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 회: 인연의 시작 -- >
아무도 모르는 지수와의 사건이 있은 그날 아침, 주치의는 산소호흡기를 떼고 옆으로 누운 채 쓰러진 성기를 발견하고 대경실색했다. 혹시 죽었거나 의식이 돌아온 것일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부리나케 담당교수에게 보고하는 주치의였다.
담당교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젯밤에 안양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던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은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그 딸은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자신을 닮아서 공부를 잘했는지 아버지가 몸담고있는 서울대의과대학에 진학을 한 것이었다.
예과 1학년이라 한창 놀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틀렸는지 어제는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것이었다. 담당교수는 딸걱정으로 온 밤을 꼬박 새웠던 것이다. 오늘 돌아온다면 '여자 애가 어디서 연락도 없이 외박하냐'고 따끔히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동딸로 정신이 없던 차에 병원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는 환자가 이상하다고 주치의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질 것 같았다. 서둘러 흰 가운을 입고서 703호로 향했다.
담당교수가 703호 환자인 성기를 살피더니 어제와 별 차이는 없었다. 단지 몽둥이에서 분비되었는지 밤꽃냄새를 뿜어내는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시트와 몽둥이주변으로 홍건히 젖어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1.5L 콜라를 들이부어도 어림없는 양이었다.
인간이 한 번 사정할 때의 정액의 양은 다양하다. 30개의 연구소에서는 평균적으로 약 3.4 ml라고 하며 일부 연구소에서는 많으면 4.99 ml, 적으면 2.3ml라고 한다.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과의 연구에서 한 번 사정할 때와 다음 사정할 때의 주기가 길어질수록 정액 안의 정자 수가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지만 그 차이가 큰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정상인데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는 것이 미스터리였다. 게다가 저 말도 안되는 남자의 상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 저 사람이 정상적으로 성교를 해서 사정을 하면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이것은 순수하게 의학도로서의 관심이었다.
아마 자신의 추측대로 기존의 연구를 뒤집는 사실이 발견된다면 의학계에서는 일대 센세이션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믿었다.
잠시 후 기조실장의 호출로 인해 비뇨기과 교수들이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모여들었다. 남인혜는 실크소재의 남색 투피스정장을 입고 소파 가운데 다리를 꼬고 있었다.
"실장님, 호출하셨습니까?"
"네, 학과장님. 잠시 여기 앉아 보시기 바랄게요."
"네, 알겠습니다."
학과장을 필두로 교수들은 남인혜를 중심으로 좌우의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인혜는 단축전화를 눌러 비서에게 지시했다.
"여기 차좀 부탁해요."
"네, 실장님"
기조실장 남인혜와 교수들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현재의 703호 환자의 상태를 보니 이것이 발기된 상태인지 아니면 평상시 상태인지 아무도 모르니 일단 여기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다. 알아본다면 어떻게 알아볼 것인지도 논의했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큰 난제가 바로 환자의 의식불명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일단 시각적으로 보면서 발기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환자는 의식이 없으니 어떻게 발기를 시켜 사정을 한다는 말인가?
잠시 후 침묵 상태를 깨는 남인혜의 끈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일단 이렇게 해보죠. 유흥가의 직업여성 다섯 명을 불러서 각자에게 사정하게끔 만들어보죠. 그러면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하지만 이것은 교수님들이 동의해 주셔야만 진행할 수가 있어요."
기조실장 입에서 폭탄성 발언에 가까운 내용을 들은 교수들의 반응들은 하나같이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것이었다. 서울대학병원이 어떤 곳이란 말인가. 그 곳에 유흥가에서 웃음을 파는, 아니 몸을 파는 여성들을 불러서 연구를 진행하자는 것은, 병원의 이미지 손상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국민들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것은 좀 더 생각해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학과장이 뿔테안경을 고쳐쓰며 나직히 대답했다.
"언제까지요? 교수님들은 시간이 많을지 모르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아요. 시일을 끌다 기자들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일파만파로 번질테니 말이죠. 원래 이런 연구는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는 겁니다. 만약이지만 말이죠, 그래야 실패를 했을 때, 아무 탈없이 덮을 수가 있는 겁니다."
"네, 그것은 그렇습니다만......선뜻 결정하기가...."
"그렇게 결정을 미루실거면, 교수님들이 직접 그 환자에게서 정액을 받아보도록 하죠.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실장님, 그것은 좀....."
"같은 남자인데...."
"처사가 너무 지나치십니다."
그러자 남인혜는 꼬인 다리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에 잠깐 앞으로 고개를 숙여선지 블라우스가 벌어지며 탐스런 가슴의 골이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죠.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니. 그러니 연구실적이 세브란스병원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교수님들! 게다가 환자들도 전년도에 비해서 줄어들고 있는데 말이죠."
그녀의 호된 질책에 학과장을 비롯한 교수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국내 최고라지만 재작년과 작년에 연속 2년동안 연구실적에 밀려 국가의 보조금이 대폭 삭감된 것이었다. 그나마 김대통령과 친분있는 기획실장덕에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예산이 넉넉히 배정되었던 것이다.
"네, 기획실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학과장은 침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더니 마찬가지로 침중한 표정들을 짓고있는 교수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절대로 발설하지 말게. 비밀유지 하란 말일세!"
잠시 남인혜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비뇨기과 병동에 있는 703호 환자를 특실로 옮기도록 할거에요. 그것에 대해 불만은 없으시죠?"
"없습니다. 다만 언제 옮기시려고 하는지...."
"그것은 내일 오전에나 해야하지 않겠어요. 아마 오전쯤이면 환자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여성들이 섭외되어 있을테니 말이죠."
"아,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그럼, 별다른 의문 사항이 없으시면 그렇게 진행하는 걸로 아시고, 이만 끝냈으면 하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서울대병원의 전설의 모임은 수장인 김희선의 호출을 받고 김혜수와 김지수를 뺀 9명이 비밀리에 모여들었다. 수간호사의 심부름으로 학과장실에 자료를 제출하러갔던 김희선은 문밖에서 703호와 관련된 말들이 오가자 엿듣게 된것이다.
"아, 정말, 짜증납니다. 학과장님, 정말 이대로 실장말대로 해야합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같은 의학도로서 말씀 좀 해보세요. 학과장님!"
"아, 왜들 그러나. 답답하고 화가 나긴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러면 뭐하나,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없잖은가?"
"그렇다고 직업여성을 불러서 703호 환자의 정액을 뽑아낸다니요? 그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특실로 옮기는 것도 우리에게 의논하고 결정해야지. 자기가 뭐 독재자입니까? 뭐 진짜 좆같은 나랍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 팍팍 낙하산으로 내려오질 않나...."
"자네들 말조심하게."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바로 김희선이 703호 환자가 특실로 옮겨 간다는 것에, 더불어 유흥가의 아가씨들이 그를 상대로 정액을 뽑아낸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놀랐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모두들 잘 들어"
말의 핵심은 환자가 특실로 옮겨 가기전에 서둘러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특단의 조치가 두명씩 번갈아 들어가는데 3시간 간격으로 내일 새벽까지 작업을 진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녀의 말에 8명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