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어."
침대에 묻혀 아직까지 자고있는 누나를 깨워 흔들어보지만, 일어난 척도 안한다. 밤에 뭐한겨?
몸을잡고 툭툭 건드려보고 흔들어보고해도 여전히 잠에 빠져 일어날 기미도 안보인다. 깨우는걸 포기할까 고민하던 순간에 누나가 날 휙하고 잡아당겼다.
침대에 고꾸라진 나는 짜증섞인 눈으로 누나와 마주봤다.
아아, 젠장할. 자고있던척 한거야. 진작에 깨있었구나.
"굿모닝?"
"굿모닝은 무슨. 지금 시간이 몇신데. 밤에 뭐했어?"
내 말에 누나가 씩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자위."
순간 잘못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에이, 잘못들은 거겠지? 내 귀에 음란마귀가 씌인거겠지?
"뭐?"
"니생각 하면서 했어."
무,무,무슨 이 미친년이.... 순간 머리라도 쥐어뜯고 흔들어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농담이지?"
세상에 동생한데 이런말을 건내는 누나가 있을까. 아, 이미 평범한 남매사이는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농담같지?"
"...."
진짜란 소리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얼굴이 따끈따끈한게 아마도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을거다.
"푸후훗."
웃으면서 내 볼을 꼬집고 만지작 거린다. 저거 비웃는거 맞지? 이건 뭐 대놓고 놀리는거 아냐?
어어? 그러면서 은근슬쩍 입술내미는것 봐?
손으로 입술을 탁탁 쳐줬다. 이 여자가 어디서...
"아이씨..."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날 쏘아보지만 가볍게 무시해줬다. 이 여자가 어디서 방정맞게 입술을 내밀어?
"센스없는 놈."
가볍게 무시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세우며 말했다.
"일어나서 밥이나 먹으시지?"
"매뉴뭐야?"
"어젯밤에 부대찌개 먹고싶다며."
"재료 없다면서!"
아무래도 누나는 어제 내가 귀찮아서 재료없다고 거짓말 했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누구때문에 이른아침부터 마트에 들렸는데?
"아침에 마트다녀왔어."
"정말?"
"응."
내 말에 불만가득했던 표정이 풀어지며 누나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저 기뻐보이는듯한 미소. 부대찌개가 그렇게 좋은가?
"나.. 부대찌개 말고 먹고싶은거 생겼어."
"하아.. 뭘 또 해줘?"
그러자 손가락이 날 향해 움직인다. 그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 내 시선이 돌아갔다. 내 눈에 보이는건 닫힌 문. 다시 시선을 누나쪽으로 돌리니 장난스레 씨익 하고 웃고있다.
"너."
"....."
뭐랄까. 누나로써는 몰라도, 여자로써의 이 여자의 매력은 끝이없는것 같다. 하지만.
"안돼."
"뭐어?"
"밥이나 먹어."
"이씨..."
불만가득한 표정이지만 무시하며 방을 나섰다.
그 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변해버렸다.
남매였던 우리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누나는 여태껏 티하나 내지 않으며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품을 수 있었을까.
많은 의문점이 있었지만, 딱히 답을낼수는 없었다. 분명한건.. 이젠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에 누나는 날 많이 어려워했다. 말도 제대로 못걸었다. 내가 또 화를낼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집에 박혀서 누나와 관계개선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말도걸고, 그 좋아하던 베스킨라빈스 먹으러 가자면서 일부러 밖으로 이끌며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몇일을 꼬박 노력을 했다. 그러더니 어느정도 나에대한 불안감이 해소된듯 보였다. 어느정도 관계가 돌아갔을땐..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특히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들이대는것.. 이런 행동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당황하는걸 즐기는 것 같다.
날 어려워할땐 고분고분한 맛이 있었는데...
그 날, 누나를 거부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나... 생각만큼 그게 쉽지만은 않다. 아직도 내 안에 죄악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누나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할까?
나도 지금 내가 가진 감정을 알 수 없다. 애틋한 무언가가 있다. 흡사 첫사랑과 같은.
"뭐해?"
식어버린 찌개를 데우려고 가스레인지 앞에 섰는데 데우긴 커녕 생각에 빠져있었군. 누나 덕분에 정신차렸어.
"내 친구들이 자기 남자친구가 요리해주는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던데.. 난 그걸 이해하지 못했거든. 항상 있는 일이니까."
누나는 나를 뒤에서 껴안으며 중얼거리듯 내게 말을 건냈다.
"근데 오늘 보니까.. 알것같다. 이상하지?"
"불앞에서 이러는거 위험한거야."
"진짜... 너무해."
나를 껴안았던 팔을 풀고 식탁위에 앉아 나를 쳐다보는 누나.그 시선이 몹시도 부담스럽구나.
지이잉!
그 때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진동을 냈다.
[뭐해?]
서희에게 온 카카오톡이다. 서희와는 연락처를 주고받은 이후에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누나때문에 얼굴을 보거나 할 여력은 없었다. 서희가 바쁜탓도 있었으니 서희도 섭섭해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잽싸게 답장했다.
[먹이주는 중이야]
[애완동물 키워?]
[응. 누나라고]
"크크큭..."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있는데 등 뒤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먹이주는 중이야. 애완동물 키워? 응. 누나라고...."
"뭐야? 왜 남의 대화내용을 보고그래?"
깜작 놀라며 등뒤의 누나와 거리를 벌렸다. 이 여자 다크템플러인가?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났어.
"이야.. 우리 동생.... 썸타는 여자도 있네?"
생긋웃는데 그 모습이 웃는모습 같지가 않다.
"뭐 어쩌겠어. 다른 여자랑 연애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마지막엔 어차피 내가 옆에 있을거니까."
우와, 방금 소름끼쳤어.
"밥먹자. 카톡은 밥먹고 해. 나랑 밥먹으면서 하면 가만히 안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늘 뭐할꺼야?"
밥을 먹고 있는데 말을 건내는 누나.
"글쎄... 생각 안해봤는데."
지이잉!
아, 서희인가? 밥먹고 온다고 했는데?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고개를 들어 누나를 확인하니 누나의 표정이 심상치않다.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전화야 전화. 외할아버지!"
핸드폰을 돌려 발신자까지 확인시켜주니 누나는 '누가 뭐래?' 라며 시선을 돌렸다. 하긴, 뭐라고 하진 않았지. 금방이라도 밥상을 엎어버릴 기세였지만.
외할아버지가 무슨일이지?
외할아버지는 정이없는 사람이다. 어머니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거라고는 하는데.. 나는 글쎄 잘 모르겠다. 옛날부터 뼈대있는 양반집에서 난 외할아버지는 강남땅부자다. 재벌총수들과도 어느정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어려운, 정없는 외할아버지 일 뿐이다. 이렇게 연락을 주는일도 굉장히 드문데..
주방을 나온 나는 수신버튼을 눌렀다.
"예 할아버지, 저에요."
[뭐하고 있었냐?]
"밥먹고 있었어요."
[수연이는?]
"밥먹고 있어요."
[아 그래, 수연이 이번에 임용고시 합격했다면서?]
"아..네."
[교사정도면 괜찮지.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꾸나.]
"누나랑도요?"
[아니, 수연인 됐고.. 혼자오너라.]
"예. 성북동으로 가면 되요?"
[그래. 급한일이니 되도록 빨리오너라. 그만 끊는다.]
통화가 끝난 후 주방으로 되돌아가니 누나가 물었다.
"외할아버지가 왜?"
"아.. 얼굴좀 보재서."
"무슨일로?"
"글쎄..."
왜 얼굴을 보자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워낙에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나도 가야해?"
누나가 조금 껄끄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나도 외할아버지를 어려워 하는것은 마찬가지였다.
"누난 올필요 없대. 빨리 오라고 하시니 얼른 먹고 나가야겠다."
밥을 먹다남기고 물을마신 뒤 바나나 우유 하나를 까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외할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다. 어렸을적 내 기억속의 외할아버지는 도깨비였다. 그래서 명절날에 보러갈때면 가기싫다고 졸라대곤 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나는 외할아버지 말이라면 꿈뻑 죽는다. 외할아버지의 말에 토달아 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우유를 다 비운 나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외출준비를 시작했다.
깨끗하게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까지 입은 나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있는데 누나가 다가와서 물었다.
"데려다줄까?"
"됐어. 불안해."
"이씨! 나 차 잘몰거든!"
얼마전에 임용고시 합격했다면서 출퇴근용으로 한대 뽑았는데 운전하는거 보니 영 불안해서 운전석을 못맡길것같다. 내가 얼른 면허를 따던가 해야지.
그러고 보니 이 생각없는 누나는 차를 외제차 뽑으려고 했었지. 그 때 내가 간신히 뜯어말렸는데 갖 임고합격한 교사가 외제차를 모는게 말이되는 소리인가. 장수하려고 일부러 욕을 사 잡수시나?
"나혼자 가면되. 그러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응."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누나. 누나가 나에게 살짝 다가오더니 내 목을 껴안았다.
"잘 다녀와."
쪽 하고 내 입술에 입을 살짝 맞춘 누나는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거 참, 누구 누나길래 저렇게 예쁘담. 아, 이런생각할 시간이 없지. 빨리 가야겠다.
정신없이 내려와서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서희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미안. 좀 늦었지?]
확인을 안하고 있다. 아니 지금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기다리는것도 이상하지. 화났을까?
[알긴아네?]
다행히 얼마안가 답장이 왔다. 화난건 아닌것같은데.. 우선 변명이나 해야겠다.
[미안. 외할아버지께서 전화주셔서... 덕분에 밥도 못먹고 밖에 나와있어]
[왜?]
[보자고 하셔서.... 외할아버지 엄청 무섭거든.]
무섭다. 정말 무섭다. 왜 그런 인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네살 때 어렴풋이 나는 기억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이건 좀 커서 느낀건데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싫어하신다. 이유는... 대충 알것같다.
딸래미 여행보내 놨더니 어디서 덜컥 임신해서 왔는데 그 남자놈을 좋게볼 수 있을까. 그것도 딸보다 나이차이가 꽤 나는 남자를.
그 불똥이 누나와 나에게 튀는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서희와는 카톡을 몇개 계속 주고 받았는데 서희는 곧 학원을 가야된다면서 가버렸다. 성북동에 도착할 때 까지 뭐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치이이익!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고 사람들이 올라탔다. 왜 그랬을까. 수차례 사람들이 버스를 올라탔음에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은 나도모르게 올라타는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찌릿!
그 여자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누구지?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 그 여자는 버스안을 한번 훑어보더니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오오, 이런 영광이!
하긴, 비어있는 자리라고 해봐야 땀냄새 날것같은 아저씨와 등산을 갔다온듯한 어르신 옆자리가 전부다. 내가 여자라도 내 옆자리에 앉겠지. 서있거나.
근데 이 여자... 어디서 본듯한데 어디서 봤던가? 저정도 외모라면 쉽게 잊어버릴 외모는 아닌데 말이다.
곰곰히 기억을 더듬는데... 자꾸 짧은 스커트 때문에 강조되는 허벅지로 눈이간다.
억지로 시선을 창가로 틀며 기억을 더듬거린 결과.
아!
누군지 알았어.
그 때 그 여자다. 서희를 만너러 가던때 길에서 부딪힌 여자. 그땐 내 또래로 보였는데 지금은 대학생으로 보인다. 그 때 봤을때는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였는데 화장기술이 제법인지 싸보이지 않고 성숙해 보인다. 게다가 화장빨좀 받는지 더 예뻐보인다.
그래. 화장은 저렇게 하는거지. 주위 여자애들 보면 화장기술이 저급해서 싸보이고 어려보이기만 하다.
"저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네?"
대답하는 그녀.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 확실하다 그녀다.
"저희 어디서 본것같지 않아요?"
질문을 던지고 난 뒤에야. 아 내가 미친짓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저급한 수법이라니 맙소사.
머리속의 난 머리를 움켜쥐고 절규하고 있었다. 밀려오는 창피함에 얼굴이 뜨거워질것만 같았다.
역시나 여자의 표정이 가관이다. 어디서 그런 저급한 수법을 쓰냐는 듯.
"없는것 같은데요."
게다가 없댄다. 진짜 갑자기 서운해졌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린 어깨까지 부딪힌 사이 아니던가.
"아.. 그래요?"
나도 모르게 실망하는 티가 표정에 묻어났나보다. 그렇게 서로 시선을 틀고 두 정거정을 지났을 무렵,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그녀의 부름에 내 시선이 돌아갔다.
"네?"
그녀가 손을 내민다. 뭘 달라는 제스쳐인듯 한데, 뭘 달라는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돈인가?
"핸드폰."
"아...네."
핸드폰을 달라는거였구나.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받아낸 뒤 만지작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한데 관심있어요?"
"그..."
뭐지? 이게 관심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도 안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그 여자는 표정을 살짝 일그러트리더니 핸드폰을 내게 다시 건내주었다. 때 마침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지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얼타는건 전이랑 똑같네."
방금 뭐라했지? 잘못들었나? 워낙의 찰나간의, 그것도 너무나도 작은 중얼거림이였으니 잘못들었을거다. 그녀는 날 처음본다 했으니.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그녀가 내 폰으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한뒤 그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문자내용은 [이상한 놈]이였다. 그녀답다 라고 생각하며 저장된 이름을 확인했다.
[백은별]
그녀의 이름이다. 백은별. 백은별.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최악이였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그녀에 대한 인상은.... 호감쪽에 가깝다. 왜? 단지 그녀가 예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거라면 내가 속물인거겠지.
창가에 기대어 밖을 쳐다봤다. 어떻게 연락을 해야할까. 고민됐지만 고민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벌써 도착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