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94)

1-3. 십밀낭랑

산신당의 문이 열리며 한 줄기 인영이 득달같이 뛰쳐 나와 면사여인에게 덮쳐 들었다. 마운비! 인영은 바로 마운비였다. 그가 어떻게 뇌운곡에 나타난 것일까? 

마운비는 소수마후가 일러준 대로 십밀서원이 자리한 뇌운곡을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었다. 예상한대로 뇌운곡을 가득 감싸고 있는 안개는 상고의 진법이 설치되 것이었다. 하지만 귀곡천서를 익혀 진법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마운비는 안개진을 뚫고 뇌운곡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뇌운곡에 들어서자 마자 웬 면사여인이 야합하고 있던 사내의 머리통을 부서버리는 잔인한 광경을 목도한 것이다. 

학! 

막 산신당을 떠나려던 면사여인은 갑자기 가해진 이 돌연한 기습에 질겁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내력을 알려주듯 그녀는 등판으로 밀려드는 태산같은 잠경을 피해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침입자에게 잠경을 발출했다. 

스스스! 

그녀의 손끝에서 새하얀 서리같은 기류가 무섭게 뻗어나갔다. 

흥!! 요녀! 성지를 더럽히다니...!! 

스윽! 

그런 그녀의 눈으로 한 명의 청년이 살기 가득한 일갈을 토하며 질풍같이 새하얀 기류 속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앗...당… 당신은! 

마운비를 본 면사여인은 웬일인지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녀의 손끝에서 마운비를 향해 뻗어나가던 기류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내력을 회수한 것이다. 

퍼억! 

그 직후 화끈한 통증이 그녀의 가슴에 느껴졌다. 

악! 

콰당탕! 

면사여인은 젖가슴 사이를 둔중한 망치로 맞은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녀의 교구가 산신당의 연약한 벽면을 부수며 삼 장 밖으로 날아갔다. 마운비의 무형잠경이 그녀의 가슴을 벼락같이 때려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헌데 무형잠경을 발출한 마운비의 안색도 홱 변했다. 비록 상대가 여인이라 내공의 육할밖에 주입하지 않았지만 지금 마운비의 내공으로 보아 그것을 견뎌낼 무림인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신비면사여인의 젖가슴을 때리는 순간 느껴진 반탄력은 여인의 호신강기가 이미 극성을 이루웠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 선천강기! 

마운비가 중얼거리는 순간 마운비의 일장에 오히려 힘을 얻은 듯 면사여인을 그 반동을 이용하여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으음! 도대체 누굴까! 저 정도의 무공이면 결코 평범한 여인이 아닐텐데....!! 

여인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운비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젖가슴을 때리던 순간 뭉클하게 만져지던 풍만한 감촉을 떠올리며 마운비는 쓰게 웃었다. 

수증기가 가득 차 있는 한 칸의 욕실안! 

욕실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그 열려진 문틈 사이로 뽀얀 수증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욕실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경 앞에 웬 흑의면사여인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바로 방금 전 마운비에게 쫒겨 달아났던 여인이 아닌가! 

으음....참기가...점점.... 힘들어지는구나! 

문득 여인의 입에서 한줄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어 여인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걷어냈다. 그러자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고상해보이고 기품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고상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지금 자태는 너무나 도발적이고 관능적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전신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흠뻑 땀에 젖은 흑의. 그 안에서 풍만한 몸이 농염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십대초반이라면 여자 나이로서는 가장 육감적일 때다. 결혼하여 남녀의 열락을 충분히 경험한데다가 적당하게 살이 붙어 농염함이 절정에 이를 무렵인 것이다. 땀에 젖은 흑의 속, 여인의 몸매는 고상한 얼굴과는 달리 너무도 육감적이고 탐스러웠다. "

흐윽.... 도대체...어떤 자가... 본녀 나운벽을 금제시켰단 말인가? 

여인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이를 갈았다. 그런데 나운벽이라니!! 그렇다면 그녀는 바로.. 

삼백년전 갑자기 무림에 등장한 장백의 신비지문 십밀서원! 

십밀서원은 삼백년전 마교와의 전쟁이후 무림에서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신비하게 사라졌다. 그리하여 십밀서원에 대하여는 중원무림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으니...! 

십밀서원! 

십밀서원은 바로 동방에서 선도를 추구하는 선인들인 십이지맥의 총본산이었다. 

본산이라고 해봐야 많은 인원이 모인 세력이 아니라 단지 동방의 각 명산에서 선도를 수행하는 선인들이 자신의 성취를 비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장소일 뿐 이였다. 이렇게 동방의 각 명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지파가 열 두개가 있었는데 이들의 대표를 십이수사라 부른다. 

"이들 십이수사는 십년마다 이곳 십밀서원에 모여 자신들의 성취들 비교하고 상대방을 격려하며 깨우침을 교환하는 것이다. 십밀서원의 나씨일족은 바로 이러한 십이수사가 모이는 장소, 즉 모든 선도를 수행하는 이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뇌운곡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나씨일족도 선도를 수련하고 있으며 십이우사가 깨우친 선도를 기록하는 일까지 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성취는 오히려 십이수사를 앞서는 경우도 있었다. 나씨일족은 천 년 간 동방의 십이지맥을 대표하며 중원무림의 일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독자적인 전통을 구축해 왔다.

"한데, 당금에 이르러 나씨일족에게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었으니... "

십밀야 나현성! 지금부터 오십년전 약관의 나이에 나씨일족의 제칠십이대(第七十二代) 가주가 된 기재였던 그에게는 그 자신에 못지 않은 무서운 능력을 지닌 아내가 있었다. 

십밀대모 진가연!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일신 무공은 결코 남편인 나현성의 아래가 아니었다. 나씨일족은 천 년 만에 가장 뛰어난 한 쌍의 부부를 가주로 선출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 부부는 금슬도 좋아서 슬하에 세명의 자매를 두었으니 그녀들이 바로 나운벽, 나운영, 나운월 자매였다. "

"맏이인 나운벽은 선도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고, 둘째인 나운영은 젊은 시절 중원무림을 여행갔다가 그곳에서 십자검왕이라는 영웅을 만나 사랑에 빠져버린 후 구룡신문으로 시집을 가고 말았다. "

불행한 소식이 들린 건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구룡신문에서 편이 살줄 알았던 둘째 나운영의 실종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십밀서원은 나름대로 총력을 기울여 나운영의 행적을 수소문해 봤으나 오리무중 나운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선도를 수행하는 나씨일족의 적통은 남녀의 구분이 없었으나 단 결혼하여 성가를 해야만 했다. 맏이는 결혼에 관심이 없고 둘째는 너무도 먼 곳으로 출가를 해 버리자 십밀야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데릴사위를 맞아들여 나운월과 짝을 지워주었다. 

그리하여 나운월이 나씨일족의 적통을 이어가길 바란 것이다. 

뇌왕 적우붕! 이 사람이 십이지맥의 총 본산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행운을 움켜준 사나이다. 

그러나 나운월과 적우붕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아 결혼한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나씨일족에게는 크나큰 우환거리였다. 

그런데 삼년전 이러한 나씨일족의 우환을 더욱 깊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십밀야 나현성이 급살을 당한 것이다. 비록 십밀야 나현성이 일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였지만 선도의 수행자로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의문도 조금씩 엷어져 갔다.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십밀대모 진가연은 폐관수련을 이유로 연무동에 들어간 후 두문 불출 서원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십밀서원의 적통은 막내인 나운월에게로 돌아갔지만 나운월은 마음씨는 착하긴 했지만 자질이 평범하여 세가의 업무가 힘에 부친 상황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여 뇌왕 적우붕을 나운월의 짝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만 십밀야 내외의 고심은 십밀야가 죽은 지 얼마 안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몰락한 명문가의 후손이었던 뇌왕 적우붕은 호랑이같은 장인 장모가 있을 때는 숨기고 있었던 탐욕스럽고 음험한 성격을 드러냈다. 

본래부터 음탕하고 탐욕스럽던 그는 아내인 십밀화 나운월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서원내의 여자들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외부에서 여자를 데려와 첩으로 삼아버렸다. 그녀는 바로 도화선자 적여홍이라는 기방출신의 기생이었다. 

남편의 바람기에 그렇지 않아도 관계가 소원하던 적우붕 나운월 부부 사이는 어느 날부터 아예 별거중일 정도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가 바로 십밀야와 십밀대모의 맏이인 십밀낭랑 나운벽이었다. 나운벽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어떤 사이한 주술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법은 것은 평상시에는 잠잠하다가 십오야의 만월이 뜨는 날이면 엄청난 음기를 발작시켰는데 그로인해 나운벽은 엄청난 육욕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십밀낭랑 나운벽! 

그녀은 삼십 몇 년의 세월을 오로지 선도수련에만 몰두해 왔다. 그녀의 삶은 그 자체가 고독한 수련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이성의 경험이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가슴 설레인 기억은 있었다. 

십육년전 나운벽은 동생인 나운영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단 한번 십밀서원 밖을 나갔었다. 그리고 그녀는 동생의 부군이 될 남자인 십자검왕 마룡강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었다. 십밀서원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자신의 제부가 된 십자검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십자검왕 마룡강은 바로 나운벽의 처음이었고 마지막 연모의 대상이었다. 그 이후 나운벽은 이성에 대한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그녀는 오로지 선도일도에만 전념해 왔다. 그 결과 그녀는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십이지맥의 최고 강자들이라는 십이수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고수 자가 되었다. 

이것이 모두 나운벽이 여인으로서의 쾌락을 포기하고 각고 연마한 덕이었다. 한데 지금 그녀는 잃어 버렸던 본능의 쾌락에 신음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을 중독시킨 사이한 약물 때문이었다. 

으음.. 틀림없이 그놈일 것이다. 그 간교한 놈에게 수작을 부릴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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