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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월의 부탁 --> 이유야 어찌되었든 혼돈과 도철은 민준을 좋아하게 되었다는게 중요했다. 그걸 자각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그걸 알고 있었고 인정했으니 궁기는 그에게 소중히 해달라고 할 뿐이었다. 자신이 다른 흉수들을 챙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먹는 것과 입는 것 위주였지 사생활까지 건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민준을 좋아하는걸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기껏 상처입은 마음을 추스리고 큰 결심을 한만큼 또 한번 배신을 당할 경우 자신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말을 강조하자 민준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웃었다.
"니가 걱정하는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이 도철과 혼돈이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한번 배신을 당한 이들이었다. 그런 두 흉수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는건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 민준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고백을 하게 만든건 반쯤 의도했지만 그녀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누가봐도 좋아한다는게 뻔히 보이는데 혼자서 답을 알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으니 조금 도와준거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을 이용한다?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나중에 예전에는 이랬지라고 장난을 칠 수 있겠지만 그건 말장난일뿐이지 이용하는게 아니었다.만약 그런 의도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접근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기 전 여인들이 전부 찾아올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게 틀림없었다. 그만큼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하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민준은 혼돈과 도철의 마음을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그런 짓을 하면 신수언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계획이라니?"
"두명의 마음을 얻으셨으니 이대로 돌아가셔도 되는거 아닌가요?"
"약속한 기일까지는 여기 있을거야. 그리고 도철과 혼돈이 날 따라..."
"따라갈거야! 그런 말까지했는데 여기 있으라고? 말이 안되잖아 이새끼야"
"저..저도요..조금 걱정되기는 하는데...그래도 떨어지기 싫어요"
도철이 민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질 수 없다는 듯 혼돈도 말했는데 둘 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궁기는 사랑이라는게 이런구나 하는 것을 대강은 알 거 같았다.
"누가 놔두고 간다고 했냐..혼돈은 몰라도 도철 너라면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지 하루만에 찾아올껄?"
"윽..."
혼돈의 경우 만약 이곳에 두고 간다면 같이 가고 싶어도 기다릴 것이다. 그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기다릴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도철은 기다리라고 하면 하루만에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찾아올게 뻔했다. 그러니 놔두고 갈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해 적의를 들어내고 있는 두 흉수였으니 최소한 적의를 들어내지 않는 훈련을 해야한다는게 민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의외네요, 적응해야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몇백년이나 품고 있던 앙금인데 그걸 금방 풀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해. 그저 적의를 숨기는 훈련을 한 뒤에 조금씩 앙금을 풀어나가도록 해야지"
"그럼 당신의 여인들은요? 꽤 많다면서요?"
"그 녀석들은 별개"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별개라니. 장난하세요?"
"장난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는 동료의식이 생겨난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괜찮을거야."
지금까지 자신을 좋아했던 여인들이 잘지내는걸 보면 도철이나 혼돈도 괜찮을 것이다. 특히 혼돈의 생기 없는 눈을 본다고 해서 싫어한다는 말을 할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걸 알고 있었으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궁기는 어이가 없는 듯 민준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도철이나 혼돈은 이해할껄?"
"무슨? 아 그거? 그 아이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괜찮을거 같아요"
"혼돈. 도철 언니 정말이예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민준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속이 좁지는 않을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는 뜻도 되었다.
"일단 앞으로의 계획은 다 정해진 듯 하고..오늘은 그럼 뭐할 생각이었죠?"
"혼돈이랑 도철 꾸며주려고 했지. 아 너한테도 도움이 될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말나온 김에 다녀올테니까"
마음만 먹으면두 여인을 안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많은 것도 이유중 하나였지만 혼돈에게는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걸 그리고 도철에게는 여성스러움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너무 느긋한게 아냐고 타박할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건 한정되어있었다. 그리고두 여인에게 언제든 관계를 가지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조금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여인은 그의 예상대로 거부를 할 생각따윈 없었다. 아니 고백을 한 순간부터 본능이 눈을 뜬 것인지 속옷이 젖어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민준의 행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으음...그럼 언니. 혼돈 두 사람은 어떻게 할거야? 계속 이곳에 지낼거야?"
"일단은 아니야..여기 좁잖아? 그러니까 조금 더 늘린 다음에 오기로 했어. 본거지를 새로 만들어준건 고맙지만..."
자신의 오두막은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도철이었지만 지금은 민준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놓자 궁기는 그럴 거 같다는 표정을 하다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도대체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혼돈과 도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물어보면 안되는걸 물어본거예요?"
"아니..그런건 아닌데.뭐랄까.너무 좋다고 생각하다보니까.."
"저도 그게..오라버니에 대한 장점을 늘어놓으라면 계속 말할순 있는데 부끄러워서..그래도 그중에 하나 꼽자면 노래 할 때 멋있어요"
묵혀있던 감정을 녹여준게 민준의 노래였던만큼 어딘가 황홀한 표정으로 말하자 도철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두 여인은 민준이 돌아올 때까지 노래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쉴세 없이 떠들었다.
"당신. 노래 아무거나 들려주세요. 지금까지 노래에 대한 예찬을 듣다보니 진짜 한번은 제대로 들어봐야할거 같아요"
기타연주를 할 때면 돌아가거나 딴생각을 하느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던만큼 눈을 불태우며 말하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건지 이해하지 못한 민준은 도철과 혼돈을 바랍왔다. 그러자 두 여인은 에헤헤 하며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일단 가지고 온 옷 정리좀 하고. 너한테 어울릴 법한 것도 가지고 왔으니까 한번 봐봐"
"또 어떤 옷을 가지고 온건지 궁금하네요!"
민준이 가지고 온 것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 뿐이었으니 어떤게 좋은가 싶어서 가방을 뒤적거리던 궁기는 꽤나 야해보이는 속옷을 끄집어냈다.
"이건..뭔가요?"
"아 그건 도철이랑 혼돈 속옷인데. 선물로 주려고했지"
"이..이런걸 입는다고요?"
민준이 가지고 온 속옷은 현대식이었다. 거기에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속옷이었는데 펑퍼짐한 속옷만 입어왔고 봐왔던 궁기는 처음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거보다 더 야한것들도 얼마나 많은데?이건 평범한거야."
프릴과 레이스가 달려있다뿐이지 평범한 속옷이었던만큼 더 야한게 있다고 말하자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떳다. 그래서 민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혹시 몰라 가져왔던 야한 속옷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당황한 궁기는 딸꾹질이라는걸 해버렸고 왠지 둘 사이가 좋아보였던터라 혼돈과 도철은 때 아닌 질투를 해버리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하루 푹 쉬고 돌아왔습니다!!
흑월의 부탁[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