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9 회: 5 -- >
경찰을 배웅하고는 사람들이 여전히 집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것을 본 성기는 대문을 닫아버렸다. 거실로 들어가서 여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재차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누워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차수연과 비행기에서 키스를 나누었던 보이네, 보이네 경호원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보였다. 그녀들은 누워 계신 어머니의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고 어머니는 머리에 흰 천을 두르시고 계셨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들은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니 그토록 잊지 못하고 가슴으로 품고 있던 성기를 확인하고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듯 성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보이네가 차수연이 동시에 일어나 성기를 끌어안았다. 보이네의 성기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수연 역시 납치된 충격으로 기억과 말을 잃어버렸지만 자신의 첫 남자이자 운명처럼 받아들인 성기를 그리워했다. 모든 행동이 어려지고 낯설어했지만 성기라는 말과 글에 차수연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했다. 오늘에서야 자신의 사랑을 만나다니 그녀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며 성기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경호원인 두 여자도 살며시 일어나 성기를 흠모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성기는 경호원들이 기억이 났지만 자신에게 저런 눈빛을 보낼 정도로 그녀들과는 친분이 없어 의아함과 동시에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경호원들보다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보이네와 차수연을 떼어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누워계신 어머니가 보신다면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들놈이 아프신 어머니는 상관도 않고 여자들과 포옹하는데 정신이 팔렸다고 나무랄 것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보이네와 차수연을 떼어내고 성기는 그녀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가에 검지 손가락을 댔다. 그녀들도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기대, 불안, 초조 등 온갖 감정이 성기를 스쳐 지나갔다. 성기는 호흡을 가다듬고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저 왔어요. 주무세요?”
그 소리에 편안히 안정을 찾던 어머니가 감았던 눈을 뜨고 성기를 쳐다보았다. 틀림없는 자신의 아들, 성기임을 확인했는지 어머니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성기의 등짝을 후려쳤다.
“이 놈아!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너 죽고 나죽자. 조상 보기도 창피해서 죽지 못하고 있었어.”
“악! 엄마!”
성기의 어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구석으로 가더니 나무 빗자루를 꺼내들었다. 보이네를 비롯한 여자들은 어머니를 말리려고 했지만 기운이 세신건지 아니면 여자들이 어머니를 봐 드린 것인지는 몰라도 성기의 어머니는 그녀들을 뿌리치고 성기의 다리를 후려쳤다.
“악! 때리지 말고 말로 해요.”
“이 놈아! 넌 자식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
“악! 아프다고. 엄마 말로 해도 되잖아.”
“말로 해도 될 놈이면 여자가 저리 많겠냐! 이 웬수 놈이 입은 살아가지고.”
“악! 그만 해! 잘못했어.”
“너 죽고 나 죽자고. 이제 동네 창피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말이야. 어제 내가 기도했더니 너의 아버지가 소원을 들어줬나보다. 이 죽일 놈!”
“악! 악!”
성기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성기의 어머니는 여기서 멈출 수 없는지 기력이 다할 때까지 빗자루를 들어 성기를 때렸다. 성기는 아픈 나머지 다리를 폴짝폴짝 들어 피하려 했지만 좁은 공간에 보이네 등이 서 있어서 빗자루를 피하지 못하고 정강이와 허벅지, 종아리 등 가리지 않고 맞아야 했다.
성기의 어머니는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빗자루를 내려놓으셨다. 다행이도 보이네와 그녀의 두 경호원이 성기의 어머니를 부축하고 다시 자리에 앉도록 해주었다. 성기는 손으로 맞은 부위를 주무르며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기운이 없어 힘겹게 입을 떼었다.
“이놈아! 앞으로 어떻게 할겨?”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엄마만 좋다면 다 같이 살고 싶은데......악! 우악!”
성기의 어머니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 혼신의 힘을 다해 성기의 가운데를 걷어찼다. 성기는 기운이 없으신 어머니라 전혀 방비할 생각도 못하고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는 손으로 가운데를 움켜잡고 떼굴떼굴 굴렀다. 방안에 있던 여자들은 놀라며 성기의 어머니를 제지했고 거실에 있던 여자들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성기를 안고 나갔다.
“아악! 아!”
이후 성기의 어머니는 기운이 다했는지 잠에 빠져들었다. 공이 깨지는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여전히 떼굴떼굴 굴러야 했고 여자들은 대신 아파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선뜻 나서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눈물을 흘리고 통증을 호소하는 성기를 끌어안고 보이네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참동안 지속되었던 아픔은 서서히 잠잠해지는 것 같아 성기는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아니, 엄마가 저리 화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라고 서운한 감정도 슬며시 생겼다.
하긴 이건 약과야. 좀 있으면 수 백 명의 여자들이 귀국해서 자신의 집으로 올 텐데 만약 그때도 저리 역정을 내신다면 큰일이라고 성기는 생각했다.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일어나 여자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기저기 멍든 얼굴의 여자들과 차수연, 보이네, 그녀의 두 경호원까지를 쳐다본 후 성기는 입을 떼었다.
“미안해요. 다들 저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네요. 저 하나만 없어지면 싸울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좋아하다 벌어진 일이라 그녀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의 원흉은 자신이라고 생각하자 자신만 없어진다면 그녀들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사회와 어머니가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녀들과 헤어지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최선책은 아닐 듯싶었다. 소말리아에서 만난 여자들 모두 자신과 헤어진다면 죽고 싶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속으로 한 숨을 내쉬는데 보이네가 손을 들어 성기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입술이 벌어지며 성기의 눈가에 남아있던 눈물을 핥아갔다. 순간 성기는 너무나도 그녀가 사랑스러워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이것을 본 여자들이 얼굴색이 변하며 달려들려고 했지만 성기가 제지했다. 그녀들에게 말을 했다.
“더는 싸우지 말아요.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요?”
성기의 말에 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했다. 그녀들 가운데 미유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성기를 위해 눈가에 파란 멍이 든 김 순경이 통역해주었다.
“당신 스스로 자책하지 말아요. 남자가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것이 흉이 되거나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신의 축복을 받은 거지. 우리 이슬람 문화권,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많은 부인을 거느린 남자들이 오래 살고 주변의 존경을 받아요. 그 이유는 가난한 가정의 여자들을 데리고 살면서 먹여 살린다는 것 때문이에요. 물론 현대를 살아가고 더군다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일처제도 힘들어 하지만 진정한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거느려야 살 수 있다고 해요.”
미유키의 말에 따르면, 이슬람 지역에서 일부다처제 전통이 있는 이유는 이슬람이 세금징수를 통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정복전쟁을 할 당시 과부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복지를 국가의 의무로 생각하여 직업 교육 등의 복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슬람이 태동한 고대사회에서는 여성가장을 위한 복지가 없었다. 한국도 중혼을 금지하고 있으나 무효혼이 아니라 취소혼이어서 중횬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성기는 용기를 얻고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슬슬 배가 고픈 성기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점심 먹을까요?”
“네, 당신을 위해서 솜씨 발휘해 볼게요. 어머니도 제 음식 솜씨를 칭찬했어요.”
제일 나이 많은 이미선이 선뜻 나서며 말했다. 그녀를 따라 다른 여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