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0)

샤워를 끝낸 후 침대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안 이불속에서 맨살로 그녀를 내 품에 안았다.

"후회안해?"

"내가 왜?"

그녀의 두 눈은 정말로 '내가 왜 후회를 해?'라고 묻는것 같았다.

"그냥. 나같은 남자랑 잔게 후회안되냐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오빠같은 남자가 어떤 남잔데?"

"나? 뻔뻔하고, 줏대없고, 다른사람한데 아무렇지 않게 상처주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내 말에 백은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런 남자라면 정말 좆을 부러뜨려야지."

그러면서 내 자지를 슬쩍 움켜쥐는데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설마 그대로 터트리려는건 아니지?

다행히 그런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근데 나는 오빠한데 그럴 자격이 없는걸."

그러면서 손을 떼며 말했다.

"내가 부탁했지, 내 곁에만 있어달라고, 오빠가 말한 남자는 내 남자친구일때만 통용되는거지. 단순히 내가 매달리는 입장에서는 상관없지."

"매달린다고?"

"그럼, 내가 매달리는게 아니면 뭐야?"

"....글쎄. 근데 말야. 한가지 확실한건 매달리는건 아냐."

"그럼?"

"난 널 거부할 생각도 없는데 왜 그게 매달리는게 되는건데?"

그녀의 눈빛이 잠깐 변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네. 하하... 오빠 은근히 여자 기분좋게 만드는 말 한다?"

한층 더 내 품속을 파고드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를 거부하지도 거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좋다. 오빠 품. 나 자도되?"

"응."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두 눈을 슬쩍 감았다. 얼마안가 그대로 잠이 들은듯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팔을 빼기도 뭐하고 일을 치르고 샤워를 해서 그런지 나도 몸이 나근했다.

"그래. 자자."

집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계속 옆에있어주길 원했고 교복도 가방도 여기에 있으니 크게 문제될것도 없었다. 여차하면 여기서 하루자고 학교에 가든가 결정할 생각이였다.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있는데 바닥에 굴러다니던 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남수림 선생님의 전화였는데 여기서 통화를 받기엔 좀 껄끄럽게도 해서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원룸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지금 어디야?]

"...친구집인데요."

딱히 누구 집이라고 말 안했으니 별일 없겠지.

[지금 여기 술집인데....]

"네."

[너희누나가 많이 취해서. 어떻게 하지?]

"후우..."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정말 미운짓만 골라서 하네 아주.

어떡하긴 내가 가야지.

"갈게요. 위치가 어떻게 되요?"

[여기가... 학교 옆 삼거리 쪽에 위치한 치킨집인데...]

"네. 어딘지 알것같아요. 네. 금방갈게요."

통화를 끝내고 다시 원룸으로 들어가 급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턱을괴고 컴퓨터를 하던 백은별이 내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갈려고?"

"누구 좀 데리러 가야되."

"누구? 한서희?"

"아니. 우리누나. 술에 꼴아서 데리러오래."

"아... 그래? 가야겠네 그럼."

왠지 아쉬운 느낌이 묻어나는데. 착각이려나? 에이,백은별이 설마.

"나 빨리 가야겠다. 갈게."

"응."

그녀와 인사를 나오고 원룸을 나와 호프집으로 향했다. 삼거리에 위치한 호프집이라면 대충 어딘지 알것만 같다. 학교지나가면서 자주보는 곳이니까.

십분채 안되서 호프집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교복차림인데... 뭐 어때, 술마시러 들어가는것도 아닌데.

호프집 문을여니 근처에 테이블을 정리하던 여자 알바생이 내게 인사를 건내다가 내 모습을 보더니 곤란하다는 듯 다가왔다.

"저희 가게는 미성년자 안받아요."

"사람 데리러 온겁니다. 금방 갈거에요."

"그럼 빨리 데리고 나가주세요. 안그러면 저 사장님한데 혼나요."

울상 지으면서 얘기하는데 제법 귀엽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주위를 둘러보니 금방 눈에 들어온다. 남수림 선생님의 익숙한 뒷태. 그 앞에 고개를 꼬라박고있는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나와 혈연관계에 놓여진 여자다.

"저 왔어요."

"아, 일찍왔네?"

"친구집이 학교 근처라서요. 죄송해요. 폐끼쳐서."

내 말에 선생님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우리사이에 뭘."

"하하..."

괜히 기분좋아서 헛웃음을 지었다. 백은별과의 일도있고 해서 시선을 마주하기 까다롭지 않을까. 그런생각도 했었지만 나도 죄악감에 무뎌졌는지 아무렇지도 않다.

대신 한가지가 맘에 걸렸다.

"누나가 뭔 헛소리 안했어요?"

술만 들어가면 가벼워지는게 사람 입이라 무슨 헛소리라도 한게 아닐까 맘에 걸렸다.

"그냥... 뭐.. 자기가 널 망쳤다고..."

"그래요?"

"응. 아까 누나한데 대충 들었어. 교실에서 일?"

"아...네. 좀 흥분해서."

이것 참 볼 면목이 없네. 그래도 같은 교사입장에서 학생이 대든다고 생각하면 선생님도 기분나쁠테니까.

"네가 남매일 신경쓰지 말라고 해서 그럴려고 했는데... 이건 남매와의 일과 별개로 교사와 학생의 일이니까 한마디 해야겠어. 좀 앉아볼래?"

"네."

그때의 일은 명백히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할말이 없었다.

"가족끼리 싸울 수 있는거야. 치고박고 싸운것도 아닌데, 언쟁인데. 근데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거야."

"...."

"학교에서, 그것도 수업시간에 애들보는 앞에서 꼭 그렇게 해야했니?"

"...."

"그런식으로 막나가면 다른애들이 너희 누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죄송해요. 그땐... 저도 너무 흥분해서."

그땐 뭐랄까. 나도 꼭지가 돌았다고 해야되나. 머리가 아픈상태에서 서로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일이 벌어지니 필요이상으로 흥분했던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실망이야."

"네에..."

그소리를 들으니 힘이 쭉 빠진다. 내 얼굴을 물끄럼히 쳐다보던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반성하고 있어?"

"네."

"다시는 안그럴거지?"

"네."

그제서야 선생님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착하네 인하. 반성의 기미가 보여. 음. 역시. 너무 서운해 하는거 아니지?"

나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게 채찍질 하고난 뒤에 당근 하나 툭 하고 던져주니 언제 채찍을 맞았냐는듯 헤벌레 하고있다.

"아니에요."

"그리고, 누나 너무 힘들어 하더라. 옆에서 보던 내가 힘들정도로..."

저도 압니다. 저도 힘들어요.

고개를 돌려 누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한바탕 울었는지 마스카라가 번져있다. 괜히 가슴이 아프다.

그 때 갑자기 그 여자 알바생이 내게 다가왔다.

"저기, 사장님 오실시간 다되가는데."

"네? 아아.. 나갈게요. 선생님은 나가계세요. 업고 나갈테니. 그리고 계산은 제가할께요."

보나마나 누나가 앵겨붙어서 술이나 한잔 마시자고 했을테고 계산은 커녕 눈뜰정신도 없어보이니 내가 대신 계산해야지.

"내가 계산해도 되는데."

"누나가 사는거 제가 대신 사는거에요. 누나 업는것만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누나를 들쳐엎고 계산을 위해서 카운터에 다가갔다. 계산을 하기 위해서 내 주머니에 지갑을 꺼내려는데...

없다.

없어.

지갑이 없어.

어디갔지?

최근에 지갑을 쓴게.. 저녁 시켜먹을 때 내가 계산한건데... 아, 원룸에 나두고 왔네. 기억이 나.

급한대로 누나의 백을뒤져 지갑을 찾았다. 근데, 이 누나도 돈이없네? 지갑이 고가의 명품이면 뭐해. 돈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누나 용돈줄 타이밍이 지나긴 했어. 그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어떻게 보면 까먹고 있던 내탓이고.

결국 누나의 카드로 계산했다. 오늘 집에가서 돈좀 넣어줘야겠다. 그리고 백은별에게 지갑 간수좀 해달라고 카톡좀 남기고.

"같이갈까?"

"아뇨. 내일 출근도 해야할텐데 먼저 들어가보세요. 저희 누나때문에 술도 좀 드신것같은데."

"그래. 그럼 내일보자? 학교 나와야한다?"

"네. 나갈게요."

선생님은 누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순간 내게 다가와 까치발로 내 입술에 입술도장을 찍었다.

쪽.

"갈게."

웃으면서 뒤돌아서는 선생님. 피식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얼마안가 내게 닥친 시련에 좌절하고 만다.

가방에 아무것도 든개 없어서 다행이지. 가방까지 무거웠으면 오늘 집에 다갈뻔 했다.

택시비도 없어서 누나를 들쳐매고 집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교복입은 학생이 다 큰 성인처자를 엎고가는게 결코 흔한일이 아니지. 게다가 학교 근처라서 조마조마해서 미칠것만 같다. 혹시 누가 지나가면서 보는건 아닐지.

오분넘도록 걸으니 슬슬 힘이 부친다. 다큰 성인여성이 아무리 가벼운 축에 든다하더라도 50kg는 나갈텐데, 이걸엎고 걷고있으니.

여기서 잠깐 쉬자.

밴치가 눈에 들어오길래 누나를 앉히고 그 옆에 나도 앉았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담배가 생각나서 주섬주섬 꺼내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혔다.

후우.

길게 내뱉으니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다.

무슨 개고생이야. 요즘들어 되는일이 하나도없네.

담배를 반쯤 태웠을까. 현기증이 핑 하고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움에 담배피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갑자기 슥 하고 무언가가 내 손을 스쳐지나갔다.

뭐야?

시선을 돌리니 누나가 담배를 손에 쥐고있다. 약간 술이덜깬듯한 표정이지만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이게 뭐야."

"...."

"왜 피지도 않는 담배까지 손을대고 그래? 너 정말... 아니야. 그래, 내가 뭔 주제로 너한데 뭐라하겠어."

왠지 아침에 일 비꼬는것 같은데.

그러면서 비틀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근데 중요한건 거기 집방향 아닌데?

콰당.

"아야..."

"하이고..."

아프겠다. 아직 술 덜깻나봐. 정신차리긴 한거야?

비틀비틀. 다시한번 일어난다.

그러다가 몇발자국.

콰당.

2차침몰.

그 모습을 도저히 눈을뜨고 볼 수 없어서 누나에게 다가갔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니 어디 만화 주인공같다. 만화를 찍으세요 아주.

누나를 일으켜새우려 들자 누나가 내 손을 쳐대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거 놔! 혼자갈거야."

이번에는 발 한번 재대로 떼지도 못하고 휘청거렸다. 다행이 내가 붙잡고 있어서 망정이지 안그러면 삼차침몰을 목도할뻔 했다.

"혼자갈거야! 놔!"

"진짜 놓는다? 혼자 제대로 걷는건 고사하고 방향감각도 상실한 주제에... 진짜 놔?"

"...."

이제야 좀 고분고분해졌네. 몸을돌려 낮춘 채 누나에게 내 등을 내보였다.

"업혀."

"...."

"업히라고. 이때동안 업혀서 온 주제에 뭘 꺼려해?"

마지못해 업히는 척 내게 업히는 누나.허벅지를 움켜쥐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긴 침묵. 너무나도 어색한 침묵에 버티지 못한건 결국 이쪽이였다.

"...."

"무거워 죽겠다. 몇kg냐? 한 60나가나?"

"안나가거든? 50kg 대 초반이거든?"

"퍽이나 믿겠다."

"이씨..."

그러면서 내 목을 콱 하고 조르는데... 하머터면 누나를 놓칠뻔했다.

"나 죽이려고 작정했나?"

누나가 매 등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래. 죽이고싶어. 너무 미워서."

"...정말 미워? 죽이고싶을 만큼?"

"...."

대답이 없는 누나지만,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아까전에 누나대리러 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봤어. 왜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

"과연 우리가 계속 이런관계를 유지해도 될까. 한계는 보이는데, 결말이 뻔한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도 될까. 하고."

그제서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 숨을 몇번 더 쉴 수 있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대답할 수 있었다.

"우리... 그만할까?"

한번 입을 여니 내가 하고싶었던, 가슴 깊숙히 숨겨왔던 말을 뱉어낼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옛날처럼, 평범한 남매처럼... 돌아가는거 말야."

"....어."

"..."

"싫어. 싫어! 싫다고! 어떻게 그래? 넌 나한데 가진 감정이 그렇게 가벼웠어? 언제든지 쓰레기통에 버리듯,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거였어?"

"누나..."

"난 절대로 못해. 그래. 넌 버려. 버리라고. 난 안버릴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힘들어. 너를 사랑한다는게, 너무 힘들어. 그래도 난 행복해. 너와 시선을 맞추면서 사랑을 속삭이는게, 입을 맞추는게, 몸을 섞는게. 너무행복해. 근데 이걸 포기하라고? 못해. 절대로."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네.

"읏차! 그렇지?"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인적드문 밤길을 걸었다. 옆에선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며 소리를 냈지만 나에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나도그래. 계속 가보려고. 누나한덴 너무나도 지은죄가 많은데, 얼굴에 철판한번 깔아볼 생각이야."

"정말?"

누나가 되묻길래, 장난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 여자가 평생 속고만 살았나. 날 그렇게 못믿어?"

"그치만... 오늘 아침에 후회한다고...."

역시나 홧김에 한 말이 누나에게 큰 상처가 된 모양이다.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지.

"누가그래? 못된놈이네 아주. 데리고 와. 반 죽여줄테니까."

"....정말이야?"

"진짜 나 못믿네?"

"아냐. 믿어. 내 동생... 인하 안믿으면 누굴 믿어."

누나느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내 등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나름대로 소리죽여 울고있었지만 나에게 안들릴리가 없지.

"울지마."

갑자기 나도 코끝이 찡하네.

"흐끅...안..울어."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어."

"아냐.. 내가 더 미안해. 내가 억지를 부려서.. 질투해서... 미안해... 끅, 미안해.."

엉엉 목놓아 울기시작하는 누나.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누나도 나도 개쪽당할뻔 했네.

그렇게 시원하게 울고나니 누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아파트단지내로 들어가니 울음을 그친듯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인하야."

"응."

"나 안버릴거지? 옆에 계속 있어줄거지?"

누나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알겠다고, 옆에 있어주겠노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대답 안해줘? 응?"

"알았어. 안버릴거야. 그리고 옆에 계속 있을거고."

세상이 우리에게 허락할 때 까지.

뒷말은 끝내 뱉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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