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

지이잉!

일요일 오후.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고있는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뒤 전화를 받은 나는 고개를 틀어 전화기를 고정했다.

"여보세요?""

-오늘 시간비지?

"어. 시간비는데 왜?"

-왜긴, 오늘 1학년 애들 만나기로 했잖아.

"뭐? 내가 언제 그랬...나?"

"내가 일요일날에 1학년 애들이랑 놀았거든? 거기서 1학년 여자애를 봤는데 장난아니더라. 얼굴도 얼굴인데 몸매도 장난아냐."

"그래?"

"이번주에 한번 보기로 했는데 어때?"

"뭘?"

"같이 놀자고. 주말에. 너 요새 못놀았잖아?"

"글쎄."

"글쎄는 무슨. 가는거다. 오케이?"

"그래 그래."

"...그랬네."

생각났다. 그냥 지나가면서 하는말인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도 아무런 소리 없어서 기억속에 지워두고 있었다.

"오늘 7시에 약속잡아놨다. 내가 6시 반쯤에 연락할테니까 그전까지 준비다해놓고."

"무슨.... 일요일날 만나. 내일 학교가야되는데. 토요일 냅두고 뭐하냐?"

보나마나 만나면 술이 들어갈테고 그 상태로 자고일어나 학교에 기어가야하는데 이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른다. 직장인이 회식후에 다음날 바로 회사나가는 기분이 이런거겠지.

"토요일엔 애들 시간이 좀 안맞아서."

"꼭 가야되냐?"

"안오면 연끊자. 너 온다고해서 다 말해놨는데 안오면 내가 뭐되냐? 꼭가야되. 응? 술 조금만 마시면 되잖아."

술이라. 사실 요새 이런일 저런일 때문에 술이 고프긴 했어?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좋게 생각하자고.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알았어. 보채지마."

"여섯시반. 알았지?"

"알았어 임마. 끊어."

통화가 끝나고 게임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컵에 따라마시는데 누나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외출을 하는듯 어디 외출하는지 빼입은 누나는 나에게 시선한번 주지않고 현관에 가서 신발을 신기 신기 시작했다.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듯 귀에는 핸드폰을 대고 있었다.

"네. 아... 네. 아하하... 전 괜찮아요. 네. 저야좋죠. 네. 그럼 거기서 뵈요. 네."

전화를 막 끊으면서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나의 눈은 마치

'너도 한번 느껴봐라. 네가 다른여자를 만날 때 마다 내가 어떤감정이 드는지.'

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통화를 끝낸 누나는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어디로가냐, 방금 통화한건 누구냐. 묻고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던 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고 방으로 들어왔다.

남자라도 만나는 듯, 그렇게 입고. 통화를 하고. 나에게 질투심을 느끼라는건지 모르겠지만...

"그게 작전이면 정곡이네 아주."

정확히 6시 30분에 진용에게 전화가 왔다. 약속장소를 정한 뒤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진용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가자. 여기서 오분이면 되."

진용과 함께 원룸촌 안으로 들어갔다. 원룸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서 어느 한 원룸앞에 도착한 뒤에 진용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여기 비밀번호가 뭐라고? 삼..팔..이..사... 어. 됐다. 열렸다.. 302호. 오케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원룸문이 열렸고 계단을 올라 302호를 찾았다. 302호 안에서는 벌써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용은 툭툭 하고 문을 두들기자 문이 열렸다.

"들어가자."

진용의 뒤를 따라 원룸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원룸안에는 네명의 남녀가 섞여있었다. 2명의 여자와 2명의 남자. 이미 술판을 벌인듯 빈 소주병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벌써 깠냐? 치사하게. 아. 맞다. 너희들 얘 처음보지?"

"아뇨. 학교에서 몇번 봤어요. 학교 유명인이잖아요."

"그, 한서희... 아니, 한서희선배 남친이잖아요."

억지로 붙이지도 않는 선배, 내가 있다고 붙혀주는구나. 고맙다.

"여기는 헤진이, 민영이, 재우, 남진이. 그냥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정도는 하라고."

진용은 한명한명 내게 소개를 시켜줬고 나는 인사를 건냈다. 그렇게 통성명이 끝난 진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어째 한명이 빈다?"

혜진이가 대답했다.

아, 담배사러 갔어요."

말끝나기가 무섭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어락이 열리고 모습을 나타낸 여성. 근데, 어째 좀 낯이익다.

"어?"

"...."

"왔다! 내꺼줘. 내꺼!"

그녀가 도착하자 집안이 소란해졌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이 황당함에 그녀와 시선을 마주할 뿐이였다.

"백..은별."

아직도 뇌리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그녀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세어나왔다.

"뭐야. 서로 아는사이야?"

진용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나는 그 이상으로 뜻밖이야.

"...그쪽 이름이 이인하였어요?"

그녀, 백은별은 담배가 한가득 담겨있는 비닐봉투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아...네."

그녀와는 존대로 대화를 해왔었고 그러다 보니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쓸어올리더니 비닐봉투에서 담배를 꺼내 툭툭 마사지를 치더니 능숙하게 비닐을 뜯고 담배를 입에 문 뒤 불을 붙혔다.

고요해진 방안.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현재상황이 조화되어 방안엔 침묵으로 무거워졌다.

"아, 뭐야. 이 분위기. 그나저나 은별아. 너 이 선배 어떻게 알아?"

백은별 옆에있던 혜진이 물음을 던지자 백은별은 연기를 뱉어낸 뒤 말했다.

"전에 나한데 찍쩝거렸어."

내가언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찍쩝거린게 맞았다. 근데 그걸 꼭 찍쩝거린다고 표현을 해야되나?

혜진이 토라진척 말했다.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선배 실망이에요!"

"아니.. 그땐 서희랑 사귀기도 전이고... 그리고 그..."

뭐라 할말은 있었는데 막상 말이 잘 안나온다.

"변명까지한다. 에이~"

"그냥 인정하시죠."

사내놈들까지 거들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흐를것만 같다.

"푸하하. 선배 완전 당황했어."

가만히 보고있던 민영이가 내 모습을 가리키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를 놀려먹는게 재밌는지 순식간에 장내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백은별, 그녀도 시원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이거... 왠지 번지수 잘못찾은 느낌이다.

"음..."

밀려오는 속쓰림과 숙취에 절로 신음소리가 세어나온다. 겨우겨우 억지로 몸을 반쯤 일으키니 옆에 백은별이 실올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내 옆에 누워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동시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불안에 들여다보니 팬티 한장 걸치지 않고있다. 게다가 내 물건은 정사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씨발..."

바닥위에 흩어져 있는 옷을 회수한 뒤 화장실로 달려갔다. 물로 대충 정사의 흔적을 지운 뒤 옷을 껴입었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나니 얼굴이 깨질것처럼 아파왔지만 나근했던 몸이 어느정도 해소되는 느낌이다.

화장실을 나와 침대로 다가갔다. 길게 뻗은 그녀의 맨다리가 내 시성늘 자극한다. 그 다리를 쫓아올라가니 매끈한 허벅지와 엉덩다리가 들어난다.

억지로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고정시킨 뒤 그녀를 흔들어 보았다.

"잠깐만 일어나보세요."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조금 격하게 흔드니 그제서야 잠이 깬듯 그녀에게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으응..."

작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뜬 그녀는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이불이 스르륵 하고 흘러내렸고 그녀의 젖가슴이 들어났다.

깜작놀란 나는 시선을 돌린 뒤 말했다.

"가,가슴!"

내 말에 그녀가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제 실컷 만지고 빨았으면서 내숭은."

"내,내,내가 언제요?"

"하?"

어처구니 없다는듯 코웃음을 치는 그녀.

"기억안나?"

기가 차다는듯 묻는 그녀였지만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드문드문 기억이 나긴 했지만 정작 그녀와의 일에 대해서는 기억나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네."

"진짜 기억 안나는 모양이네. 말트기로 했으면서 존댓말 하는걸로 봐서."

말트기로 했나봐? 기억에도 없는데.

사르륵! 하는 소리가 잠시 들려오더니 뒤이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었어."

그제서야 고개를 바로 돌리니 브래지어를 착용한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헉! 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입에서 튀어나옴과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내숭은... 그나저나 하나도 기억안난다 이거지?"

착착! 그녀가 담배를 태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스읍...하아... 정말 아무것도 기억안나?"

"네."

"나 자고있는데 갑자기 덤벼든것도?"

그녀의 말에 내 고개가 자동으로 그녀에게 돌아갔다.

"제가요? 그럴리가..."

그녀가 피식 하고 웃으며 담배를 한입 길게 빨아당겼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그렇게 말하니 막상 할말이 없다. 기억이 없는건 이쪽이니까.

"말 터. 말트기로 했잖아? 오빠동생 하기로."

"어..응."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장에서 새 속옷을 꺼내들었다. 내가 있는데 화장실에서 갈아입겠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주섬주섬 팬티를 벗어내렸다. 그녀의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게 무슨... 난 사람도 아니야? 사람취급도 안해주는거야? 없는취급 하는거야 뭐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참나, 뭐하는거야?"

그제서야 두 눈을 뜨니 편한차림의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고개를 불쑥 내밀며 나와 얼굴을 마주하더니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사람이 어떻게 자고있는 날 강간하려했을까?"

"가.가,강간?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 하는데 그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녀는 재떨이에다가 담배를 눌러끄며 말했다.

"그럼, 허락도 안했는데 달려들면 강간이지 뭐가 강간이야"

그 순간 등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게 티비에서만 보던 꽃뱀이 사용하는 수단인가? 강간범으로 몰아서 돈 뜯어먹는? 백은별이 꽃뱀이였나? 설마? 그럴리가.

"겁먹은것좀 봐. 내가 신고라도 하겠대?"

백은별은 어처구니 없다는듯 말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 뒤 나에게 물통을 건냈다. 물통을 받아들인 뒤 그것을 들이키니 불편한 속이 좀 나아지는것 같다.

"저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운을 띄우자 그녀는 어디 말을 해보라는 듯 내게 시선을 주었다.

"미안해."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은 뒤 입을 열었다.

"뭐가 미안한데?"

"그... 덮친거."

"아, 강간한거?"

강간이 맞긴한데 이왕이면 덮친걸로 해주세요.

라고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녀가 잠칫하면 장난으로 받아들일까봐 할 수 없었다.

"강간한게 미안하다... 뭐, 좋아. 사과는 받아들일게. 나도 나쁘진만은 않았으니까."

다행이다.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사과는 사과고... 책임은 져야지?"

"채,책임?"

내가 되묻자 그녀의 눈이 사납게 일렁거렸다. 마치 날 찢어죽일듯한, 그런 눈빛이였다.

"그러면? 그냥 넘어가려고?"

"그건 아닌데... 어떻게 책임을..."

금전적으로 보상하라면 보상할 생각이다. 다른 보상보다 이게 더 나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만나."

"....?"

혹시 잘못들었나?

"뭐라고?"

내 말에 그녀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으며 말했다.

"나랑 만나자고. 책임이 뭐 별거야? 보통 이런걸 책임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긴한데..."

"그러니까. 나랑 만나자고."

"...."

아니 댁이 언제부터 순정파였다고 그러십니까.

정말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이였지만 백은별 그녀를 자극했다가는 정말로 뼈도 못추릴것 같아 억지로 삼켰다.

"왜? 의외라는 표정이네? 내가 무슨 돈이라도 요구할줄 알았나봐?"

그녀는 우습다는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싸구려같아보여? 무슨 길가는 사람 잡고 섹스하는, 그런 여자로 보여?"

고개를 흔들었다. 결단코 그런 생각을 품어본적이 없었다.

"뭐, 돈. 괜찮지. 돈으로 받는것도. 근데 몇푼받고 없는셈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워서."

"하지만 나한데는..."

"알아. 여자친구 있는거."

내가 무슨말을 하려는지 알고있다는 듯 내 말을 끊은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헤어지란 소리도 안해. 만나는 형태야 다양하니까. 꼭 사귀어야지 만나는건가?"

"그럼?"

그녀가 침대위에 올라탄 뒤 침대끝에 걸터앉아있는 나를향해 고양이 처럼 네발로 기어오더니 내 귀에다가 입을 가까이 한 듯 속삭이듯 말했다.

"가볍게 섹스파트너로 시작하자고. 한서희 그여자한데는 비밀로 해줄게."

이게 무슨 헛소린가 해서 둔 눈을 크게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마냥 웃긴듯 그녀가 큰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렇게 웃을줄은 생각치도 못했는데 정말 어린아이같이 크게 소리내며 웃었다.

"하하!아하하하! 아.. 정말... 남자 주제에 귀엽다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귀엽게 봐주셔서. 근데 전 지금 되게 당황스럽거든요.

"장난이지?"

제발 장난이라고 말해줘. 그녀에게 빌고 빌었지만 그녀는 내 믿음을 멋지게 배반해버렸다.

"아니. 진짠데? 말했잖아?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세상에, 이렇게 다른 여자한데 코가 꿰이는건가. 내 기억에 전혀 없는 일 때문에?

내 심정을 알리가 없는 그녀는 내 귀에 바짝 입을데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꺼 크더라. 그리고 잘해. 섹스말야."

"그게 여자가 할..."

내가 뭐라 말을 꺼내려 하는데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으며 내 말을 끊었다.

"아, 그리고 나 한가지 물어봐도 되?"

힘이 잔뜩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뭔데."

"그... 누나란 여자가 누구야? 나랑할 때 누나찾던데."

"무,뭣?"

깜작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누나 찾았다고. 나랑 하면서."

다행히 그녀는 아는누나 쯤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고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인은 아니고... 첫사랑?"

"그런건 아닌데..."

굳이 따지자면 첫사랑 보다는 애인쪽이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은.

"그러면 뭐야, 그 누나랑 해봤어?"

"어? 어...."

나도 왜 누나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로 위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사람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비밀을 들킬뻔 했으니. 근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자,잠깐."

뭔가 빠진것만 같더니, 학교! 그제서야 오늘이 월요일이고 학교를 가야한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기 시작했다. 급하게 고개를 돌려 시계를 찾았다.

8시 5분. 수업시작시간이 8시 30분인것을 감안하면 지각이 확정이다. 급한마음에 허겁지겁 패딩을 입자 그녀가 침대위에 몸을 묻은 채 물었다.

"뭐해? 집에 가게?"

현관에서 신발을 구겨신으며 대답했다.

"학교가야지. 집에갔다가 교복하고 가방 챙긴뒤에 학교갈거야."

"미친. 찌질이도 아니고 학교는 무슨... 오늘 하루 가지마."

내 신조가 놀면서 학교빠지지는 말자다. 그럴수야 없지.

"안돼. 학교갈거야. 나 간다."

"야!"

뒤에서 그녀의 서슬퍼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못들은 척 원룸을 빠져나왔다.

교실문을 조용히 여니 시선이 네게 화살꽂히든 파바박 쇄도한다. 당연히 선생님의 질문도 함께 날아들었다.

"이인하, 왜 늦었어?"

"몸이 좀 안좋아서..."

"아파? 어디가?"

아직도 술기운이 안빠져서 그런지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좋은게 금방이라도 올라올것만 같다. 그게 표정에 역력하게 묻어나는지 선생님도 믿는 눈치다.

"체한것 같아서요. 속이 좀..."

"알았다. 자리에 앉아."

네, 대답을 한 뒤에 자리에 앉으니 서희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술마셨지? 그래서 속아픈거지?"

"냄새나?"

샤워라도 하고올걸 그랬다. 학교 오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생각을 못했네.

"응. 조금. 얼마나 마셨으면 아직까지 냄새가 나?"

"미안. 앞으로 조금만 마실게."

서희가 빤히 내 두눈을 쳐다보는데 간밤에 백은별괴의 일 때문인지 눈을 마주치기가 영 껄끄러웠다. 이제와서 더이상 죄책감을 느낄게 있겠냐만은.

"여자랑 마셨어?"

서희가 이런질문을 할줄이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자 여자 섞여서 마셨지."

"흠... 아무일 없었지?"

"당연하지. 무슨 일 있을까봐?"

내 말에 서희는 한참동안이나 내 눈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슬쩍 돌렸다.

"설마 나 말고 다른여자한데 한눈팔겠어?"

"그럴리가..."

애써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죄책감이 점점 무거워져갔다.

나랑 같이 부어라 마셔라했던 진용의 상태도 나와 사정이 비슷한지 고개를 쳐박고 자고있다.

책상밑에서 책을꺼내 펴놓고 수업을 들이려고 했지만 글자한자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리만 아픈게 잠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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