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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자로서 표현이 거북했는지 이 소령이 인상을 쓰자 그제야 동기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기들 눈에 의혹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자 이를 눈치 챈 이 소령이 입을 열었다.
“내가 잠깐 어디 가는데 경호원과 심부름꾼으로 쓸 겸 데려갔다. 천성기 일병 그만 괴롭혀!”
“네! 알겠습니다.”
동기들이 앉은 자세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오늘 이 소령이 도와줘서 흑인 여성들과 꿈에도 그리지 않던 뜨거운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가. 동기들은 앞으로 이 소령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 뜨거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작게 비밀로 간직할 바에 흑인 여성과 시간을 가진단 말인가. 여자들을 하나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남성들만의 특허였기에 동기들도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새기고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성기는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후에 여건이 나아지면 고백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이미 수많은 부인을 거둔 남자라면 동기들이 가만있겠는가 말이다. 그 점을 염려해 성기는 당분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편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군 병사들은 평생 할 삽질을 하느라 허리가 끊어질 정도였다. 일과가 끝난 후 경계 근무에 서는 병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 시간을 가졌다. 크게 구기운동을 하는 병사들과 독서와 음악듣기, 기타치기를 하는 병사들과 월급을 판돈으로 도박을 하는 병사들로 나뉘었다.
도박을 하는 병사들은 음성적으로 숙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했는데 모두들 외출 때 사갖고 들어온 포커로 절정을 맞았다. 포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짤짤이나 벽에 동전을 튀겨하는 등 고전적이고 원시적으로 놀았다. 동기들도 여기에 참여해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하지만 성기는 이와는 달리 도박을 하지 않고 근육 운동에 매진했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기운이 넘친다고 생각한 성기는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역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일주일이 지나 적응이 되면 더 무게가 나가는 것을 들어야 넘치는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이상했다. 게다가 소변을 본 지도 꽤 오래 되어 언제 자기가 노란 물줄기를 배설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렇다고 그런 몸의 변화를 누군가에게 말하기 꺼려졌다. 이상한 놈으로 취급하거나 정신병자로 여길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자유가 억압된 군대라는 상명하복의 조직이 아니던가. 돌연변이가 나오거나 특수한 놈이 나오면 가만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성기가 그렇게 여기는 것은 꼭 똥인지 된장인지 말해야 아는 것이 아니기에 더 그랬다.
자신이 뱀에게 물려 정액 량이 많아져 서울대 병원에서 연구를 하겠다고 제안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실험실에 감금하고 모르모트처럼 소모해 버려도 국가 기밀이라거나 조직의 힘으로 개인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보다 쉽더란 것을 알고 있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외출할 때에는 이 소령의 도움으로 셰룸 소령과 여인들이 머무는 마을로 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또한 성기는 금남의 구역인 여군 숙소를 새벽에 두 번이나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김중위와 이 소령, 두 여자와 한 침대에서 뜨겁게 시간을 가졌다. 가끔 김중위가 이 소령의 방에서 잔다고 하면 동기들이 의아하게 여길 뿐 딱히 추궁하지는 않았다. 이 소령이 워낙 한 성질을 하는 미친년으로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김중위와 이 소령을 통해 성기는 모든 자세를 섭렵했다. 뒤치기, 벽치기, 그네치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체위를 하며 단련하고 또 연습했다. 가끔은 김중위와 이 소령은 핼쑥한 얼굴로 나타나 주변 장교들로부터 더위를 먹었다며 들어가 쉬라는 권고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얼굴에 아픈 기색이 돈 것은 전적으로 성기와의 뜨거운 시간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출렁이며 흘러가는 아덴만의 물처럼 흘러갔다. 성기가 부대로 복귀한 지 사주일이 지났을 무렵, 오늘도 어김없이 땡볕에서 삽질할 준비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저 멀리 지평선에 붉고 노란 해가 걸려 무거운 몸을 떠올리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을 때 평화유지군 사령부에서 전문이 왔다.
내일 오후 평화유지군 사령부 기지에서 천성기 일병에 대한 훈장 수여식이 있으니 해당 본인과 한국군 지휘관은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복장은 정복이며 수여식이 끝난 후 리셉션이 있을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전문을 받아든 이 중령은 읽는 내내 미소를 띠었다. 부하의 훈장도 지휘관의 진급 심사에 참고 사항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막중한 임무를 띠고 전 세계에서 파병된 곳에서, 더군다나 자신이 이끌고 있는 부대에서 그 훈장을 받는 병사가 있다니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이 중령은 바로 이 소령을 비롯한 장교들을 호출했다. 차량에 탑승했던 장교들과 기지에 남아 행정업무를 보던 장교들은 부랴부랴 이 중령의 집무실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다. 이 경규 대위는 다신 찍히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해 뛰었다. 이 중령은 부리나케 달려온 장교들을 보며 일장 훈시를 했다.
현역이 아닌 단기 사병이 유엔으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지하며 앞으로 일과 시간을 줄여 오후 2시 이후부터는 자유 시간을 갖도록 하고 특히 천성기 일병이 원할 때는 외박도 무기한으로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안으로 소말리아에서 철수해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니 특별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라는 거였다. 덧붙여 장교들도 천일병을 본받아 국가를 초월한 인류애를 가지라고 아울러 각자 근무하는 부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언인지, 그것은 전우를 생각하는 마음, 의리라고 이 중령은 진중한 목소리로 설파했다.
끝으로 내일 평화유지군 사령부에서 훈장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니 자신과 이 소령, 그리고 여군들 가운데 꽃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김중위와 박중위, 최소위가, 남자 장교들 중에는 준수한 외모의 김대위가 자리에 함께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대위는 그 중요한 자리에 끼지 못한 것이 서운했지만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귀국이라는 말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이 지긋지긋한 모래바람과 땡볕과 체체파리도 안녕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장교들은 이 중령에게 경례를 올리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 중령이 생각난 듯 내일 참석할 장교들은 남으라고 했다. 참석할 장교들이 경직된 자세로 서 있자 이 중령은 사람 좋은 쌀집 아저씨 같은 웃음을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다들 앉아. 서있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장교들이 앉자 이 중령이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자네들을 부른 것은 훈장 수여식 때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어서야.”
“네? 그냥 군복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요?”
“참나, 우리가 군인인거 세상이 다 알아. 그 쪽 사람들도 다 알고 말이야. 정복을 입으라고 하니 특별히 신경 쓰라는 거야. 알았나?”
“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국격을 떨어뜨리지 말도록! 국격이란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야. 알았어?”
이 중령은 답답해선지 아니면 장교들이 믿음직하지 않은 것인지 국격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십분 넘게 국격에 관해 듣자니 장교들은 슬슬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중령이 나이 들어 진급을 못하더니 자신들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둥, 부인과 오래 떨어져 지내 욕구불만이 생겼다는 둥, 이 대위를 패면서부터 잠재된 폭력성이 깨어났다는 둥 장교들은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 퍼부었다.
“네! 알겠습니다.”
“음, 좋아! 국격을 명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고, 천성기 일병을 불러와 봐!”
“지금 작업하러 떠났을 겁니다. 아까 병사들은 전부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의 김대위가 대답했다.
“야, 이 새끼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없으면 네가 뛰어가서 불러오면 되잖아.”
“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차를 타고 천일병을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꽅통 같은 새끼들이 장교라고. 이러니 내가 국격을 걲정하지 않겠냐고.”
이 중령의 부드러운 인상이 구겨지며 장교들에게 험한 말을 늘어놓았다. 계급이 깡패인 군대에서 장교들도 참고 들어야만 했다. 김 대위는 꽁지에 불붙은 전투기마냥 튀어나갔다.
한 시간 후 성기는 이 중령과 집무실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부동자세로 무릎을 붙이고 허리를 꽃꽂이 세운 채로 성기는 이 중령의 입가를 주시했다.
“천 일병, 내가 보기에 자네는 괜찮은 청년 같은데, 여자 친구는 있나?”
“네? 여자 친구라면 어떤 의미를 말씀하시는지?”
“어떤 의미긴 이 사람아, 당연히 애인이지.”
“그냥 알고 지내는 여자 친구는 더러 있지만 애인이라고 말 할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성기는 무지 괴로웠다. 자신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사정을 말하기에는 부적절한 자리였다. 어릴 적 불알친구가 아닌 이상 털어놓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지만 자신을 믿고 있을 여자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하하하, 그런가? 내가 조카가 있는데 그 애가 무지 예쁘고 착하다네. 자네에게 맞는 여자 친구가 아닐까 싶네만. 어떤가?”
“중령님의 제안은 무지 고맙습니다만 갑작스런 제안이라 당황스럽습니다. 전 아직 병역의 의무가 남아있어 여자친구를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자네의 그 당당함이 좋은 거야. 남자란 모름지기 자네처럼 말이야, 당당해야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만나봐! 사귀다가 마음이 들어 결혼 하던가 헤어지던가는 둘의 문제니깐 말이야.”
성기는 부드럽게 거절하려고 했던 것이 이 중령에게는 당당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후회했다. 차라리 집안이 가난하다고 둘러대야 했나, 이런 저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돌았다.
“급한 것은 아니고 조만간 귀국할 테니 그때 만나 보라는 거야. 알겠지?”
성기는 마냥 거절할 수도 없어서 닥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는 일념으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는 오늘부터 포상휴가야. 귀국하는 그날까지 푹 쉬어. 알았지?”
“외출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다만 이 중령이나 다른 장교들하고 같이 나가야 해. 자네는 이곳 소말리아의 영웅이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려해주신 점 고맙습니다.”
성기는 이 중령에게 경례를 하고 나왔다.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 내려가니 이 소령과 김중위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미소를 띠고 반겨 주었다. 다른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성기는 자세를 공손하게 취했다.
“오늘부터 휴가랍니다. 귀국하는 그날까지.”
김중위가 주위의 시선을 살피고는 작게 말했다.
“그래요? 잘됐네요. 우리도 오늘과 내일까지 휴가라고 하던데. 뭐라고 했지? 아,. 맞다! 국격을 생각해서 옷을 깨끗이 하고 몸도 깨끗이 씻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좋게 생각해, 김중위! 그리고 성기씨! 그럼 우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까요?”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고. 이 중령님이 장교들과는 외출해도 된다고 했으니 그 마을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오자고. 어때?”
“굿! 굿이에요. 그 언니들도 보고 싶었는데.”
============================ 작품 후기 ============================
G20 이 열릴 때 국격을 생각하셨다는 그분!
우면산가셔서 삽을 뜨십시요. 국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남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닙니다.
엄한 나라가서는 잘도 삽질하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