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6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총성이 도시 전체에 울려퍼지는 게 성기의 귀에 들렸다. 호텔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무어라 떠들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3국의 장교가운데 소령계급장을 단 콧수염의 사내가 호텔 마당에 있는 자기네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피해! 후퇴해서 3Km 떨어진 평화유지군 캠프에서 보자!"
성기에게 몰려들지 않았던 일부의 여자 병사들과 남자 병사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총을 들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호텔 뒤편에 있던 환자들을 태우기 위해 군용 트럭과 구급차들이 몰려들어 호텔 마당은 일시 출입이 마비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밖의 도로에서는 작은 미니버스가 덜컹거리며 달렸다. 버스안에는 사람들로 넘쳤고 버스 밖에도 여러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면서도 버스가 제발 무사하길 기도했다.
길 가는 행인들도 서둘러 갈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총알이 쏟아져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행인 가운데 미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모하비는 딸 둘과 아들 한명 그리고 부인을 대동하고 있었다.
모하비는 밀수를 하며 부를 축적하다 바레정권이 무너지며 혼란이 지속되자 브라운&루트사에 정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었다. 이 회사는 평화유지군에 지원서비스를 하는 미국 회사 중 한곳이었다.
현존 최대의 민간군사기업은 미국 텍사스 주(州) 휴스턴 소재 헬리버튼사의 계열사인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 사(社)로써 이들의 주된 영업 대상은 '미군'이다.
전투력 제공자가 아닌 이들은 미국의 병참지원 민영화 정책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는데 가뜩이나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미군으로썬 병참부문의 인력을 전투원으로 돌릴 수 있어서 미군이 가는 모든 전장엔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의 직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준비를 한다.
그외에도 MPRI 같이 공식적으론 전투력을 제공하지 않고 군 구조 개혁이나 훈련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지원 기업도 있다. 또 에어스캔사 같이 항공촬영을 해주는 기업도 있고 정찰이나 무기대여를 주로하는 기업들도 있다.
심지어 어떤 정보수집 기업은 CIA나 미국방부, NSC의 해킹팀을 누르고 해킹관련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인수합병 바람이 불고있다. 대표적인 예로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를 소유한 헬리버튼사가 MPRI를 인수했다.
군사력등을 제공해서 그렇지 이들 PMC는 일반 기업과 구조적으로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하청구조라거나 세금피난처로 옮겨가기라거나 계열사 소유나 모기업과의 관계등 일상적으로 보이는 다국적기업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PMC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다른 일반기업체에 대한 규제보다 택도 없이 약하단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의 예를 들자면 PMC 업체들이 체결한 계약의 규모가 5천만 달러 이하일 경우 의회에 승인은 커녕 보고도 할 필요도 없다.
PMC들 특히 전투력 제공기업등이 체결하는 계약의 크기는 보통 5000만 달러 이하다. 당장 EO의 시에라리온 개입만 해도 2000만~3000만 달러선이었다.
게다가 계약금이 5000만 달러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계약을 쪼개는 형식으로 이 어설픈 규제는 손쉽게 피해갈 수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라고 다를건 없었다. 영국계 PMC인 샌드라인 인터네셔널은 그냥 본사 주소지를 적당한 세금피난처로 옮긴것 만으로 끝냈다.
정작 본사는 여전히 모기업인 브렌치헤리티지 그룹의 건물에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피해가기에 국제적 공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렵지만 관련된 어떤 국제적 협의도 없는 상황이 작금의 현실이다.
위에 언급했 듯이 국제협의가 없는 관계로 어떤 제재도 없을 뿐더러 UN내에서 비효율적 다국적 평화유지군 대신 PMC를 고용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있어봐야 PMC가 영업하는 나라에서 정부든 반군이든간에서 항의하는 수준이다. 물론 이거야 대충 세금피난처로 주소지만 옮기면 그만이었다.
EO같은 전투력 제공자들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꾀나 악랄하지만 실용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보통 채굴권 획득이 주된 일이다. EO의 형식적 모기업(실제 모기업은 EO) SRC엔 건설회사, 광산회사, 심지어 핸드폰 사업체나 리조트 업체까지 있다.
그가 미국으로 탈출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틀 전 그의 친척이 은밀히 찾아와 아이디드파를 포함한 군벌들이 수도 모가디슈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협의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군벌들이 장악하게 되면 모하비는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적대국인 미군에 자국의 상세한 정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그는 부인과 자녀들을 모아놓고 미국으로 가야된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탈출이 이렇게 지연된 것은 그가 군벌들의 모가디슈 공격이 시작된다는 정보를 넘겼음에도 진위여부를 확인해 처우를 결정한다는 통보가 왔기 때문이었다. 1급 정보에 들어가는 그 정보가 진짜로 확인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그는 미국으로 가기위해 부랴부랴 짐을 싸고 17살, 18살의 두딸과 11살의 아들, 44살의 부인을 이끌고 미군이 장악한 지역으로 나선 것이다.
모하비 가족이 호텔샤모를 지날 무렵 총알이 모하비 등판을 관통하며 피를 뿌렸다. 이곳 저곳에서 총알이 마구 쏟아지자 부인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편의 팔을 잡고 호텔로 끌었다. 아이들도 놀라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머니를 도와 모하비를 잡아당겼다.
총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고 하늘은 5층 높이로 낮게 나르는 헬리콥터들로 가득했다. 성기를 둘러싼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어깨에 총을 맞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금발 미녀들은 뿔뿔히 흩어지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성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자들이 더 이상 짓밟지 않자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총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3국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여자는 신음을 흘리며 아파하고 있었다. 성기는 좀 전에 일방적으로 맞아서인지 고소해하며 몸을 똑바로 누우며 하늘을 향해 눈을 떴다. 성기의 눈에 하늘을 가득 메운 헬기들이 들어왔다.
그제야 성기의 귀로 헬기 특유의 굉음 소리가 들렸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 여기저기서 우두둑 소리가 나며 성기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위급하다고 머릿속에서 마구 알람을 울리며 경종을 때렸다. 총알이 다시 피슝소리를 내며 마당 바닥을 울렸다. 성기는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금발 미녀를 안아 일으켜 옆에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몸을 피했다.
총을 들고 움직이던 병사들의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았고 환자들을 태운 차량들은 호텔을 뒤로 한 채 불이나게 달리고 있었다. 성기는 바닥에 팽개쳐진 K2 소총과 군장을 서둘러 집어들고 다시 무성한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나무들 뒤편으로 겨우 한명이 서 있을 정도로 공간이 협소해 성기는 금발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몸을 밀착시켰다. 자세히 뜯어보니 얼굴이 바비인형이 따로 없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비키니 비슷한 상의에 가슴이 불룩하니 몸매도 죽여줄 정도로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갔다.
성기는 군장에 매달린 수통을 꺼내 금발 미녀의 입술에 대주었다. 그녀는 고통이 심해 먹지를 못하고 땀을 비오듯 쏟고 있었다. 성기는 마지못해 수통의 물을 한 모금 먹고는 미녀의 입에 키스를 해주며 먹여주었다.
그의 가상한 노력덕분인지 금발 미녀는 신음을 흘리며 성기의 입을 통해 넘어온 물을 목젖으로 넘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