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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2 회: 5 -- >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성기와 동기들은 숙소로 들어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작업을 너무 열심히 한 결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정 대로 움직이는 것에 습관이 밴 습관 때문이었다. 동기들은 잠자기 전까지 성기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애기해 달라고 보챘다. 성기는 여자들과 있었던 이야기는 빼고 소령과 노믹스와 함께 에티오피아를 지나 케냐를 거쳐 부대로 돌아온 여정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자들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여자의 여 글자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자신이 수많은 여자와 잠을 잤다고 말해버리면 동기들은 질투심에 미쳐버릴 것이다. 가뜩이나 여자한테 관심이 쏠린 한창 때이니 얼마나 성기를 달달 볶을지 안 봐도 뻔했다. 동기들은 부대로 돌아온 과정이 너무나 험난하다며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며 위로했다. 아울러 그 모든 것이 성기의 복이라고 치켜세웠다.
다음 날 몸이 회복된 성기는 가뿐한 몸으로 구보와 식사를 마친 후 군복을 갈아입고 동기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해 도로 보수 작업하러 나갔다. 그날은 종일 땡볕에서 삽질만 열심히 했다. 모자가 아닌 철모를 쓰고 하는 작업이라 목이 부러져 나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말리아는 언제고 총알이 날아올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땡볕에서 세워둔 차량의 그늘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이차선 도로를 보며 점심을 먹었다. 다행이도 한국에서 먹었던 부대 음식과 같아 먹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 다음날은 우물 파는 작업을 했는데 동기들과 수많은 사병은 땡볕에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여러 마을을 위해 물을 찾기위해 부산을 떨었다. 우물을 찾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어서 그야말로 노가다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중령이 발표한 토요일이 되었다. 다른 병사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거나 워크맨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마음이 맞는 동료들끼리 축구나 농구를 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밖으로 외출을 하겠다는 병사는 성기 동기들뿐이었다. 막상 나가려고 하니 지리를 모르고 위험한 지역이라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성기 동기들을 제외한 병사들은 남아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한국군 기지는 수도에서 남쪽방향에 위치한 발라드란 지역에 있었다. 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3km 떨어진 두카 마을과 엠부지 마을이었다. 두카란 말은 스와힐리어로 가게, 상점을 뜻하는 말로 정권이 몰락하기 전에는 번성했다고 한다. 모가디슈를 통해 들어온 각종 수입품들이 두카를 거쳐 남부 지역의 각 도시와 마을로 흘러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엠부지 마을은 염소를 뜻하는 말로 농사와 염소를 키우는 소박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마을 모두 예전과는 달리 번성하지도 않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여자들은 당장 먹을 끼니가 없어 오늘 내일 하는 가족들을 위해 성매매를 한다고 했다. 그늘에 앉아 있는 여성과 벤치에 앉아 있는 여성들 대부분이 성매매를 하고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워낙 가뭄과 기근이 심해 알면서도 방치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취재를 온 기자들에게 달라붙어 치마끈을 풀고 먹을 것을 달라는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이 모든 설명은 이 소령이 직접해주었는데 성기를 보는 눈빛이 여간 끈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성매매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각별히 조심하라고 동기들에게 당부했다. 에이즈가 있어 자칫 하다가는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동기들은 에이즈란 단어가 생소해 그냥 감기려니 여길 정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기들이 신경 쓴 것은 하필 이 소령 같은 여성이 나와서 설명을 해주냐는 거였다. 남성 장교한테 설명을 들어도 부끄러운데 여성 장교가 나와서 그런 면을 시시콜콜히 주의를 당부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직접 이 소령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마음은 이미 벤치와 그늘에 앉아 있는 여성들을 발견하길 간절히 바랬다.
그동안 부대에서 눈치가 보여 성기와 이 소령은 같이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이 소령은 이중사가 없어진 자리를 메우는 위관급 장교들의 업무를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었다. 그렇기에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이 소령이 병사들의 외박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성기는 그녀가 따라온다고 해서 편하게 생각했다. 오히려 동기들이 없는 틈을 노려 그녀와 뜨겁게 몸을 불사를 생각을 했다.
김중위는 따라온다고 했지만 이 소령이 눈을 지그시 뜨고 노려보는 바람에 뜻을 굽히고 부대에 남아 빨래를 해야만 했다. 이 소령이 자신의 빨래까지 떠넘기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남의 속옷을 빨고 있는 김중위였다. 그녀역시 소말리아의 일반 시내를 구경한 적이 없었기에 설레었지만 남아서 빨래나 하라는 이 소령의 지시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녀의 속이 뒤집어지지 않게 성기가 이 소령과 같이 나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주변 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한 셰룸 소령과 여자들은 모두 엠부지 마을의 옆에 위치한 엠피라마을에 있었다. 그 마을은 이미 일 년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 머물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성기는 시간이 되면 그곳도 둘러보고 싶었기에 이 소령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그들이 탄 차량은 두카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들 입술이 바짝 말랐고 몸도 말라있어 보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동기들이 그토록 원했던 나무 그늘 가에 쉬고 있는 여자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들 역시 반바지에 면티 차림의 이방인을 향해 삐쩍 마른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들 모두 한 손에는 배만 볼록 나온 아기를 안고 쉬고 있었는데 그녀들 눈가와 입가로 체체파리가 끊임없이 날아다녔다.
이 소령이 차을 세우고 동기들에게 재차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한쪽으로 흘려듣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소령은 성기를 포함해 다녀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동기들에게 들키지 않게 성기에게 손짓했다. 갔다가 몰래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 무서워진 동기들은 발걸음을 제자리에서 떼지 못했다.
성기가 동기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뭐해? 안 갈 거야?”
그러자 나 일병이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기야! 말이 통하지 않잖아. 게다가 아기들도 있는 유부녀들이고. 우리가 아무리 급하다지만 유부녀를 건드려야 되겠니.”
“어이구, 여자를 보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떠벌릴 때는 언제고.”
“새끼가. 이론과 실제가 같니. 그리고 말 한대로 대화가 통해야 하지. 안 그러냐?”
나 일병이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은 일병을 쳐다보았다. 은 일병도 나 일병을 거들었다.
“그게 뜻대로 되면 세상 어느 여자가 어렵겠니. 그러니 성기, 너가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야이 새끼야! 여기서 여자 친구 이야기가 왜 나와! 그리고 은 일병, 나 여자 친구 많거든.”
“야, 나도 성기 네가 말하는 의미의 여자 친구는 많아. 내가 말한 의미의 여자 친구는 빠구리를 할 수 있는 여자 친구를 말한 거야. 알겠어?”
“그게 애인이지. 여자 친구냐!”
“요즘은 여자 친구라고 하거든. 새끼가 유행을 몰라요. 몰라도 너무 몰라!”
그 말을 듣던 이 소령은 망설였다. 자신이 도와주면 성기는 금방 돌아올 것이지만, 장교가 사병들의 성매매를 도와준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갈등했다. 하지만 성기의 말에 그녀의 고민은 해결되었다.
“알았다. 알겠다고. 그러면 이 소령님한테 통역을 부탁하면 되겠군.”
“소령님한테 어떻게.......”
“뭔 소리야, 그게 말이나 되냐! 이 소령님도 여자인데 말이야.”
“그럼 어떡할 건데. 마냥 미적미적 거리다가 부대로 돌아갈거냐. 막상 닥치니깐 나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새끼들이 입은 살아가지고.”
“알았어. 네가 부탁해서 안되면 그냥 가자.”
내심 이 소령이 통역을 해주길 바랐던 은 일병과 나 일병은 성기의 말에 환호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이 소령은 동기들에게 절대 소문내지 말라고 다짐을 받은 후에야 여성들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떻게 이런 일을 예상했는지 군복을 벗어던지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군복을 입고 외출하면 표적이 될 까 싶어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라는 이 중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 소령과 성기와 동기들은 무지 난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기들은 여자들과 함께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후에 동기들은 다섯 시간동안 흑인 여자를 괴롭혔다고 성기에게 자랑했다. 잘 부탁한다고 말한 이 소령은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동기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성기는 그제야 이 소령을 안고 거칠게 입술을 포갰다.
한참을 뜨겁게 입술을 교환하던 성기와 이 소령은 엠피라 마을로 출발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되었는지 엠피라 마을에 도착했다. 그들은 셰룸 소령을 발견하자마자 차를 세웠다.
엠피라 마을에 있던 여자들과 성기는 가볍게 인사만 한다는 것을 넘어 뜨겁게 몸을 불살랐다. 오후 늦게나마 돌아온 성기와 이 소령을 보고 먼저 나갔던 동기들이 기다렸는지 엉덩이를 툭툭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이제 왔냐?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
“미안, 잠시 어디 다녀오느라고. 그리고 죽긴 내가 왜 죽냐!”
"어디 갔다왔는데? 보니깐 우리랑 같이 있지 않더라."
동기들은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성기에게 흑인 여자들의 매끄러운 피부에 대해 지껄였다.
“성기야! 흑인 여자애들 피부가 제법이었어.”
“정말이니?”
“그럼! 두말할 필요없이 네가 확인해 봤어야 하는 건데.”
"됐어. 뭘 확인하니."
" 수상해! 너!"
은 일병이 의심의 눈초리로 성기를 쳐다보았지만 성기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동기들과의 외출은 불어오는 바람같이 스쳐 지나가는 추억이 되어, 귀환하는 그들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