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인 파스쿠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창가에 앉은 선생님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런 선생님 앞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앉았다. 선생님이 나를 슬쩍 올려다 보더니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미소지었다.
"아, 왔어?"
"한걸음에 달려왔나이다."
"뭐야 그 이상한 말투는."
미소짓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기좋다. 아, 우선 주문부터 하자.
"주문하고 올게요. 뭐 마실거에요?"
"카라멜 마끼아또 먹고싶네."
카운터로 가서 카라멜 마끼아또랑 모카라떼를 주문한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멀쩡하네요? 누나는 와전 취해서 비틀비틀 거리던데."
선생님 주량이 그렇게 센것도 아니고 말야.
"아.. 그거? 아무래도 올해 첫부임이다 보니 다른 남선생님들이 계속 먹이시더라고? 내가 말리고 싶긴 했는데 내가 경력이 있어 뭐가있어? 내 몸 하나 간수하는것도 힘들다?"
하긴... 누나가 술 건내주면 거절할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것도 연장자들이 계속 권하는데 주는대로 다 마셨겠지.
하여간 우리나라 술문화가 추잡다니까.
"지들은 마시고 싶은대로 마시면서... 어린데다가 여자다 보니까 만만한거지. 나도 첫부임때 똑같았어."
불만이 많은듯 투덜거리는 선생님. 평소에 쌓인게 많으신가 보네.
"그래도 저희학교 선생님들 정도면 괜찮지않나요?"
"글쎄. 내가 이번이 첫학교다 보니까. 근데 소리 들어보니까 우리학교가 그나마 양반이긴 한것같더라?"
그 때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카운터로 가서 받아왔다. 따뜻한 커피가 기분이 좋은지 선생님은 커피 한모금을 마시더니 잔을 만지작 거렸다.
"추운데 왜 밖에 계셨어요? 감기걸리면 어쩌시려고."
"그냥."
"그냥이 어딨어요? 이 겨울에... 다른사람 같으면 집에가기 바쁜날씬데요? 그러지 말고 말해주세요."
내가 계쏙 졸라대는데도 선생님은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너한덴 말못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 남자 때문이에요?"
말실수를 했나. 약간 후회하긴 했지만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그러면 다행이고. 그래도 계속 신경쓰이는데...
"정말 별일아냐. 걱정하지마."
"그래도..."
내 걱정이 절실해 보이긴 하는지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게 궁금해?"
"네."
"아.. 창피한데..음..그게..."
대답은 못하고 커피잔만 만지작 만지작. 그러더니...
"네 생각이 나서, 그래서 전화한건데."
"네에?"
깜작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잘못들은건 아니지?
"됐어 못들었으면."
들었는데요? 확인차 물어본것 뿐입니다. 와... 기분이 이렇게 좋을수가. 그래도 좀 창피한데?
손에 커피가 닿길래 커피를 급하게 한모금 들이켰다. 앗 뜨뜨... 혀 다 까지겠네.
"괜찮아?"
"켁켁... 네 괜찮아요."
입가에 흘러내리는 커피를 선생님이 휴지로 닦아주셨다. 그러더니.
"정말.... 이럴땐 애라니까."
하하.. 선생님 앞에서는 애라도 좋아요.
이런 여자가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누나도 그렇고. 서희도 그렇고.
서희.
갑자기 가슴이 착잡해진다. 머리가 아프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 무슨일 있어?"
이번엔 선생님이 궁금한 듯 물었다. 딱히 말해줄만한 사정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데... 근데 선생님 표정을 보니 심각한게 꽤나 걱정하는 모양이다.
"별것 아녜요."
"나 금방 별거 아닌거 니가 자꾸 물어서 대답해줬거든?"
아. 그랬지?
"꼭 말해줘야 해요?"
"말이라고 해?"
기브 앤 테이크라 이건가? 확실히 아까랑 상황이 정 반대다.
"음... 그게... 아... 저 고백 받았어요."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고 커피 한모금을 마셨다.
"음.. 그래?"
별 일 아니라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뭐랄까. 섭섭하다고 해야할까? 나도 모르겠다. 어떤 반응을 원했는지.
"누구한데? 우리학교?"
"네... 한서희라고..."
"아... 걔?"
역시 학교 유명인사. 백이면 백 다 알아먹네. 선생님은 커피잔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거절했어?"
"아뇨... 대답은 미뤘어요. 그게.... 선생님 생각이 나서... 거절 해야하는건데. 죄송해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만약에 선생님이 지금 다른 남자를 만나 사귄다면, 나는 괴로울거다. 근데 그게 반대의 경우에 선생님이 괴롭지 말란법도 없다. 그래서 거절하려 했다. 근데 내 성격이 너무 무른탓에 거절하지 못하고 시간을 달라며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받아들여."
"네?"
"고백말야. 받아들이라고. 난 오히려 네가 그 고백 받았으면 좋겠는데?"
생각치도 못한 대답에 잠깐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헤어나왔다. 내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이런 대답이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아까전 들떳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버렸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듯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선생님한덴 저는 뭔가요? 어떻게 그런대답을 할 수 있어요?"
내 역정에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만약에, 선생님이 다른남자한데 고백 받았다고 저한데 말했다면, 전 거절하라고 했을거에요. 그걸 받아들였다면 전 질투심에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괜히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창피해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화내서.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뜨려는데 선생님이 내 팔목을 움켜쥐었다. 선생님의 두 눈이 나를 또렷하게 향했다.
"내 말좀 들어. 바보야."
"...."
"혼자 생각하고 혼자 떠들고... 미워. 일단 앉아봐. 할말있으니까."
선생님은 다시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런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더니 살짝 붉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미안해. 인하 네가 그렇게 반응할줄은 몰랐어. 그리고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이것 참 쪽팔리네. 나도 모르게 내 본심이 적랄하게 튀어나올줄은 몰랐는데. 선생님은 큼, 하고 목소리를 고른 뒤 말했다.
"난 네가 결혼하기 전에 연애란걸 한번 해봤으면 해."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랑은 상대방을 구속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렇다. 아까도 말했듯이 선생님이 다른남자와 사귄다고 한다면 정말로 질투심에 눈이 뒤집힐지도 모른다.
"그래. 이해할 수 없을거야. 네가 내 입장이 아닌이상 이해 못할거야."
두려웠다.
내 감정이 일방적인 감정일까봐,
날 그저 할 수 없이 맺어진 약혼자라 여길까봐.
진정으로 날 소중히 여긴다면 저런말을 입에 담지도, 생각치도 못할테니까.
"결국 저는 선생님에게 전 아무것도 아닌거였네요."
웃음만 나왔다. 혼자서 생지랄을 떨었다는 생각에 분노라기 보다는 허탈함이 들었다.
"아니야.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선생님의 언성이 올라갔다.
"넌 몰라. 내가 지금 어떤심정으로 내가 이런말을 꺼내고 있는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난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널 좋아하고 있어. 아니 사랑하고 있어."
"...."
선생님은 숨을 살짝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근데 그 감정이 너무 커져가는것만 같아서 무서워. 두려워. 그래서 넌 이해 못하는거야."
기쁘다는 감정부터 들었지만 그것보다 의문점이 더 앞섰다.
"그거랑 제가 연애하는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오히려 더 막아야 하는거 아니에요?"
선생님의 태도를 보니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네가 날 떠나갈까봐."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다고. 떠나지 않고 옆에있을 자신이 있노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데?"
"그건...."
대답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선생님을 확신시킬만한 근거가 없었다. 연애란걸 해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선생님의 심각한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나는말야. 최소한 인하 네가 연애란걸 한번이라도 해보고 나에대한 확신이 있었으면 해. 넌 아직 연애한번 안해봤잖아? 막말로 다른여자 아무나 붙잡고 한번 만났는데 나보다 더 좋지말란법도 없는거잖아? 만약에 그렇다면.... 결혼은 없던걸로 하자. 서로의 합의하라면 어른들도 이해해주실거야."
뭔가 궤변같지만 딱히 뭐라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첫사랑이 결혼까지 골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사람들 이야기일 뿐. 선생님과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말 알아들었지? 여러명은 싫어. 그건 내가 질투나서 못견딜것 같아. 근데 한명이라면... 한명이라면 참을 수 있어. 서희... 걔 한명만 만나보는거야. 그리고 결정해."
선생님의 말에 어느새 내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다. 너무 쉽게 설득당한건가?
"후우...."
선생님은 입이 마르는듯 커피를 들이켰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앞으로 숙인뒤에 내 볼을 움켜쥐었다.
"아~~아악~"
아,아파요!
"진짜 밉다니까. 나 갈래. 맘상했어. 여자한데 이런말이나 하게하고. 매너도 없고."
그러더니 선생님은 휙 하고 몸을 돌린 뒤 카페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화난거야? 그런거야?
재빨리 선생님의 뒤롤 쫓았다. 선생님은 약간 심통이 난듯 걸음걸이 부터 신경질이 묻어났다.
"선생님 죄송해요~ 같이가요~"
"됐어 혼자갈꺼야."
선생님의 옆에 쫄래쫄래 따라붙으며 용서를 구했지만 한번삐진 선생님은 화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연애를 해봤어 뭘 해봤어? 아, 연애는 글로 해봤어요.
나도 모르겠다. 주위에 사람없지? 어디 으슥한곳 없나? 아, 저기면 좋겠다.
건물 옆에 딸린 작은 주차장을 보며 결심을 한 나는 선생님의 팔을 움켜쥐었다.
"뭐야? 놔."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주차장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선 잘 안보이겠지?
그대로 선생님의 입술을 훔쳤다. 선생님이 놀란듯 두 눈을 크게떴다. 처음엔 아둥바둥 거리다가 힘이 부치는듯 거부의 몸짓을 멈추고 내 혀를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키스. 아까 마셨던 선생님의 카라멜 마끼아또의 향이 내 입에 전해진다. 너무나도 달콤한 키스에 취해버릴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키스를 주고받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입을 떼고서 선생님과 시선을 마주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선생님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창피한 듯 시선을 내리깐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올것같지만 여기서 웃었다가는 선생님이 화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았다.
"용서..해줄거죠?"
"....하는거 봐서."
선생님의 손을 움켜잡았다. 거부하지 않았다. 선생님도 내 손을 맞잡았다.
따뜻했다.
이 따뜻함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두 손을 맞잡고 선생님집으로 향했다. 전에도 와본적이 있는 이곳.
"이제 가도 되."
"들어가는거 보고 가려구요."
"안그래도 되는데..."
"선생님이 뭐 아빠 무서워 하는 딸이에요? '걸리면 너 큰일나! 우리아빠 엄청 무서워' 이런 말툰데?"
"내가 무슨 고딩이니? 그리고 나 혼자살아."
나는 웃기만하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새낀 여긴 왜있대?
내 시선을 의식한듯 선생님이 내 시선을 쫓는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닿는다. 선생님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수,수림아."
맘고생이 심했는지 그때보다 살이 확 빠진듯한 느낌이다. 완전 해골 다됐네.
"너..너..."
그리고 나를 발견한듯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어이 손가락 치우시지?
"너 이새끼.... 그,그손 놔!"
아아, 안그래도 놓을 생각이였네요. 나는 선생님의 손을풀고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겁니까? 포기할 때 되지 않았어요?"
"니가 뭘 알아? 수림아... 왜 그러는거야? 응? 우리 사랑하는 관계잖아. 응?"
아놔 시발... 진짜 여기 사람들 지나가는데서 뭐하는건지.
"아니. 이제 아냐. 오빤... 나 말고 그 여잘 택했고 나는 그 순간 마음 접었어."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 본인이 그렇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내가 잘못했어? 응?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
"...."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그 반응에 분노한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오호라, 왜? 어린놈이 힘이 좋아? 이봐. 너 수림이랑 섹스해봤지? 너 섹스잘해? 잘하나보네. 그러니까 남수림이 이렇게 나오지. 큭큭."
이 미친새끼가... 선생님을 쳐다보니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표정. 세상에 저런말을 듣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여자가 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반쯤 돌아서 계속 떠벌렸다.
"남수림 신음소리 죽이지? 응? 몸 아래 깔려서 앙앙 거리는거 장난아니지? 너도 해봤으면 알거야. 아 맞다. 그리고 쟤 물 많잖아. 한번 하면 침대가 흥건해요."
툭
하고 내 이성의 끊이 끊겨버렸다.
그리고.
"아야야야야..."
"어휴.. 그러길래 거기서 주먹은 왜 휘둘러? 그리고 그 사람 말라보여도 성인이다? 그리고 옛날에 복싱도 배운 사람이야."
그런건 말좀 해주지.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남자와 나는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구경꾼이 생길때 쯤 되자 남자는 황급히 자리를 떳다. 내 입술은 부어터져서 결국 선생님 집에들어와서 약을 바르고 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내가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나서?"
"얼씨구? 울먹거리던게 누구더라?"
"난 아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고마워."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 장난기가 없는 진지한 목소리다.
"진짜... 갑자기 나타나서 깜작 놀랬어. 오늘 같이 안왔으면 곤란할뻔 했어."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그 새끼도 참 한심하네 이 시간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어떡할건데요?"
또 찾아오지 말란법이 없다. 아니. 또 찾아올께 뻔했다. 오늘처럼 맨날 집에 대려다 줄수도 없는 상황이고.
"모르겠어."
"....저한데 맡겨줄래요?"
"너한데? 어떡할건데?"
그건 나도 생각해봐야지. 근데 선생님 성격상 매정하게 떼어놓진 못할것 같아서 차라리 내가 하는게 나을것 같다.
"방법이 다 있어요."
물론 허세다.
"음...."
"선생님 그 새끼 떼어놓을 자신 없잖아요? 그러면 누구한데 부탁할건데요? 남 회장님? 뭐라고 부탁할건데요?"
불륜하던 남자가 자꾸 앵겨붙어요. 이럴것도 아닌데.
"그럼... 과격한 방법은 안된다?"
"네."
일단 대답은 그렇게 해뒀다. 하지만 약하게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선생님을 갖고 논 죄는 내가 똑똑히 치르게 해줄테니까.
시계를 보니 열한시다. 벌써 이렇게 됐나? 이제 집에 슬슬 들어가야 할것같은데.
사실 이대로 선생님과 한바탕 사랑을 나누고싶지만... 이미 한발을 뺀 상태이다 보니 성욕이 잘 돋지 않는다.
이대로 집에 가야지.
"저 이만 가볼께요."
"가려고?"
"왜요? 안가고 뭐 했으면 좋겠어요?"
내 대답에 선생님이 쿠션으로 내 머리를 강타했다.
"죽을래?"
하하하. 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학교도 가야되고 하니까 지금 가야죠."
"그래. 그것도 그러네."
근데 그냥 가기도 아쉽고...
"선생님."
"응?"
"가기전에 키스 한번만."
내 간절한 부탁에도 선생님은 단호했다.
"싫어. 입에 잔뜩 연고 발라놓고..."
음... 하긴 실례긴 하네. 나는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좀 그렇긴 하네요. 그럼 가볼께요. 내일봐요?"
몸을 돌리고 도어락을 풀려는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하야."
네? 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뭉클 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내 목을 껴안으며 까치발로 내 입술을 덮쳐온것이다.
순식간에 상황판단을 끝낸 나는 선생님의 키스를 받아냈다. 선생님이 내 목을 껴안았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됐지?"
"과분해요. 정말."
"그럼 나한데 잘해. 알았지? 그리고 내가 한 말 잊지말고."
"네."
도어락을 풀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거울을 바라봤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나도 큰 욕심이지만 오늘같은 날이 내일도 모래에도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큰 욕심인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이 행복이 깨질것만 같아서. 너무 두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원했다.
이 행복이 영원하길. 간절히.
입에 머금었던 물을 뱉어내며 입안의 치약들을 정리했다. 세수까지 하고나니 샤워를 하고온것 마냥 시원하다.
점심도 배부르게 먹었고. 양치도 했고. 이제 느긋하게 쇼파에 누워서 티비나 봐야겠다.
쇼파에 모로 누워 기다리던 드라마 재방송을 틀었다. 마지막회를 달려가는지라 이야기는 절정에 달해있었다. 몰입감이 장난아닌데?
그렇게 티비를 보고있는데 설거지를 끝낸 누나가 쫄래쫄래 다가오더니 쇼파위에 올라왔다.
"하암.. 잠온다."
입을 가리며 하품하며 중얼거리는 누나. 이제 서서히 날씨도 좋아지다보니 충곤증이 오는 모양이다. 눈에 물기를 잔뜩 머금었다.
"에잇!"
갑자기 모로 누워있는 나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품속을 파고들었다. 쇼파가 좀 큰지라 나 하나는 널널한데 누나가 끼니까 비좁다.
"뭐해? 잘꺼면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
"싫어. 여기가 더 편해. 네 냄새 나잖아. 잠 더 잘올것 같아. 포근해."
편할대로 하세요. 나는 쇼파에서 떨어지지 않게 팔로 등을 감싸안았다. 누나는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얼마안가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잠든 모양이다. 음, 샴푸냄새가 꽤 향기로운데?
약간 갈색빛을 띄우는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관리한번 끝내주게 하는지 머릿결이 장난아니다.
깊게 잠든탓인지 머리카락을 만져도 볼살을 만져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뭐... 가슴을 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신없이 드라마에 집중. 어느새 드라마가 끝이났다.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가네.
손을 뻗어서 리모콘을 집으려 하는데 거리가 안된다. 익익 거리면서 있는힘껏 팔을 뻗으니 그제서야 리모콘에 손이 닿았다.
애초에 누나가 여기서 잠만 안들면 그냥 가지고 오면 되는데 왜 하필 쇼파. 그것도 티비를 보고있는 내 품속에서 잠이들은건지 원...
"으음..."
눈가를 찌푸리며 눈을 뜬 누나가 내 젖꼭지를 움켜잡는다.
"뭐하십니까."
"히히힛."
뭐가 그리좋은지 그저 웃는다. 그러다가 내 티셔츠 안으로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내 젖꼭지를 살랑살랑 건드린다.
"하지마라."
"싫은데에~"
장난스레 대답하며 이번엔 내 츄리닝 바지안으로 손을 집으넣으려는것을 쳐냈다.
"여자가 좀 조신하게 굴어라. 응?"
"너한데만 이러는거잖아?"
음... 확실히.
"근데 정말 푹 잠들은것 같아. 널 안고자서 그런가? 되게 편해."
"날 죽부인 대용으로 사용할 생각이라면 정중하게 거절할게."
"쳇."
쳇은 뭐야.
"자. 이제 인하 네가 누워. 내가 내 가슴은 못빌려줘도 무릎은 빌려줄 수 있어."
"가슴은 왜 못빌려줘. 푹신푹신할것 같은데."
내 저질스러운 농담에 누나가 눈을 흘겼다.
"변태."
"지가 먼저 시작했으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쇼파에 앉아 허벅지를 두들겼다. 읏차, 누나 허벅지좀 빌려볼까?
누나의 허벅지에 머리를 댔다. 썩 편한것도 아니다. 살이 워낙 적다보니 어쩔 수 없나. 메리트라고는 누나의 살냄새 뿐이다.
무릎을 베고 티비를 보는데 누나가 자꾸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이 좋다.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러니까 꼭 아기같다."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갑자기 누나가 티셔츠와 브라를 함께 까며 가슴을 들어냈다.
"아기 맘마하자~"
아니 이 여자가...
"미쳤구나."
쯧쯧, 제정신아 이닌게야.
"왜에? 너 빠는거 좋아하잖아?"
"조,좋아하진 않아."
차마 싫어한단 소리는 못하겠고.
"근데 누나 애기 별로 안좋아하잖아? 시끄럽다면서."
누나는 옛날부터 애기를 안좋아했다. 특히 4~7세의 애기들은 악랄하다나 뭐래나... 내 눈엔 그저 귀엽기만한데.
"우리 애기라면 눈에넣어도 안아플것 같은데."
"....."
그러고보니 우리 관계가 어디까지 갈란가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이대로, 동거하는 남녀의 관계로 이어질것인가. 아니면 한순간의 장난으로 치부되어져 버리며 누나는 누나길을 나는 내 길을갈것인가.
"왜? 내가 너무 나갔나? 부담스러워?"
누나가 미안한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런건 아냐."
갑자기 분위기가 왜이래? 금방이라도 할것같은 분위기더니. 그 때 누나가 뭔가 생각난듯 말했다.
"아 참. 우리 장보러 갈래?"
그러고보니 집에 뭐 반찬거리가 없다. 슬슬 마트에 갈때가 된것같다. 집에 라면도 떨어진것 같던데.
"가자.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