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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말리아에 대한 의료지원단의 진짜 목적은 인도주의적 발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평화유지군의 사령관과 각국의 고급 지휘관들을 미인계로 사로잡아 조만간에 교전권과 참전권을 부여받은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지지세력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여기에서 교전권과 참전권이 중요한 핵심사항이다. 소말리아 이전에도 자위대는 1991년 4월 26일 페르시아 만에 6척 규모의 소해(掃海)부대를 파견하였고, 92년 6월 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이 참의원과 중의원을 통과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11일부터는 캄보디아에 유엔평화유지군(PKO파견부대)을 파견하는 등 해외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위의 파병은 어디까지나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질서와 치안유지, 구호물자 보급, 도로보수등의 임무에 치중되어 있어 군대란 의미보다는 봉사활동 수준으로 보는 것이 정확했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세계의 경찰 미국처럼 내정이 불안한 약소국에 병력을 파병해 친일 정부를 수립하고 그들의 땅을 잠식해 언젠가 발생할지 모르는 자국 영토의 침몰에 대비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일단계가 해결되어야 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교전권과 참전권을 부여받은 병력의 파병이었다. 그렇기에 의료지원단을 구성할 당시 파격적인 고액의 급료를 앞세워 선발했다. 지원한 여자 의사들도 미모와 몸매를 기준으로 가려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로 선발했다. 신장은 최소 166이 넘어야 뽑았고 가슴 크기도 최소 E컵을 기준으로 삼았다.
선발된 인원 250 명 가운데 여자 의사가 70명이었고 간호사가 180명이었다. 그녀들은 6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은 뒤에 소말리아로 파병되었다.
이런 계획을 짠 사람은 다름아닌 방위청 소속 육군자위대 1등육위 하라다 노조미였다. 그녀는 33살의 노처녀로서 18살에 AV에 데뷔했다가 뜻을 품고 자위대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때가 22살로 일본에 대한 애국심으로 그녀는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자위대에서 1등육위가 되기까지 그녀는 피를 말리는 노력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소말리아로의 파병 기획안을 모집했을 때 몇일 동안 밤을 새우며 머리를 짜내어 기획안을 제출했다. 방위청 고위 장성들이 수십 개의 기획안 가운데 그녀가 제출한 안건을 선택했던 것은 그것이 그들의 오랜 염원인 자위대 무력 행사권을 실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교전으로 나라가 패망했을 때 한순간에 거지 국가로 전락하게된 나라를 살리기 위해 묘책을 생각해냈다. 다름아닌 자국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이용해 연합군들에게 던져주어 그들의 환심을 산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패전 후 3일 만에 미국정의 장교에 대한 '성적위안시설'을 그들의 상륙에 앞서 시급히 만들려고 했다. 한두 명이 아닌 수만의 여성이 동원되어 '특수위안시설 협회'가 발족하게 된다.
정부의 자금 대출과 접대부 모집을 허가받은 특수위안시설 협회는 그 즉시 접대부 모집을 개시했다. 구인 광고에는 숙소, 피복, 식량이라고 유혹했다. 패망과 동시에 물자와 식량이 부족한 일본의 전국민은 당장 오늘 먹을 거리도 걱정해야만 했다. 그런 차에 이런 광고를 접하게 된 많은 여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면접을 보게 된 여자들은 실상을 알고 돌아가려 했지만 '나라를 위해서'란 말로 여자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만에 아가씨 1360명이 접대부로 채용되었다.
미군을 상대로 경험이 미숙한 처녀들이 위안시설을 메우게 되자 그날 밤부터 불야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을 상대했던 미군들은 더 경험있는 여자들을 원했다. 깡패같은 미군의 요구에 협회는 섹스에 숙달된 매춘부들을 모집했다.
신문 광고나 포스터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은퇴한 매춘부들에게도 현역 복귀를 호소했다. 전쟁통에 휴업하고 있던 사창가들이 이 영향으로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사창가는 어디든 연일 초만원이었다.
1945년 이후 미국의 점령후 주로 주일미군 장병을 상대로 한 거리의 사창을 가리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그것을 빵빵이라고 불렀으며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빵빵걸이라고 불렀다. 자국의 일본 남자들을 상대로 한 여자들은 이렇게 불리지 않았다.
1946년에는 전국에 7만~8만명, 일본의 부흥을 알리는 한국 전쟁이 심화되었던 1952년에는 10만명의 여자들이 빵빵이었을 것으로 일본의 역사가들은 전하고 있다.
1956년(쇼와 31년)의 매춘 방지법 시행 이후에는 그 수가 격감했지만 빵빵걸과 빵빵은 여전히 존재했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의 정액받이 여성인 빵빵걸과 달리 특정 상대, 주로 상급 장교와 애인 계약을 맺은 후 매춘 관계에 있던 여성을 온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만간 평화유지군 소속 장교들의 회포를 풀기 위한 회식을 일본 의료지원단에서 열기로 했다. 말많은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왜 일본 의료지원단에서 여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조센징! 이 개놈의 새끼들은 틈만 나면 자국을 물어뜯으려 해서 이가 갈리는 의료지원단 최고 지휘관 1등육좌 사이로 마까였다. 한일 합방으로 인해 미개한 조선의 역사를 바꾸어 준 것이 천황의 나라 일본인데 그것을 고마워하기는 커녕 틈만나면 일본 대사관으로 몰려와 항의하는 시민들을 언론을 통해서 접할 때마다 자위대 장교들은 피가 꺼꾸로 솟구쳤다.
은혜도 모르는 개만도 못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장교들의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조만간 그들이 자국의 영토라 불리는 다케시마를 한국으로부터 영원히 뺏어오는 것이 한국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일본의 뿌리깊은 한국에 대한 멸시와 천하게 여기는 생각은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그들의 고정관념이었다. 한국은 언제든지 발로 밟을 수 있는 바퀴벌레같다고 일본의 우익 정치인과 자위대 장교들은 생각해왔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언젠가 모조리 지구상에서 죽여 일본 국민의 우수성을 널리 널리 알려주고 싶은 사이로 마까였다. 한국과 중국과 달리 당장이라도 요절을 낼 수 있는 동남아시아 떨거지들은 사이로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살피지도 못하고 한국과 중국에 편승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꼴이 못견디게 만들었다.
다행이도 회식의 비용 일체를 일본이 부담한다고 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그 이면에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했다.
미국과 일본은 빚쟁이와 채권자의 관계였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이 미국의 요즘 형편이다.
담배를 꼬나물고 책상에 앉아 조만간 열게 될 회식에서 일본 여자 250명을 총 동원해 평화유지군 장교들과 고위층을 구워삶으면 이제 일본 자위대는 거칠 것없이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여기며 뿌듯한 심정으로 담배연기를 하늘로 뿜어냈다.
그때 사이로 마까의 참모 2등육위 미따까 다까세가 들어왔다. 모자 사이로 뽀얀 살결이 돋보였고 입술 사이로 뻐드렁니가 역겹게 보이기보다는 섹시하게 보이는 육감적 미인이었다.
"사이로 1등육좌님! 아까 부르셨다고 하셨는데, 의료지원단 숙소 건축현장에 가 있어서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이로가 책상위에 올린 다리를 내리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미따까! 이리 와서 나의 화를 풀어라. 조센징, 마늘 냄새나는 시궁창 놈들과 팬더 곰처럼 미련한 떼놈들 때문에 열받는구나."
"하이!"
미따까는 도톰한 붉은 입술에 혀를 축였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겨 사이로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사이로의 바지 단추를 풀더니 번데기를 꺼냈다.
한두번 한 솜씨가 아닌 듯 미따까는 번데기를 잡고 위아래로 세차게 움직였다. 작은 공도 만지며 사이로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1등육좌님, 미국 CIA의 이곳 책임자가 왔다고 전해 달랍니다."
사이로는 기분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와 분위기를 망치자 가뜩이나 구겨진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CIA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밑에 있던 미따까는 책상 속으로 숨어들며 들키지 않게 애썼다.
"무슨 일로 왔는데?"
"그것은 이곳 책임자를 만나면 이야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알았어. 곧 내려갈테니."
부하가 나가자 사이로는 손을 움직여 바지를 추슬렸다. 그리고는 밑에 숨어있는 미따까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곧 올테니까."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