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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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은 복잡했다. 소말리아 올 때와는 달리 케냐에서 홍콩으로, 다시 한국으로 가는 노선을 탔기에 귀국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귀국하는 날짜가 8월 12일인데다가 아시아나의 항공 사고 여파로 국내선을 잡지 말고 외국 항공기로 귀국하라는 국방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국내에서 일어났는지 성기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2달간의 파병이 마치 일 년처럼 느껴져 고국의 시차에 적응할 수가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성기는 자신의 집에 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국내의 사건사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소령이 성기의 곁에 앉은 병사를 불러 자신의 자리와 바꿀 것을 명했다. 병사는 갑작스런 명령에 어리둥절했지만 이 소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병사는 이 소령에게 인사한 후 이 소령의 자리에 가 앉았다. 스튜어디스가 인상을 썼지만 이 소령은 막무가내로 성기의 옆 좌석에 앉았다.

다행이도 성기의 동기들은 앞좌석에 앉아서 졸고 있었기에 일을 알지 못했다. 성기에게 운이 따르는지 자리가 맨 끝이어서 이 소령이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행여 뒷자리에 다른 장교라던가 병사들이 있었으면 지금 이렇게 성기 옆에 앉지도 못했을 것이다.

성기가 이 소령에게 부탁해 파병기간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 수 없냐고 묻자 이 소령이 빙그레 웃었다. 곧바로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열어 국방 일보를 꺼내 보였다. 장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국제우편으로 신문이 배달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성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성기는 그녀가 건네 준 신문 뭉치를 펼치며 읽어 나갔다. 

홍콩에서 국방부의 갑작스런 지시로 장교들과 병사들은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파병 간 사실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으라는 전언이었다고 후에 이 소령이 성기에게 말해주었다. 떳떳이 밝히고 국민들의 양해를 바랄 것이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 성기였다.

때문에 잠든 이 소령의 날씬한 종아리가 치마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성기를 유혹했지만 성기는 꾹 참으며 고시 공부하는 사람마냥 열독했다. 이 소령은 여승무원을 불러 담요를 달라고 부탁했다. 담요를 받아 성기와 같이 덮어쓰고는 성기의 바지 버클을 내리고 몽둥이를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아기가 엄마 젖을 물고자는 것처럼 이 소령도 몽둥이를 쓰다듬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파병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는 여객 항공기가 1993년 7월 26일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추락하여, 68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사고 후 김포 - 목포 노선을 일시 운항 중단하고 유족들과의 보상금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당시 교통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전남 무안에 무안국제공항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고, 결국 2007년에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며 목포공항은 폐쇄되었다.

몇몇 무속인과 야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하늘의 노여움을 샀다고도 말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렇지만 길게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천재지변과 같은 사고를 누구 특정인의 잘못으로 몰아간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예비군 복무기간을 전역 후 33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연령제를 전역 후 8년간의 연한제로 바꾸고 예비군 훈련기간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입대시기에 따라 개인별 복무기간이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등 예비군 복무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1워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을 읽던 성기는 아리송해졌다. 이 제도로 인해 자신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예비군 훈련이 예전처럼 일주일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주일간의 예비군 훈련은 당시 성기가 속한 향토사단에서 교육을 전담했는데 일과 후 예비군들의 술과 도박, 심지어는 담벼락으로 모포아줌마들이 드나들고는 했었다. 이 개편된 예비군 제도가 94년부터 시행되어 예비군 훈련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조선총독부건물이 철거되고 중앙박물관이 새로 건립된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서는 조선총독부건물을 가능한 조속히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기는 중학생 때 단체로 간 적이 있어, 그 건물을 떠올리며 이제는 기억 속으로 남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절을 앞두고, 그리고 민주공화정의 법통을 최초로 세운 임정 요인들의 유해 봉환에 즈음하여 고뇌 속에 심사숙고해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민족사의 잘못된 큰 줄기를 바로잡아 세계 속의 한국으로 나가야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세계 속의 한국을 꿈꾼다는 사람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철새처럼 대권을 향해 자신의 정치색을 바꿨냐! 성기는 읽는 내내 코웃음을 쳤다.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는 9일 정신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2차 진상 조사발표와 관련, 일본정부의 태도가 법척 책임을 회피하는 불충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외교적 현안의 매듭’선언을 한 우리 외무부의 태도를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아울러 한승주 외무부장관의 공개사과와 발언의 당사자인 외무부아주국장의 해임을 주장했다.

12. 12쿠데타, 율곡 사업, 평화의 댐 건설 등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는 조사계획서 작성문제를 놓고 여야가 다시 이견을 보여 조사 실행여부가 극히 불투명해졌다. 전직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서 국조권 발동을 기피하고 있는 민자당의 속셈은 뻔했다. 시간을 넘겨 국정조사권의 실행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의 호소카와 신임 수상이 이끄는 새 내각이 8월 9일 조각을 마치고 출범했다. 전후 38년간을 장기 집권해온 자민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비자민 연립내각에 대해 일본국민들은 기대와 불안이 뒤 섞인 여론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식자층은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간의 가장 큰 현안인 종군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징병 징용 원폭피해자 보상 등을 우선적으로 깨끗이 매듭지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8. 15광복직전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한국인들로 구성된 특수공작조를 한국에 침투시켜 지하조직을 결성, 무장 항일운동을 벌이게 하려던 냅코(NAPKO)작전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 작전에는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등 재미유학생들과 미구누에 의해 포로가 된 한국인 노무자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하철과 전국 시내버스 요금이 인상되어 서민의 발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93년 시내버스 요금이 300원으로 올라 서민들은 죽을 상을 하고 버스를 탔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오랜만의 요금 인상으로 버스업계는 환영했다.

아울러 유류세를 교통세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기름 값이 조만간 오를 것이라고 했다. 93년 당시 1993년 12월까지만 해도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특별소비세로, 기름값에 따라 변동하는 종가제였다. 휘발유 기준으로 109% 가량 세금이 붙었다. 때문에 휘발유 가격은 비교적 싸, 10%의 부가가치세를 더한 가격이 1990년 당시에는 ℓ당 373원이었다.

1993년 12월 31일을 기해 교통세로 전환되면서다. 이 당시 휘발유 세율이 150% 가량 늘어났다. 또 1995년 12월 종가제가 기름의 양에 고정된 세금을 붙이는 방식인 종량제로 바뀌면서, 세금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기름 가격 변동에 따라 세수 확보에 차질이 생기자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종량제로 부과 방식을 바꾼 것이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종량제로 전환하면서 종가제로 매길 수 있는 최대 세율을 바탕으로 기본 세액을 정했다는 점. ±30%의 탄력세율 적용이 가능한 데 최대 세율(휘발유 195%, 경유 26%)을 적용해 345원, 48원을 기본 세액을 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듬해(1996년 1월) 휘발유 가격은 624원으로 급등했고, 이중 세금은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401원에 달했다

당시 성기는 차가 없었지만 불알친구들 중에 여유가 있는 친구 두 명은 티코와 르망을 몰고 다녀 가끔 성기를 태워 드라이브를 했기에 친구들을 걱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기는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잠에서 악몽을 꾸었는지 이 소령이 몽둥이를 세게 꼬집으며 비틀었다. 갑작스런 이 소령의 행동에 성기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에 쥐고 있던 신문 뭉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아악!”

마침 뒤에서 음료수를 챙기려던 승무원이 뛰어왔다. 승무원의 아름다운 얼굴에 성기를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이 소령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여 승무원이 어디 아프냐고 묻는데도 성기는 담요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승무원은 너무나 아파하는 성기의 얼굴을 보며 담요를 들추어 상처를 보려고 했다. 그녀의 손에 담요는 힘없이 끌려나오며 성기의 굵고 커다란 몽둥이가 보였다. 그곳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어머! 오우 마이 갓!"

너무 황당한 장면에 여 승무원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었고 성기 역시 아픔으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여승무원이 성기를 째려보고는 성기에게 담요를 던져주었다.

“흥!”

그녀는 콧방귀를 뀌고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여승무원의 날씬한 몸을 떠올리며, 특히 예쁘고 몸매가 잘 빠진 자신을 떠올리며 딸딸이를 쳤다고 생각하며 분개했다. 가끔 손님들 가운데 스튜어디스는 하늘의 걸레라고 생각하는 손님들이 있었고, 어쩌다 퇴근 후에 남자들을 만나면 하늘에서 주지 말고 땅에서 좀 주라고 추파를 던지는 남자 녀석들이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남자들이 그런 야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오년을 근무했지만 담요 아래로 물건을 꺼내놓고 딸딸이를 친 남자는 처음이었다. 아마 전 세계 민항기 역사에 처음이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졌고 그럴수록 거대하고 굵은 몽둥이가 자연스레 떠올라졌다. 그녀는 처녀였기에 너무나도 불쾌한 기억을 지우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머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몽둥이의 잔상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몽둥이를 꺼내 놓고 딸딸이를 친 성기는 변태 고객으로 영원히 남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휴가가 끝나서 연재 속도가 떨어지네요.

게다가 이제부터는 사건 사고 연일 터지는 한국이라......

자료 조사도 병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을 먹었는데 얼마였다는 소소한 일상생활도 넣어야 하기에....

그리고 형은 팰거다..... 어린 녀석들이 내 글을 본다면 말이다.

부탁입니다. 독자님들!!!!

미성년자들이 본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야구 방망이로 훈계하지기 바랍니다.

다 사랑해서 때리는 겁니다.

애들아! 형은 너희들을 사랑해서 팰거다.

그러니 걸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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