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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과 케인 샤하르는 장비를 챙겨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어제 오후에 에티오피아의 수도에서 괴현상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본부에서는 서둘러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로 취재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성기는 떠나려는 그들을 잡고 인사했다. 노믹스가 성기의 뜻을 전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전 한국인인데, 혹시 한국어를 아십니까?"
"반갑군요. 저도 한국인인데 이민 3세대라 한국어는 서툽니다. 우리 회사 최고 경영자도 한국인입니다."
"아하, 그래서 방송국 이름이 한국어였군요."
"네, 그분이 여자지만 당차고 포부가 크거든요. 참고로 그 분 성함은 천성녀라고 합니다."
"여자분이 사장님이시라고요. 우와, 세계속의 한국을 널리 알리시는 분 같아 저 역시 같은 한국인으로써 뿌듯합니다. 여기 일하시는데 도움이 되십사 물을 드리겠습니다. 넉넉히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가는 길이 멀어 식수를 걱정했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소말리아로 가시는 거라면.......방향이 같다면 우리랑 같이 가셔도 되는데....."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우리는 에티오피아로 갑니다. 그곳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 바람에....."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곳에서 노란 색의 레이저가 건물을 부쉈다는 군요. 그리고 또 다른 현상은 가축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다고 합니다."
성기는 그 말에 뜨끔했다. 성기의 표정이 자신들과 헤어지는 것을 서운해 하는 것 같아 같은 한국인인 청룡은 미안했다. 같은 동포를 이런 데서 만나다니, 반갑기는 했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야했다. 그렇기에 바람의 언덕 방송이 짧은 시간에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악수를 하고 떠나는 청룡과 케인 샤하르였다. 성기는 군복을 말려 편안한 반바지 차림의 면티 차림이었기 때문에 군인인음 들키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까까머리인데 그동안 다듬지를 않아서 길게 자라 있었다.
성기는 여인들과 함께 의사 나니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뜻밖에 찾아 온 젊은 남자가 구호 물품을 놓고 간다고 하지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하며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손가락에 성기의 땀이 만져졌다. 더운 날씨에 자신을 기다리느라 고생했다며 나니아는 성기에게 거듭 고마워했다.
중년의 아름다운 여성 의사에게 칭찬을 받으니 성기는 뿌듯했다. 성기의 손짓에 소령과 흑인 병사들은 식량과 구호 물품이 실린 트럭을 몰고 왔다. 병사들은 일일이 물자를 내려 나니아가 있는 텐트 옆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특히 담요와 설탕을 내려놓자 나니아는 좋아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매일 밤마다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4명의 아이가 저체온과 저혈당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성기에게 거듭 감사함을 전하며 병사들에게도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병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기쁨의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매일 총을 쏘아대는 삶에서 이런 삶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성기는 나니아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저만치 떨어진 난민 여성이 젖을 물린 채 힘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성의 젖은 영양이 없는지 탄력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고 아이 역시 영양 부족으로 인해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성기는 절로 눈물이 나왔다. 성기의 시선을 쫓아 여인들도 그 난민 여성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 역시 절로 슬픔에 잠기며 눈물을 흘렸다.
성기는 소령에게 지시해 특별히 여자들을 배려해 챙겨두었던 간식 한상자를 주라고 했다. 소령은 병사에게 시켜 트럭에서 간식 한 상자를 꺼내 난민 여성 앞에 놓았다.
눈물을 훔치고 성기와 여인들은 트럭에 탑승했다. 성기 일행은 난민촌을 떠나 소말리아로 향했다. 나니아 의사는 떠나는 성기를 보며 불현듯 안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이었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철없던 사랑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 같아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결혼을 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로 한 자신의 삶에 남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평정심을 성기가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만났지만 오래된 사람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젖가슴이 마구 빨리는 망상에 젖으며 그녀의 은밀한 동굴은 흠뻑 젖어갔다. 그녀는 성기에게 깊이 빠져 어갔다.
소말리아 국경에서 80km 떨어진 다다브 지역이라 곧 소말리아에 도착할 것이라고 소령이 성기에게 말했다. 소말리아로 들어간 후 북동으로 방향을 틀어 부레오레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가는 도중의 샤할란 마을이 성기 일행의 목적지였다. 블랙 워터들과 만난 후 한국군 기지로 가면 끝이었다. 소령은 성기를 따라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지만 성기가 제지했다. 이곳에서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렸다. 그러자 소령도 이제는 총질 대신에 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성기는 한국으로 돌아가 틈틈이 연락을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믹스는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모님을 찾고 못다한 효도를 하겠다고 성기에게 약속했다. 성기는 노믹스에게 잘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노믹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쑥쓰러워했다.
샤할란 마을을 5km 앞두고 사을 헤매던 자바리가 숨을 거두었다. 성기는 소령이 다급한 말로 외치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소령에게 자바리를 땅에 묻으라고 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블랙 워터는 자바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의심할 것이다. 당연히 그 다음 수순은 총질을 가해 협박할 것이다. 자바리는 어딨냐고 말이다.
병사들이 묻고 성기는 소령과 노믹스와 함께 블랙 워터를 만나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소령은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선선해지는 오후 7시라고 애기를 들었습니다. 부레오레에서 오니 도로는 한곳 뿐입니다. 그들이 오는 도로 주변을 매복해서 먼저 죽이는 겁니다."
"음, 괜찮기는 한데. 그들이 진짜 다른 도로로는 오지 않을까?"
"확실합니다. 이 소말리아에서 나고 자란 접니다. 게다가 미군 애들 생리도 어지간히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런데, 무기는 충분해?"
"성기님, 저도 군벌입니다. 그러니 무기 걱정은 하지 마십시요. RPG는 충분하니 그들을 상대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럼, 서둘러서 매복할 주변으로 가자고. 그리고 여자들은 먼저 한국군 기지로 보냈으면 하는데. 어때?"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들 때문에 걸리적 거렸는데."
여자들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니 모두들 같이 있겠다고 버텨 성기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성기는 그렇게 내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녀들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자 황량한 벌판에 멈춘 트럭 주위는 울음바다가 되어 여자들의 곡소리가 꾾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울자 성기는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곳에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성기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버티고 있자 그녀들은 울음을 그치고 성기에게 키스하며 그의 안전을 염원했다.
트럭 한대가 서둘러 부레오레가 아닌 한국군 기지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여인들은 트럭 위에서 손을 흔들며 점점 작아지는 성기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성기는 여자들이 가자 매복할 곳으로 트럭으로 이동했다. 가는 내내 성기는 물을 먹었다. 방광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1리터 생수 30개를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소령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노믹스 역시 대단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었다. 소령과 흑인 병사들은 자리를 잡을 곳을 일일이 걸어다니며 물색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소령과 병사들은 트럭들이 만든 그림자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6시까지 그들은 편히 낮잠을 즐겼다. 성기는 점점 차오르는 소변의 욕구를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
시간이 흘러 6시가 되었다. 소령은 병사들에게 무기를 챙기라고 말했다. RPG 세대를 갖고 아까 봐두었던 자리로 병사들은 걸어갔다. 모두들 엎드려 블랙 워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성기는 AK-42 소총의 총구를 눈 앞의 도로에 겨냥했다. 그러나 성기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여의치 않을 때는 바로 자신의 무기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용하지 않은 것은 남자 부대원이 맞아 자신에게 매달릴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