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 158 회: 5 -- > (158/230)

< -- 158 회: 5 -- >

집에 도착한 성기는 집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뭔 일이지 라고 생각했다. 이 소령은 성기의 표정이 달라지자 차를 주택가 담벼락 근처에 세워 시동을 껐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을 밀치고 앞으로 나가보니 성기는 수많은 여자들이 난투극을 펼쳐 집이 난장판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여자들 머리는 걸인처럼 봉두난발이었고 발길질을 하고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를 잡아채는 등 아주 생난리를 치고 있었다. 긴 머리가 산발한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 여자들이 도대체 누군지 감이 오지 않는 성기였다.

우리나라 욕에 일본 말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말도 들렸지만 성기는 통 감을 잡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것은 주변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멀쩡해서 이웃 사람들은 고개만 삐죽 내밀고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여자가 욕을 하며 일본 여자의 머리끄댕이를 잡으면서부터 이 난장판이 시작된 것이었다.

“놔! 이년아!”

“안 놔! 빨리 놓으라고. 똑바로 살아!”

“헨타이 야로(변태 같은 년!), 안따꼬소시까리시때 (너나 잘해!)”

“블린!(제기랄) 자트크니스!(닥쳐!)”

깜짝 놀라며 어머니가 걱정이 되는 성기였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성기를 알아보았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에구, 성기 학생! 어머니는 지금 방에 누워계셔!”

“네? 왜요”

“에고, 말도 마! 학생이 훈련 간다고 나간 이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는 서로 자기가 성기 학생 부인이라고 떠드는 통에 아주 시끄러웠어. 파출소 순경도 여러 번 출동하고 심지어는 동사무소에서도 나와서 이웃에 피해를 주지 말라고 그렇게 권고했는데도 또 싸우네. 그래서 어머니가 신경을 쓰셔서 요즘 일도 안하시고 매일 누워만 계셔. 아이고! 학생이 어떻게 해봐!”

“네? 아, 알았어요.”

대답을 마친 성기는 어머니 걱정으로 앞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아주머니가 팔목을 잡고 또 말씀하셨다.

“왜요? 아주머니.”

“그 뿐만 아니야. 양복을 짝 빼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일본 깡패도 있었다고. 같이 온 사람들 몸 여기저기에 흉측한 문신이 있어서 사람들이 뒤에서 쉬쉬했다니깐.”

친한 아주머니는 아니었지만 가끔 어머니랑 어울려 친목계 활동을 하시는 분이었다. 경희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다니다 방위로 복무하는 것을 알고 있어 성기를 보면 늘 학생이라고 불렀다. 아주머니 말씀대로라면 아주 큰일이 난 것이었다. 순간 성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더는 참지 못하고 성기는 달려들어 여자들을 말렸다. 이 소령과 김중위도 성기를 쫓아 달려들었다. 땅바닥에 서로의 몸을 엉킨 여자들을 성기가 떼어 놓으며 말했다. 풍만한 젖가슴이 성기의 손에 가득 느껴졌지만 그것을 느낄 경황이 아니었다. 창피함을 뛰어넘어 동네를 이사가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더러 남아 있는 이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곧 동창들 귀에도 들릴 것이 뻔했다. 성기는 더는 이 동네에서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들에게 보인 이미지로 인해 이사를 가야할 것 같았다.

“그만! 그만하세요. 다들 누군데 우리 집 앞에서 이러는 겁니까?”

성기에게 안긴 여자가 봉두난발된 머리를 치켜 올리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성기씨! 보고 싶었어요.”

얼굴에 퍼런 멍을 눈과 입가에 선명히 찍힌 그녀는 김순경이었다. 아니, 얼마나 아름다웠던 김순경의 얼굴이 이토록 망가졌다니. 성기는 대뜸 놀랐다. 바닥에 깔려있던 여자가 성기를 알아보고는 성기 품에 안겨 들었다.

“오히사시부리데스(오랜만이에요). 아이타깟따(보고 싶었어요!)”

“야 류블류 찌뱌!(사랑해!), 야 딱 스꾸촬 빠 찌볘(보고 싶었어요.)”

비행기에서 살을 섞은 미유키 타케우치, 유마 코바야시, 라리나 올레가, 율리나 셰이크 등의 네 여자가 동시에 울먹거리며 성기에게 안겨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그녀들의 얼굴에도 여기저기 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얼굴이 저 지경이니 그 동안의 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성기였다.

외국 여자들에 뒤질세라 김순경과 양순경 그리고 이미선이 성기에게 안기려 그녀들을 잡아끌었다. 성기의 몸을 딱 달라붙은 네 명의 여자들은 마치 철근에 달라붙은 시멘트마냥 떨어질 줄 몰랐다. 이에 화가 난 이미선이 거칠게 욕을 했다.

“야이, 썅년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란 말이야. 진드기 같은 년들아!”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에 성기는 주변을 돌아보자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해요. 그리고 빨리 들어가서 애기해요. 당신들도 도와줘요.”

“네! 성기씨!”

성기를 따라 여자들을 말렸던 이 소령과 김중위도 얼결에 대답을 했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들이 집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그것도  이렇게 아름답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들이 많이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이 소령과 김중위였다. 물론 소말리아에서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창피해서 자신에게 달라붙은 여자들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본 이미선도 김순경과 양순경을 데리고 다급히 들어갔다.

밖과는 달리 방은 조용했다. 거실에 그녀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쉬라고 몸짓했다. 씩씩거리며 뒤에 있던 이미선에게도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그녀 역시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분한 기색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성기는 급히 마당으로 뛰어나가 문을 걸어 잠그려고 했지만 이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손으로 막아서며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또 신고가 들어와서 들렀습니다. 우리는 신림파출소에 근무하는 순경들입니다. 아우, 이제는 거의 매일 싸우네. 여자들이 체력도 좋아.”

“못 보던 분인데, 여기는 지금 아주머니 혼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훈련 갔다던 아들입니까?”

“네, 제가 아들입니다. 이제 싸움은 그만 두었으니 그만 가셔도 될 겁니다.”

“이봐요. 아드님, 얼굴을 드디어 보았으니 오늘은 특별히 봐 줘서 그냥갑니다만, 이제 그만 싸우라고 하세요. 동네 창피하지 않습니까!”

“네! 죄송합니다.”

“아주 유명합니다. 관악구에 근무하는 경찰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집과 여자 분들이 무지 유명해졌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네요.”

“말하면 잔소리죠. 게다가 이웃들도 툭하면 전화해서 빨리 출동하라고 어찌나 성화를 부리던지. 이거 원 매일 출동하니 이제는 여기가 파출소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따끔하게 주의 주세요. 얼굴도 그렇게 예쁘신 분들이 툭하면 주먹질이니......쯧쯧.....”

“알겠습니다. 더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성기의 계속된 사과와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거듭 말하자 경찰들은 혀를 끌더니 등을 둘려 나가버렸다. 나가는 순간에 경찰들은 성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딱히 그들이 보기에 성기의 얼굴이 조각처럼 잘 생긴 미남이 아닌데 저렇게 매달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을 나서는 경찰들이 중얼거렸지만 성기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자고로 여자들이 잘 들어와야 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쯧쯧......”

“박순경, 빨리 가자고.”

“네, 전 다른 것은 다 떠나서 솔직히 부럽네요.”

“부러우면 지는 거야. 하긴 나도 쪼까 부럽네. 하하하!”

“그렇죠? 역시 선배님도 남자군요. 저만 그런 줄 알고.”

“저 정도의 미모의 여자들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지.”

“우리 마누라 가슴이 저 여자들 가슴의 반만 되었어도......내가......”

“뭐라고......우리 마누라 가슴도 껌딱지야. 빨리 가자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