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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77/230)

< -- 77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수류탄을 던진 흑인은 동료들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수류탄을 들어 이번에는 돌무더기에 숨은 스웨덴군을 향해 던졌다. 

"피해!"

성기는 날아오는 수류탄을 보고 그들에게 외쳤는데 그것이 한국말임을 깨닫고 짧은 콩글리쉬로 고함을 쳤다.

"밤! 밤! 겟어웨이!"

세 명은 성기의 말을 듣고 알아듣지를 못했는지 그대로 있다가 겟어웨이란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토마스는 스웨덴어로 피해란 말을 외치며 앞쪽으로 몸을 던졌다.  이어 그는 철모를 벗어 수류탄을 덮었다.

폭발음과 함께 철모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바닥의 돌과 먼지가 회오리치듯 비상하며 주변을 뿌옇게 만들었다. 폭발은 주변 공기를 한번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토마스의 몸을 강타했다. 토마스는 폭발의 충격으로 몸이 타는 듯 했고 귀가 먹먹했으며 코와 입에서는 화약 냄새가 가득 느껴지는 것 같았다.

토마스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상태에서 바람을 집어 삼킨 듯 부어있었고 눈도 밀가루 반죽이 발효한 듯 탱탱 부어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의 옆에 브루터가 파편을 맞아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의무병 로타쉐린은 철모가 벗겨진 채 엎어져 있어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브루터가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로타쉐린에게 기어갔다. 

흑인 병사 두 명이 뛰어나와 총을 쏘다 성기의 총알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또 한명의 흑인이 뒤를 이어 나타나 스웨덴군을 향해 겨냥을 하는 순간 성기의 총구에서 화염이 번쩍이며 총알이 날아가 흑인의 가슴에 박혔다.

흑인은 가슴을 움켜잡고 피를 흘리며 서서히 쓰러졌다. 그는 원통한 듯 성기가 있는 곳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성기는 빈 탄창을 빼내 새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차가운 금속제 탄창이 성기의 뜨거운 감정을 기분좋게 풀어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성기는 수잔을 향해 외쳤다.

"아이고, 앤덴 헬프뎀"

나 가서 그들을 도울게라는 말을 짧은 영어로 말했지만 똑똑한 수잔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하라는 눈짓을 보내왔다. 성기는 AK-47 소총을 어깨에 걸쳐메고는 전방을 살폈다.

아직도 총소리는 크게 들렸지만 좀전처럼 가까이서 흑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성기는 심호흡을 하고는 짧게 기도를 올렸다. 어머니께 아직 못다한 효도가 있으니 더 살게 해달라고 빌면서 그는 발걸음을 떼었다.

달빛을 조명삼아 그는 스웨덴군에게 접근했다. 다행이 여기까지 오는데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다. 성기는 폭탄을 뒤집어쓴 토마스를 조심히 안아들고 황급히 무너진 벽틈으로 들어갔다.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무거운 토마스를 성기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성기는 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수잔이 다가와 토마스의 상태를 살피더니 수통을 꺼내와 물을 조금씩 그의 눈과 입에 묻혀주었다. 성기는 허리를 펴고 헥헥거렸다. 저기를 두번이나 더 왕복해야했다. 

다시한번 나가려하자 그 순간 수잔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성기의 용감한 행동을 칭찬해줬다. 성기는 쑥스러워하며 그녀의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주고는 황급히 뛰쳐나갔다.

이번에도 흑인 병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아마도 이쪽 방향에 총구를 겨누었던 흑인들은 없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성기였다. 성기는 몸을 굽힌 채 빠르게 뛰어가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브루터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하지만 토마스보다 더 큰 덩치여서 그런지 들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없이 성기는 그의 두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부드러운 흙에 그의 등과 엉덩이가 남기고 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성기는 허겁지겁 그의 두 발을 끌고 사냥당한 짐승마냥 무너진 벽틈으로 끌었다. 브루터는 불평을 하고 싶었지만 낯선 군복의 군인이 자신을 살리려고 한다는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의 두 발을 잡고 벽 안쪽으로 끌어당긴 성기는 죽을 맛이었다. 그를 살린 것은 좋았지만 너무나 힘이 들이 팔을 들어올릴 수 조차 없었다. 

브루터를 수잔에게 맡기고 성기는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어진 채 있는 로타쉐린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천운이 다했는지 여태 잠잠하던 흑인 병사들이 다시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성기는 황급히 몸을 낮추어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그녀와 거의 맞닿을 정도로 닿은 성기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그녀의 목에 손을 갖다댔다. 호흡은 약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지 손바닥을 통해 그녀가 숨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단단히 채운 그녀의 철모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단정히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머리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했으며 눈썹과 오똑한 콧날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바비인형 스타일의 미녀였다. 하지만 수잔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애써 그녀의 얼굴을 뒤로하고 로타쉐린의 가슴을 여러차례 압박했다. 그녀는 수류탄에 기절했는지 성기의 억센 힘에 우욱소리를 내며 입에서 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어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는데 웬 사내가 자신의 소중한 젖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두워서 그런지 웬 사내는 흑인 병사처럼 보였다. 그녀가 좀 더 신중했다면 흑인 병사들은 절대로 군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했을 지도 몰랐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세우다 흑인 병사가 쏜 총알이 탕탕 소리를 내며 그녀의 가슴을 스쳤다. 그녀가 일어나자 성기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녀의 가슴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고 성기는 그녀를 다시 바닥에 누이고는 지혈을 하기위해 주머니를 뒤져 휴지로 틀어막았다. 다행이도 상처부위는 긁힌 정도여서 더이상의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쓰라림과 동시에 데인 듯 뜨거운 열기가 상처에서 치솟아 고통스러워했다.

금발 미녀 로타쉐린이 고통스러워하자 주머니에서 빨간약을 꺼내 상처부위에 뿌려주었다. 그리고는 돌무더기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그녀위에 자신의 몸을 포갰다. 민망한 자세였지만 살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몰려드는 군중을 피하기 위해 칼 에릭손 소령은 장갑 차량을 동원해 무조건 전진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위험한 선택은 자칫 많은 희생을 낳을 수 있었지만 흑인들의 손에 더는 RPG가 없는지 위험한 로켓탄은 날아오지 않았다.

"이봐! 빨리 가자구. 공주님을 구출해야지."

"오케이!  저놈들로부터 구해내야지!"

"하하하. 우리가 드디어 백마탄 왕자가 되는거야."

"큭큭큭, 백마탄 왕자 좋아하네. 땅딸보 주제에."

"공주도 실은 땅딸보를 좋아할 지 모르지."

"농담 그만하고 전진!"

"예썰!"

피에더가 브롤린 상병은 구해냈지만 토마스와 브루터 그리고 로타쉐린까지 창자를 쏟아내는 미군을 구하려다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고했다. 지금 그들의 위치는 대략 호텔샤모에서 100미터 이내라고 자세히 알려왔다.

어두워서 동네를 잘못 들어갔다가는 호텔샤모를 찾기는 커녕 고국으로 시체가 되어 갈 수도 있었다. 호텔 샤모에서 1Km 떨어진 곳이 잔혹한 흑인 병사들이 많이 있기로 유명한 '엑소더스촌'이었다. 얼마나 위험하냐면 그곳에 발을 디뎠다가는 사지가 절단된 채 돼지의 먹이가 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여기는 요한 구스타프대령이다. 전 장갑 차량은 현 위치에서 북북서로 향해라. 일분 거리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 호텔샤모가 있다.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네!"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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