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삼국지 연희-1201화 (1,201/1,909)

-------------- 1201/1909 --------------

<-- 카니르님이 보내주신 축전입니닷. --> "민준!"

"어, 엉!? 뭐, 뭐야! "

이제 막 밖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꼭두 새벽부터 자신의 몸을 거칠게 흔들며 깨우는 의문의 음성에 민준의 눈이 뜨였다. 눈앞에 서있는 것은 익숙한 외모의 여성이었다. 그새 씻고 온 것인지 촉촉하게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조금씩 달라붙어 오히려 더 농염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민준이 당황한 것은 그녀의 행동과 갑작스레 소리를 쳤다는 점이 아니었다.

"빨리 일어나봐요! 큰일났어요!"

"아, 아니 큰일은 지금 이 상황이 큰일이라고!? 랄까, 너 대체 뭐하는 짓인데!?"

그의 팔을 끌어당기는 여성은 다름아닌 제갈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닿는 것은 커녕 대화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해오는 상황에 천하의 민준도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호감은 커녕 어제까지만 해도 말다툼을 하다 끝났던 것으로 기억나는 것이 마지막 대화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으으, 전 제갈량이 아니라 원소라구요. 원.소!"

"...? 아침부터 어디 아프냐?"

"어휴! 정말이지, 당신이란 남자는!"

한숨을 푹 크게 내쉬고는 갑작스레 입술을 맞춰오는 제갈량의 행동에 민준의 머리는 곧바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원소라고? 자신이 가끔 멍청한 면이 있긴 했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민준이었기에, 입술을 재빨리 떨어뜨리고는 양 어깨를 붙잡아 그녀와 마주했다.

"워, 원소라고!? 네가!?"

"그렇다니까요! 아이 참, 당신은 사랑하는 여자도 못 알아보는건가요!? 실망했어요!"

"그건 미안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그런 모습으로 바뀌어버리면 아무리 나라도 당황한다고. 너도 내가 우경이 녀석이랑 몸이 바뀌어가지고 아침부터 쳐들어왔다고 생각해봐."

"에... 그, 그건 그렇네요..."

원소도 민준도 분명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다면야 육체가 바뀌었다고 해도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런 꼭두새벽에 엉겁결에 잠까지 방금 깬 상태에서 곧바로 알아보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무리한 요구였다. 그것을 원소도 알았기에 겸연쩍은듯 헤헤 하고 작게 웃어보인 그녀는 민준의 몸을 안아왔다.

"엣!? 미, 민준?"

"미안한데 오늘 하루는 애정표현은 되도록 자제하자."

"어, 어째서요? 설마 제가 제갈량과 몸이 바뀌었다고 해서 싫어진건..."

"그럴리가 있냐. 다만, 일단 그 몸은 제갈량 그 녀석의 몸이잖아? 아무리 속 내용물이 원소 너라고는 해도 멋대로 남의 몸에 입을 맞추거나 안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나름 속 깊은 그의 말에 원소도 그제서야 알아챈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래도 시무룩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는지 니야와 방덕같이 귀와 꼬리가 있었다면 금방 축 늘어진 것이 눈에 선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민준은 쿡쿡 하고 작게 웃었다.

"대신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날에는 하룻동안 너랑 줄곧 있어줄테니까. 알겠지?"

"으으, 대체 몇일만에 돌아올거라 생각하는건가요!"

그래도 나름 정인인 자신이 아직까지는 민준과 불호한 관계를 쌓은채로 유지되고 있는 제갈량과 몸이 바뀌었다는 사실에도 별 동요없이 담담한 그의 모습이 마냥 얄궃기만 한 원소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돌아올 방법이 없는 이상에야 지금 그녀가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은 받아낸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을.

"그나저나 난감하네.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정말이지 일찍도 물어보네요. 어휴, 다른게 아니라 청과 주작이 새로 만드려고 한 물건이 있었나봐요. 민준을 위해서 제법 고등의 술식이 담긴 부적을 만든다고 했었는데, 하필 제가 제갈량과 함께 청을 볼 일이 있어서 찾으러 갔다가 그만..."

"...잘못된 술식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마 뒷말을 제대로 민준이 맞춘 듯 입을 앙 다문채 고개만 끄덕이는 원소의 행동에 민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청과 주작의 합작품이다. 잘못된 쪽으로 이어졌을 경우엔 그 결과가 얼마나 뒤틀렸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잘못 했다가는 술식이 아예 정 반대의 것으로 뒤바뀌어 해술조차 하지 못하고 이대로 제갈량과 원소는 몸이 뒤바뀐채로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후우, 이거 미치겠네. 요술서한테 물어봐야하나?"

- 나라고 전부 아는 줄 암? 게다가 청과 주작이 함께 만든 술식이 실패한 결과 때문이라면 내가 도와줄 부분은 거의 없음!

"아오, 이 쓸모없는 놈."

- 헐!? 쓸모없다니 너무한것 아님? 주인이 지금까지 여자들이랑 지내면서 복상사 안한게 다 누구 덕분인데 그럼!

"그 일이 벌여진 것도 네놈 때문이잖아, 이 자식아."

열이 오른 민준은 그대로 요술서를 실체화해 한번 찢어버리고는 후우 하고 깊게 한숨을 다시금 내쉬었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다. 이제와서 누구를 탓해봐야 뒤늦은 일일 뿐이다. 아마 차후에 청과 주작이 역모급 죄인의 얼굴로 자신을 찾아오겠지만, 그녀들이 억하심정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수에 불과했기에 딱히 탓할 생각도 없었다.

"그보다 불편하진 않아? 신장이라던가 여러모로 달라졌을텐데."

"조금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요. 이 정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확실히 그녀의 불편함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제갈량과 원소의 신장 차이는 제법 된다. 아니, 신장 뿐만이 아니라 흉부의 큼지막한 지방이라던가 있던 것이 여러모로 사라졌을테니 어색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리라.

"제갈량은 별 말 없었어?"

"네. 처음에는 혼동스러워 했지만 그 정도 수준의 지모를 가진 여성이니만큼 금방 담담해 했어요. 묘하게 밝아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길 바라겠지만요..."

"...기분 탓이겠지."

제갈량의 입장에선 없던 것이 생겨난 경우가 많을테니 여러모로 흡족할지도 모르겠다며 민준은 떠오른 생각을 피식 하고 웃어넘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른 시각부터 어딜 가려구요?"

"뜨끈하게 몸좀 담그려고. 아침부터 여간 혼란스러운게 아니라서. 원소 너도 그래서 씻고 온것 아니야?"

"은근히 제가 청결하지 않은 듯이 말하는게 걸리네요... 물론 맞긴 하지만요."

아침에 깨어났을땐 모든게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원소는 이른 시각부터 잠을 깨고 말았고, 결국 눈을 떴을때 어젯밤과 변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우울함이 가득해지는 바람에 마음을 다잡고자 몸을 담그고 왔던 것이다.

"식사는 같이 하자. 먹여주는 건 무리겠지만."

"그러네요. 그럼 전 제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내가 마중하러 갈게."

수건을 어깨에 걸친채로 욕실로 향하는 민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원소는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볼기짝을 몇번 찰싹 찰싹 두드려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

.

.

.

.

.

관청의 식당은 평소보다 조용했지만 무음의 소란이 다방면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오늘의 광경은 바로 식당 중앙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식사를 하고 있는 민준과 제갈량이었다.

"먹을만 해?"

"맛있네요. 물론 민준이 해주는 것 보다는 못하지만요."

"넌 황궁 숙수들이 만들어줘도 내것보다 맛없다고 할 거잖아."

"물론이죠. 민준이 해준 음식보다 맛있는게 있을리가 있나요?"

베시시 미소 지으며 다시금 음식을 떠먹는 그녀의 모습에 민준은 작게 미소짓고는 주변의 시선을 체크했다. 확실히 여간 시선이 꽂히는 것이 아닌지라 평상시에 다른 여인들과 애정행각을 벌이며 얼굴에 철면피를 깔게 된 민준이 아니었다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을 것이 분명했다.

"네 말대로 당장 말은 안했다만은, 대체 왜 애들한테 말하지 말란거야?"

"그냥요. 모처럼이니 재밌기도 하잖아요? 후훗. 이미 일어난 일인데 이렇게라도 즐겨야죠."

"...소악마냐, 네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민준은 원소의 이마에 작게 꿀밤을 먹여주고는 냉수를 들이켰다. 그래도 아까까지의 풀죽어있던 그녀의 모습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렸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을 보면 자신도 참 원소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민준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새삼 느끼는건데."

"뭔가요? 민준."

"난 널 어지간히도 좋아하고 있나보다."

"네에──!? 콜록! 콜록!"

그의 갑작스러운 직구 발언에 원소는 사레가 들린 듯 연신 기침을 해대더니 민준이 건네주는 컵을 받아들어 냉수를 한모금 마시고는 진정할 수 있었다.

"벼, 별일이네요. 민준은 항상 느끼지만 애정행각은 잘 해주지만 표현은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잖아요?"

말하자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는 타입이 민준이었다. 하지만 사랑받는 여자로써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애정과 온기를 갈구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말로만 전해지기도 하는 묘한 감각을 좋아하기도 했기에 어젯밤부터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원소로써는 가뭄의 단비 같은 말이었다.

"그런가? 으음, 그런 것도 같고..."

원소의 대답이 오히려 의외였는지 민준도 곰곰히 자신이 여인들에게 애정표현을 해주지 않았나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애정표현도 꽤 자주 해주었떤 것 같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이어나가고 있을 즈음, 갑작스레 식탁을 쾅! 하고 두드리며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왜? 너도 줘?"

"누, 누가 너 같은 녀석이 먹여주는 걸 먹고 싶어한다는거야!"

"...누가 먹여준댔냐. 그냥 먹고 싶으면 덜어가란 거였지. 그래서, 무슨 일인데? 관우."

그 근원지는 다름아닌 관우. 볼을 볽게 물들인채 서있었다. 아마 그녀가 총대라도 맨 듯, 사방에서는 민준의 여인들이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 마냥 이곳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그냥 갑자기 제갈량님과 네가 친해졌나해서... 겨, 결코 네가 좋아서 질투하거나 관심가지는 건 아니니까!"

"...음, 그게 말이다."

진실을 말해줘도 되냐며 눈짓으로 원소에게 물어보았지만, 원소는 작게 미소지은채 고개를 저었다. 그에 민준은 참 다른 여인들에 비해 마냥 성숙해보이기만 했던 그녀에게 이런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대답햇다.

"자세한건 제갈량 본인에게 물어봐."

"엣?"

"왜?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야지. 설마하니 네 군사라고 묻지 못하겠다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꽤나 짓궃은 미소를 지으며 민준이 물어오자 관우는 어버버 하며 고개를 녹슨 철덩어리 마냥 삐걱거리며 돌리고는 제갈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원소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 제갈량님. 어째서 그와 친해지신 겁니까?"

"...글쎄요. 여자의 마음은 천지신명도 모른다 했으니 저도 아마 그 경우가 아닐까요? 후훗."

정말 제갈량이 사랑에 빠지면 저런 말투가 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원소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그에 관우가 뜨악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원소는 즐거운 듯 추가타를 날리려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열려고 했었다.

"그쯤 해두는게 어떠신가요. 원소님."

"어머, 벌써 도착했나요. 제갈량."

"후우, 혹여나 모른다는 생각에 일찍 온 것이 정답이었나 보군요."

뒤에서 나타난, 원소의 모습을 한 제갈량만 아니었다면.

"제갈량...님?"

그에 관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검지로 원소의 몸을 한 제갈량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전해지지 않았나 보군요. 어제 조금 사건이 있어 원소님과 몸이 바뀌었습니다."

"예!? 저, 정말입니까1?"

"제가 이런 것으로 농을 할 성격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제가 저 남자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게 여기진 않으셨습니까?"

"그, 그렇긴 했습니다만..."

사실 관우도 이상하게 여기긴 했으나, 아무래도 민준의 여인들 중 그와 지낸 시간이 길었던 여성들도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녀들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히려 외통수를 맞은 듯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아."

관우와 다른 여인들의 반응에 질렸다는듯 한숨을 내쉰 제갈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선을 민준에게로 옮기자 그도 어색하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한참동안 주시하던 제갈량은 갑작스레 원소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숙수에게 적당하게 식사거리를 내오라 하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당신이 원소님과 제 몸이 바뀌었다고 해서 흥미 본위 삼아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이라는 것이 아마 원소와 제갈량의 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이 일에 대해 해명하는 행동임을 뜻한다는 것을 민준도 알았기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갈량이라면 다짜고짜 '당신이라면 그럴 줄 알았습니다'라거나 '당신이 벌인 일입니까?'라고 물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마 원소님의 장난이겠죠. 어차피 당신 때문에 벌어진 일도 아니니 탓할 생각도, 뭐라 쓴소리를 할 생각도 없습니다만 제 몸을 희롱하는 일은 되도록 줄여줫으면 하는군요."

"줄여, 줬으면 한다고?"

"네. 물론 당신도 정인과 애정행각을 하고 싶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다만, 입맞춤이나 껴안는 둥의 행동은 이해합니다만 적어도 성교만은 그만뒀으면 하는군요. 적어도 제가 원래 몸으로 돌아갈때까지는."

"어째서?"

민준의 대답에 원소도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었고, 제갈량은 이게 무슨 말이냐는듯 인상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당신이 싫은 건 어제나 오늘이나 같습니다만 오늘은 더더욱 짜증나는군요. 발정난 짐승도 아니고 겨우 하루 정도만에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것을 참지 못해서 제 육체를 탐해야만 한다는 겁니까?"

평소 화를 낼때도 최대한 기색을 감추고서 화를 내는 그녀답지 않게 아예 분노했다는 것이 눈에 선할 만큼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하며 언성을 높이는 그녀의 행동에 원소도 옆에서 민준을 제지하려 했으나 민준은 원소를 작게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 제갈량, 너 진짜 등신이냐? 아니 머저리야? 내가 어째서냐고 물은 건 네 몸에 들어간 원소와 성교를 하지 말라는 네 부탁이 아니라고. 내가 어째서냐고 묻고 싶은 건 아무리 내용물이 원소라고는 해도 네 육체에다가 입맞추고 껴안는 행동을 하는데에 '그만둬라'가 아니라 '줄여라'라는 대답이 나오느냐에 대한거다.

"...이상한 것을 묻는군요. 어차피 그런 행동이야 한낱 애정행각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런 것에는 일일이 연연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교는 여성에게는 순결이라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니 조심해달라는 말을..."

"아니! 너 진짜 삼국지 최고의 지략을 자랑하는 그 제갈량 맞냐? 아오, 진짜 말이 안통하네. 야이 멍청아. 네가 싫어하는 남자가 네가 들어가있지 않다고는 해도 네 입술에 입맞추고, 껴안고, 엉덩이 만지고, 허리도 붙잡고, 머리도 쓰다듬는데, 그걸 허용한다는게 말이나 되냐? 개소리 하지마!"

민준답지 않게 묘한 곳에서 화내는 모습에 원소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물론 민준은 원래부터 여러 여자를 안는다곤 해도 사랑 그 자체를 가볍게 보진 않았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오히려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남자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자신들이 욕을 먹었을 때의 모습과 거의 비슷해 보일 정도였다.

"그딴건 말이야, 설령 네 주군이 남자인데 그 주군이 행하는 행동이라고 쳐도 싫다고 말하는게 맞다고. 감정놀음? 지랄하지 마. 그깟 감정놀이 하나 때문에 일어나는게 전쟁이고 니가 짜내는 그 지략이 그 감정놀이에서 발전된 전쟁에 사용되는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 말이군요. 그럼 당신은 그 입맞추는 행동과 연인을 껴안는 행동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조소까지 지으며 아예 그를 대놓고 비웃는 그녀의 행동에 민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식탁을 쾅! 하고 내리치며 소리쳤다.

"의미? 그걸 언급하는것 부터 네가 글러먹었다는 증거야. 입을 맞추든, 껴안든, 막말로 침대에서 놀든 말이다. 단지 그딴건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네가 말하고 있는 건, 세상의 누군가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모든 사람에 대한 모욕이다 이 말이야."

"확대 해석 하지 말아주시죠. 전 그깟 행동에 별 의미가 없다고 했을 뿐 감정까지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너야말로 모순되는 소리 지껄이지마. 넌 사랑과 그 애정행각이 그냥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냐? 웃기지마. 입맞추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껴안으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게 아니라고."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 민준은 제갈량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사랑하니까 입맞추고, 사랑하니까 껴안는거다. 네 멋대로 앞뒤 바꿔서 지껄이면서 애정행각을 의미없는 행동으로 치부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민준의 눈에는 서슬퍼런 한기가 깃들여져있어, 제갈량도 한 순간이나마 숨을 삼키고는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밥맛 떨어졌다. 미안한데 난 먼저 가본다. 원소."

"네? 아, 자, 잠깐만요! 민준!"

정신을 차린 원소가 민준은 세워보려 했으나 이미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만이 원소의 시야에 들어올 뿐이었다.

.

.

.

.

.

.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결국 민준과 일이 터지고 난 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제갈량은 한동안 멍하니 천장의 줄무늬 수를 세아리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천재였다. 각종 학문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요 하나를 깨우치면 열이 아니라 백을 알고 오히려 스승을 가르치려 넘볼 정도로 우수했으며 그녀의 재능은 가히 천재(天材)가 아니라 천재(天災)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그녀가 깨닫지 못한 것이 단 하나가 있었고 그 의문은 아직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었다.

'선생님, 어째서 저 사람들은 서로를 안거나 입맞추며 애정행각을 하는 겁니까?'

'어째서라... 이유가 그리도 필요하느냐?'

'삼라만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며 존재 의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 행동에 어떤 연유가 있기에 벌어지는 행동이 아닙니까?'

'글쎄다. 후후, 허나 네가 아무리 천재라 불리워도 아직까지 부족한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것은 잘 알겠구나.'

그 때 든 생각은, '우습다'였다. 천재로 태어나 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다만 자신의 스승님 또한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해 하나의 화두를 던져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그렇게 제갈량은 그 일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그 뒤로 몇년이 지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사람의 감정과 그에 이어지는 행동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고, 자신의 언니에게 자문을 구해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항상 자신이었다.

"의미... 의미..."

입을 맞춘다. 서로를 안는다. 애정행각이라 불리우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동이라는 것까지는 제갈량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뒤로도 이어졌다. 어째서 확인하는 것일까?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이란 그렇게 하찮은 감정인가? 그렇게 하찮다면 어째서 천하를 요동치는 전쟁이 한낱 감정놀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똑똑──

그녀의 상념을 깨우며,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누구십니까?"

"아, 제갈량 있느냐? 너와 원소의 주술을 해주할 방도를 찾아내어 왔다만."

"알겠습니다. 곧바로 채비를 하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량은 의복을 단정히 하고 집무실 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고,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제법 옷 매무새가 흐트러져있는 청이었다.

"방도를 급하게 찾다보니 꼴이 좋지 못하구나. 이해해주거라."

"아닙니다. 저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오히려 한가하게 있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괘념치 말거라. 일단 해주를 위한 술식은 만들어두었으니 몸만 가면 될 것이니라."

"예."

청의 뒤를 따라 나서는 제갈량. 문뜩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청은 고개를 몇번 갸웃거리더니 갑작스레 다가와 제갈량의 온몸 구석구석을 낱낱이 파헤치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별 일은 아니다만, 네 감정이 상당히 동요되어 보여서 말이다. 민준과 싸운 후에도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게냐?"

"...제가, 동요하고 있단 말씁이십니까?"

"그래. 틀렸다면 사과하겠지만은 아무래도 내 감이 틀린 것 같지는 않구나."

"....."

청의 말에 제갈량은 별 말도 꺼내지 못하고 묵언으로 대답을 대신 할 뿐이었다.

겨우, 한 순간의 고민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동요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어째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반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청은 뭔가 흡족스러운듯 미소짓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며 나지막히 읊조리듯 말했다.

"네가 그렇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소녀같다는 느낌이 드는구나."

"소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를 보는 내 감상은 항상 무엇보다 서슬퍼런 날붙이 같았다만 지금의 네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고민하는 한창때의 소녀같아 무척이나 귀엽게 여겨지는구나."

'물론 네가 사랑에 빠졌단 뜻은 아니다만은'하고 말을 이어붙였지만 제갈량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제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청이 다가오는 기척이 없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갑작스레 빨라진 발걸음으로 청의 뒤를 따라갔다.

"갑자기 왜 속도를 높이는 것이냐?"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런 것이라면 빨리 가야겠지."

.

.

.

.

.

.

"후우, 내일 제갈량을 무슨 꼴로 보냐..."

- 주인이 왠일임? 이 지경까지 오면 주인 성격상 다시는 제갈량 안본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말임!

"아니, 뭐 그럴 생각도 없지않아 있긴 했는데... 솔직히 그 녀석도 불쌍하잖아. 감정이란 걸, 애정표현이라는 걸 그 정도까지 모른다는 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자체를 모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 하긴 그렇긴 함. 어떻게보면 고순보다도 심각할 정도임!

"...그렇긴 하지."

고순은 말 그대로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모를 뿐이었다. 감정이 무엇인지,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분노도, 기쁨도, 슬픔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을 뿐 감정이라는 발판을 마련해주자 순식간에 미소를, 눈물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제갈량의 경우는 달랐다.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떨때에 어떤 표현을 해야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려 했다'.

"이해해보자는 식으로 대해서 깨우쳐질 거라면, 왜 인간의 감정이 세계의 최고 난제 중 하나겠냐고."

- 주인이 왠일로 멋진 말을 함?

"아오, 기껏 좋은 소리나 하려 했더니 이 새끼가 그냥..."

똑똑──

요술서를 실체화시켜 막 찢으려는 찰나에 갑작스레 들려온 노크소리에 민준이 실체화한 요술서를 집어던져버리고 문 앞으로 향하자 요술서는 다행이라며 킥킥거리고는 다시 모습을 감췄다.

"누구세요?"

"접니다만, 문을 열여줄 수 있을까요?"

"...엉? 너 설마 제갈량이냐?"

목소리가 원소의 목소리가 아닌 제갈량의 목소리였지만 말투는 분명 제갈량의 그것이었기에, 벌써 술식을 해주해서 돌아왔나 하는 생각에 민준이 의문을 던지자 돌아오는 것은 작게 들려오는 한숨과 질책이었다.

"당신이란 남자는 목소리로 사람 판별도 못할 정도로 무지한겁니까. 당장 문이나 열어주세요."

어차피 강압적으로 나올거면서 왜 허락을 구한것이냐며 민준은 투덜거렸으나 이대로 문전박대를 했다가는 관계가 더욱 틀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갑작스레 무슨 섬광이 찬란히 빛나는 환각이 보일 정도로 재빠른 속도로 제갈량이 민준의 몸을 향해 뛰어들었다.

"커헉!?"

예기치 못한 충격에 민준이 쓰러졌으나, 다행히도 민준의 침상과 문이 거리가 가까웠기에 두 사람은 침대 위로 쓰러질 수 있었고 민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위에 올라탄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너, 원소냐?"

"하아, 당신은 얼마나 멍청한겁니까? 원소님이 당신에게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말투도요."

"내가 보기엔 제갈량 쪽이 이런 행동을 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투는 그렇다고 치겠지만."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듯 미간에 손을 얹은 민준이 제갈량을 내려놓으려 그녀의 양 어깨를 부여잡자, 갑작스레 그녀의 입에서 '하읏!?'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엉?"

"뭐, 뭔가요. 그 얼빠진 반응은."

"아니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더 얼빠진 반응이었잖냐. 뭐냐고, 그 소녀같은 반응은."

자신의 기억상에서 제갈량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 하는 반응은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면 화를 냈지. 하지만 민준의 반응이 제갈량의 입장에선 더욱 기분 나빴는지 빽 소리를 지르며 그녀가 민준을 질책했다.

"그럼 제가 소녀가 아니라는 겁니까!? 실례군요!"

"됐다. 됐어. 대화가 안이어지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그냥 해답을 내놓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해답? 무슨 해답?"

자신이 무슨 질문이라도 던진게 있었나 하는 생각에 민준이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질문이고 자시고 기억나는 것은 아까 전 그녀와 식당에서 싸웠던 일밖에 없었다.

"당신이 말했죠. 애정행각이라는 것을 왜 하는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냐고 밀이에요."

"...뭐, 비슷한 의미기는 했다만은."

"저는 그에 대해서 대답을 놓지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유일하게 해답을 내놓지 못한것이, 그리고 가장 이해하지 못한 것이 사람의 감정에 대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래서, 한가지 방법을 떠올려봤어요. 구태여 '이해한다'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하고요."

그 말에 민준이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의문을 표하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갈량은 볼을 붉힌채 작게 숨을 고르고는 그에게 대답했다.

"예전에 관우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진정한 무장은, 전투를 머리로 하지 않고 몸으로 한다고요. 그때의 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마 그것은 몸이 머리보다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는 뜻이거나, 때로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깨달을 수 있는게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나한테 물어도 모르겠다만은... 그래서?"

"결국, 저도 이제 이해하는 건 포기할 생각이에요. 언니도 예전에 사람의 감정이란 그 어떤 학문보다도 깊지만 그 어떤 냇물보다 얕을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저는 전자에 해당되는 입장이라고요. 그러니까, 이제는 직접 몸으로 익혀볼 생각이에요."

"...뭔가 불안한데."

갑자기 온몸을 엄습하는 한기에 민준이 물러서려 했지만, 갑작스레 그의 양어깨를 누르는 엄청난 무게에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위에 어느새 다시금 올라탄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청님에게 받은 술식이에요. 부탁드릴게요. 오늘 하룻밤만, 내게 당신의 사랑을 이해시켜주길 바래요. 이해될때까지, 몇번이고..."

========== 작품 후기 ==========

언제나 재밌게 보고있는 삼국지 연희의 1200화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00화마다 축전 써드리고 싶었는데 1100화를 깜빡 잊고 넘어가는 바람에 이제서야 1200화까지 정주행하고 써드리네요. 허허, 죄송합니다.

이번편은 전편인 제갈량과의 외전의 전편이라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제갈량이 민준에게 빠지게 된 계기와 제갈량의 과거와 자그마한 고민을 내놓은 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사실 1199화까지 보고 이후에 제갈량이 플래그 꽂힐것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제가 미리 쓰면 후에 메인 스토리를 볼 경우 헷갈릴 것 같아 안쓰려고 했는데, 전 제갈량이 참 맘에 들어서 결국 썼네요.

전편에서 꽤 많은 분들이 호평해주셔서 감사했는데, 역시 빈말이겠죠... ㅂㄷㅂㄷ 어쨌든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연재 계속 이어나가주시길 바라며 무림에 가다만 좀 자주 쓰지말고 얘를 좀 더 자주 써주셨으면 하는 독자로써의 애틋한(?) 바램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300화 외전도 쓰면서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시길 바라며 전 물러납니다! Adios!

--------

후기에 뜨금하는 말을 써주셔서 당황스러운데 이런 압도적인 양을 축전으로 보내주시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흐앙..다음 화 쓰는게 부담스럽다..

Ps. 이건 축전이니 리리필은 다음화에...orz..

유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