데 엑셀을 타고 다니셔서 BMW를 몰려면 어느 정도 벌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 성기였다.

차를 몰고 동네를 벗어나 신림 사거리 구석에 있는 장밋빛 인생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그들은 마실 것을 주문하고 편히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성기는 솔직히 편하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도나까와가 자꾸만 성기의 손을 만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성기를 향해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나까와의 증상은 소말리아에서 만난 셰룸 소령과 비슷했다.

"자꾸만 이렇게 만지려고 하면 이야기고 뭐고 때려치우고 집으로 갈 겁니다."

"안됩니다. 성기씨! 전 성기씨가 없으면 죽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온 겁니다."

"대체 저한테 뭘 원하는 겁니까?"

"성기씨 곁에서 평생 살고 싶습니다. 성기씨가 원하면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으로 귀화하겠습니다."

"그게 다에요?"

"네, 그리고 가끔은 성기씨와 자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싫은데요. 전 남자와 같이 자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한다고 해도 전 당신과는 자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성기씨가 원하지 않는다니. 지금 당장은 그런 마음을 접겠습니다."

도나까와는 아쉽지만 지금은 그와 친해지고 그의 마음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그러다 자신의 진심이 받아들여지면 자기와 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 속 깊이 품는 도나까와였다.

"보니까 집이 작던데, 제가 선물로 집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싫습니다. 제가 왜 당신한테 이유 없이 받아야 하죠? 지금 집도 좋은데......."

좋지만 여자들 때문에 비좁게 느껴져 성기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조만간 여자들이 대거 들어올 텐데 집 문제는 어느덧 성기의 인생에서 큰 난관으로 다가왔다.

"여자들도 많은데 어떻게 살겁니까? 그러지 마시고 제가 좋아서 드리는 건데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드리는 겁니다. 단, 조건은 저도 같이 사는 겁니다."

"흠.....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무작정 거절하기가 미안하군요."

일본 놈이라는 사실을 빼면 너무나 호의적인 제안이었다. 그냥 집을 주겠다니.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냥 집이 아니라 여자들이 충분히 거주할 수 있는 크기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덥석 받자니 사나이 자존심,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내의 자존심이 있지. 쪽발이가 마련한 집에서 거주하다니,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슬퍼하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기에는 현실적 문제가 크게 와 닿았다. 이미 동네에 소문이 파다해 얼굴을 못 들고 다니신다는 어머니, 수많은 여자들이 기거해야하는데 좁아터진 집구석으로는 해결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구경거리가 될 가능성이 더 많았다.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고 유리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수십 차례 한 성기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 역시 일본을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 진짜로 쫓겨날 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성기와 같이 잔 여자들 가운데 일본 여자들은 다른 문제였다. 같이 잤으니 책임을 지려는 것이지 그것을 통해 물질적 이득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거주하는 조건으로 집을 받는다는 것은 정신을 팔아 물질을 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존경하는 이순신도, 독일의 롬멜도 지하에서 존나 비웃을 것 같았다. 성기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보였다. 결정을 내렸는지 성기는 입을 열었다.

"제의는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특히 일본 사람들 도움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뜻입니다. 찻값은 제가 내고 가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기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하고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도나까와가 바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기 때문이었다.

"성기씨, 전 당신이 무작정 좋습니다. 절 일본인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조만간 국적도 한국 국적으로 바뀔 겁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집은 아무 조건 없는 거니 그냥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애원합니다."

한적하던 커피숍에 중년의 사내가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것을 본 주변의 손님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에 말들을 잃고 고개를 내밀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드라마 찍나 라고 생각하며 알 만한 탤런트가 곧 나오겠지 기대를 갖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꾸 이러지 마세요."

"전 절대 성기씨를 놓지 않을 겁니다."

"창피하니깐 놓고 말하자고요."

"싫어요. 승낙하실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겁니다."

그들과는 달리 도나까와와 떨어져 구석에서 차를 마시던 경호원들은 황당하면서도 도나까와의 말을 떠올리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자신의 대화에 끼지도 말 것이며 설사 자신이 성기에게 맞더라도 끼어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자신의 보스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남자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물론 일본에도 게이가 있고 소수의 성적 취향도 존중하는 사회라고 하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보스는 일본의 3대 조직 가운데 하나인 조직의 차기 보스가 아닌가.

후계자 문제를 두고 말들이 많은 이 시기에 한국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후계 구도를 다투는 라이벌들이 보았다면 박수를 치며 좋아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나도 조아라 올드유저네요.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예전 문피아와 조아라가 대판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죠. 기억하시는 분 있으려나.

운영진끼리 싸운 것은 아니고 사이트 이용자들끼리 키보드로 싸웠던 거니, 뭐, 

제가 이말을 하는 까닭은 그 때는 그래도 조아라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많지는 않겠군요.

서버 운영비와 운영진의 생활비를 위해서라도 상업화, 이윤추구는 당연하지만 너무 그런 논리를 앞세워 정작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봅니다.

작가로서, 또 인생의 한참 선배로서 노블레스에 글을 올리는 미성년 작가는 없는지, 있다면 운영진이 권고하거나 제한을 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돈만 밝히면 돈벌레 된다. 

하긴 깽판 판타지 보면 돈만 아는 주인공들 허벌나게 많으니 탓할 일은 아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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