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0 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과 여자들 -- >
그동안 늦어져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야수>를 연재하느라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50회를 맞았습니다. 전체 분량의 1/20을 겨우겨우 돌파했으니
끝까지 완결까지 가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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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는 소령의 알 수 없는 말을 곰곰히 생각하며 담배를 껐다.
다음날 한국군은 새벽부터 기지건설에 투입되었다. 아침부터 삽들고 밴치를 들고 윤형철조망을 세겹으로 두껍게 둘러친 공사를 밤까지 계속했다. 성기와 동기들은 작업내내 먼 이국땅와서 웬 삽질이냐며 투덜거렸다.
기지는 완성이 되야 취사병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며 그날 종일 비상식량을 병사들에게 먹였다. 저녁까지 비상식량을 먹어서인지 대변이 무지 마려웠지만 참아야했다.
풀 한 포기없는 황량한 들판에 아무것도 가릴 것 없었고 기지가 건설되어 있지 않아 화장실은 꿈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노동의 여파로 군용트럭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성기와 친구들의 얼굴에 짜증이 한껏 피어있었다.
"야! 어디가 있냐? 보이는 것은 맨땅에 돌맹이밖에 없다."
"그러게. 여자들이 깔렸다면서."
"씨발, 장교들이 일부러 뻥칠 리는 없는데."
그 순간 모가디슈의 인근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그러더니 주변까지 번지는 연기와 불로 인해 저 멀리 있는 모가디슈가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총알 볶는 소리가 꾾이지 않고 들렸다.
"뭔 일이냐? 정말 겁난다."
"여자랑 안해도 되니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도!"
20분이 지나 호텔에 도착해보니 핀란드군과 노르웨이군 그리고 스웨덴 군이 호텔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중에는 금발의 파란눈이 매력적인 여군들도 상당수 보였다. 성기와 동기들은 좀 전의 위험한 상황은 망각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역시 북유럽 애들이라 그런지 인형같다."
"와우, 죽인다. 나도 재네들하고 같이 있고 싶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소령을 비롯한 한국군 장교들이 호텔에 모여든 3개국의 장교들을 급히 찾았다. 다행히 한국군 장교를 알아 본 스웨덴군의 장교가 손짓하며 그들을 불렀다. 한국군장교들을 데리고 호텔의 식당으로 갔다.
예전에는 연회장도 겸했다는 이곳 식당은 꽤 넓었다. 그곳에는 3개국의 장교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군복 여기저기에 흙자국과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3개국 가운데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대령이 들어오는 한국군에게 인사했다.
"말도 없이 찾아온 점 사과드립니다. 저는 평화유지군 노르웨이 파병부대 책임장교 닐스 올라브대령입니다. 사정이 워낙 다급하다보니 가까운 한국군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된 겁니다."
"네. 전 한국군 파병부대 책임장교 이중희중령입니다. 그런데 다급한 사정이란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좀 전에 총성을 들었을 겁니다. 군벌들의 갑작스런 공격에 우리의 숙영지가 불타없어져서 후퇴하다보니 이곳까지 밀려온 겁니다."
"네에? 군벌들이 공격을 했다구요."
"네. 우리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기지를 마련했던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당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곳에 머물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부상자들은 없나보군요."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했는데 부상자가 없다니요. 지금 식당과 연결된 후문쪽에 부상자들이 누워있습니다. 천운이었는지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군 장교들과 3국의 장교들은 당분간 불편하더라도 이곳 호텔에서 같이 지내기로 합의했다. 내일 아침 날이 밝는대로 평화유지군 총사령관을 찾아가 부대의 기지 배치문제를 상의하기로 했다. 3국 장교들은 사하피호텔에 묵기로 했고 병사들은 호텔샤모에 묵기로 했다.
트럭으로 돌아가면서 이중희 소령은 걱정이 태산같았다. 갑작스런 군벌의 기습공격도, 도착한 날 벌어진 파키스탄 병사 24명이 죽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국에 있을 가족과 자녀의 얼굴이 미친듯이 보고싶어졌다.
자신의 두 어깨에 한국군의 생사가 걸렸다고 생각하니 가족들의 얼굴을 머리속에서 지워나갔다. 게다가 한국군의 임무도 막중했다.
수도에서 40km 떨어진 지점 발라드 지점에 한국군 기지를 건설하고 모가디슈로부터 벨레트웬에 이르는 430km의 국도-오렌지로드-를 보수하는 것이 주 임무였으며 부수적으로 급수지원, 우물개발, 비행장 보수, PKO 주둔지 설치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임무를 한국군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나라들과 협력하기로 되어있었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극비리에 일본도 여성자위대를 파견했다. 200여명에 달하는 여성자위대는 구성원 전체가 의사와 약사, 간호사로 구성되어 소말리아 국민의 의료지원이 주된 임무였다.
일본의 여성자위대의 존재는 유엔 평화유지군내에서도 기밀 사항으로 분류되어 총사령관과 극소수의 장교들만 알았다.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부담했고 그 반대급부로 자위대의 파병을 요구했으며 미국은 이를 수용했다. 다만 극비사항이라는 단서를 달아 일본의 자위대파병의 전초전 성격을 띤 여성자위대 파병을 승락하라고 유엔의 상임이사국들을 압박했다.
상임이사국들에게 막대한 전비문제를 해결해준 일본이 고마웠다. 다만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그들도 극비란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중희 중령은 병사들에게 트럭에서 내려 사정을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호텔에 그 많은 인원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지는 눈 감고도 상상이 되기에 말이다.
이중희중령은 작은 불만을 무시하고 샤모호텔 마당에 천막을 쳐 그 곳에서 자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군의 구성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3국은 여성 병사들이 절반을 넘었지만 한국군은 병사들 대다수가 남성이었기에 말이다.
최근 유엔 평화유지군내에서 영국 여성병사들 130명이 임신을 해서 고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녀들은 미군 남자병사들과 프랑스 남자병사들을 상대로 뜨겁게 육체를 불살라 그 여파로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일이 알려져 평화유지군내 모든 장교들은 웬만하면 남자병사들과 여자병사들을 만날 일이 없게끔 하는 것이 비공식적 임무로 추가되었다고 공공연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날 새벽 3국 여군들의 숙소로 쓰이는 2층이 활짝 열려 서너명의 금발 여성들이 찬바람을 쐬고 있었다. 날씨도 무덥고 더군다나 병사들이 한방에 10명씩 묵다보니 더위에 견디질 못한 것이다.
24인용 한국군 텐트를 조용히 걷어낸 검은 그림자는 담요를 두르고 활짝 열려진 창문 아래로 다가갔다. 여성들은 그 검은 그림자를 조용히 주시했다. 테러분자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여자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에 흡족한 듯 그는 담요를 활짝 열어제꼈다. 그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남자의 나신이 드러났다. 덜렁거리는 남성을 자랑하듯 여자들 앞으로 허리를 내밀었다. 여자들은 난데없는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캬아악!"
조용한 밤공기를 가르는 여자들의 비명성이 날카롭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