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회: 5 -- >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영국 귀족여성이 1894년 한국을 여행하고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기행문이 떠올랐다. 북한강, 금강산 등 조선의 아름다운 풍경과 민초들이 살아가는 모습, 청일전쟁이 일어날 당시 왕실의 근황 등을 진지하게 쓴 이 기행문에는 조선인들이 비숍 여사의 하얀 피부를 신기하게 여겨 만져보기도 했다는 우스운 에피소드도 나온다.
백인을 처음 본 한국인으로선 아마도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조선의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가득 차 꼼꼼히 바라보던 비숍 여사 자신이 조선인들에게는 큰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인들이 남긴 어떠한 기록들보다 당시 시대상, 특히 민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세히 쓴 책이다.
가는 도중 차량은 길 한켠에 멈추었다. 목적지에 다 왔냐고 물어보니 자바리가 아니라고 했다. 자바리가 내려 도로 옆에 있는 건물로 황급히 들어갔다. 자바리가 오분도 되지 않아 건물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차량은 다시 출발했다.
자바리가 성기에게 은행에 들러 환전을 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화폐단위는 빌(Birr)로서 환율은 1$에 8.803Birr이라고 한다. 차량 앞에 버스가 멈춰선 채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승객이 다 차야 출발을 한다고 했다. 버스를 지나쳐 트럭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황량한 벌판이 쭉 이어지다 점점 고도가 높아질수록 초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뒤에서 버스가 느리게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생활은 소말리아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집들이나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보면 빈곤함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도로 위에서 가끔 말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말싸움은 이곳의 자연스러운 문화인 것 같다.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푸른 신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초록색을 봐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고 했던가.
성기 일행의 트럭은 이제 비포장도로를 끝없이 내달렸다. 설마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이런 길이 이어진 건 아니겠지?라고 의구심이 드는 성기였다. 더구나 트럭은 소변을 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국 2시간 넘게 소변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낮 1시가 다 되어서야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도중에 수많은 삐끼들과 거지들이 차량에 들러붙어 떼어놓느라 애를 먹었다. 오늘 숙소는 Tewodros호텔로 정했다고 자바리가 말했다. 낡은 호텔 앞에 차량을 멈추자 호텔 앞에 죽치고 있던 노인과 아이들이 달라붙어 구걸하기 시작했다.
트럭에 있던 흑인 병사들이 내려 노인과 아이들을 제지했다. 성기는 저 멀리 보이는 잘 사는 구역을 보며 분개했다. 아디스아바바도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못사는 나라조차도 빈부차가 존재한다니 성기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성기는 자바리에게 말해 구걸하는 노인과 아이들에게 소량의 돈이나 식량을 나누어주라고 지시했다. 자바리는 말없이 성기의 지시에 따랐고 여인들은 아이들을 마치 자신의 자식들 대하듯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그런 그녀들의 눈에 성기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함을 느끼며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 어린 아이 한명이 성기에게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했다. 성기는 아이가 삐쩍 말라 있어 마음이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고 아이를 안아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마는 성기의 볼에 뽀뽀를 하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성기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등을 토닥여 주었다. 카리나와 타마라가 다가와 성기에게서 아이를 건네받고는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성기는 흑인 병사들이 눈을 빛내며 주위를 경계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따라온 흑인 병사들은 그 중에 있었는지 몇몇이 성기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순간 성기의 몸에 오싹한 전율이 일었다. 성기는 호텔를 향해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여자들도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성기를 따랐다.
Tewodros호텔은 방 하나에 50Birr 1인당 25Birr이면 3000원정도 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자바리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쉐라톤 호텔도 있고 시설 좋은 곳도 있지만 그곳은 묵기가 어렵다고 했다. 여기 흑인 병사들은 소말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가는 도중 누군가의 제보로 에티오피아의 경찰에 끌려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이목의 집중을 덜 받는 낙후된 호텔에 묵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차에 타느라 허기가 졌지만 호텔은 식당이 좁아 한꺼번에 식사할 수 없었다. 소령이 부하 몇명을 보내 시장에 가서 빵과 과일을 사오라고 시켰다고 했다. 또 다른 부하 몇명을 보내 기름을 사오라고도 시켰다. 바나나와 오렌지, 토마토는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고 했다.
호텔에서 고대하던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한 병에 4Birr을 하는데 오랜만에 목을 축이는 것이라 맥주 맛이 꿀맛 같았다. 그러나 맥주 맛이 생각보다 신통치는 않았다.
짜증나는 것은 숙소에 샤워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샤워는 내일로 미뤄야 했다. 여자들도 땀이 배어있어 씻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참는 것 같았다.
소령이 맥주를 한박스 가져오더니 이걸로 얼굴을 씻으라고 말했다. 성기는 황당해하며 제지했다. 음식으로 씻으면 죄가 될 것 같은 에티오피아의 부족때문이었을까! 만약 이곳이 한국이거나 물자가 풍부한 나라였으면 한번쯤 맥주로 샤워를 했을 지도 모른다. 성기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소령의 의견에 부정적인 의사 표시를 했다.
성기는 소령에게 식당에서 부하들을 먼저 먹이라고 했다. 소령은 미안해하며 성기보고 먼저 먹으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성기는 운전을 맡은 병사들을 챙기라고 극구 사양했다. 그러자 소령은 성기의 지시를 따라 부하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했다. 수십 명이 몰려와 식당은 시장통마냥 시끌벅적였다.
성기와 여자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맥주로 목을 축이고 과일로 배를 채웠다. 자바리가 다가와 성기에게 말을 했다. 노믹스가 뒤에서 나타나 통역했다.
"이곳은 빈대가 많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살충제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을 미리 침대와 베개, 바닥 곳곳에 뿌리고 주무십시요."
"고마워. 배려해줘서."
"천만에요.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성기는 그의 구애에 우웩하고 구역질이 올라와 참느라고 혼났다. 서둘러 화제를 돌려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여기 물가는 다 싼가?"
"네, 아주 싸서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오죠. 게다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선교사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소령이 식당에서 생과일 쥬스를 갖고 왔다. 벌써 식사를 마쳤는지 입가에 음식물의 흔적이 보였다. 성기 뿐만 아니라 여자들 것도 알아서 챙겨오는 것을 보니 역시 소령은 눈치가 빠른 것 같았다.
자바리가 설명을 해준다. 모든 과일 종류를 막론하고 저 500cc 비슷한 컵 크기에 담긴 주스 가격이 한국 돈으로 350원이라고 한다. 파인애플, 구아바, 바나나, 아보카도, 파파야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주스 종류가 다양하다고도 했다.
어느새 성기와 여자들의 식사 순서가 다가왔는지 자바리가 손짓하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은 비좁아 10명이 간신히 의자에 앉을 정도였다. 어제도 먹었던 인제라가 접시에 담겨 성기와 여자들 앞에 놓여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맛이 풍기는 이 맛은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배고파서 억지로 입으로 쳐넣은 성기였다.
인상이 절로 일그러지며 한숨이 나왔지만 참느라 애썼다. 성기와 달리 여자들은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접시에 담긴 인제라를 보며 고추장과 라면이 떠올랐다.
자장면도 먹고 싶고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 찌개도 먹고 싶었다. 부대찌개도 먹고 싶고 동태찌개도 먹고픈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자 연속해서 음식들이 떠올랐다. 꽃게탕, 알탕, 홍합탕, 소주를 곁들여서 먹는 담백한 홍합탕 맛은 먹어본 자만이 안다.
입맛을 다시며 성기는 억지로 인제라를 떠 입속에 넣었다. 밥을 다 먹자 진한 커피향을 내뿜는 커피가 놓여졌다. 속이 느글거리고 거북했는데 참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자들 앞이라 뱉을 수도 없어 억지로 삼킨 성기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은 1층은 여자 남자 화장실은 2층이라고 한다. 성기는 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자히라의 안내를 받아 화장실로 향했다. 다른 여인들도 식사를 끝내지 않고 따라서 일어나려고 해 성기가 말렸다. 2층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 성기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자히라가 문밖에서 기다렸다.
성기는 바지 단추를 풀고 몽둥이를 꺼내 변기를 겨냥했다. 쏴아아악!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소변은 변기를 두조각으로 깨뜨리며 벽까지 뚫고 들어갔다. 성기는 대뜸 놀라며 소변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쏘아져 나간 소변은 레이저 총처럼 뻗어나가며 화장실과 이어진 벽을 깨고 쭉쭉 나갔다.
소리에 놀란 것은 자히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성기의 안전이 걱정되어 황급히 문을 열었지만 안의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동상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기의 소변이 폭포처럼 뿜어져 벽을 깨고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옆에 붙어 있던 객실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마침 그 방에는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 신학교로 입학하려는 신학생들을 인도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헬렌 자매가 묵고 있었다. 그녀들은 여학교를 졸업하고 독실한 집안의 영향으로 콜롬비아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웠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움에 눈을 뜨고 그녀들은 이곳 에티오피아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올 6월에 입국해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신학생들과 교류했다.
방금 식사를 마치고 이틀 후 떠나기로 약속한 타나세 형제와 골디 자매를 위한 서류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그들을 떠나 보낸 후 이곳에서 삼개월 가량 머물러 아프리카인들의 문화를 배울 예정이었다. 그런 후에 수단으로 선교활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자매는 식사 후라 졸졸 나오는 물을 받아 얼굴을 씻으려고 샤워실에 있었다. 샤워실이라고 자그마해서 있으나 마나 한 시설이었고 더우기 물은 개미 똥만큼 나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헬렌 자매가 있는 샤워실의 벽이 쾅쾅 깨져나가며 뜨겁고 축축한 노란 물이 자매의 몸을 세차게 때렸다. 화들짝 놀라 피하려고 했지만 물줄기의 속도는 빛처럼 빨라 피할 수 없었다. 자매는 노란 물줄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고통으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맞다가는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 자매의 잠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지며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언니가 정신을 차려 동생을 잡고 쓰러졌다. 물줄기는 멈추지 않고 세면대를 부수고 그 옆방의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자매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물줄기에 경악했다. 에티오피아에 와서 겪은 것이지만 항상 물이 졸졸 나왔고 일주일에 5일은 단수여서 나오지 않는다고 맘 편히 생각했다. 오늘은 5일만에 단수가 풀려 그동안 씻지 못했던 몸을 닦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매들의 간절한 기도가 먹혔는지 성기의 오줌이 그녀들을 깨끗이 씻겨주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몸 위로 세차게 지나가는 물줄기를 보며 역시 하나님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호텔의 종업원들도 천둥을 동반한 물줄기 소리에 놀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리하던 주방장과 직원들도 건물이 무너진다며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워드패드로 작성하다보니 오타가 발생합니다.
오타를 더욱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타는 글의 집중도를 방해하니 되도록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일요일이 복날인데, 우리 독자님들, 부모님을 모시고 가시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백숙, 삼계탕, 보신탕 드시기 바랍니다.
좀 더 달려야 부대에 복귀하고 귀국하겠군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