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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72/230)

< -- 72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라파엘 대위는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라파엘 대위는 땅을 기어갔다. 그가 탄 장갑 차량은 RPG 로켓탄에 맞아 전복되어 탑승한 병사들이 뿌연 연기를 뒤집어쓰며 나왔다. 어둠 속에서 후미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훤히 모습이 비춰지자 건물 도처에 숨어있는 흑인 병사들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미군 병사들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핏물을 흙에 뿌리며 쓰러졌다. 라파엘 대위는 아직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전혀 힘을 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두 팔로 기어 전복된 장갑 차량에 등을 대고 누워 기댔다.

어둠을 뚫고 전진하는 장갑 차량을 향해 다가서는 흑인 병사들에게 총을 쏘았다. 그의 눈먼 사격에 벌떼처럼 몰려드는 흑인 병사들 일부가 황량한 대지위에 몸을 누였다.

반대편 건물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장갑차량이 와서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닐것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러다 나뒹굴었던 장갑차에서 미군 병사 두명이 기어나오다 흑인 병사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영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리다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라파엘 대위는 고통과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좆같은 새끼들! 자비심도 없다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대고 있던 장갑차 안에서 한 명이 콜록거리며 기어나왔다. 쿠웨이트 침략때도 참전했던 폴 하사이었다. 눈을 껌벅이며 주위를 둘러보던 폴 하사는 앞의 등을 기대고 있는 라파엘 대위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폴 하사는 라파엘 대위에게 M16 한 정을 건넸다. 그렇지 않아도 탄창이 비어가고 있던 라파엘 대위는 덥석 받으며 말했다.

"자네 몸은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대위님은 어떠십니까?"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 차량 안에 또 다른 생존자는 없나?"

"네, 없는 것 같습니다. 나올 때 주위 동료들을 살폈는데 더는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젠장, 좆같구만. 호텔 근처도 못갔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폴 하사가 맞장구 치며 응했다. 하늘은 온통 검은데 하얀 점처럼 빛나는 별들이 평온하게 떠 있었다. 드넓은 대지위로 한가득 바람이 불 때마다 좀비처럼 튀어나오는 흑인 병사들이 주변을 장악했다. 

쓰러진 장갑 차량의 바퀴가 하늘로 한껏 들려진 채 한바탕 검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헛돌았고 그 소리가 라파엘 대위와 폴 하사의 귀에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어슴프레 보이는 회색 건물 사이로 검은 인형들이 움직이는 것마냥 흑인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둠 속에서 소말리아 흑인 병사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둘은 소총을 움켜잡고 갈기자 소리는 그쳤지만 장갑차로 다가서던 여러 명의 흑인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악!"

"우악!"

수차례 총을 쏘아댄 후 회색 건물 위에서 미친 듯이 갈겨대는 총성이 수분정도 지속되었다. 저격수가 총알이 가득 든 탄창을 건네주자 기관총 사수는 재빨리 탄창을 중기관총에 장전시킨후 쉴새없이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검은 콩을 볶든 따가운 소리를 뿜어내며 기관총은 진격하는 미군 장갑차량들을 성가시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귀가 멍멍해지는 소음 너머로 폴 하사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고개를 돌려보자 폴 하사의 발목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핏물을 뒤집었는지 두 손으로 절단부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오른 쪽 발목에서 피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고 주변을 핏물로 홍건히 적셨다.

라파엘 대위는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음을 상기하고 서둘러 자신의 상의를 벗어 그 안의 면티를 벗어 그에게 기어갔다. 그리고는 두 팔로 상처부위를 감쌌다. 거칠게 떨어져나간 상처부위는 울퉁불퉁해서 지혈시키기도 쉽지않았다. 

온 몸이 벌벌 떨리며 죽는다는 공포심을 애써 억누르며 상처를 싸매는 라파엘 대위였다. 그렇지만 폴 하사는 고통으로 인해 더는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잔해가 널린 도로에 흑인들이 돌진하는 맹수처럼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어둠을 뚫고 전진하는 장갑 차량이 보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로 보이는 대위였다.

라파엘 대위는 성난 흑인 병사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지를 알고 있었다. 옆구리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무서움에 침이 바짝 말라가는 라파엘 대위였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사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어 검은 그림자 두개가 더 나타났다. 놀라서 라파엘 대위는 권총을 쏠 생각조차 못했는지 입을 열고 멍하니 있었다. 사내가 라파엘 대위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라파엘 대위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기절했다. 사내는 따르는 두 명의 검은 사내와 합쳐 라파엘 대위의 군번을 확인하고는 다급히 어둠 속으로 끌고 사라졌다.

그들은 사라지기 전 모가디슈 방향을 가리키며 자바리란 단어를 말했다. 아마도 이일은 자바리가 은밀히 추진하는 모양이었다. 또한 그들은 피를 흘리고 기절한 폴 하사의 방향으로 돌멩이를 여러개 던졌다.

그 소리에 성난 흑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폴 하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점점 그 수는 많아졌으며 미군을 향한 성난 눈빛은 굶주린 하이에나 무리 같았다.

핫산은 전복한 장갑 차량 근처의 흑인들 틈에 있다가 어깨에 총알이 스치는 경미한 수준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의료 기관이 전무한 소말리아에서는 이정도로도 죽을 수 있었다. 소독이 안되 상처감염으로 인해 온갖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핫산은 장갑 차량을 증오했다. 오늘 그의 아버지가 벽을 뚫고 들어온 기관총에 머리와 가슴을 맞고 죽어버렸다. 미군들은 자신들을 먹이고 편안히 살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총알 세례를 퍼붓는 것일까. 미군을 발견하면 죽이고 싶어 이렇게 흑인 병사들을 따라 움직였다.

성난 흑인들이 미군 병사를 덮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자는 아직 살아있었는지 고함을 지르며 살기위해 버둥거렸다. 흑인들이 옷을 찢고 팔 다리를 붙잡고 장갑 차량 근처에서 멀어졌다. 흑인 병사들이 달빛을 받아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는 칼들을 높이들고 미군 병사의 시체를 난도질하고 사지를 찢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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