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결국 그 이후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까지 뒤숭숭한 마음에 뒤척이다가 해가 떳고 누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집을 나왔다.
누나가 내가 챙겨준 밥을 먹었는지 확인도 안하고 집을 나왔다. 부족한 수면을 학교에서라도 채울 생각에 일찍 집을 나왔다.
교실에 도착하니 나혼자다. 내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때는 1교시가 끝난 후였다. 꽤 오랜시간을 잔것같은데도 피로감에 몸이 묵직했다.
"잘잤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아.. 서희야."
"아침일찍 와서 정신없이 자던데."
"...그럴일이 좀 있어서."
"어제...잘 들어갔어?"
서희와는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다는 사실이 이제서야 떠올랐다. 나도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응. 잘 들어갔어. 너는?"
"나도 잘 들어갔어. 들어가긴 잘 들어갔는데 집에 들어가니까 엄마가 잔소리를 아주 그냥..."
"아 참... 나 매점에좀 다녀올게. 아침을 굶어서."
수면욕이 어느정도 해결됐지만 이젠 식욕이 나를 괴롭혔다. 매점에다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가."
"그래."
서희와 어깨를 마주하고 매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계속 날 신경쓰이게 했다.
그게 뭘까 잠깐 고민했는데 쉽게 답이 나오더라.
"서희야."
"응."
"손잡아도 돼?"
내 말에 서희는 당황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의 허락이 떨어지자 서희와 소을 맞잡았다. 이제서야 뭔가 허전한 느낌이 가시는 느낌이다.
매점에 도착해 가는데 매점에서 나오고 있던 친구녀석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어? 너희둘 혹시 사귀냐?"
"응."
"어."
동시에 대답이 나오자 그 녀석은 잠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씨,씨발 이건 특종이야."
라면서 후다닥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지었다.
매점에 가서 서희가 마실 딸기맛 우유와 내가 마실 바나나맛 우유와 빵을 사든 채 교실로 되돌아왔다.
교실로 되돌아 오는데 정말 만나기 싫은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교사휴게실에서 막 나오고 있던 누나와 마주했다.
누나의 얼어붙은 시선이 내 얼굴에서 서희얼굴로. 그리고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
"...."
서희는 누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냈지만 누나는 받은척도 하지않고 우리를 지나쳤다.
"왜그러셔?"
"몰라."
얼굴도 보기 싫어.
서희와 함께 교실문 앞까지 도착했다. 문을열고 들어갔다.
드르르륵!
교실문이 열리고 순간 이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무,무슨일이라도 일어난건가? 매점에 다녀오는 사이에?
수업시간도 아닌데 왜 전원 자리에 앉아있는거고 왜이리 조용한거야?
서희도 심각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아무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나도 뒤따라 내 자리에 앉았다.
"태진아 뭔일이냐?"
옆분단의 태진이에게 소곤소곤 물음을 던졌다.
"야 좆됐어 시발..."
"뭐가?"
"놀라지말고 잘들어."
잔뜩 긴장하며 나올말을 기다렸다.
"글쎄 이인하랑 한서희랑 얼레리 꼴레리레."
뭐?
뭐시여?
"푸하하핫!"
그 순간 교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분위기 파악을 한 나와 서희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 잘 어울린다."
"학기시작 전부터 심상치 않더니 으휴~"
"둘이 했냐? 했어?"
마지막에 튀어나온 말에 발끈한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야 저런 음란한 농담은 웃으면서 받아넘기면 되는데 옆에있는 서희는 아니잖아.
"뭘 해? 안했어! 안했다고!"
내 말에 여자애들이 꺅꺅 거리면서 난리도 아니다. 그러면서 누가 그런 음담폐설을 했나 찾아보니..
유진용 저놈이다.
"뭐? 너희 손도 안잡아봤냐? 아까 손잡고 교내를 활보했다는 정보가 입수됐는데?"
이것들이 지금 날 놀리는거지? 이게 언어폭력이 아니면 뭐가 언어폭력일까.
능청스럽게 말하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고 싶은것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근데 니들 뽀뽀는 해봤냐?"
"무,뭐?"
갑자기 무슨 뽀뽀야 뽀뽀는.
분명 저놈이 말하는 뽀뽀는 그 뽀뽀가 아닌, 남녀간의 애정을 진하게 표시하는 행위를 말함이다.
"뽀뽀 해봤냐고?"
"어제부터 만났는데 무슨 뽀뽀야 뽀뽀는."
"그럼 지금하면 되겠네. 키스해! 키스해!"
왜 뽀뽀에서 키스로 바뀌는건데? 그 이유좀 나에게 설명해줄 사람?
내가 이정도인데 서희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옆을 슬쩍보니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게 많이 창피한 모양이다.
"키스해! 키스해!"
하나로 단합되어 외치는 우리학급 2학년 4반. 학급체육대회에서 이정도 단결력을 보이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다.
우리반 소란이 너무 컸는지 이제 다른반에서 원정구경까지 왔다. 진짜 난감해서 뭘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뒤이어 선생님들 까지 구경왔다. 저기 보이는건 박연정 선생님과 남수림 선생님이다.
나와 남수림 선생님의 눈이 마주쳤다. 남수림 선생님은 무표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더니 박연정 선생님 귀에다가 뭐라 말을했고 금방 자리를 떳다. 뭐라 말한걸까?
그 때 하늘이 도운건지 종이 울렸다. 사태를 수습하러온 선생님들에 의해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됐다.
나이스 타이밍!
교실은 열기로 아직도 후끈후끈 달아올라 있었지만 꽤나 조이기로 유명한 영어선생님의 등장으로 대충 일단락이 났다.
와서 빵이나 빨리 해치울 생각이였는데.. 수업시간 때 몰래 까먹던가 해야겠구만.
앗 침.
츠읍! 침을 빨아당긴 다음 입 주변을 닦아냈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구나. 수업 중간부터 기억이 없어.
"일어났네? 오늘 엄청 피곤한가봐?"
"그러게.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 근데 지금 무슨시간이야? 왜 아무도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에 우리 둘밖에 없다.
"지금 점심시간이잖아."
"아.. 맞다. 그렇지."
내 기억은 4교시 시작하고 십분뒤였으니... 지금이 점심시간인게 당연하지.
그나저나 이 새끼들은 날 안깨우고 지들끼리 밥쳐먹으러 가? 밥이 넘어가냐? 넘어가?
"아 맞다. 네 친구들 내가 먼저 보냈어. 깨우지말라고."
"아.. 그런거야?"
"응. 밥먹으러 가자."
하..하하... 이렇게 되는건가?
서희와 교실을 나와 급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학우 여학우 가릴것 없이 눈에서 레이저가 쏟아져 나올것만 같다.
부담스럽다. 매우매우.
"부답스럽네."
서희도 그렇게 생각한듯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소문 이렇게 빠르게 퍼질지는 몰랐는데."
커플공개된게 1교시. 2교시 때 부터 본격적으로 소문이 퍼져 타학년 까지 닿더니 3교시때는 모르느 사람이 없을정도로 소문이 나 버렸다.
그 때 삼학년 두명이 우리와 스쳐지나가면서 말을 주고받는다.
"야 쟤둘이 사귄다면서?"
"여자가 아깝지."
"쟤도 잘생겼는데 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급식실로 입성하자 주위시선들이 더욱 더 강렬해진다. 당연하듯 일학년들을 재치려고 하는데 서희는 줄을서고 있다.
그 모습이 답답한 나는 서희에게 말했다.
"먼저 가자."
"새치기하게?"
"학교전통이야."
서희가 우물쭈물 하고있길래 서희손을 잡고 일학년들을 재쳤다. 근데 그게 또 이상하게 비춰진 모양이다.
"쟤들 영화찍냐?"
"냅둬라 씨발... 서러워서 살겠나."
이럴거면 그냥 줄을서는건데.
문제는 급식을 받고도 문제였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주위의 시선이 화살마냥 파바바박 꽂힌다.
"와 이제 대놓고 연애질이야."
"뭘. 아까는 손잡고 학교 활보했다는데."
"와 개새끼..."
개새끼는 나보고 말하는거지? 그런거지?
분명히 수근수근 지들딴에는 조용히 말하는것일지언데 내 귀에는 왜이렇게 잘 들리나 모르겠다.
제발 나에게 관심좀 꺼줘.
"속 많이 안좋아?"
"죽을것같아."
기어히 채하고 말았다. 눈칫밥 먹더니 점심먹은 이후로 속이 영 엉망이다.
"안되겠다. 보건실 다녀와."
"괜찮아."
"내가 안괜찮거든?"
서희와 속닥속닥 밀담을 주고받는데 그게 하필 선생님한데 걸린 모양이다.
"너희들 수업시간에도 연애질 꼭 해야겠니?"
30대 초반 노처녀 히스테리 폭발전인 생물선생님의 히스테리가 여기까지 닿았다.
"쟤들 급식실에서 영화찍고 난리에요."
금방 깐족거린거 누구냐? 진용이 너냐?
"선생님. 인하 지금 채한것 같은데 보건실좀 보내야할것 같아요."
서희의 말에 생물선생님인 나를 쳐다본다.
"아파보이긴 하네."
아파보이는게 아니라 아픈건데요.
"보건실 다녀와."
"저도 같이..."
서희가 같이 따라나서려고 하는데 질투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생물선생님이 말을 끊었다.
"채한거 죽을병 아니야. 혼자 갔다오면 되지."
"네에..."
"갔다올게."
가서 소화제나 하나 얻어먹어야겠다. 아니면 가서 몸져누울까?
더부룩한 속을 참고 참으며 보건실에 도착했다. 보건실에 들어가려는데 왠 신발이 이렇게 많지?
의아함을 품고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선생님들 보건실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계셨다.
보건선생님인 박유진 선생님. 한정민 선생님. 3학년 수학담당이신 정소은 선생님 그리고 남수림 선생님까지.
이 뭐 수업없는 여선생님들 다 모인모양이다.
누나한데 듣기로는 학교 젊은 여선생님들 단체카톡방도 있다고 하던데.
"아,안녕하세요."
"그래. 어디 아프니?"
"네. 속이 좀 안좋아서 소화제나 좀 얻어먹을까 싶어서요."
"속이 안좋아?"
남수림 선생님이다.
남수림 선생님은 서희일로 내게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히 그런 눈치도 아닌것같다.
다행이네.
"네. 점심먹었다는데 채했나봐요."
"잠시만..."
박유진 선생님은 수다를 멈추고 약통을 뒤적뒤적 거리시더니 소화제 하나를 꺼내 건내주셨다.
"물은 냉장고에 있으니 꺼내마시고."
"네."
냉장고 옆에 배치된 종이컵을 꺼내 물을 따라서 소화제를 삼켰다.
"2학년 4반 이인하. 맞지?"
보건기록을 작성하던 박유진 선생님이 확인차 내게 물음을 던졌다.
"네."
"아.... 쟤가 걔야?"
쫑긋! 하고 귀가 반응한다.
목소리는 아무래도 3학년 수학담당이신 정소은 선생님인것 같다. 정소은 선생님이랑은 말한번 섞어본적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적도 없는지라 날 모르는게 당연했다.
네. 아마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쟤가 저고 걔는 한서희 남자친구 일겁니다.
"됐어. 이만 가봐도 돼."
"네. 안녕히계세요."
아무래도 여선생님들이 득시글 거리는 곳인데 부담스럽고 해서 재빨리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보건실을 나와 교실로 향하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남수림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하야."
"아. 선생님."
나에게 다가온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속 많이 안좋아?"
"아.. 괜찮아요."
차마 속 뒤집어 질것 같아요. 라고 말은 못할것같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잠깐 할얘기 있는데... 시간 돼?"
뭐... 보건실에 간 이상 신경쓰진 않을테니...
"네."
선생님을 따라 미술실로 향했다. 누군가와 마주치면 곤란할것 같았지만 선생님은 별로 개의치 않는듯 했다. 밖도아니고 교내인데 누가 뭐라하겠어? 라고 생각하고 계신듯 했다.
미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 비밀의 방의 도어락을 해제했다. 두번째 와보는 이곳. 선생님의 권유에 쇼파에 앉았다.
"뭐 좀 줄까?"
"아뇨.. 속이 안좋아서."
"아 맞다. 그랬지."
이 선생님도 은근히 얼탄단 말이지.
"무슨일이세요?"
"서희랑 소문났더라?"
"네? 아.. 의도치않게..."
"의도치 않은건 아닌것같은데... 대놓고 손잡다가 소문난거라던데... 아냐?"
"마,맞아요."
생각해보니 내가 왜그랬을까.
"아까 교실에서 잘 어울리던데... 질투나게."
"아하하하..."
아까 인사 쌩깐것도 질투나서 그랬나?
"뭐... 서희 질투나서 부른건 아니고..."
하긴... 선생님이 그런일로 날 부를사람도 아니다. 분명히 다른 용건이 있겠지.
잠깐 뜸들이시는 선생님. 이내 입을 여신다.
"너희 누나... 무슨 일 있니?"
"네?"
누나 이야기가 나올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니... 오늘 너희 누나 상태가 좀 이상해 보여서... 딱히 남자친구도 없다고 했는데 무슨일인가 싶어서... 알아?"
내심 확신을 갖고 날 떠보는것 같았다. 거짓말을 할까 싶었지만 안그래도 남수림 선생님한데 지은죄가 많아서 그런지 이런걸로 거짓말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냥... 누나랑 좀 싸웠어요."
"그랬구나."
역시나. 하시는 표정이다.
"왜 그런지 물어도 될까?"
"....죄송해요."
"그래.. 알았어."
선생님은 잠깐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였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말할 수 없는 사실에 가슴이 더 무거워 졌다. 하지만...
"누나랑 화해하는게 어때?"
"...."
"동생이랑 싸운걸로 그렇게 하루종일 저기압인 사람... 잘 없다? 그만큼 널 좋아하는거겠지. 그러니까... 빨리 화해하는거 어때? 그게 아무래..."
"선생님."
"응?"
"정말...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 남매일에는 상관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입에서 우리 남매의 일이 어쩌니 저쩌니 좋아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게 너무 싫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당황한 선생님은 무언가 말을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닫았다.
"저희 남매는.... 달라요. 다른 남매들이랑은.... 선생님은 이해 못하실거에요."
어찌보면 오해할만한 말이였지만 선생님은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저희남매에 관한일은... 신경쓰지 말아주셨으면해요."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해요. 정말로... 선생님, 저... 그만 가봐도 될까요? 아무래도 수업중간이라 들어가봐야 할것 같아요."
"그래. 내가 너무 붙잡아뒀네."
"아녜요. 좀 있다가 연락드릴게요."
인사를 건낸 나는 태연스레 미술실을 나왔다. 미술실 문이 닫히자 한숨이 절로 세어나왔다.
"후우...."
기분더럽다.
약을먹은 뒤 속이 풀렸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야자를 뺏다. 집에 가기위해서 가방을 싸고있는데 서희가 다가왔다.
"많이 아파?"
서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걱정하지마. 내일되면 멀쩡해질걸?"
서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일 토요일이라서 못볼텐데."
"볼까?"
"정말?"
사실 내키지 않았지만 기뻐하는 서희를 보는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밤에 연락해. 그 때 정하자."
"응!"
그렇게나 좋은가.
"나 이만 가봐야겠다. 나 갈게."
"응. 가서 몸조리 잘해."
서희의 인사를 받은 뒤 가방을 어깨에 메고 교실을 나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인도를 걷고있는데 소란스러운 바이크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인하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뜻밖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삐까번쩍한 바이크에 올라탄 중학교 동창을 볼 수 있었다. 헬멧을 옆에낀 그녀석은 시원한 미소를 지은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건이!"
유건은 바이크에서 내려온 뒤 나에게 다가왔다. 187의 큰키의 소유자. 어쩔 수 없이 올려다 봐야했다.
"반년만인지?"
유건이 담배를 입에물며 대답했다.
"그쯤됐나? 작년 가을쯤에 준욱이 형 생일때 만났었으니까."
중학교 때 친했던 녀석이다. 이놈은 타고난 싸움꾼이다. 아는놈들은 다 아는. 그런놈이다. 고등학교 입학하지마자 3학년을 잡는다면서 생 난리를 피웠었지. 결국에 어찌어찌해서 3학년까지 먹었고.
"요새 뭐 잘 지내냐?"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저냥. 너는?"
"난 뭐 똑같지. 공부에 신경쓰는것도 아니고 놀기만하면 되는데."
"자랑이냐?"
"자랑이지."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놈은 언제나 이랬다. 언제나 밝고 유쾌하다. 어두운 모습을 본적이 거의 없다.
"근데 너 야자안하냐? 그거 해야되는거잖아."
이놈이 야자란 단어를 입에 담을줄은 몰랐는데.
"오늘은 조퇴. 야자도 안하는 놈이 야자에 관심을 왜가져?"
"야. 떡 안쳐본 놈들도 섹스엔 관심있어 임마."
그게 지금 길 한곡판에서 할 소리냐? 응? 저기 우릴 쳐다보는 아줌마는 어쩔꺼야?
"그나저나 무슨일 있냐?"
유건의 말에 나는 의아해져서 대답했다.
"왜?"
"표정이 안좋은것 같아서. 뭐 누가 너 괴롭히냐? 불러 임마. 형이 다 처리해줄게."
나는 픽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뚜들겨 맞을까봐?"
"하긴, 니가 맞고있을놈도 아니고. 그럼 뭐냐? 공부? 아니지. 너 공부 옛날부터 엄청 잘했잖아. 그럼뭐야. 여자?"
"아냐 임마. 그런거."
내심 찔렸지만 잡아떼고봤다.
"맞구만 뭘. 짜식. 다 컸다. 여자친구는 있냐?"
"있어."
"예쁘냐?"
처음으로 묻는게 예쁘냐? 라는걸 보니 이놈도 그냥 평범한 남자인 모양이다.
"예뻐."
"오~ 근데 뭐가 문제야? 여자친구랑 자고싶은데 허락 안해주는거냐? 딱 봐도 그거네. 어휴. 불쌍한새끼."
"미친새끼야. 그런거 아니거든?"
세상에 이런 오해를 받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서희를 어떻게 하고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니?
유건이 녀석은 담배를 깊숙히 빨아당긴 뒤 툭 하고 손가락으로 쳐 불을끈 뒤 길바닥에 툭 하고 던졌다.
"나도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 아다떼고 싶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 넌 모를거야."
"나도 아다는 뗏어임마."
그러자 유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전에 만났을때는 한번도 안해봤다면서?"
내가 그런말을 했었나? 하여간 술이 문제야 술이.
"그 사이에 뗄수도 있지."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너 어디가는 길인데?"
"그걸 이제 물어보냐? 집에 가는길이야."
"타라. 대려다줄게."
뭐, 굳이 태워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오토바이에 올라탄 나는 건내는 헬멧을 받았다.
"너 이사 안했지?"
"어."
"간다."
부아앙! 엔진음과 함께 오토바이는 가속을 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자 눈깜작할 사이에 우리집에 도착했다. 아직 날씨가 날씨인지라 바람이 차갑지만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운전비로 만원."
"좆까 임마."
나는 웃으면서 헬멧을 건내주었다.
"나 그만 올라가볼께. 고맙다."
"고맙기는. 아 맞다. 나 핸드폰 번호 바꼈거든? 핸드폰좀 줘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건내주었고 녀석은 자기번호를 등록했다.
"조만간 연락할테니까 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자."
"그래."
녀석은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타더니 나에게 손을 흔든 뒤 훌쩍 떠나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