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7 회: 내가 왜 소말리아에 파병되는데? 왜? -- >
성기와 동기들은 그녀들을 부축하고 걸어가려 했지만, 한사코 그녀들은 성기에게만 달라붙었다. 성기는 그런 동기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기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자꾸만 달라붙는 질투의 유치함은 성기에게 퉁퉁거리게 만들었다.
어차피 부대가서도 허벌나게 깨질 것이다. 복귀를 못해서 유격장의 300명이 넘는 인원들은 쫄쫄 굶었기 때문이다. 여자들한테서도 외면당하고 부대에서도 깨지고 이래저래 죽을 맛인 동기들이었다. 하지만 동기들의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순찰 차 7대에는 총탄 자국이 난무했고 구급차에도 총탄 자국으로 생긴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그리고 수 십명이 넘는 경찰들이 여기저기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이미 죽었는지 혀를 길게 빼물고 있는 경찰도 있었다.
"으악!"
"어머! 김경위님!"
"엄마야! 박경사님!"
그녀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쓰러져 있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박경사이라 불린 사람은 죽었는지 호흡이 멈춰있었다. 하지만 김경위라 불린 30대 후반의 남자는 총알이 급소를 피했는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헉헉...아니....김순경...양순경...."
"흑흑흑, 어떻게 된 거에요?"
"힘들면 말씀하지 마세요."
"아니야. 난 괜찮아.....헉헉.....최경위...못봤나?"
"흑흑흑...못봤어요..."
"그 놈이 미쳤는지....헉헉....갑자기...총을 난사해.....어...헉헉...."
성기가 조심스레 김순경과 양순경에게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보고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아, 그럼 김순경이 보고해. 내가 김경위님 보살필테니."
"응, 알았어."
포대비닐을 쓴 그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섹시하고 귀여웠다. 드러난 긴 다리로 성큼성큼 움직이는 김순경, 또 그것을 넋놓고 바라보는 성기였다.
동기들과 성기는 더 황당했다. 특히 성기의 입장에서는 지옥을 나왔더니 또 다른 지옥도가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에는 매캐한 화약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잔혹한 향기를 뿌렸다.
성기는 그날 최경위에게서 글락 권총 2정과 실탄 400발을 감추어버린다. 당시에는 그냥 감추어 둔 것인데 미래에 큰 득이 될 지 실이 될 지는 몰랐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최경위는 63년생, 부산 출신으로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청와대에 근무하기도 했으나 평소 삐뚤어진 생각으로 룸살롱에서 아가씨들에게 난동을 부려 인사과정에서 안양경찰서 교통계로 좌천되었다. 당시 신혼이었으나 맞선으로 결혼한 신부와의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평소 술버릇이 나빳던 최경위는 부인과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1993년 6월 2일 경찰서 무기고에서 글락권총 2정과 실탄 500발, 카빈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왔다. 당시 경찰에서는 스미스 웨슨의 권총을 주로 사용했는데 수도권 경찰들을 대상으로 글락권총을 시범적으로 지급했던 것이다.
최경위는 당시 자신에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었던 동료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번인 오후에 버려진 봉고차로 출동한 동료들을 알아내고 살해한 것이다. 35명이 죽고 5명이 중경상을 입어 사상 최악의 살인마로 기록되었다.
당일 저녁 동기들과 성기는 경찰들에게 폐가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아마도 폐가 주변으로 죽은 사람들이 더 발견될 수도 있었다. 자신들은 운이 좋아서 살았기 때문이다.
성기가 묶어 놓은 그 경찰이 최경위였다. 출동한 형사들이 치하하며 곧 살인마를 잡은 것에 대한 표창장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성기의 기분은 들떴다. 자신은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인데 표창장을 준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기자들도 나타나 인터뷰를 했다. 어리둥절할 뿐인 성기와 동기들이다.
그들은 서둘러 부대로 복귀했다. 복귀하는 그들에게 안양경찰서에서 부대로 전화로 사정설명을 해준다고 했다. 사라지는 성기에게 다가와 연락처를 교환하는 김순경과 양순경이었다. 그러나 차수연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긴 한데 충격을 받아선지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순경과 양순경이 그녀의 지문과 인적사항을 조사해 그녀에 대해 알아봐 준다고 했다.
부대로 돌아온 그 시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중대장과 대대장 그리고 연대장이 남아 넷을 혼내기는 커녕 살인마를 잡았다고 치하하며 3박 4일간 포상휴가를 준다고 했다. 그 시기는 넷이 원하는 시기에 아무 때나 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마감뉴스에 특종으로 최경위 살인사건이 보도되어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사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자세히 나왔지만 끝내 사건의 최종해결사 천성기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늦게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아닌 병원의 비상구에서 뜨거운 애정행각을 펼쳤던 이미선, 바로 그여자에게서.
성기의 집에 잠깐 들러 얼굴만 보겠다는 것이다. 10시 30분 경이라 여자한테는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막무가내로 오겠다고 했다. 마지못해 성기는 그러라고 승낙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전화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생각하자 불끈 욕망이 솟구쳤다.
밤이 늦어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투다리로 들어갔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길게 가지 못했다.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있는 성기때문이었다. 성기는 그녀의 입술을 정신없이 탐하다 남자 손님들의 질투어린 시선에 가게를 나와야했다.
너무나 늦은 시간이라 그녀를 바래다 주었다. 그녀의 집은 그나마 신림동에서 가까운 광명이었다. 택시를 잡고 그녀와 함께 광명에서 내렸다. 그리곤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진하게 키스를 나누었다. 한사코 달라붙는 그녀를 늦었다고 들어가라고 떠미는 성기였다.
몹시도 아쉬워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성기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일찍 끝나고 신림에서 만나자는 그녀의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뒷자석에 앉아 키득거리는 성기를, 택시운전사는 별 미친 놈이 다 있네.라며 쳐다봤다.
소말리아는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1969년 군 장성 바레(Mohamed Siad Barre)가 무혈 쿠테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일당독제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후 바레는 22년간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였으나, 1991년 1월 무장 군벌인 아이디드(Mohamed Farrah Idid)가 반군단체인 통일소말리아회의(USC)를 이끌고 바레를 축출하였다. 이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모하메드(Ali Madi Mohamed)를 임시정부 수반으로 내세웠으나, 둘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나면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로 돌입한다.
이 때부터 소말리아는 크게 아이디드파(派), 마디 모하메드파, 아토(Osman Ato)파 등으로 3분되어 내전에 들어갔다. 같은해 가뭄으로 인해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수십만명이 굶어 죽자, 1992년 4월 국제연합은 소말리아활동(UNOSMO)을 결의하고 1993년까지 2차에 걸쳐 3만 5300명의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였다.
군벌사이의 무력투쟁이 격화되고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자, 미국을 중심으로 편성된 다국적군도 군사작전에 들어갔다.
52사 수방사로 국방부의 특급기밀문서가 담긴 서류가 전해졌다. 93년 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우리나라도 평화유지군을 소말리아에 파견한다. 다만 현역이 아닌, 물건으로 분류되는 방위를 파견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실질적으로는 OECD가입을 위한 카드로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것이다. 미국의 파워에 기대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임기내 나는 이런 업적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끌어낼 수도 있으니, 꿩먹고 알먹기를 노린 수라 하겠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의견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52사단장의 조언을 들어 꽁수를 부린 것이다. 현역군인이 아니니 정식 군대를 파견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방위가 정식 군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차피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은 모두 정식군인이니 말이다.
사단내 중령급 이상의 지휘관들은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했다. 52사단과 56사단에서 단기 사병을 선발하라는 것이다. 총인원 100명으로 공병과 운전, 그리고 무기관리, 사격에 소질있는 자들을 선발했다. 별도로 사단의무대도 파견된다는 사실이 추가되었다.
215연대는 무기관리병인 천성기일병과 취사장의 동기 두명이 나란히 선발되었다. 운전병나기환 일병도 추가되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대장 앞으로 불려갔다.
"충성, 일병 천성기!"
"충성, 일병 이수근!"
"충성, 일병 은지원!"
"충성, 일병 나기환!"
"충성, 자네들 모습이 늠름하구먼. 좋아 자네들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병의 자격으로 해외파병을 간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 이대위가 해줄 것이다. 질문없나?"
성기와 동기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나 어이없는 처사였지만 입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나라 군대도 군대기에.
'아, 미친거 아냐. 방위가 해외 파병을 간다니.'
'아주 지랄한다. 씨벌, 난 해외가서도 퇴근할거다.'
'우리가 현역인가?'
*****제글에 대한 독자님들의 요구사항이 넘 없어서, 제가 쓰고 있는 방향이 잘 잡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마구마구 들더군요. 딴 글들은 요구사항이 넘 많아서 문제지만, 제 글은 넘 없어서 문제란 생각이 든다는......
*****최경위 살인사건은 "1982년 우범곤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써봤습니다.
우범곤(경남 의령) 세계 최단시간 대량살인사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됨.
1982년 경남 의령에서 발생한 세계 최악의 대량 살인사건으로,
가슴에 앉은 파리한마라가 발단이 되어 경찰이던 우범곤이 마을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살해하기 시작해, 결국 총62명이 그날 살해 당함.
*****방위가 해외파병이라뇨! 설정일 뿐입니다. 설정!
*****wnsxosml2 // 고맙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독자 님처럼 많은 댓글은 처음입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