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4 회: 5 -- >
나 검사는 삼성제일병원에 자궁파열로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비교적 회복 속도가 빠른 효성과 장마담, 김희선을 만났다. 그녀들을 휴게실로 불러내 가벼운 이야기로 말을 시작하는 나 검사였다. 환자복의 세 여자의 미모와 세련된 정장 차림의 나 검사의 미모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환자복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초췌함 속에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김희선과 효성이었고, 장마담에게서는 아픈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풍만함과 여유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나 검사는 눈치를 살피는 것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듯 보였다.
그녀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듯 서로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중이었다. 나 검사가 자판기에서 캔 음료 네 개를 뽑아 그녀들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
"불편하신 몸인데도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전 북부지검의 검사 나혜리라고 해요."
제일 연장자인 장마담은 미소로 대답을 해주었고 희선과 효성의 표정에는 미소대신 의구심이 묻어있었다. 대관절 자신들이 무슨 범죄와 연관되었다고 검사가 찾아왔단 말인가! 경찰서와 검찰청에서 찾아왔다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백이면 백 없을 것이다.
그녀들의 표정이 굳어 있음을 확인한 나 검사는 캔 음료의 뚜껑을 따며 되도록 자연스럽게 말했다.
"제보를 받은 것이 있어 확인해 볼겸 왔어요. 여기 두 분은 같은 서울대병원에 근무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나요?"
희선과 효성이는 서로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둘의 얼굴에 묘하게도 반가운 기색이 서렸다. 희선이가 먼저 말했다.
"글쎄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팔천명이 넘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알 수가 있겠어요."
효성이 희선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말했다.
"저역시 인턴이라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나 검사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번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장마담에게 말을 건넸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서울대병원에 들른 적이 있더군요. 그 때가 언제인가요?"
"입원하기 하루 전인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물어보시는 거죠? 지금 기분이 무지 나쁜데도 초면이라 화를 낼 수도 없고 해서 말이죠."
장마담이 은근히 세게 밀어 붙였다. 장마담은 술장사를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상대의 직함을 알았음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네? 세분 다 그게 궁금하신 모양인데 말씀드리죠. 서울대병원에 강간범이 있다는 제보가 접수되어 세분을 만나기 전에 사전조사를 해보니 공교롭게도 자궁파열이란 병명으로 입원하신 여자분들이 17분이나 되더군요. 특이한 사항은 입원하신 분들 모두 서울대병원과 관련이 있다는 거죠. 여기 이분은 간호사와 인턴, 그리고 장마담님은 서울대병원에 방문객으로 가신 적이 있다는 거죠. 이제 속 시원히 말씀해주시죠. 누가 그랬는지, 저희가 책임지고 그 강간범을 잡아 넣도록 할게요."
뜻밖의 말에 희선과 효성이는 황당했다. 장마담역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누가 강간범이라니,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남자를, 그것도 병실에 입원하는 내내 생각이 났던 사람을 흉악범으로 몰고가니 더 어이가 없었다.
제일 어린 효성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그 모습은 마치 무협지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에 불타는 여자주인공처럼 보였다.
"누가 그래요? 누가? 우리가 강간당했다고. 누가 그러냐구요?"
"맞아요. 누가 그래요. 우리는 강간당한게 아니에요. 사랑해서 한 행위를 왜 매도하고 멋대로 갖다붙이는 거에요."
장마담역시 씩씩거리며 끼어들었다.
"검사면 다야. 나이도 어린 년이 어따대고 강간이래! 니가 봤어! 니가 봤냐구."
나 검사는 자신의 말이 어느 정도 먹힐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의 반응이 나오자 기가 막히고 황당했다. 정황상 누가 보아도 이 여자들은 강간당한게 맞는데 강간이란 말에 저토록 격분하다니, 더군다나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위의 언급한 여자들 모두 그 한남자랑 관계했다는 말인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86년에 최초로 발생해 91년에 마지막 희생자가 나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는 화성연쇄살인마처럼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 같은 불안감이 나 검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화를 내는 세 여성은 모조리 캔 음료를 나 검사의 얼굴에 뿌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마지막에 나가는 효성의 말이 귀에서 울려퍼졌다.
"검사면 진짜 범죄자를 잡으세요. 제가 사랑하는 남자를 잡으려 하다니 결단코 용서못해요. 저 역시 가만히 있으려 했지만 도저히 제가 사랑하는 남자를 범죄자로 만든 나 검사를 가만두지 않겠어요. 절대로! 결단코!"
효성의 잔뜩 독이 오른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효성의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상류층 자제이거나 재벌집 딸이 내뿜을 수 있는 기세가 느껴졌다.
쓴웃음이 나 검사의 입에서 나왔다. 잘못하면 옷을 벗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감싸는 것이 석연치않아 보였다.
강간범과 피해자의 관계는 소유된 물건이라고 보면 되었다. 한번 강간당한 여자를 강간범은 다시는 찾지 않는다. 그 관계는 힘을 토대로 구축된 관계이기 때문에 범인은 피해 여자에게서 힘을 빼앗아 여자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든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범인에게 소유된 물건으로 전락하게 된다.
굴욕감을 느낀 피해 여자들은 범인에 대해 뼛속 깊이 증오심을 갖는데 반해 지금 눈 앞에 있던 여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사랑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머리결에 묻은 포도 송이를 떼어내며 가슴에 묻은 오렌지알갱이도 떼어내는 나 검사였다.
휴게실에서 나온 세 여자들은 씩씩거리며 복도를 지나 병실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앞으로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세 여자였다. 세 여자는 인사를 한 후 이따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각자의 병실로 들어갔다.
자기 침대에 누운 효성은 그가 보고싶고 그리웠다. 그의 냄새나는 양말, 팬티를 손으로 직접 빨아주고 싶었다. 그에게 나는 모든 냄새는 효성에게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더욱 사무쳤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의 배경에만 관심이 있었지 결코 순수하게 자신을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효성은 성기에게 매달렸다. 그를 생각하면 할 수록 그에게 안긴 그날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주 익숙하고도 그리웠던 그의 넓은 가슴. 그의 손가락과 아랫배의 왕자근육까지 모조리 기억나는 효성이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애무하던 그.
"보고 싶어요. 미치도록!"
그녀는 고개를 창가로 돌려 하늘을 보며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효성은 사랑의 갈증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하이에나가 되어 버렸다. 이미 그녀는 성기에 대한 사랑으로 표범이길 거부하고 썩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 한마리 하이에나였다.
그를 꿈 속에서라도 만난 날은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망상에 빠져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처녀를 잃었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만약 여자에게 허락된 처녀가 한개가 아닌 만개라면 모두 그에게 주고픈 심정뿐인 효성이었다.
그가 어떤 여자를 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형적인 요부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변할 것이다. 또한 청순가련형의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를 위해 변신할 것이다. 이미 그에게 중독된 한마리 하이에나가 효성이었다.
그의 맛은 너무나 지독해 다른 고기 맛은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맛에 중독된 여자는 결코 풀을 뜯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요즘 조아라 글에도 톡톡 튀는 소재를 쓰는 분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흑의 유니콘> 이거 재밌네요.
함 읽어보삼!!!!! 맨 개허접 판타지 보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