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52)

색몽전

25

  내실 안.

  육십 정도로 보이는 노인과 중년의 사내가 마주하고 있었다.

  “준비는 어찌 되어 가느냐?”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물음에 중년인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이 되는 법이니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중년인은 문제없다는 듯 말했다.

  그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낮에 있었던 일은 문제가 없겠지?”

  검왕의 금분세수 소문은 확실히 양날의 검과 같았다.

  검왕에게 은원이 있는자들이 소동을 일으켜 세상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게 만들고 자신들의 움직임을 감출 수가 있었다.

  하지만 소문이 날수록 남궁세가 역시 철저하게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의 수를 전부 알고 있기에, 상대가 움직일수록 자신들의 거사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계획이 확실하고 승산이 높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닥쳐 봐야 아는 것이다.

  어떤 변수가 튀어나와 계획을 망가트릴지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계획대로 흐르고 있는데도 노인은 무언가 자꾸 거슬렸다.

  그래서 중년인 보고 안휘성으로 들어오는 인물들과 남궁세가를 철저히 감시하도록 명을 내린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래봐야, 죽는 숫자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 놈들에게 아무리 우리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떨어졌던 살마가 당했다.”

  “살마 어르신의 특기는 암습입니다. 조사결과 정면 대결을 통해 쓰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놈들의 나이를 생각하며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극마의 경지에 오른 어르신이 계시고 저를 위시한 초절정의 인물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이제 막 초절정에 오른 애송이들이 그곳으로 오면 죽음밖에 없습니다.”

  “너희와 살마가 같냐?”

  “....!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구대천마의 자리가 그렇게 쉽게 오를 수가 있는 자리가 아니다. 살마에게는 그 자리를 오르고 지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비장의 수가 있다, 그런데 쓰러졌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중년인은 군말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적뢰들의 경지가 그들의 예상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정오의 햇살이 빗물에 반사되어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였다.

  아침나절에 비가 오다가 정오가 되자 비가 그쳤다. 그리고 난 후 해가 뜨니 상쾌하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했다.

  적뢰는 오전까지 침실에서 있다가, 몸을 씻고 난 후 정오가 되자 금성객잔으로 향했다.

  적뢰가 오자 점소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늘 앉던 자리로 가시겠습니까?”

  끄덕!

  적뢰가 천천히 3층르로 올라가는 늘 앉던 창가 자리로 이동을 하는데 소리가 들려왔다.

  “적뢰오빠!”

  적뢰가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전에 만났던 귀여운 남궁소희가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귀여운 볼과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가진 남궁소희의 부름에 적뢰는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적뢰오빠, 이리로 와.”

  적뢰는 소희만 보고 다가가려고 하다가 그 옆으로 사내와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망설이이다가 소희가 계속 부르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이동했다.

  “소희야, 반갑구나.”

  “응. 여기는 우리 오빠하고 언니야.”

  “반갑습니다. 적뢰라고 합니다.”

  적뢰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사내와 여인도 대답을 해주었다.

  “반갑습니다. 남궁장천이라고 합니다.”

  “남궁가희예요.”

  “적뢰오빠, 여기 앉아!”

  소희가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빼면서 앉으라고 권유를 하였다.

  적뢰로선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들은 남매들끼리 오붓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적뢰가 방해를 한 꼴이 된 것이다.

  “이거 오붓한 자리를 방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색해 하는 적뢰의 말에 남궁장천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놀랐습니다. 소희가 우리 말고 이토록 친근하게 대하는 분이 있다니 말입니다.”

  “그럼 실례를 하겠습니다.”

  적뢰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소희와 적뢰의 말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장천과 남궁가희가 무안할 정도였다.

  소희는 적뢰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디서 사느냐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어떤 여자를 좋아하느냐 등등....

  적뢰는 웃으면서 귀여운 소희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 주었다.

  여덟 살짜리가 할 만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귀여운 적뢰였다.

  남궁가희의 얼음 같은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약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남궁가희는 빙화라고 불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녀는 언제나 냉철했으며 사내를 대함에 추호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가시가 돋친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강호의 사내들은 그녀의 그런 말조차 아름답게 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아름다움과 남궁세가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아!”

  (이 여성이 바로 그녀였군.)

  적뢰는 잠시 남궁가희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녀였다.

  소설 지존천하에서 멸문한 남궁세가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복수를 위해 제 2의 흡정마녀가 되어 많은 고수들의 정혈을 흡수한 복수녀였다.

  여러 번 주인공인 용비강을 고란하게 만들었다가 혈황에게 당해 엄청난 내상을 입은 용비강을 치료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공력까지 모두 주었다. 마지막으로 불문에 귀의한 모습으로 혈황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그녀의 소설 상에 모습이었다.

  남궁가희의 눈가가 찌푸려지자.

  적뢰는 자신이 너무 생각에 빠져 남궁가희를 쳐다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흐름을 바꾸기 위해 말을 하였다.

  “낯이 익다 했더니 전에 화랑에서 뵈었던 분이군요.”

  “그랬나요?”

  남궁가희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단조롭게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접근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적뢰도 같은 유로 보고는 냉랭하게 대꾸한 것이다. 

  친근한 척 접근하는 놈들의 수작이 뻔히 보인다는 투였다.

  하지만 적뢰는 그 차가운 말투에도 별로 서운해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봤다는 것을 말했을 뿐 그것으로 약간 곤혹스러운 상황을 벗어났기에 어떤 마음을 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남궁장천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동생과 있으면 항상 겪는 일이었다.

  “제 동생이 조금 차갑지요? 저러니 언제 시집을 갈지 그게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저게 매력일 수도 있으니까요.”

  찌릿!

  남궁가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자 남궁장천이 살짝 몸을 떨었다.

  차가운 눈동자, 빙안이 발동한 것이다.

  이 눈빛에 움찔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적뢰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적뢰의 무심한 눈을 보자 남궁가희가 속으로 당황을 했다.

  적뢰는 이미 소설을 통해 그녀의 참혹한 삶을 알고 있기고 전생에 피도 눈물도 없다는 사채업자였기에 이 정도의 눈빛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적뢰는 그때부터 소희와 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간간이 남궁장천이 말을 붙이면 정중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남궁장천은 눈앞의 젊은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잘 구분한다.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좋지 못하면 아이들은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더군다나 저토록 소희에게 좋은 말상태가 되어주니 오히려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적뢰도 남궁장천이 마음에 들었다.

  남궁세가라는 천하제일가의 소가주이면서도 남을 대할 때 배려를 하고 겸손했다.

  저런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질이 아니었다.

  즉, 남궁장천의 당당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구비했다고 볼 수 있었다.

  소희는 귀여웠다. 저런 아이라면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번 자신의 여인들과 자식에 대해 진진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에 비해 가희는 그 미모에 약간 관심이 가지만, 소설상에서 막장 짓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

   

  “얼마 후에 내 장원이 완공이 되니, 소희를 내 장원에 초대하고 싶구나.”

  “정말이요? 정말 가도 돼요?”

  “물론이지. 우리 귀여운 소희가 온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것 고맙군요, 그럼 열흘 후에 조부님의 생신이 있는데, 세가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검왕어르신의 생신에 초대해 주신다면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음, 그런데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아무래도 검왕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물로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적뢰는 선물로 뭐가 좋을지 물어오자 남궁장천은 곧바로 대답했다.

  “조부님은 최근 서예에 빠져 계십니다. 좋은 글이나 문방사우가 좋지 않을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최고로 좋은 글을 한 번 구해 보겠습니다.”

  사삭사삭!

  그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단자락이 스치며 사뿐사뿐 걸어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열정적인 밤을 보내고 일어난 폭렬검후 설리와 금강무후 대려군이었다.

  올라온 그녀들은 곧 바로 적뢰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입을 열기 전에 남궁장천이 한 발 빨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설여협!”

  남궁장천이 일어나 인사를 하자, 남궁자매 역시 일어나 오라비를 따라 인사를 하였다.

  남궁 삼남매를 본 설리 역시 평소 적뢰에게 보이던 사랑에 빠진 음란한 암컷의 표정이 아닌 무림사패의 한 곳인 동검 천검문의 대표하는 여검사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네요, 남궁소협 오랜만이군요, 그쪽은 소협의 여동생들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제 여동생들인 가희와 소희입니다. 어서 인사 들이 거라 천검문의 폭렬검후 설리여협 이시다.”

  “설여협께 인사드립니다. 남궁가희, 남궁소희입니다.”

  소가주인 남궁장천이 설리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일단 나이로는 삼십대 초반인 설리와 이십대 중반인 남궁장천은 비슷한 나이세대로 어떻게 보면 큰 누님 정도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분은 그렇지 않았다.

  설리의 선친인 천검문의 전대 문주인 칠성검조와 태상가주이자 남궁장천의 조부인 검왕 남궁중은 같은 배분이다.

  이미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칠성검조과 말년에 얻은 딸이 설리였다.

  즉, 설리는 현 가주인 남궁혁과 같은 배분이다.

  그렇기에 남궁 삼남매들이 예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곳 안휘에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남궁장천의 말에 설리는 미소를 지우며,

  “뭐, 그런 형식적인 인사는 됐어, 내가 안휘성에 들어온 순간 바로 보고가 들어가겠지, 나도 검왕 어르신이나 남궁가주께 인사를 드리러 가지 않았고, 그런 말은 이제 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설여협.”

  남궁장천 역시 미소를 지우면서 설리의 말을 답하였다.

  “뭐, 이미는 알고 있겠지만, 저기있는 파천도룡 적뢰소협과 여기있는 금강무후 려 여협과 함께 어떤 일을 조사하고 있어, 그러다가 일이 이상하게 꼬여 지금 이렇게 안휘에서 죽 치고 있게 되었지.”

  “그럼 열흘 후에 있는 조부님의......”

  남궁장천이 검왕의 생신에 참석을 물어보자.

  설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하였다.

  “참으로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어, 분명히 남궁세가에서 본문에게 초대장을 보냈을거고, 본문에서는 능장로님과 검모께서 본문 사정상 갈 수 없다는 사과의 친필 서신을 보냈을거야, 그런데 거기에 내가 참가하면 좀 모양세가 이상해지잖아.... 그렇다고 이곳 안휘에 있는데 안 갈수도 없고.....” 

  그렇게 나름대로 거절을 하는 모양새로 말을 하였지만, 남궁장천은 설리가 빠져 나갈 수 없도록 대안을 답하였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있는 적소협을 초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소협 역시 참석을 한다고 하니, 천검문의 문하가 아닌 적소협의 일행으로 참석으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궁장천의 말에 설리는 속으로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검문과 남궁세가 두 문파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여지없이 보여지는 현장이었다.

  둘다 검으로 뛰어난 명문이었고, 당대에 칠성검조와 검왕이라는 두 절대 검객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한상 비교를 당해고 경쟁을 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이유로 칠성검조가 항상 우위에 있었다.

  그 중에 결정적인 것이 바로 칠성검조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아직 초절정의 경지였던 검왕과 격차가 벌어졌고, 그것은 지금까지 평생 경쟁을 하던 두사람의 경쟁이 끝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 후 검왕 일찍 가주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남궁세가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덕택에 하루아침에 젊은 나이에 가주가 되고, 수뇌부 교체로 인해 한 동안 남궁세가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젊은 시절 가주가 되어 고생을 하게 된 남궁혁은 그 반발심은 은근히 천검문 제자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쳤다.

  그래서 천검문의 제자들은 한 때 가능한 남궁세가와 부딪치는 일을 피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칠성검조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그런 천검문에 대한 짓궂은 움직임이 다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설리는 매섭게 남궁장천을 노려보며, 무슨짓이냐? 하는 뜻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남궁장천은 그런 설리의 눈빛을 능청스럽게 눈웃음을 지우며 피했다.   

  남궁장천의 그런 모습에 설리는 확실히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궁장천에게 말했다.

  “휴우~ 그런 내 자리는 적소협 일행이니 아래쪽으로 해줘, 알잖아 평소 내가 얼마나 그런 자리를 힘들어 하는지를.....”

  연회의 자리를 뒤쪽으로 해 달라고 남궁장천에게 말하였다.

  설리는 칠성검조의 딸이라는 신분덕택에 언제나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각 문파들의 문주나 장로들이 앉는 자리에 참석을 하였다.

  실제 그런 자리의 연령층은 전부 그녀의 윗세대이기에 설리는 그런 자리가 연 불평하였고, 그것은 남궁장천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내는 설리의 눈빛에 남궁장천은 웃으면서 허락을 하였다.

  “물론입니다. 자리는 확실히 설 여협이 뜻대로 뒤편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 후, 두 여인이 자리에 추가되어 식사를 하였다. 

  다시 시작된 식사에서도 적뢰와 소희의 대화로 가득했다. 

  간간히 설리와 남궁장천 역시 대화에게 끼어들었지만, 대화의 중심은 적뢰와 소희였다. 

  남궁가희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흥!)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그녀조차도 알지 못했다.

  항상 모든 사내들의 우상처럼 대접받다가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하자 의외의 기분을 느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은 식사를 다 했으니 다음에 또 보죠.”

  적뢰가 인사를 하며 먼저 일어났다.

  남궁소희가 매달렸지만 점심시간 이후에 다른 일을 해야 했기에 다정히 만류했다.

  “소희야, 나중에 또 보자. 그때에 내가 맛있는 것 많이 사주마.”

  “정말이지요?”

  “물론!”

  그렇게 그들은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열흘이 금세 지나갔다.

  (음, 오늘은 남궁세가에 가는 날이군.)

  닷새 전에 남궁세가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 

  남궁장천이 보내온 초대장이었다.

  선물을 준비할여고 했지만, 이미 안휘성에서는 귀중품이 품절이 나 있었다.

  당연히 안휘성의 패자인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인 남궁중의 생신 때문이다.

  그 덕택에 적뢰는 천년내공을 가진 대려군에게 업혀 낙양까지 올라가서 선물을 사고 다시 안휘로 내려왔다.

  거리만 생각하면 열흘 정도 걸리는 시간을 이틀만에 완료를 한 것이다.

  처음 적뢰가 대려군을 얻을 때 생각한 것처럼, 용비강의 만리천붕 대신 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될 수 있을거라 예상이 들어맞는 결과였다. 

  남궁세가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를 정도로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남궁세가는 무림세가이니 남궁세가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무림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문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일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무인들의 대지 위에서 천하제일의 세가로 평가받을면서도 은혜와 원한을 어쩔 수 없이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원한으로 인해 자치 잔치가 불행한 일로 번질 수 있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남궁세가의 거대한 대문과 성벽처럼 높은 담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드는 힘과 저력이 있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버텨온 남궁세가의 저력은 함부로 평가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적뢰일행은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정문에서 초대장을 접수하는 사람은 남궁세가의 외총관으로 세가의 대외적인 업무를 보는 이였다. 평소라면 문지기들이 하겠지만 오늘은 검왕의 팔순이라 강호의 명문세가나 고수들과 명사들이 소홀히 대할 수 없었기에 그가 남궁세가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뢰가 초대장을 외총관에게 주었다. 

  초대장에는 남궁세가의 직인이 찍혀 있었기에 무사히 확인을 마칠 수 있었다.

  “남궁세가에 온 것을 환영하요.”

  “감사합니다.”

  문을 들어서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세가에 온 적이 있었던 설리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렇게 내원으로 향하자 그 앞으로 두 명의 남궁세가 무인이 막아섰다.

  “여기는 외부인 출입하는 곳이 아닙니다.”

  “음, 그렇군요. 그럼 제가 왔다는 것을 전해 줄 수는 있습니까?”

  “누굴 찾으십니까?”

  “절 초대한 분은 소가주님이십니다.”

  적뢰가 소가주의 초대로 왔다는 말에 남궁세가 사람들은 조금 놀랐다. 그들이 알기에는 소가주는 함부로 외부인을 집안잔치에 초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소가주는 남을 대하는데 예의를 다하면서도 확실한 신용이 있지 않고서는 쉽게 믿지 않았다.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적뢰라고 합나다.”

  그들은 즉시 소가주에게 소식을 전해 준다고 하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되지만, 소가주님이 바쁘면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연회를 줄기고 계십시오.”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저희가 왔다는 말만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반각 정도 기다리고 있던 적뢰에게 남궁장천이 왔다.

  “오래 기다렸지요?”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아, 조부님의 생신잔치에 초대받은 것이 어서 연회장으로 가시지요.”

  그렇게 남궁장천의 안내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궁세가의 연회장은 거대한 연무장에서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공간이 남아 있었다.

  연회장의 식탁은 두 줄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그 중심의 끝에 오늘의 주인공인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인 검왕 남궁중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아들인 가주인 남궁혁이 있었다.

  남궁중은 허연 수염과 더블어 당당한 풍체를 지니고 있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허연 수염이 그가 팔순의 노인이라는 것을 보여 줄 뿐,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저 사람이 검왕이라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남궁중의 옆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게서 온 귀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강호 밥을 먹은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들이었다.

  남궁중, 남궁혁 검왕부자의 주변에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귀빈에게 인사를 받고 강호의 고수들에게도 축하를 받았다. 

  모든 과정이 끝이 나고 나자 남궁장천이 적뢰일행을 데리고 조부와 부친에게 소개를 시켜려고 하자.

  설리는 일단 배정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은 나중에 따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남궁장천에게 말하였고, 남궁장천은 이에 응했다.

  “조부님!”

  “그래, 천아, 무슨일이냐?”

  “여기 제가 소개를 하고 싶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나에게 소개를 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니 뜻밖이구나? 네 평소 성격으로 매우 소중한 친구라 할 수 있겠구나.”

  남궁혁은 아들인 남궁장천의 뒤로 보이는 젊은 청년인 적뢰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였다.

  무공을 익혔는지 살펴지만 내공을 수련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겉으로 보이는 외형에서 상당한 수련을 했는지 몸 자체의 균형이 뛰어나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남궁혁은 아들이 소개한 사람이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자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있던 부친인 검왕은 뭔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음!”

  그리고 상대편 역시 뭔가 놀랐는지 눈을 크게 흔들렸다.

  부친인 검왕이 무엇에 놀랐는지 궁금하여 부친을 얼굴을 쳐다보던 남궁혁이었지만, 곧 바로 적뢰가 남궁부자를 향해 인사를 하였다.

  “적뢰라고 합니다. 강호동도들이 파천도룡이라는 과분한 명호를 받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흠모하던 검왕 선배님과 남궁세가 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론 입에 발린 말이지만 적뢰는 그저 형식적으로 대하였다. 

  “파천도룡 적뢰라......., 그래 반갑네, 우리 장천이가 인복을 타고났군 그래 아주 귀한이와 친분을 가지다니......”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아니야, 아니야, 연회가 끝나고 나서 나란 차라 한 잔 하지 않겠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조부님, 적아우가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궁장천이 적뢰의 선물을 남궁중에게 주었다.

  남궁중은 아무 생각 없이 선물을 받다가 그 선물의 가치를 알아보곤 매우 놀랐다.

  “오호, 이런 귀한 선물을 준비하다니..... 이렇게 방문을 한 것도 고마운데 선물까지 받으니 내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군.”

  “아닙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부친인 검왕이 이렇게 귀하게 대하는 청년은 처음 보았기에 남궁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적뢰에 대한 조사 보고서 내용을 떠올랐지만,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부친인 검왕이 매우 반갑게 대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남궁혁이 그렇게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는 사이에 검왕과 적뢰의 간단한 인사는 끝나고 적뢰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살며시 적뢰는 뒤돌아 검왕 남궁중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남궁중 역시 적뢰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다시 적뢰는 고개를 돌려 자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재미있군, 초절정으로 알려진 검왕이 화경이라......)

  그렇다, 적뢰가 놀란 것은 소문으로 들었던 검왕의 경지가 그 보다 높은 절대지경인 화경의 경지라 놀란 것이다.

  검왕 역시 같은 경지에 오른 적뢰를 알아보고 매우 놀라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뢰는 보았다, 검왕 남궁중의 눈 속에 들어있는 가공할 투지를 그렇기에 깨달았다. 연회가 끝나고 차 한 잔의 의미를......

  (그 연세가 되었는데도 무에 대한 호승지심은 대단하군요. 검왕!)

  (저 역시 기대가 되는군요. 남궁세가의 검, 검왕의 검이......) 

  적뢰는 자신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아 연회장에 차려진 음식을 골라 먹었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역시 명문가 잔치여서인지 음식의 질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적뢰는 음식을 먹고 술을 한잔 마셨다.

  (응?)

  혀끝을 자극하는 술의 뒤끝에서 지독한 기운이 감지가 되었다.

  이미 독성부에서 고금제일의 독공인 만독심형공의 구결을 보고, 그에 파생된 독성부의 오대독공의 하나인 천하제일의 피독신공인 조화독공을 연마하여 어떤 미세한 독도 바로 구분해 낼 수가 있었다.

  (잔치와 더불어 독이라.....?)

  (그렇군, 바로 오늘이군, 남궁세가 멸문의 D 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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