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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월의 부탁 --> 1주일이 지났다. 금방 그칠 소나기라고 생각한 비가 장마였던 것인지 꼬박 1주일을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포를 많이 챙겨왔던터라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드럽게 내리네."
그리고 민준은 오늘도 어김없이 내리고 있는 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지도도 없고 흉수들이 어디있는지도 몰랐으니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은 안 질리나."
1주일간 내린 비 때문에 민준은 오두막에서 나간 적이 없었다. 이렇게 담배를 피울 때 잠깐 나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럴 때면 나무 밑에서 오두막을 노려보고 있는 도철과 눈이 마주쳤다. 흉수인 그녀가 감기에 걸릴 일은 없겠지만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을 보면 저거 괜찮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윗옷은 존재하지 않았고 얇은 천으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으니 비에 젖어 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살기를풀 날리며 이를 갈고 있었으니 성욕이 드는 일은 없었다.
"이거 문제는 장작이네. 내일이면 간당간당할텐데 일단 구해올까."
장작이 떨어지고 나서 구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었으니 몸을 몇번 움직인 그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한발자국 움직였을 뿐인데 온몸이 젖는 느낌을 받은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주변에 쓸만한 나뭇가지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이제 한판 붙을 생각이 든거냐?"
"뭔 소리냐. 이렇게 비가 오는데. 넌 괜찮냐? 1주일 내내 비맞고 말이야."
"그게 누구때문이라고 생각하는거지?"
"내 잘못은 아니잖아?난 분명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목적 또한 말했다."
사흉수를 구원해달라는 부탁을 받긴 했지만 그녀들이 필요없다고 하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민준은 다른 흉수들을 만나 생각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도철에게 이미 말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그녀는 계속해서 한판 붙자고 하고 있었으니 아예 관심을 끄기로 한 것이었다.
"빌어처먹을 새끼. 이렇게까지 말하면 한판 붙어도 되는거 아니냐?"
"내가 질걸 알고 싸우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너 착각하나본데 예전에 멱살 잡은 것은 진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 그 녀석들이 안막은거지 지금처럼 죽일생각 가득해서 한판 붙자고 해도 말이다."
멱살을 붙잡힌 것은 자신도 의외였지만 그 때는 도철이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한 행동이었터라 분신들이 반응하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틀렸다. 대련을 빙자하여 몇수 어울려주다가 실수로 죽였다. 라고 할 것이 눈에 보였으니 민준은 그녀와 붙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목숨이 소중한 것도 있지만 몸에 상처라도 나는 날에는 흉수든 나발이든 다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씨발!"
잘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나무를 후려쳤다.
쩌적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나무가 조각이 나자 민준은 오오 땡큐라고 말하고는 나뭇가지를 잘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땡..뭐? 시발 개같은 새끼. 두고봐라. 진득허니 기다리면 기회는 올테니까."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성미에 차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공격하면 경계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뿌드득하고 이를 갈아버린 도철은 그 길로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버렸다.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장작으로 만든 그는 불 가까운 곳에 세워 물기를 말렸다. 이렇게 하면 연기가 자욱히 피어나오기에 급하게 만든 창문을 열어둔 민준은 오두막으로 살기를 보내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에 안도를 하며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녀의 살기가 무서워서 그렇다기 보다는 정말 귀찮았기에 이제 두발 뻗고 잘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얼마 전 느꼈던 시선을 느낀 민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늑대인거 같은데 누구의 사주를 받은거지?"
처음 만났을 때는 도철을 신경쓴다고 미처 신경쓰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늑대따위가 주변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자신의 몸에는 신수들과 요괴들의 각인이 되어있다. 그래서 맹수들은 본능적으로 피한다. 이곳에 있는 맹수들이 신수들이나 요괴들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도철에게 죽기 싫으면 오지 않는게 상책이다. 그런데 저번에 만났던 늑대는 꽤나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듯 맴돌고 있었으니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직접 찾아오는 도철은 아닐테고 도올은 귀찮아할테니 궁기나 혼돈겠다만.."
책에 나와있는 내용대로라면 궁기와 혼돈 둘 중 한명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혼돈 쪽이 더욱 가깝자고 민준은 예상했다. 궁기는 자신의 사람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무관심으로 대한다고 되어있었으니 자신에게 이런 관심을 내보일리가 없다. 물론. 도철이 걱정되서 조사를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런 수고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혼돈은 달랐다. 인간은 죽인다고는 하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조심성이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찌되었건 비협조적일 것이 틀림없었기에 민준은 머리를 벅벅 긁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찔끔 찔끔 말고 확 튀어나오면 얼마나 좋겠냐..에휴.."
인간과 감정의 골이 깊은만큼 불가능한 소리라는 것은 알지만 도철때문에라도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던 민준은 비라도 그쳤으면..이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 벌렁 누웠다.
"크하~~크~하~~~컥!? 이런..잠이 들었나?"
어느세 잠에 빠진 것인지 침을 닦아낸 민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줄기가 약해진 것이 몇일 내로 그칠 것처럼 보였다.
일어난 김에 담배라도 피울 생각으로 밖으로 나가자 늑대 한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야. 이녀석? 저리 가라"
손을 흔들자 고개를 갸웃거린 늑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뒤 돌아보지 말고 들어주세요."
"깜짝이야."
늑대에 정신팔린 사이 어느세 뒤에서 목소리가 나자 몸을 움찔거린 민준은 뒤를 돌아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넌 누구지?"
"혼돈."
"혼돈이라. 새로운 흉수네 반갑다."
"그런 인사를 할 사이는 아닌거 같아요."
존대말이 튀어나오자 민준은 뒤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목이 돌아가는 순간 혼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흉수의 입에서 존대말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민준은 솔직하게 사과를 하고 다시 늑대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의해주셨으면 좋겠어요.전 인간과 마주본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 알았다."
"그럼 묻겠어요. 당신의 목적은 뭔가요? 왜 이곳에 찾아온거죠? 그리고 어째서 도철언니가 당신을 내버려둔건가요?"
"첫번째 질분에 대한 답은 흑월에게 부탁받았다. 너희를 구원해달라고. 물론 니들의 입장에서는 웃긴 이야기겠지. 고작 인간따위가 구원을 한다는 말이.나도 동감해. 부탁은 받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신수들이 내 여인이여서?"
"..."
"농담이 아니다. 니가 확인해보면 알거 아니냐?"
혼돈이 아무런 말이 없자 민준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이군요. 당신이라는 존재가 인긴인지 조차 의심스럽네요. 하지만 저희는 인간따위가 내민 손을 잡을만큼 나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주세요."
"그래. 궁기랑 도올의 의견을 들어보고."
"장난..하시는건가요?"
"이쪽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너나 도철이 보기에는 내가 말장난하는 것처럼 느낄수도 있지만 황룡도 부탁한만큼 너희들 전부의 의견을 들어보고 돌아가야하니까. 너랑 도철의 의견만 듣고 지례짐작할 순 없잖아?"
"그것도 그렇군요. 알겟습니다. 그럼 다시는 이곳에서 안봤으면 좋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혼돈이 사라지자 멀뚱 멀뚱 서있던 늑대도 아우우~~하고 울더니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뭐야? 말만 잘하네? 소심한게 아니었나?"
도철과는 다르게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살기를 느꼈던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사실은 기입되지 않았고 혼돈은 소심하다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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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기..긴장했어요.."
그리고 민준의 오두막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달려왔던 혼돈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얼굴까지 새빨갛게 물든 것이 엄청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어머 혼돈. 어디 다녀온거니?"
"아..안녕하세요 궁기언니. 잠시 인간을 만나고 왔어요?"
"인간? 아아..도철언니가 이를 갈고 있는 녀석 말이구나. 무엇때문에?"
"궁금..했어요. 왜 도철언니가 죽이지 못하는건지..만약 제약이 있다면 제가.대신하려고.."
"그래서 다녀온거야? 으이구 정말 귀여워 죽겠네."
"하으으으 언니는요?"
"난 오랜만에 너 보러 온거지."
아까 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혼돈의 모습이었다. 작은 말에도 당황하고 바위 뒤에 숨는 것이 정말 부끄럼이 많고 소심한 소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모습을 민준은 보지 못했으니 책을 뒤적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편의점에서 올립니다.
문제는 다시 감기기운이 도지네요..젠장
다들 감시 조심하세요 ㅠ
흑월의 부탁[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