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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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와 샤리파는 성기의 미소가 자신들을 끌고 갔던 흑인 병사들의 웃음과 겹쳐져 소스라치게 놀라며 언니인 엘리야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차가운 두려움이 안개처럼 그녀들의 마음 속에 자라났다. 두 동생의 다리는 후들거렸고 얇은 옷은 여기저기 찢어진 상태였다.

엘리야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동생들이 겁먹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기에게 눈짓을 해 양해를 구하는 표정을 하고는 동생들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이어 바닥에 있는 시트 여러 개를 가져가 바닥에 한장을 깔았다. 동생들을 바닥에 눕히고 자신도 곁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직도 하복부는 칼날에 찢어진 듯한 아픔이 남아 있었다. 성기와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당분간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등에 난 채찍으로 인한 상처는 이상하게도 벌써 아물어 있었다. 

전구는 전원을 내려 꺼져 있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만 비추고 있었다. 성기는 바짝 달라 붙는 여인들로 인해 아랫도리가 또 다시 불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인들의 몸에서 나는 땀냄새와 오줌을 닦지 않아 지린내가 진동해서 역겨웠다.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불쾌한 냄새는 가시지 않고 성기를 괴롭혔다.

성기는 그녀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밀쳤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다가가 확 열어제끼고 노믹스 상병, 한국명 면박이를 불렀다.

"면박아! 면박아!"

"네!"

옆방에서 자고 있었는지 바로 옆 문이 덜컥 열리더니 눈을 비비며 나타나는 면박이였다. 성기는 노믹스가 정신이 번쩍 나도록 귀밑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악! 아파요."

"정신이 드냐?"

"네, 네. 정신 차렸어요. 아프다고요."

"그래, 알았어."

성기는 그제야 잡은 머리칼을 놓았다. 노믹스는 인상을 쓰며 아픔을 참았다. 

"여기 씻을 곳은 없냐?"

"있긴 있는데 물이 부족해서......삼일에 한번 씻는다고 합니다. 내일이 씻는 날이라고 하던데.....왜요?"

"왜긴, 씻으려고 한다. 이거 너무 땀냄새가 나서 말이야. 여자들도 씻을 곳이 있냐?"

"여기는 이슬람 국가이니 남녀가 따로 씻을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물도 부족한 곳인데......"

성기는 종교란 것이 인간의 부족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불완전한 존재가 신께 의지해 완전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종교인데, 이슬람교는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독교도 문제가 많아 종종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곤 했다. 천주교도 마찬가지이고 불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좆같은 종교같으니라고. 알라신과 하나님, 부처님은 모두 인간을 위해 이 땅에 복음을 전파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러한 것들의 형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한바탕 속으로 욕설을 퍼부어 준 성기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인간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을 맹세하는 성기였다.

성기가 씩씩거리고 중얼거리자 노믹스는 불안해졌다. 성기를 놔두고 소령을 부르기 위해 뛰어갔다. 소령도 잠을 청하고 있었는지 눈을 비비고 왔다.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기 위해 껌벅이는 것이 불쌍해보였지만 기왕지사 왔으니 소령에게 물어봐야 했다.

"지금 씻을 수 있겠나?"

당연히 노믹스가 통역해주었다. 소령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한동안 껌벅거리고 가만히 있다가 성기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려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 부랴부랴 대답했다.

"네,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잠잘 시간인데......"

"잘 됐네. 나와 여기 여자들도 냄새가 나서 말이야."

소령이 놀라 말했다.

"여자들을 위한 샤워실이 없어 남자들이 씻는 곳을 써야 할텐데......게다가 물도 부족해서.....같이 씻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말끝을 흐리며 성기를 쳐다보는 소령이었다. 성기는 생각난 대로 말해버렸다.

"그래, 별 수 없지. 같이 씻어야 한다면 해야지."

어차피 그녀들은 자신과 뜨겁게 살과 살을 불살랐던 사이다. 가장 은밀한 곳도 보인 사이인데 같이 씻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 성기였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씻는다는 것은 상상도 어려운 이야기라고 소령은 말했다. 그러나 물이 부족한 소말리아에서는 종종 부부끼리 한다고 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정결함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했다. 언제나 예배를 드리기 전에는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이것을 우두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깨끗하게 씻는 목욕 문화가 종교적으로 권장이 되었고 이슬람 제국 곳곳에는 공중 목욕탕인 함맘이 들어서게 된다. 물론 부유층이나 지배층의 경우는 저택에 함맘이 설치되었다.

덕분에 함맘은 사람들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부유층들은 귀한 손님일수록 자신의 함맘에 초대하여 함께 목욕을 즐기며 담소하는 것을 즐겼고, 민중들도 마찬가지로 함맘에서 서로의 친목을 다졌다. 그만큼 함맘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이런 함맘도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들어선 지금에는 쉽게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방식 그대로의 함맘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시리아라고 한다. 무려 8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함맘들이 존재할 정도로 그 역사들도 상당히 깊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 근방 다른 나라에서는 터키를 제외하고는 이런 방식의 함맘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그만큼 중동 지역도 많이 서구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는 동성 간에도 신체의 중요부위는 노출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예전 바레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목욕탕에 가려면 수영복을 꼭 챙겨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이슬람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스럽고 온갖 물자가 부족하다보니 이슬람 문화가 많이 무너졌다고 했다. 다국적군이 들어와 문화의 충돌을 일으켜 종종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성기는 노믹스에게 말해 여인들에게 뜻을 물었다. 그러자 여인들도 성기의 뜻에 흔쾌히 응하며 방문으로 몰려들었다. 그녀들을 데리고 아래층의 목욕 시설로 쓰이는 방으로 데려갔다.

엘리야는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는 동생들을 붙잡고 따라갔다. 성기의 예상과는 달리 샤워 꼭지가 다섯 개 달린 방이었다. 한국의 목욕탕을 기대했던 성기는 실망하고 말았다. 성기의 실망스런 표정에 소령은 황급히 말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욕조나 이런 것 없나?"

"없는데요. 그런데 옆 방에 큰 욕조가 있기는 한데,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먼지가 수북합니다."

"그곳을 쓰면 안될까?"

"그곳을 쓰려면 물청소를 해야 할텐데......."

"내가 할테니까, 여기 여자들을 우선 샤워로 씻으라고 해."

노믹스가 끼어들었다. 

"제가 청소도 잘 합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좋아. 그럼 같이 해!"

"네!"

그녀들을 놔두고 샤워실과 이어진 문을 통해 들어섰다. 그곳은 진짜 먼지가 장난아니게 쌓여 있었다. 여자들은 성기와 같이 씻는다는 기대감으로 왔다가 자신들만 샤워하는 것 같은 상황에 당황했다. 카리나와 타마라, 자히라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생들 앞이라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엘리야도 실망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엘리야의 부모는 엘리야에게 공부를 시키며 한가지를 약속하라고 했다. 너와 결혼할 남자는 부모가 정하고 부모가 정한 남자와 너의 동생들도 같이 시집가는 것을 말이다. 한 남자와 세 자매가 이어지는 것은 흔하지는 않았지만 드물게 그렇게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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