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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월의 부탁 --> 아침이 밝아오고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 민준의 오두막을 찾아온 궁기였지만 무언가 한산함을 느꼈다. 평소 시간관념이 없는 흉수들이었지만 식사를 할 때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기에 왠지 모를 를 허전함을 느끼며 민준의 오두막 문을 두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어준 그는 하품을 하며 인사했다. 평소였다면 이미 깨어있어야할 그가 잠에 취해있는 모습을 보자 어이없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겠거니 생각한 궁기는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린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민준은 자신의 두 볼을 세게 치더니 정신을 차린 듯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방금전과는 다르게 활기찬 목소리는 덤이었다.
"갑자기 활기차게 인사하시네요. 도철언니랑 혼돈은요?"
"아마 몇일간 안올거야. 어제 내가 숙제를 줬거든"
"숙...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문제같은거야. 답을 알아오면 상을 준다고 했으니까. 아마 알기전까지는 오지않을껄?"
두 사람 다 떠나갈 때 답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오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최소 1주일은 걸릴거라 생각한 민준은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궁기는 두 사람이 걱정되는 듯한 눈치였다.
"정 걱정되면 다녀와봐. 요리 만드는건 점심때부터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요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동생와 언니의 상태가 신경쓰였던 궁기는 바로 여인들의 집을 찾아갔다.
4시간이 지난 후 점심쯤이 되자 그녀는 다시 민준의 오두막을 찾아왔는데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이었다. 기분이 나빠보이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때문에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언니랑 혼돈도 머리를 만져주신건가요?"
"응. 혼돈은 정리만. 그리고 도철은 너무 산발이라서. 잘어울리지 않아?"
"네. 그래서 머리를 만져보고 싶은 욕망은 생겼는데..허락해주지 않으시네요."
궁기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던 이유는 질투가 아니었다. 산발이었던 머리를 정리한 도철을 보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 이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된다는 말을 들어서 아쉬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고집을 피울수는 없었기에 민준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그녀는 재료를 손질하면서 어떻게 도철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거냐고 물어보았다.
"니 머리카락 잘라줬다고 하니까 자기도 잘라달라고 하던데? 그래서 해준거 뿐이야."
"으음..알수가 없네요. 분명 예전에 제가 잘라드린다 했을땐 필요없다 하셨는데..그리고 요즘은 잘 씻고 다니시는게 무슨 심정의 변화라도 있으신건지.."
"그건 뭐..나도 모르지."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어보자 민준은 모른다고 답했다. 알고는 있지만 여기서 그 사실을 말해봐야 궁기는 믿지 않을테고 도철은 부정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깨닫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으니 전혀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연기를 하며 재료 손질을 끝냈다. 그러자 고민을 그만둔 것인지 요리에 집중을 한 궁기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왜 들어가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양념은 언제 어떻게 만드는거냐고 꼬치 꼬치 물어보았다. 지칠법도 했지만 하나 하나 꼼꼼히 알려준 민준은 불의 세기를 강하게 하는 요령까지 알려주었다.
"헤에 이런식으로 하면 뭐가 다르죠? 생각해보면 요리를 할 때마다 불이 달랐던거 같은 느낌이.."
"그게 볶음밥같은걸 할때는 쌘불에 빨리 익히는거고 꼬치구이같은건 은은한 불에 오래도록 굽는게 좋거든. 그래서 불을 다르게 하는거야"
"그렇군요. 그럼 지금 만드는 요리는 강한 불이 필요하단 뜻이네요?"
"그렇지!"
눈치 빠른 궁기를 보며 순간 고개를 크게 끄덕인 민준은 재료들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야채들의 숨이 죽자 그대로 돼지고기를 넣은 민준은 고기의 붉은 빛이 사라질 때까지 볶다가 양념을 넣고 볶았다. 그러자 유심히 바라본 궁기는 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돼지고기는 강한 불이 아니라 약한 불에 구워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구이를 할 때지. 이건 양념이랑 함께 볶아내는거잖아. 그러니까 이때는 빨리 볶아내는게 좋아. 나중에되면 자체적인 열기때문에 자연히 다 익거든. 아 그렇다고 너무 대충 만들면 안되는거 알지?"
"그럴리가 있겠어요. 그런데 많은 양을 만들다가 적게 만들려니 난감하네요."
평소에는 도철이 있어 양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1인분만 만들어야했던만큼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 궁기는 집중해서 요리를 만들었다. 살짝 짜게 되긴 했지만 밥과 함께 먹으면 짠맛이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합격점이라고 볼 수 있어 칭찬해주자 뭘 이런걸 가지고 칭찬하냐는 표정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난 후 식기 도구를 정리한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부터 할게 없었다. 도철이나 혼돈을 찾아가기에는 그녀들이 워낙 심각한 표정이었고 그렇다고 도올을 찾아가자니 그녀는 자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래서 어쩔까 고민하던 그녀는 민준에게 머리카락을 묶는 방법과 옷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달라 말했다.
"바로 간다는거 아니었냐?"
"일이 없어야 말이죠. 요즘 제가 배우는건 저 혼자 만족하는게 아니라 남이 평가를 내려줘야하는 일인만큼 당신말고는 따로 물어볼 사람이 없어요."
"그러고보면 너 돌아갔다가 다시 오두막에 오면 혼돈이나 도철에게 매번 잘어울리냐고 물어봤지?"
"그러니까요. 도올언니한테는 물어봐도 왜 깨우냐고 성질일걸요?"
"그러고보면 도올은 언제까지 그렇게 잠만 자는거야?""
"도올언니의 습관이예요. 괴물이 나타났을 때 한달정도 잠도 자지않고 사냥하다가 사냥이 끝나면 저렇게 늘어져 있어요. 평소에도 잠을 좋아하지만 사냥이 끝난 직후에는 더욱 늘어져있죠."
"그러고보면 내가 있는 동안 사냥이 있었나?"
"네. 있었죠. 워낙 빠르게 끝내버려서 1주일정도 밤새도록 때려잡은게 전부지만."
"왜 난 몰랐지?"
"그야 당연하죠. 그쪽에서도 당신을 건들일 이유가 없으니까요..당신 자체도 문제가 있겠지만 건들이는 순간 사신수언니들과 황룡언니. 구미호에 당신의 영물까지 올텐데 누가 건들이겠어요?"
사실 궁기가 말하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 흉수들과 괴물들은 균형이 어떻게든 맞추어져 있었다. 문을 닫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괴물들이 이곳에 몰려들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민준을 건들인다면 하나만 나타나도 벅찬이들이 8마리나 나타나게 되니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고 해도 민준이 있는 곳은 건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민준을 건들였다면 그건 흥분해서 미친짓을 했거나 사신수와 요괴들을 상대할 각오가 되었다는 뜻이겠지만 그런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흑월이라는 존재가 있었지만 그녀 역시 민준과 친분이 있었으니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왠지 혼자 모르고 속편하게 있었던거 같아서 미안하네"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죠. 언니는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마 푹 자고 나면 당신한테 요리를 만들어 오라고 할걸요? 지금까지 먹었던 요리들 중에 가장 맛있다고 했으니까요."
"뭐 그럼 그때를 기대하면 되겠군."
귀찮게 한다고 했는데 기대한다는 말에 역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중얼거린 궁기는 옷과 머리카락을 만지는 법을 물어보았는데 요리를 만들 때보다 더욱 눈이 초롱 초롱 빛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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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월의 부탁[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