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0/1909 --------------
<-- 즐거운 나날들. --> 민준의 품안에서 잔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고된 산행때문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게다가 바닥까지 따뜻했으니 어느센가 잠을 자버렸다. 민준은 벌써 예전에 골아떨어졌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곳이라면 긴장하고 조금 버티겠지만 길을 다 알고 있는 뒷산에다가 포식자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보니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더욱 편하게 자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미축을 끌어안았는데 그녀 역시 따뜻함을 느끼고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눈을 뜬 그녀는 깜짝 놀랐다. 분명 잘때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져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붙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움직이기에는 아픈 다리가 낫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으..이거 어떻게 하지.."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자버리기에는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준의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머리를 어지럽게 하기 시작했다.
'아..안돼....민준님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준 사람이었고 자하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선뜻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가 쉬운게 아니었다. 그런데 요 몇일간 계속해서 민준과 엮이면서 자꾸 마음을 시험하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에..?"
"뭘 그렇게 인상쓰고 있어?"
"아니..미..민준님 일어나..아흣.."
놀라서 허둥지둥하던 그녀는 잘못해서 발을 움직여 버려 신음소리를 내뱉았다. 놀란 민준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와 그녀를 부축하여 주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공기가 쌀쌀했던 탓에 바로 불을 지피기 시작했는데 이 모습을 본 미축은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정말 미쳤어..'
모닥불 앞에 앉아서 멍하니 불씨를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고 어느센가 잠에 빠져버렸다.
"이거 참...이렇게 자면 몸에 부담갈텐데.."
간단하게 먹기 위해 새를 두마리정도 잡아왔던 민준은 쪼그려 앉아서 자고 있는 미축을 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깨웠다. 그러자 살짝 침을 흘린 듯 입가에 투명한 액체가 흘렸던 그녀는 황급하게 침을 닦으며 일어서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으....."
"잘보니 미축 덤벙이구나?"
"네? 더..덤벙이라니요..아..아니예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죽을만큼 부끄러워져서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목에 부담가니까."
"아니 저...하으...시...시원하네요.."
민준이 목에 손을 가져갔을 때는 거부했지만 조심스럽게 주물러주자 기분이 좋은 듯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간단한 맛사지가 끝나고 식사를 시작했으나 두근거리는 심장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미축은 민준이 다시 엎히라고 했을 때도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어봐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두눈 꼭 감고 민준의 등에 엎혔다.
"....등이..꽤 넓네요.."
어제는 다급한 마음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민준의 등이 넓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민준은 그녀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산을 내려왔다.
"저...미...민준님 설마..이대로 성으로 들어가실 생각이세요?"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아..아뇨 그건 없는데..그게..."
산을 내려오자 문득 생각난 듯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자신을 민준의 여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평생을 혼자 살아야할테니 당황한 것이다. 솔직히 자신이 혼자 사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민준이나 자하에게 부담이 갈까봐 그런 것이었다.
"괜찮아..나는 오히려 기쁘니까.."
"......네?"
"이렇게 가면 사람들이 오해하겠지..그래도 난 그게 더 기쁜걸? 너같은 미인이랑 엮일 수 있다는게."
"미...민준님.."
놀란 그녀는 버둥거리다가 떨어질뻔 해서 다시 민준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피식 웃어버린 민준은 성까지 당당하게 걸어갔다. 예상대로 무수한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성으로 입성하자 여인들이 달려나왔다. 질투라기 보단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자하는 바로 미축을 데리고 가서 발목에 침을 놓아주었다.
'역시...'
아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미축을 보며 밤새 무언가 있었다고 확신한 자하는 민준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하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녀는 죄송한 마음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3일정도 방에서 쉰 미축은 민준과 있었던 일 때문인지 계속해서 그에 대한 생각만 났다. 민준과 체격이 비슷한 남자가 지나갈 때면 민준으로 겹쳐보이고 잠을 잘 때면 그에게 엎히거나 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가끔 민준이 다른 여인들과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이 있었기에 한숨만 많아져 버렸다.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며 힘겹게 지내던 그녀는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민준에게 확실히 말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남자로 보지 않을테니 친근하게 대하지 말아달라고...자신보다는 자하에게 신경을 쓰라고..슬픈 일이었지만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미축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준에게 찾아갔다.
"여~ 이제 괜찮아보이네?"
"...민준님 덕분이예요..그리고..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응? 뭐 상관없는데..여기선 안되고?"
"네..조금 중요한 이야기예요.."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아무 말도 없이 따라가자 사람들이 잘 오지 않은 창고로 이동했다. 그러더니 한번 심호흡을 한 그녀는 민준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민준님 지금까지 고마웠어요..저한테 좋은..아니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셔서..하지만...더는 안될 거 같아요..그러니까...저한테 상냥하게 대하지 말아주세요...."
"싫은데?"
"....그게...네? 싫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부탁은 들어준다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부탁 나름이지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는걸 어떻게 들어달라는거야?"
"그냥 예전처럼 지내달라는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인가요?"
"응. 어려운 부탁이야. 왜냐고? 지금 너는 울 것 같은 표정이거든..그리고 또 한가지 더.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안았는데 니가 날 좋아하는 것을 모를 것 같아..?"
"....그...무...무슨..."
자신이 울 것같은 표정이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좋아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말하자 당황한 미축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러자 민준은 팔로 그녀를 못도망치게 막은 다음 말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는 것은 힘들어..다른 여인들도 있으니까...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아는 여자가 고통받는 것은 내버려둘 수 없어."
"저..미...민준님..너.너무 가까운...파..팔을 좀 치워 주..주시면.."
쪼그려 앉아서 도망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당황한 그녀는 도망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널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
"저..자..잠깐..읍..!?"
점점 가까워진 민준이 입맞춤을 해버리자 미축은 두눈이 커져서 그 자리에 굳은 것처럼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첫입맞춤은 달콤했다.
========== 작품 후기 ==========
친구집에 놀러와서 한편
그래서 오늘만 리리플을 쉴게요 ㅠㅠ
즐거운 나날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