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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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성기는 로널드를 들쳐 업고 밖으로 뛰어갔고 로라가 업힌 로널드의 덜렁거리는 손을 잡고 같이 뛰었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로라는 휘청거렸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급히 성기의 옆구리를 잡았다. 뛰어가던 성기는 갑자기 허리를 잡아 끄는 통에 발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로라가 먼저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졌고 그 위에 성기가 넘어지며 머리가 로라의 풍만한 가슴에 부딪쳤다. 성기의 등에 업힌 로널드는 같이 넘어지며 로라의 허벅지에 머리가 닿았다.

쓰러진 드레스가 한쪽으로 올라가버려 로라의 쭉 뻗은 각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기는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느낄 사이도 없이 일어나 로널드를 다시 업고 쓰러진 로라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는 와중에 가슴이 깊이 파인 드레스로 인해 그녀의 은밀한 젖꼭지를 보게 되었다. 성기는 시선을 급히 돌리고 앞으로 걸어갔고 로라 역시 드레스가 올라가 민망한 모습을 보여 고개를 숙이며 성기를 쫓아갔다. 그녀는 가는 내내 엉덩이가 아팠지만 창피함 때문에 아픈 기미를 내색하지는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성기가 정문에 도착하자 뛰어오던 보좌관들이 업힌 로널드를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들에게 로널드를 맡기고 돌아서려는데 성기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로라는 자신의 남편을 여기까지 업고 온 성기의 땀을 보고는 급히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영어로 고맙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부인이 손수건도 아니고 직접 손으로 닦아주자 성기는 보람을 느꼈다.

로라는 거듭 고맙다고 말하며 핸드백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고는 성기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그녀는 로널드를 따라 차량에 탑승했다. 시동이 걸리고 차는 신속히 출발했다. 성기의 눈에 벌써 작아진 차는 헤드라이트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고개를 숙여 명함을 보았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아 상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이 소령과 김 중위가 다가와 성기의 어깨를 토닥였고, 뒤를 이어 박 중위와 최 소위가 따라왔다. 두 여자를 의식해 이 소령이 성기의 어깨를 쿡쿡 찔렀고 성기는 강당으로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날 밤 리셉션은 전직 사령관으로 인해 잠시 멈추었지만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평화유지군 지휘관들도 리셉션 후에 미군과 몇몇 나라만 남고 나머지 국가 대부분이 철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몇몇은 새벽까지 남아 술을 먹거나 수다를 떨었다.

시간은 흘러 귀국 하루 전날이 되었다. 성기는 김중위에게 말해 외출을 나왔다. 김중위는 그것을 이 소령에게 말해 지금 성기는 이 소령과 함께 밖을 나왔다. 주변에 머무르고 있던 마을에 도착하자 여자들이 성기에게 뛰어와 품에 안겼다. 헬렌 자매와 카리나, 엘리야, 타마라, 자히라, 엘리야의 두 동생, 이혼녀 사라와 비서 살리나, 메기, 올리나, 브룩 등의 여자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키스를 해주었다. 그녀들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구석에서 서 있던 셰룸 소령이 어딘가 눈에 익은 흑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성기의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성기는 그녀들이 누군가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때 샤모 호텔에서 수잔과 고립되었을 때 같이 있던 여자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셰룸 소령이 무어라고 말하자 이 소령이 통역해 성기에게 전했다. 

“이 여자들이 성기님을 보고 싶어 해서 한국군 기지 주변 마을에서 수소문하는 것을 알게되어 이리로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셰룸 소령은 어딘지 모르게 근심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성기가 이유를 묻자 소령은 힘없이 대답했다.

“여기 아이들의 어머니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전 이미 성기님을 흠모하는 처지라고 설명했지만 그 뜻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닙니다.”

사연은 이랬다. 성기가 호텔에서 만났던 흑인 여성 아이샤와 그녀의 아들 라베리, 두 딸 애드자이와 루나티, 임산부 라일리, 그리고 배고픔에 떠도는 9명의 소녀들이 스웨덴군의 도움으로 케냐의 난민촌으로 갔지만 그녀들 마음속에 성기에 대한 마음이 커져 더는 견디지 못하고 다시 소말리아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두 딸의 어머니 아이샤가 딸들을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두 딸이 걱정되어 함께 온 그녀는 이곳에서 셰룸 소령의 자상함에 반해버렸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듣는 성기역시 어이없었지만 사랑은 눈을 멀게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임산부 여성 라일리는 스웨덴군의 의료지원단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뱃속의 아이가 사산된 것으로 판명되어 의사들의 권유로 중절 수술을 받았다. 그녀 역시 성기의 분비물에 중독되어 아기를 잃은 슬픔과 성기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다 같이 난민촌으로 온 애드자이와 루나티의 결정에 라일리도 동참하게 된 것이었다.

9명의 꼬마들 역시 난민촌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배불리 먹는 것보다는 성기와 같이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닫고는 애드자이를 쫓아 따라왔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들은 성기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녀들이 겪었을 고생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신도 탈출을 해보았기에 차량이 아닌 두 다리로 그 먼거리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울컥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연약한 여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성기는 팔을 잃은 꼬마아이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며 꼭 끌어안았다. 아이 역시 남은 한 손으로 성기의 목을 끌어안고 성기에게 안긴 기쁨을 나타냈다. 라일리를 포함한 여자들은 성기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며 안긴 아이를 부러워했다. 성기는 잠시 생각했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성기를 쫓아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겠다고 우겨 끝내 설득을 포기했다는 아이샤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먼 이곳까지 걸어서 힘들께 왔는데 모른 척을 한다면 죽겠다고 난리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꼬마 아이를 안고 생각에 잠긴 성기는 결론을 내렸다. 라일리와 애드자이와 루나티는 데려가고 9명의 아이들은 셰룸 소령에게 부탁해 이곳에서 클 때까지 보살펴 달라고 했다. 소령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뒤에 서 있던 아이샤가 아들을 안고 나타나 셰룸 소령의 곁에 서 있었다. 성기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커서 그때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데려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성기의 뒤에 있던 여자들이 아이들을 안고 다독거렸다. 듣고 있던 이 소령도 나이를 떠나 성기에게 매달리는 자신을 보며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일 마냥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참을 울던 아이들은 여자들이 어떻게 설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그쳤다. 아이들 가운데 막내 와부두스가 딸꾹질을 하며 칭얼거렸지만 다행이 울지는 않았다. 아이를 내려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자 아이는 손으로 성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팔이 하나가 없는 아이가 세상을 향해 당당히 살아주길 바랬다.

한국만 해도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였다. 더군다나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는 더욱 그럴 터였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아이는 졸린 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울어서 기력을 소비했는지 하품을 했다. 아이샤와 여자들이 재우기 위해 아이들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성기는 셰룸 소령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소령은 말 보다는 자신을 안아달라며 포옹했다. 성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뜨겁게 포옹을 해주고는 떨어졌다. 소령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성기는 더는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CIA의 레이나와 아이샤가 차를 몰고 나타나 여자들의 여권과 비자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레이나는 성기에게 그 동안의 이별을 보상받으려는지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몸을 밀착했다. 성기역시 아름다운 레이나의 입술을 탐하며 그녀의 가슴을 옷 위로 어루만졌다. 다른 여자들이 우리도 다시 해달라고 졸라대자 성기는 그제야 레이나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레이나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현재를 기준으로 기네스북에 보고한다면 기록으로 당장 올라갈걸요. 당신은 부인이 세계 최고로 많은 남자에요.”

성기는 그 말에 대견함과 함께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 많은 여자들을 먹여 살리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했다. 그녀들도 성기에게 말했다. 부귀영화보다는 당신과 함께 죽는 그날까지 곁에 있고 싶다고 말이다. 그 말에 성기는 그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레이나는 샤론과 5명의 여자들은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전했다. 아울러 일본군 의료지원단은 철수하는 유엔군을 따라 귀국해 일본에서 자신의 신변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성기는 전에 노믹스와 셰룸이 주었던 서류를 돌려주며 이 돈으로 생활하라고 말했다. 일전에 길에서 주웠다던 통장을 전해주었다. 소령은 오히려 많은 여자들과 살려면 성기님이 필요할 것이라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끝내 성기가 받지 않자 결국 성기의 뜻에 따라 자신이 관리하기로 했다.

자바리가 갖고 있던 돈 500만 달러는 레이나가 처리해서 한국으로 갖고 가겠다고 했다. 그 돈으로 여자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어머니께 효도하면 되겠지 라고 성기는 생각했다. 여자들은 모두 레이나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으니 성기가 귀국하고 2주일 뒤에 도착할 것이라고 레이나가 설명했다. 수잔과 빅토리아는 잠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온다고 했으니깐 모든 여자들의 귀국 문제는 처리 완료 상황이었다. 

여자들과 헤어져 성기는 이 소령이 모는 차를 타고 부대로 귀환했다. 성기는 소말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에 무사히 귀국길에 오르게 된 점을 하늘에 감사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동기들도 성기와 함께 무사히 귀국한다고 늦게까지 떠들다가 잠들었다. 

죽을 고비를 겪고 여러 나라를 거쳐 탈출까지 했던 성기는 소말리아의 파병 경험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여자들을 만났고 훈장까지 받은 성기였다.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흑인 병사들을 죽이기도 했다. 죽는다는 의미와 산다는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던 성기다.

또한 아프리카의 배고픈 이들을 보며 깨달았다. 가뭄과 기근은 결국 인간들의 인과 문제로 야기된 것임을 말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이익을 쫓아 자연을 파괴한 결과가 무섭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한국군 병사들은 각자의 짐을 들고 트럭에 올라탔다. 나 일병이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드디어 귀국이구나. 한국에 돌아가서 말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방위가 해외 파병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은 일병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미친놈으로 볼 거다. 어디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냐고.”

“맞아!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암튼 지겹게 삽질했던 여기랑 이제 안녕이다.”

“그래, 굿바이 소말리아!”

나 일병이 입을 크게 벌려 외쳤다.

“야아! 흑인 여자들아! 잘 있어. 너희들 피부는 진짜 겁나게 죽여줬다. 평생 잊지 않을 거다.”

성기는 크게 소리 질렀다.

“땡큐! 소말리아!”

그날 오후 한국군 병사들이 떠나 사람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한국군 기지에 난민촌에서 일하던 여자 의사 나니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자신도 언젠가는 가슴 속에 태양이 떠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기를 생각하며 여권을 움켜잡았다. 그녀는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 작품 후기 ============================

이제 귀국이군요.

그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독자님들께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집안이 난리나겠군요.

또 한번 파출소 순경이 출동하고 대판 싸우겠군요.

그리고 사건들이 터지겠네요.

다시 힘내서 한국의 사건들을 터뜨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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