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 회: 인연의 시작 -- >
"잠깐,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내 말 들어봐"
일시 소란스럽던 대화는 사그라들었다. 모임속에서 수장의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여간호사 김희선이 나선 것이다. 그녀의 애칭은 마녀였고 성공한 중견기업가의 딸이었다. 김희선은 키가 훤칠한 미녀였고, 입술은 장미꽃을, 눈망울은 사슴을 떠올리게 할만큼 매혹적이었다.
"설명해 줄테니 모두 들어봐"
김희선은 테이블에 앉아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7명의 동기와 3명의 후배들에게 오늘 입원한 성기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녀는 비뇨기과 병동 담당이어서 바로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듣고 있던 여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 붉은 입술을 벌리며 말했다.
"그럼 언제부터 행동을 할건데?"
"순서를 정해야지. 순서를!"
"맞아, 무턱대고 할 수는 없잖아."
"생일순으로 하자"
"아냐, 이런 것은 사다리타기로 정해야지. 그래야 불만이 서로 없지. 안그래?"
"아니거든."
잠시 조용하던 간호사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내가 먼저 해야 할 것같은데..."
그러더니 한 명의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흰 다리에 꽃무늬가 수 놓인 붉은 색의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날씬한 그녀의 몸매는 엉덩이가 터질 듯이 발육 상태가 좋아보였다. 치마 폭이 벌어질 때마다 불빛에 물든 다리가 눈부신 보석마냥 언뜻언뜻 드러나곤 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검은색 눈동자는 순정만화처럼 컸으며, 그녀가 일어설때 매혹적인 갈색 머리칼이 아름다운 얼굴주위로 흔들렸다.
그녀의 이름은 소아과 외래를 담당하는 김지수였다. 여기 모인 11명의 서울대 간호학과 출신 여간호사가운데 손꼽히는 육감적 몸매의 소유자였다.
"나, 다음 주에 의료봉사하러 아프리카 가거든. 애들아! 배려해줄거지?"
"으응....."
"아....알았어."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때 그녀의 말에 조용히 나서는 무표정한 간호사가 있었다.
"뭐? 다음 주? 난 당장 내일 삼성제일병원에 파견근무 가야 하거든."
김지수의 말에 대놓고 반대를 표한 여간호사는 산부인과 병동의 김혜수였다. 차가운 무표정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화려한 외모에 어울리는 육감적인 몸매가 하늘거리는 셔츠웨이스트 원피스를 통해 뚜렷하게 윤곽을 나타냈다. F컵을 자랑하는 풍만한 가슴과 달리 잘록한 허리, 거기에 원피스 아래로 드러나는 쭉 빠진 다리까지, 그녀의 온몸에서 요염하면서도 차가운기운이 내뿜어졌다.
김혜수의 말에 발끈하는 김지수였다.
"파견근무는 3일만 하는 거잖아."
일순 김혜수와 김지수는 서로를 노려봤다. 둘의 긴장감으로 인해 6층에 위치한 간호사실은 5월말이 되면 따뜻해지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육감적 몸매로 이 모임내에서 앙숙이었던 것이다. 둘이 이렇게 앙숙이 된 사연은 대학 시절, 김지수가 서울대 의대생들과의 미팅에 김혜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시초였다. 가난한 형편에 대학내내 아르바이트 생활을 한 김혜수는 남달리 자존심이 셌던 것이다.
그녀에 비해 김지수는 부잣집 딸로서 호사스럽게 생활한 편이었다. 그러니 둘은 사사건건 부딪쳤으며, 또 둘을 앙숙으로 만든 것은 외모, 특히 육감적인 가슴이 일조하기도 했다.
싸늘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김희선이 나섰다.
"자아, 그만들 해! 우리 시간 없거든"
"맞아, 나 근무 들어가야해"
간호사들은 3교대를 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만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둘은 노려보는 시선을 고정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럼, 모두들 인정하는 방법으로 할게. 사다리타기가 제일 나을 것 같은데. 어때?"
"좋아"
"오케이"
"당근이지"
김희선은 하얀 종이위에 줄을 긋기시작했다.
한편, 전주집의 단골 고객가운데 옆 골목의 복덕방을 운영하는 강씨는 점심 시간이 다 되도록 손님이 없자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에이, 손님이 이렇게 없냐?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혼잣말을 하며 복덕방에 열쇠를 채운 강씨는 전주집으로 향했다. 근처에 와 보니 평상시와는 달리 가게의 형광등이 꺼져 있어 이상하다 싶어 서둘렀다. 전주집은 10년동안 한번도 가게를 쉰 적이 없었기에 불길함이 강씨를 엄습했다.
가게 문앞에 서니 이상한 신음소리가 강씨의 귀를 강타했다.
"헉....헉"
질퍽질퍽
이것은 성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소리였다. 강씨는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좁은 문 틈으로 충격적인 장면이 강씨의 두 눈동자에 들어왔다.
충격에 입을 덜덜거리며 강씨는 바로 등을 돌렸다. 강씨는 한참을 달려 사거리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했다.
"안양 1번가 ○○번지에 위치한 전주집이라는 음식점에서 사고가 났어요. 강간사건입니다. 남자 대여섯명이 한 여자를 덮치고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
"어디라고요? 주소를 정확히 대세요."
"안양 1번가 ○○번지에 위치한 전주집이요."
"무슨 사건이라구요?"
"강간사건이요. 빨리요. 급하다구요."
하지만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새벽까지 먹은 술로 정신이없었다. 만약 경찰들이 신고를 받자마자 출동을 했더라면 후일 국내를 떠들썩하게 할 강력범죄의 태동은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들의 늑장대응으로 인해 그들을 놓쳤으며, 친고죄에 해당하는 강간범죄의 피해자 여성과 남편이 더이상의 사생활 노출을 꺼렸기에 그 날의 일은 시간의 모래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당시는 간호원이 맞는 표현입니다. 특정 직업의 여성들을 비하시킨다는 논리에 따라 간호사로 바뀝니다. 어차피 바뀔 표현 걍 시대를 앞당겨 썼습니다. 오해없기 바랍니다.
***지존파사건은 미국의 CNN에서조차 방송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인육도 먹는 그들은 심성이 파괴된 자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강간할 때도 남자친구 앞에서했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