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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성징. --> 술자리에 참석한 민준은 여구의 말을 듣고 신음소리를 내뱉았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으니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봐야할거 같긴 했다. 다만 당사자들끼리의 혼담이 아니라 그의 자식과 이어주는 자리인만큼 섣불리 일을 벌린 순 없었다. 거기에 지금 여기서 혼담을 하고 싶은 이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안되었다. 선을 봐야할 당사자가 알게 되는 것도 곤란하지만 분위기라는게 있어서 선뜻 거절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요괴든 마음에 맞는 이가 없어서 혼자인 경우도 있지만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몰래 의견을 물어보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하지 않고 생각해보겠다고 한 민준이 술잔을 들자 여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마? 그 한숨은 뭐지?"
"아..그게 하하.."
'
자신도 모르게 나온 한숨이라 둘러대려고 했지만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된통 당할수도 있기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솔직히 말하자 어이가 없어진 민준은 그의 뒤통수를 쳤다. 요괴인만큼 타격은 없었지만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친구는 왜 갑자기 이러는가 싶어 당황했지만 여구는 괜찮다는 듯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이건 그냥 약속같은 것이네"
"약속? 무슨 약속인가?"
"실없는 소리를 했을 때 하는 것이네. 기분 나쁠 줄 알았는데 나쁘진 않더구만. 오히려 이런걸 안해주는게 섭섭할 지경이야."
민준이 뒤통수를 때리는 모습은 자주 봤다. 이걸 보고 요괴들은 처음에는 민준의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왜 사람의 기분이 나쁘게 뒤통수를 후려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없는 소리를 해서 거기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아니 벌이라고 까지 할 것도 없이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뒤통수를 가볍게 친 것이었다. 직접 경험해본 이들은 무안한 분위기를 웃음으로 무마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으니 그들도 한번 경험해보았는데 확실히 무안한 분위기를 바꾸기엔 최고였다. 거기에 대해 설명하자 여구의 친구는 표정이 미묘 복잡했다.
"하하 거기에 대해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말게나. 자주 대화를 해보고 술을 마시다보면 알 수 있네. 정말 재미있는 분이고 좋은 분이야."
"그렇구만. 자네가 눈치보는거 같지도 않고 오늘 한번 경험해봐야겠네."
그렇게 말한 그가 술잔을 들자 민준도 낄낄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신 이들은 여기 저기 퍼질러서 잠을 잤고 민준은 시녀에게 대충 이불만 덮어주라고 한 뒤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흐음..일이 또 바빠지겠구만.."
이제 좀 쉬어볼까 했더니 가장 중요한 일이 생겨버린만큼 수첩을 꺼내 적어두던 민준은 그 옆에 백랑와 예미의 이름도 함께 적었다. 이제 요괴들은 산월로 돌아가는만큼 그녀들이 고백을 하는 것도 생각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럼 혜미랑 랑아는 어쩐다.. 분명 자주 찾아오긴 하겠지만..아 머리가 복잡하네"
여구가 말했던 중계를 서는 일은 사실 몸이 바쁠 뿐 정신적으로 신경을 쓸 일은 없었다. 일일히 찾아가서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는지 물어보고 맞선을 볼 생각이 있냐고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백랑과 예미의 경우 달랐다. 랑아와 혜미까지 신경써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숨을 푹 쉬고 있자 달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였던 랑아가 민준을 발견한 듯 정자로 뛰어왔다.
"오빠는 뭐하는거시냐! 나는 달 구경하러 온거시다!"
"잠은?"
"아까 낮잠을 많이 잔거시다."
랑아는 과일주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술고래들처럼 쭉 쭉 마시는게 아니라 한잔을 오래 마시는걸 좋아했다. 이야기하면서 한모금 마시고 또 한모금 마시며 1시간이나 두시간에 한잔 정도를 마셨다. 그래서 취할 일은 없었던 그녀는 다들 잠에 빠지고 술고래들만 남아서 술을 마시자 재미가 없어져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오빠. 내 매일 이곳에 놀러와도 되는거시냐?"
"매일? 비가 오거나 태풍이 오는 날은 안돼"
"위험해서 그런거시냐?"
"그래. 그런 날은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원래 오던 길이라고 해도 갑자기 무너질수도 있고 그럼 랑아가 다치잖아?"
"그건 싫은거시다! 그럼 그때는 안오는거시다!"
"그래. 그리고 올 때는 꼭 요마한테 말하고 오는거다? 몰래 오면 안돼"
"헤헤 그건 걱정안해도 되는거시다. 요마님도 허락한거시다"
기린에 가는 것은 요마도 막지 않은만큼 우쭐거리며 말하자 민준은 장난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헝크러진다는 듯 말한 그녀는 민준의 다리 위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해달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요즘은 잘 달라붙어있네?"
"그때는 오빠랑 싸워서 그런거시다. 지금은 다 풀린거시다."
랑아가 고집을 부린 것이긴 했지만 서운한게 있었던 그녀는 민준에게 싫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응어리는 풀려 민준을 오빠처럼 생각하고 따르게 된 것이다.
'그럼 랑아가 2차성징 겪고 혼인을 맺으면 내가 평가를 해줘야겠네"
"누구를 평가하는거시냐? 설마 나를 평가하는거시냐!?"
"아니 상대방. 랑아를 못살게 하는건 아닌지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하는거지. 오빠니까"
"헤헤 알겠다는거시다. 만약 그러면 백랑언니한테도 말하고 오빠한테도 말하는거시다."
민준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고개를 끄덕인 랑아는 기타 연주를 빨리 해달라고 하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안으로 뛰어갔다. 10분 뒤 혜미와 예미와 함께 왔는데 그녀의 손에는 작은 술상이 하나 들려 있었다.
"술 마시게?"
"동탁이 말한거시다. 이렇게 마시면 좋다고 했다."
"좋기야 좋겠지. 그럼 잔잔한 노래라도 하나 해줄까"
달도 밝고 조용한 분위기였으니 시끄러운 노래보다는 잔잔한 노래가 괜찮다고 생각한 민준은 기타줄을 튕기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랑아는 술을 따른 다음 혜미와 예미와 짠을 하고 쭈욱 들이켰다.
"크핫..좋은거시다."
"그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사람들이 하는걸 본 거시다. 오빠도 한잔 먹는거시다."
민준을 위해서 탁주도 가지고 왔던터라 술을 따라주자 고맙다고 대답한 민준은 술을 쭈욱 들이켰고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미가 안주를 먹여줬다.
"고맙다 예미야"
"아..아니예요. 내가 무슨 짓을..헤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지만 기쁘다는 듯 얼굴을 붉히자 물끄러미 보고 있던 혜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아냐 아무것도."
순간 두 사람이 부부인 것처럼 느껴졌기에 한마디할까 했지만 그걸 민준에게 자신이 말하는건 아닌 것 같아서 술을 쭈욱 들이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 작품 후기 ==========
요괴도 얼른 끝내고 완결을 내야...!
2차 성징.[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