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8 회: 5 -- >
성기 옆에 앉으려 하는 것을 제지하고 바닥에 앉으라고 했다. 창문을 열어놓아서 그런지 벌써 바닥은 말라있었다. 노믹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기를 올려 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성기는 노믹스에게 말했다.
"원래 한국인이야?"
동료를 배신한 놈 따위에게 존대할 의무는 없었다.
"네, 한국인입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군에 지원해서 이곳에서 복무할 뿐입니다."
"그래? 미국에 왜 갔는데?"
"그게 저....."
노믹스는 망설이며 말을 대답을 피했다. 성기는 이상함을 느끼고 재촉했다.
"빨리 말해!"
"네, 말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시다 부도가 나서 채권자들에게 쫓겨 가족들은 뿔뿔히 헤어졌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약간 챙겨놓은 재산을 저에게 주셔서 그것을 처분해 미국으로 온 겁니다."
태연히 말하는 노믹스가 성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는데 지 혼자 살겠다고 재산을 처리하다니. 자신만 아는 아주 못된 성격을 가진 노믹스가 성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기를 띤 성기가 재차 물었다.
"그래? 그럼 부모님은 지금 어디에?"
"그것은......저도 잘......"
순간 성기는 일어나 군화발로 노믹스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소리와 동시에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 왜.....악!"
성기는 화가 치밀어서 계속 발길질 했다.
"왜긴? 이 족보도 모르는 호로새끼야! 개도 지 부모는 알아! 너같은 새끼는 개만도 못한 놈이야. 건설업을 하셨으니 풍족하게 살았을 테고, 부도가 나자 가세가 기울어 너 혼자 미국으로 튀어! 왜? 미국에서 삽질하게? 아까 여기 흑인애들한테 살려달라고 구걸하며 삽질이든 곡괭이질이든 가리지 않고 하겠다며! 아주 죽어라! 새끼야! 이것도 아들이라고 미역국 먹었을 니 엄마가 불쌍하다."
퍽! 퍽! 퍽!
"악!...우악!......왜!...부모님은....원래 자식들한테 그런 겁니다.....악!"
"터진 입으로 말은 잘하네. 존나게 삽질할 새끼!"
성기는 열받아서 폭행했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놈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을 살려둬야 통역이 되니 더는 발길질하지 않았다. 부모를 버리고 도망간 놈이라 그런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전혀 없는 놈이었다.
"일어나! 새끼야! 많이 차지도 않았는데 엄살은....."
노믹스는 아픔에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대답했다.
"여기 애들에게 내 말을 전해. 알았지?"
"네.네. 알겠...습니다....으윽...."
옆구리와 허벅지가 아픈지 인상을 쓰며 대답하는 노믹스였다. 하지만 성기에게는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난 한국인으로 한국군 기지로 돌아가기 원한다. 그리고 저 여자들도 갈 곳이 없다면 내가 데려가겠다. 그리 말해! 어서!"
노믹스가 등을 돌려 흑인들과 여인들을 번갈아 보며 영어로 말했다. 유창한 영어가 터진 입술 사이에서 술술 나왔다. 그러자 흑인 병사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여인들은 환호를 내지르며 저들끼리 껴안아 기쁨을 나타냈다.
셰룸 소령이 성기를 보며 말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어라 성기는 노믹스를 쳐다 보았다. 노믹스는 소령의 말을 전해주었다.
"자신도 따라가겠다. 님과 함께 지옥이라도 가겠다고 합니다."
소령의 말을 따라 여기저기서 흑인들이 말했다. 그 말들은 다시 성기에게 통역되어 전달되었다.
"저또한 님과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흑인 병사들이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래? 곤란한테."
성기는 노믹스의 말을 듣고 난감해졌다. 아니 저 흑인 병사들의 지금 표정을 보니 한국까지 따라올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말이 되냐. 여자들은 내가 책임질 일을 했으니 데려간다지만 저 새끼들은 전혀 아니었다. 한참을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한국군 기지까지 가서 생각해보기로 결론 내렸다.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서 한국군 기지로 가자고 해!"
"네, 알겠습니다."
노믹스가 다시 셰룸의 대답을 듣고 성기에게 전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한국군 기지로 가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를 거쳐서 가야 한답니다."
"왜?"
"그게 지금 한국군 기지로 가는 모든 도로는 다국적군과 군벌들이 대치하고 있어 힘들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답니다."
"그래? 하긴 흑인들과 함께 오는 것이 오히려 의심받겠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고 전해!"
"네!"
노믹스의 말을 듣고 셰룸 소령은 성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벅찬 기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흑인 병사들도 셰룸을 따라 일어섰다. 소령이 아프리카어로 말하자 그들은 기뻐하며 성기에게 경례 자세를 취했다. 성기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인 병사들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도 준비하러 나가는 것 같았다.
소령도 나가기 전에 성기의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떠날 채비를 하기 위해 나가버렸다. 방안에는 성기와 노믹스, 여인들만 남아 있었다. 성기는 노믹스에게 말해 여인들이 입을 만한 옷이나 시트를 구해오라고 말했다.
"네? 제가요?"
"이 새끼가! 내가 구해오리? 빨리 안 나가! 구해 오지 않으면 널 이곳에 남길테니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구해오겠습니다. 제발 버리지 마세요."
"이 새끼가! 부모도 버린 놈이 지가 버려지는 것은 무섭나 보지."
성기의 말에 움찔거리더니 노믹스는 방을 나갔다. 그제야 여인들은 시트로 몸을 가린 채 성기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의 눈에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씻지 않아 성기의 분비물이 말라 붙어 불쾌했을 텐데 말이다.
그녀들은 성기 옆에 앉아 성기의 몸을 주물렀다. 가뜩이나 피곤해 있는데 그녀들이 어루 만져주자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그때 흑인 한명이 쟁반을 들고 들어와 접시와 물을 놓고 갔다. 접시는 네개에다 물은 세컵이 놓여 있었다. 접시에는 흑인이 주로 먹는 으깬 감자와 밀가루를 얇게 구운 것이 있을 뿐이었다. 참으로 허접한 식사였지만 배고픈 성기에게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배고픈 아프리카에서는 이정도의 식사는 만찬이었다. 오죽 배고팠으면 흙을 구워 먹을까! 나무 껍질도 먹고 벌레도 먹는 것이 예삿일이 된 곳이 아프리카였다.
카리나가 두 손으로 밀가루를 찢어 성기의 입에 넣어주었다. 손을 씻지 않아 불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성기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들이 주는 것인데, 그쯤은 어떠냐 싶었다. 게다가 자신도 씻지 않아 더러운 상태였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물이 귀한 소말리아였다.
카리나의 행동에 그녀들은 앞 다투어 성기에게 음식을 넣어 주었다. 성기는 조금만 먹고 그녀들이 먹도록 해주었다. 자히라와는 달리 나머지 세 여인은 배고파서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성기는 보기 좋게 먹는 그녀들이 사랑스러웠다. 컵의 물을 조금 먹고 남겨두어 여인들이 먹게 배려했다.
노믹스가 어디서 구했는지 여인들이 입을 만한 군복 윗도리와 시트 여러개를 구해왔다. 하지만 치마나 바지는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여인들 가운데 엘리야가 영어로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기에게 노믹스가 통역했다.
"자신의 엄마와 동생을 구해달라고 합니다."
"뭐어? 내가 어떻게 구할 수 있지?"
"셰룸 소령이 그들의 위치를 안다고 합니다."
============================ 작품 후기 ============================
표지 속 인물은 <자히라>입니다.
제가 지금 어느 분과 레저경기를 즐기러 나가야 합니다.
이따 저녁 때 올리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