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0)

이수연은 1교시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억지로 수업을 끝마치긴 했지만 잠을 못잔 나머지 컨디션이 최악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수연은 핸드폰을 꺼내 이인하에게 전화를 해볼까 고민했다. 어제 집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학교에 아직 오지도 않았다. 혹시 무슨일이 생긴게 아닐까 덜컥 겁이났다.

"백진수 쌤. 이인하 1교시 때 왔어요. 몸이 안좋아서 지각했다고 하던데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수연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많이 아프답니까?"

"속이 좀 안좋다고 하던데요. 수업시간에 엎드리길래 내버려두긴 했는데... 아파보이긴 하던데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장 4반에 쳐들어갈까 했지만 다음 수업시간이 4반인것을 감안해서 참기로 했다.

수업시간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 이수연은 수업종이 치자마자 급하게 4반으로 향했다. 4반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소란스러운 4반분위기가 한층 사그라들었다. 이수연의 시선이 자동으로 이인하의 자리에 닿았다. 거의 기절하다 싶이한 이인하는 고개를 쳐박고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있었다.

"실장, 인사하자."

수업이 시작되었고 이인하 쪽으로 시선이 돌아가는것을 억지로 참아내며 수업을 진행시켰다. 대충 수업이 끝나고 잠깐 여유가 남자 그제서야 발걸음을 이인하 쪽으로 돌렸다.

교사의 신분으로 그를 깨우고 안부묻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이인하를 깨웠다.

"이인하, 잠깐 일어나봐."

"선생님 인하 아픈데요."

옆에서 한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꼴도보기 싫었다. 교사니까. 제자니까. 되내기고 되내였지만 남자를 빼앗긴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인하가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키자 술냄새가 피어올랐다. 퍼져나가는 알콜향, 당연히 바로 옆에있는 이수연에게 닿았다.

"하!"

이수연은 어이가 없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대충이나마 윤곽이 그려졌다.

밤새 집에 들어오지도 않자 걱정된 나머지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며 기다렸는데 그 시간에 그는 과음에 그걸로 모자라 외박. 아침에 술병이 돋아서 지각에 학교와서도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확 하고 치밀어 올랐다.

"이인하 일어나."

싸늘하게 굳은 목소리. 성격 좋고 착하기로 소문난 이수연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교실안의 시선이 그녀쪽으로 주목됐다.

이인하의 시선이 이수연과 마주쳤다. 잔뜩 뿔이난 모습이였지만 이인하는 그걸 비웃기라도 한듯 다시 고개를 책상쪽으로 쳐박았다.

"일어나."

"...."

"일어나."

"...."

"일어나라고 했지."

"...."

그제서야 이인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수연과 시선을 마주했다.

"왜요."

"왜요?"

지극히 불량한 태도에 이수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당장 미안하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판에 이런 태도로 나올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술냄새. 뭐야?"

이인하는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엉망으로 헝크린 뒤 대답했다.

"문제있습니까?"

"뭐라고?"

"문제있냐고요. 네. 저 술먹었습니다. 밤새 진탕 쳐먹었어요. 문제됩니까?"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어떻게 학생이...."

이인하가 이수연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아니. 아니죠. 이수연씨."

"인하야."

옆자리에 있던 한서희가 놀란듯 이인하를 다그쳤지만 이인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인하 그도 그 나름대로 잔뜩 수틀려져 있었다.

분위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평소에 상냥하고 화낼줄 모르는 이수연 선생도 그렇고 예의만큼은 꼬박꼬박 지키는 이인하도 뭔가 꼬인듯한 느낌이였다.

이인하는 발걸음을 움직여 이수연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키가 10cm 이상 차이가 나다보니 이인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학생한데 술먹지마라. 선생으로써 할 수 있는 말이죠. 네. 맞아요. 근데... 그쪽이 저한데 그런말 할 자격은 있을까요?"

"....."

이수연은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둘 사이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이였기에 무슨뜻인지 알 방법은 없었으나 남들앞에서 그런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수치심에 금방이라도 엉엉 울음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이인하 나좀 따라와."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듯 말한 이수연은 인사조차 받지않고 책들을 챙겨 교실을 나갔고 이인하는 후우,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를 뒤따라갔다.

둘이 향한곳은 수학과 교실이였다. 보충수업 때 쓰이는 이 교실은 수학과 교사만이 열쇄를 가지고 있었다. 정규수업 시간때는 쓰이지 않고 건물 맨 구석에 위치하다보니 익저도 드물어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기에 가장 적합한 교실이였다.

드르륵. 수학과 교실문을 닫은 뒤 밖에서 이곳을 볼 수 없게 블라인드를 내렸다.

"너, 제정신이야?"

"뭐가?"

"그게... 나한데 할 소리니?"

"왜? 창피해?"

주르륵,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틀린말 했나? 아니잖아. 누나는 나한데 그런말 할 자격이 있어? 아닌거 누나도 알잖아."

이수연은 입술을 질긋 깨물었다. 주르륵 눈물이 계속해서 세어나왔지만 울음만큼은 삼키고 싶었다.

"누나가 나한데 도덕성을 지적한다고? 하하. 나참, 진짜 어이가 없어가지고."

근친상간

인간이 씻을 수 없는 죄. 이미 그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기엔, 너무나도 타락해 있었다.

"누나나 나나, 누구한데 이래라 저래라 하기에 너무 더럽혀지지 않았어?"

말을 이어갈수록 이인하의 두 눈에는 광기가 차올랐다. 그녀에게 꺼내는 말은 곧 자신에게 건내는 말과도 같았다.

"누나는 선생질 하면서 뭐 느끼는거 없어? 도덕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게 선생이란 직업이잖아. 그러면서 뭐 느끼는거 없냐고. 나는 말야 뉴스기사에 강간범, 살인범. 이런새끼들을 아무렇게 욕하고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나 그새끼들이나 다를게 뭔가 싶거든. 나도 그새끼들 만큼이나 쓰레기잖아. 틀려?"

"틀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이인하는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입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다댔다.

"그게 우리가 저지른 최악의 죄야."

심한 충격을 받은듯 그녀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를 쳐다보던 이인하는 몸을 돌려 수학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

"후회되?"

"...."

이인하의 몸이 흠칫 하고 떨렸다. 뭔가 말을 꺼내려는듯 이인하의 입이 움직였지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듯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대답할 수 있었다.

"....후회해."

드르륵. 문을 연 이인하는, 교실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진 이수연은, 그제서야 엉엉 소리내어 울 수 있었다.

교실로 돌아오니 관심이 온통 이인하 쪽으로 쏠렸다.

"인하야 너 왜그랬어?"

한서희가 물었지만 이인하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응? 말좀해봐."

"서희야."

"응?"

"정말 미안한데, 나 내버려둬. 부탁이야."

"...."

이인하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뒤에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 때 유진용이 급하게 뛰어나와 이인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 너 미쳤어? 막나가냐? 어려도 선생이야. 니가 뭔짓을 하든간에 내가 너한데 뭐라 할 자격없는거 알아. 근데 오늘만큼은 니가 잘못한거야."

"알아. 나도 잘못한거."

"근데? 아니, 가서 사과는 했냐?"

"아니. 더 막나갔지. 울더라."

"미친새끼."

"그래. 나 미친것같다."

"잘 아네. 가방싸들고 어디가는거 보면 끝까지 가자는거냐? 이길로 자퇴? 말죽거리 잔혹사 찍냐?"

피식 웃은 이인하는 유진용을 스쳐지나가며 대답했다.

"그것도 괜찮지."

지각때문에 불려가 잔소리를 진탕들은 백은별은 쉬는시간이 되서야 자신의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럴거면 아예오지 말걸. 자리에 앉자 옆에 어제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그녀는 머릿속에는 오직 한사람을 떠올렸다.

턱을괴고 창가자리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백은별의 시선이 어느 한 남학생에게 닿았다. 익숙한 실루엣. 그 남자 생각을 하니 그남자가 보이는구나. 그렇게 잠깐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진짜같아 보였다. 가방을 매고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조퇴를 받거나 한 모양이였다.

"나 간다."

교실이 1층에 있다보니 창문을 교실문 다니듯 자유롭게 드나들던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그녀의 친구드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 은별아! 너 지각해서 금방 닦이고 왔는데 학교까지 째면 너 진짜 죽어."

"몰라. 죽이라지 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그녀의 시선은 한 남자를 쫓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 정말 왜이렇게 일이 꼬여버렸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후회해?

아직도 그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회한다고는 말했지만은, 사실 아직 나에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 깜작이야."

화들짝 놀란 나는 몸을돌려 나를 놀래킨 그녀. 백은별을 쳐다봤다.

"애 떨어진다."

"남자한데 애가 어딨냐. 어디 가는건데?"

그러고보니 어디갈지 정해놓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집에 있다가는 누나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일단 배가 고프니 그것부터 해결하자.

"일단 아침부터 먹으려고."

"나도 안먹었는데 같이먹자 그럼."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고하니 알겠다 대답했다.

"뭐 먹고싶은데?"

백은별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면먹으러 갈래?"

"장난치지마라?"

여자애가 어디서 그런 천박한 말장난을. 네가 이영애야?

"장난아닌데? 그리고 계란에 파까지 썰어서 넣어줄게. 어때? 괜찮지?"

그리하여. 2시간도 안되서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야 백은별. 라면 어딨냐?"

내가 끓일 요량으로 가스레인지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않은 채 물었다.

"없는데? 그리고 라면 먹자는 얘기는 그냥 핑계지. 알면서 모르는척이야. 거기 찌라시 많지? 시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어디 작은 종이백에다가 찌라시를 한가득 쌓아두고 있었다. 광고책자를 하나 집어서 이리저리 넘겨봤다.

딱히 먹을게 없는데. 짱개는 싫고, 찜닭도 별로. 국물있는게 먹고싶어. 칼국수? 이왕이면 밥먹고싶은데.

내가 뒤적거리고 있는사이 백은별이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내게 걸어왔다.

"그냥 거기있는거 다 들고와."

그녀의 말대로 종이백을 통째로 그녀에게 들고갔다. 담배를 꺼내 하나 입에 물은 백은별은 찌라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스읍... 하아... 피자먹을래?"

".....술먹고 먹는게 피자?"

"치킨?"

"...."

"족발?"

"이왕이면 국물있는걸로 먹자."

내 말에 그녀는 흠, 하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한번 종이백을 뒤적거렸다.

"감자탕 먹을래?"

"괜찮네."

속달래기엔 감자탕이 딱이지.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하고있는 틈을 타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녀의 담배곽을 집어봤다.

그동안 이게 늘 어떤맛일까 궁금했다. 주위에 둘러보면 죄다 흡연자다 보니 몇번 권유도 받았지만 입에 대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담배라도 피워보면 착잡한 심정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주문을 끝낸 백은벼이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자신의 담배곽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담배없어? 내꺼줄까?"

내가 흡연자라고 착각하는 듯 그녀는 서슴치않고 내게 담배 하나를 꺼내 건냈다. 담배를 받아들인 나는 입에물고 불을 붙여봤다.

"뭐야? 왜 아무느낌 없어?"

분명 영화같은데서 보면 담배를 피면 콜록콜록 기침하는게 정상이아닌가? 내 모습을 쳐다보던 백은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담배 처음펴봐?"

"어."

"그러면 안주는건데. 뭐 일단 줬으니까... 담배를 빨아들인 후 숨을 들이킨다는 생각으로 마셔, 그다음 내뱉는거야."

백은별의 말을 따라서 담배연기를 먼저 빨아당긴 후 연기를 삼켰다. 그러자 가슴에 무언가 막히는 느낌과 함께 작은 고통이 폐부를 찔렀다.

"켁. 콜록콜록."

아, 이거구나. 그나저나 엄청 아프다. 이걸 어떻게 피워?

"이걸... 어떻게 피냐?"

"그거 몇번 피다보면 하나도 안아파."

다시한번 담배를 빨아당겼다. 대충 어떤것인지 감을 잡아서 그런지 아까와 같이 기침을 하는 꼴은 보이지 않았다.

"필만해?"

확실히 왜 피는지 알것같다. 묘한맛이 있네. 그 때 백은별이 자신이 피던 담배를 내게 휙 하고 던져주었다. 얼떨결에 담배를 받은 나는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거 오빠가져."

얼떨결에 전용 담배까지 생겨버렸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뭐 할일이 없어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카톡이 한가득 쌓여있었지만 확인조차 안했다. 대충 무슨내용인지 견적이 나온다.

백은별은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봤다.

"오빠. 학교엎고왔어?"

"어? 그.... 엎은건 아니고..."

내 말에 그녀는 피식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수연이랑 한바탕 했다면서?

이수연? 네 친구니? 따지고싶었지만 여기서 그런거 따져봐야 좋을것 하나 없었다. 없을때는 나랏님도 욕하는 세상인데.

"한바탕은 무슨...."

"오빠 좀 쌔다? 찌질할줄 알았는데."

"참나."

대꾸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그나저나 소문이 이렇게 퍼지다니. 내 교내 평판이 엉망이 되겠구나. 한숨이 나온다.

"남자애들 이수연 선생한데 뻑간다던데 오빠는 안그런가봐?"

"남자라면 다 뻑가란법 있냐. 이런사람도 있으면 저런사람도 있는거지."

확실히 남자애들은 우리누나한데 사족을 못쓴다. 적어도 우리 교실 내에서는 누나를 상대로 불만한번 터져나온적이 없었다.

"무슨 학교 입학하니까 여교사들 비쥬얼이 비정상적이야. 이수연도 그렇고 남수림도 그렇고. 미친거아냐? 그거 완전 여자애들한데 민폐야 완전."

"하긴."

그녀와 실없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선 어떤 남자선생이 인기가 많니 등등, 정말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였다.

"근데말야. 이수연이랑 왜 싸운거야?"

그녀의 말에 잠깐 고민한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왜싸웠을까."

내 대답에 백은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야."

"서로 싸우고싶은 마음은 없었을텐데 말이야. 나도 그렇고. 그쪽도 그렇고."

"진지하기는."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데 때 마침 배달음식이 도착했다. 나와 백은별은 식사준비를 끝마친 뒤 식사를 시작했다.

국물을 떠먹으니 속이 풀리는 느낌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제서야 엉망이였던 속이 어느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맛있네."

"그러게. 자주 시켜먹어야겠다. 오빠가 내 밥친구 해줘라. 그러면 섹스파트너 겸 식사파트너?"

"푸훗!"

순간 입에 머금었던걸 뱉어버렸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사례가 들려버렸다.

"켁켁켁. 콜록콜록!"

내 모습이 딱하다는듯 쳐다보던 백은별이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내게 건냈다. 이왕이면 물이 좋겠지만은 지금 그런걸 가릴 처지가 아니니.

"후우...."

"뭘 그런걸로 당황하고 그래?"

"당황안하게 됐냐?"

"당황할건 뭐있나. 없는소리 만들어낸것도 아닌데. 설마 식사파트너 때문에 당황한건 아닐테고."

그렇긴한데..

사실 섹스파트너라는게 실재하는지 몰랐다. 오늘에서야 처음알았지. 그런거 다 미드에서 만들어낸건줄 알았는데.

"근데 말야. 너 나 말고 그거 있어?"

"뭐? 섹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없어. 오빠가 처음인데."

하하. 오늘 참 여러번 놀라네. 내가 백은별 섹스파트너 1호구나.

근데 갑자기 식은땀이 등 뒤로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저기 있잖아."

"응."

"그... 밤에... 그... 했잖아. 나랑."

"뭐 섹스? 아니지. 한게 아니지. 내가 당한거지. 강간이잖아? 서로간의 합의가 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참 내 가슴에 사시미로 난도질을 하는구나. 그래 강간이라고 하자.

"그래. 강간. 내가 궁금한건... 그... 내가.. 그 처음..은 아니지?"

"처음인데?"

"무,무,뭐?"

세상에. 진짜 내가 우려했던 사실이 진실로 들어날줄이야. 아니, 침대에 피같은거 없었는데? 오늘 처음했으면서 섹스파트너니 뭐니 한건가? 아니, 진짜 처음이 맞긴 한건가?

"지,진짜 처음이야?"

"어. 오늘이 첫경험인데."

"....."

얼빠진 표정으로 백은별을 쳐다봤다. 백은별은 내 시선을 빤히 마주하더니 푸훗 하고 웃기 시작했다.

"강간은 오늘 처음이야. 아하하..."

아... 섹스는 직잔에 해봤고 강간을 처음 경험해보셨다? 이걸 확 죽여?

그나저나 강간 당했다면서 그걸 웃으면서 입에 담는 이 여자애를 보니 정말 내가 강간한게 맞나 의심이 든다. 하는 행동을 보니 확실히 멘탈 하나는 튼튼해 보인다만.

해프닝 속에서 식사를 끝내고 포만감을 느끼며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백은별은 식후땡이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갑자기 호기심이 동해 담배를 따라피웠다.

아, 식후연초가 이런느낌이구나. 왜 흡연자들이 식후땡을 칼같이 지키는지 알것만 같다.

담배를 모두 피운뒤 백은별은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을 물고 나왔다. 그러고보니 나도 양치질을한지 좀 오래된것 같은데...

"저기, 칫솔 하나 더 없어?"

"잠깐만."

백은별은 욕실을 뒤적거리더니 내게 칫솔하나를 건내주었다. 그것을 건내받은 나도 양치질을 시작했다.

욕실에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는꼴이 거울에 비춰진다. 이거 참 그림이 묘한데?

입안에 있던 치약을 뱉어낸 백은별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꼭 부부같지 않나?"

"푸아악! 켁켁켁!"

대체 오늘 사례를 몇번 들리는거지? 게다가 치약이 제법 매워서 눈물이 다 날것같다. 켁켁 거리던 나는 물로 가글을 한 뒤 거울 넘어로 백은별을 쏘아봤다. 백은별은 내가 쏘아보거나 말거나 어깨를 으쓱한 뒤 계속해서 양치질을 이어갔다.

다시 양치하기도 그렇고 욕실을 나와 침대위에 몸을 던졌다.

이렇게 남의침대에 올라가는게 실례가 될수도 있지만 백은별이 날 대하는 자세가 완전 십년된 친구와도 같아서 나도 편하게 그녀를 대하기로 했다. 애초에 이런걸로 신경안쓸 위인같기도 했으니.

침대위에는 백은별의 냄새가 물씬 베어나왔다. 그 향기가, 나를 나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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