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52)

색몽전

22

  새벽 무렵이다.

  스으! 스으!

  몇 장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하북성의 소오대산에 산역을 자아구하게 뒤덮고 있었다.  

  어느새, 중원의 북방이라 할 수 있는 이곳 하북성 역시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구욱!

  문득 미명의 안개 속을 뚫고 날카로운 괴조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콰아아아!

  맹렬한 선풍을 일으키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안개 속을 날아가고 있었다.

  거대한 새의 형상, 바로 만리천붕이었다.

  “천붕 이 근처에서 내려주세요.”

  안개 속에서 나직한 청년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만리천붕의 등 위에서 용비강이 비스듬히 걸터앉아 곳 땅에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양곡에서 태양오관에 들어가서 열흘동안 태양곡의 절학을 습득한 용비강은 만리천붕을 타고, 빠른 시간안에 소오대산에서 벗어난 것이다.

  대괴벽에 붕검선부, 태양곡의 태양오관등 사람이 없는 험지에서 한동안 생활을 하였기에 가능한 몇일 동안 편안한 성내에 있는 객잔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만리천붕에서 내린 용비강을 주변을 살펴보았다.

  안개 속이라 자신과 만리천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을 한 용비강이었다.

  자신이 내린 곳이 하북성의 남부지역이라 떠올랐다.

  “아마, 이쪽은 벽령당의 영역 안 일 것이다.”

  하북삼세.

  오랜 세월 하북성에서 무력으로 세력을 일으킨 세 곳을 가리킨 말이다.

  태양곡,

  팽씨세가,

  벽력당.

  이 세력들은 비슷한 시기에 개파를 하여 오랜 세월 하북을 삼등분 하였다.

  하지만, 그 영광도 어느새 일장춘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삼세중에 가장 강하고, 하북을 넘어 무림 사패에 북화가 되었던 태양곡은 18년 전에 의문의 멸문을 당하였다.

  선천적인 신력과 패도적인 도법으로 오대세가 중에 한 곳인 팽씨세가는 십여년 전 현 황제의 북경 천도로 인해 그 세력권이 축소와 힘의 제약을 당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바로 벽력당 뇌씨일족이다.

  화기의 명가인 그들은 각종 화포와 화탄을 만드는 데 능통했다.

  하북 벽력당에서 만들어지는 화기는 하나같이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들이라 무림의 절정고수라고 해도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벽력당의 뇌씨일족은 중원의 정세가 바뀔 때마다 갖은 곤욕을 겪어야 했다. 

  역대 왕조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북 벽력당의 화기를 필요로 했고, 그런 이유로 권력자들은 갖가지 유형, 무형의 수단을 동원하여 벽락당의 뇌씨일족을 옭아매려고 했다.

  그리고 당대는 강대한 무력을 철혈황제가 통치하는 시대였다.

  황제의 압력에 견디다 못한 당대의 벽력당의 당주는 화기 개발 및 그 기술을 포기하고 모든 자료를 나라에 받쳤다. 

  그렇게 화기 기술을 포기하고, 순수한 무가로 새롭게 시작을 하자. 

  나름대로 벽력당 내부 및 그 주변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본래 벽력당의 뇌씨일족은 화기뿐 아니라 열양의 내가기공으로도 유명했다.

  그들 일족의 벽력신공은 극양신공으로 아주 뛰어나 오직 태양곡의 무학에만 상좌를 양보를 한다 할 정도로 뛰어났다.

  현재 태양곡이 없는 이상 명실상부 천하제일의 극양무학을 가진 문파가 되었기에 이런 혼란은 근방 벗어나 과거보다 큰 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세인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벽력당에 대해 머릿속으로 떠오른 용비강은 자신의 의문을 떠올랐다.

  (만약, 기회가 되면 벽력당의 벽력신공을 보고 싶구나.....)

  용비강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태양곡에서 태양오관에 들어가 태양곡의 모든 무학을 보았다.

  그 중에서 마지막 오관에 있는 오직 곡주만 연성할 수 있는 태양곡의 지존무학인

  극일천양신공,

  천양사수,

  태양삼패검.

  그 중에서 태양삼패검은 천무오검중에 삼검하고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두 무학은 아니었다.

  자신이 연마하고 있는 무극양의신공이나 무극장에 비해 위력이 한 수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마 용비강 자신의 무학을 본 안목이 전설상의 천외천에 무학인 천검의 구결 덕택에 안목이 늘어나 이런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태양오관의 있는 태양무학 말고 또 다른 비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태양곡 다음으로 가장 뛰어난 벽력당의 극양신공을 본다면 자신의 의문을 해결 할 수 있을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악!”

  돌연 안개 속에서 날카로운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용비강은 흠칫했다.

  (이런 새벽에 웬 여자의 비명소리란 말인가?)

  용비강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몸은 질풍같이 방향을 틀어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 나갔다. 

  새벽 안개에 싸인 산속.

  “흐윽..... 가..... 가까이 오지마라!” 

  찢어질 듯 날카로운 소녀의 비명이 새벽의 적막을 깨뜨리며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른 것은 16~18세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나이답지 않게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이 소녀는 새하얀 흰 피부에 깎아 빚은 듯 단아한 용모를 지녀 사내라면 누구라도 첫눈에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일신에 걸친 옷은 붉은 단삼인데 기이하게도 그녀는 눈썹과 머리카락, 그리고 심지어 눈동자까지도 은은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눈같이 흰 피부에 붉은 머릿결, 앵두같이 붉은 입술과 맑고 투명해 보이는 은은한 불꽃처럼 일렁이는 투명한 눈동자는 강렬하면서도 정열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지금 홍의소녀는 네 명의 사내들에게 제압당해 수난을 겪고 있었다.

  “흐흐, 고것 그냥 삼켜도 비린내 하나 나지 않겠는걸!”

  “앙탈부리지 마라! 곧 극락구경을 시켜줄 테니!”

  흉흉한 인상을 지닌 네 명의 흑의인은 소녀를 찍어 누른 채 겁탈하려는 중이었다.

  그들 중 한 놈은 바둥거리며 몸부림치는 소녀의 팔을 누르고 있었고, 두 놈이 소녀의 양 발목을 벌려 누른 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찌익!

  나머지 한 놈이 홍의소녀의 상의를 거칠게 찢어냈다. 

  그러자 희디흰 속살과 함께 소담스러운 젖가슴이 물결치듯 출렁이며 드러났다. 나이에 비해 아주 풍만하고 탄력 넘치는 젖가슴이었다.

  

  “이 악적들! 차라리 날 죽여라!”

  홍의소녀는 흉한들의 눈앞에 자신의 속살이 드러나자 분노와 수치를 금치 못하며 악을 썼다.

  흉한들은 그런 그녀의 외침에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클클! 물론 죽여준다. 우리 네 어르신네들을 차례로 즐겁게 해주다보면 너도 죽을둥 살둥 모르게 될 것이다!”

  찌직!

  홍의소녀의 상의를 찢은 흉한은 다시 그녀의 치마를 움켜쥐어 거칠게 찢어냈다.

  “악!”

  날카로운 소녀의 비명과 뽀얀 하체가 드러났다. 철이 든 이래 단 한 번도 햇볕에 노출 시켜본 적이 없는 허벅지의 속살은 만지면 묻어날 듯 새하얗다.

  투툭!

  치마에 이어 하나 남은 작은 고의마저 찢겨나갔다.

  “흐윽!”

  소녀는 자신의 부끄러운 곳이 사내들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남을 느끼며 치욕에 몸을 떨었다.

  허벅지 사이의 도독하게 부푼 둔덕 일대에는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털이 자잘하게 덮여 있는데 기이하게도 그 털들은 은은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붉은 빛을 띤 숲 아래로 소녀의 비밀이 수줍게 숨어 할딱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여자의 비밀을 노출시킨 홍의소녀는 수치심으로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네... 네놈들이 나 벽력화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하느냐?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이 원수는 꼭 갚고야 말겠다!”

  “흐윽!”

  앙칼지게 외치던 소녀는 마침내 분함을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미 욕정에 눈이 멀어버린 오십 전후의 나이로 보이는 흉한들은 그런 홍의소녀의 애처로운 모습에 더욱 강한 자극을 받아 눈빛이 지극히 음흉해 보였다. 

  “켈켈! 너도 한번 이것을 맛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벽력화란 이름을 지닌 소녀의 옷을 찢어낸 흉한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는 자신의 바지를 벗어 내렸다.

  순간 벽력화는 질겁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내의 일부는 너무도 징그럽고 흉칙했기 때문이다.

  “치... 치우지 못해?”

  벽력화는 질끈 눈을 감으며 악을 썼다.

  하지만 사내는 히죽 웃으며 음탕하게 지껄였다.

  “흐흐흐! 너는 처녀라 이것이 얼마나 기막힌 보물인지 모를 것이다.”

  “이 맛을 알게 되며 이것을 맛보기 위해 너 스스로 달려들 것이다.”

  “비겁한 놈들 독을 사용하다니...”

   (아아...... 틀렸다. 음산사마에게 걸렸으니.....)

   (거기다가 용아마저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으니... 죽어서도 조상님들 뵙지 못하겠구나.)

  벽력화, 그녀는 절망의 표정으로 내심 탄식했다. 

  음산사마 

  음산을 활동무대로 삼는 전대의 노마들이었다. 

  스스로 마도의 후예임을 내세우며 음산파를 세우고 채음보양의 사술로 지금까지 수많은 아녀자들을 겁탈했다. 

  공분을 느낀 많은 무림인들이 그들을 토벌하려했으나 의외로 그들의 무공이 높아 번번히 실패했다. 

  그런 그들이 이곳 하북에 나타난 것이다.

  벽력화는 지금 강력한 산공독에 중독되어 내공의 태반이 흩어진 상태였다. 

  그런 음산사마 중에 일마가 벽력화의 알몸에 자신의 몸을 겹쳐 누웠다.

  “비… 비켜! 비키란 말이야!”

  사내에게 깔린 벽력화는 악을 쓰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사지가 눌려진 어린 소녀의 저항이란 것은 너무도 무력한 것이었다.

  사내는 그런 벽력화의 하체를 짓누른 채 당장이라도 지워질 수 없는 낙인을 찍을 듯 희롱해대었다.

  “흘흘! 빨리 끝내시구요! 구경하는 동생들도 생각하셔야지요!”

  벽력화의 다리를 찍어 누르고 있던 다른 사내가 음충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크! 알았네! 너무 안달하지 말게나!”

  벽력화를 찍어누른 일마가 킬킬대며 바둥대고 있는 벽력화의 허벅지를 찍어눌러 옴쭉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표적을 겨누고 자신의 흉기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여갔다.

  “이... 이 죽일놈!”

  벽력화는 자신의 정조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음을 느끼며 두 눈을 하얗게 치떴다.

  일마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서서히 하체에 힘을 주었다.

  “아악! 안돼!”

  순간 벽력화의 입에서 고통에 찬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일마의 흉기가 돌입하는 순간, 헌데 바로 그때였다.

  “적이다!”

  “웬 놈이냐?”

  돌연 일마의 등 뒤에서 삼마들의 폭갈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벽력화의 팔 다리를 누르고 있던 손들이 급히 떨어져 나갔다.

  막 소녀를 정복하려던 일마는 흠칫했다.

  “이런 빌어먹을! 어떤 놈이 산통을 깨는 것이냐?”

  파팟!

  일마는 벽력화의 마혈을 찍고는 급히 일어섰다.

  차차창! 카카캉!

  그런 일마의 귀로 요란한 쇳소리와 폭음이 들려왔다.

  “우욱!” 

  “크으! 이럴 수가!”

  경악의 신음성과 함께 세 개의 인영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보였다.

  벽력화를 능욕하려던 일마는 경악의 눈빛을 지었다.

  (어떤 놈인데 셋 아우들과 맞서 우세를 점한단 말인가?)

  일마는 바지를 추스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공적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은 뛰어난 합공술 때문이다.

  그들 중 두 명만이 합공을 해도 쓰러뜨리지 못한 고수가 없을 정도였다.

  설혹 무림 십대고수라도 그들의 합공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한데 누군가 그런 음산사마중에 셋과 충돌하고도 오히려 삼마를 밀어낸 것이 아닌가?

  벽력화를 능욕하려던 일마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였다.

  “네놈들은 누군데 감히 벽력당의 근역에서 음행을 행하는 것이냐?”

  저벅! 저벅!

  한소리 음산한 일갈과 함께 안개 속에서 한 명의 청년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 청년은 물론 용비강이었다.  나타난 인형이 나이 어린 청년임을 보자 음산사마의 눈에 흉광이 번뜩였다.

  “죽일놈! 어른신의 흥취를 방해하다니”

  음산사마중 셋째가 소리쳤다. 이어

  “그냥 곱게 자빠져 있으면 너에게도 이 암캐를 시식할 기회를 주겠다” 

  “헉!”

  상대가 어린 청년이라는 것을 알고 방심하며 음담을 내뱉던 사마는 일순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스읏!

  섬뜩한 한광과 함께 용비강이 자신의 앞으로 쇄도해 들었기 때문이다.

  (빠...... 빠르다!)

  사마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꼈다. 

  다음 순간.

  “물러나랏!”

  콰르르쾅!

  그들의 입에서 잔혹한 일갈이 터져 나옴과 함께 쌍장이 맹렬히 엇갈려 내쳐졌다. 

  같은 순간 네 방향에서 일제히 파고드는 치명적인 장력들.

  "위험해요!“

  마혈이 짚인 채 누워있던 소녀 벽력화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녀가 보기에 용비강이 피할 곳은 전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삭혼합벽장.

  음산사마의 바장절기 

  그것에는 강력한 접인지력이 실려 있어 십장 내의 어떤 표적이든 옭아매어 버리는 위력이 있다. 

  거기다가 삭혼장력은 연마한자 장력을 더 할수록 위력은 배로 증폭된다.

  그런 삭혼장력을 특성을 살려 음산삭혼 합벽진을 만들었기에 음산사마는 일갑자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껏 삭혼장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스읏!

  덮쳐든 인영은 그저 한 차례 멈칫했을 뿐 다음 순간 더욱 빠르게 음산사마의 앞으로 육박해 들었다. 

  이어 용비강의 몸에서 밝은 푸른 빛 서기가 일렁이며 가공할 검기가 그들에게 몰아쳐 갔다. 

  “이것은... 천무검”

  음산일마는 대경실색했다.

  일마는 천무검법을 알아보았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그들은 불신과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안돼!!!”

  다음 순간. 

  촤아악!

  “으아아악~!!!”

  폭음과 함께 음산사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용비강의 검에서 나온 검강이 음산사마의 합벽술로 만든 초강력 호신강기를 일격에 깨뜨리고 그들의 몸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직후.

  파앗!

  후두둑...... 

  음산사마의 몸에서 한줄기의 핏줄기가 솟구쳤다.

  용비강의 일격에 넷을 한 번에 밴 것이다.

  “으윽 이렇게 강하다니...”

  음산사마는 고통에 찬 목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오늘 음산파를 만들어 많은 여인들의 정조들 더럽히던 음산사마는 이곳 하북성에서 모두 뼈를 묻은 것이었다. 

  음산사마의 비참한 최후였다 

  “다친 곳은 없소?”

  용비강은 한숨을 내쉬며 소녀 벽력화에게로 다가섰다.

  “.....!”

  벽력화는 용비강의 시선을 느끼고 수치로 몸을 떨었다.

  그녀는 능욕 당할 뻔했던 자세 그대로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누워있었다. 그 바람에 붉은 털이 소담스럽게 덮인 그녀의 비역 일대가 그대로 용비강의 눈에 노출되었다.

  그 같은 아찔한 모습에 용비강은 절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혈이 제압되었소?”

  “예!”

  용비강의 물음에 벽력화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파앗!

  용비강은 순간 고개를 돌린 채 지력을 날려 벽력화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대협!”

  벽력화는 급히 일어서며 나신을 웅크렸다.

  그녀의 옷은 모두 갈가리 찢겨 가릴 것이 없었다.

  벽력화는 옥용을 새빨갛게 붉힌 채 다리를 모으고 팔로 나신을 끌어안아 잔뜩 웅크리고 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그런 자세로 힐끗힐끗 용비강을 훔쳐보았다.

  용비강은 그 모습에 소리 없이 미소지었다.

  

  (귀여운 소저군!)

  용비강은 벽력화에게 절로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일견하기에 성격이 괄괄해 보였다. 

  순진무구하고 티없이 맑은 표정을 지닌 그녀에게 용비강은 절로 호감이 생겼다.

  “이자들은 누구요?”

  용비강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벽력화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그자들은 음산사마라는 전대거마들이예요!”

  벽력화는 용비강의 장포를 알몸에 걸치며 말했다.

  “자세한 설명을 드릴 시간이 없어요! 소녀를 좀 도와주세요, 대협!” 

  “동생이 위험해요!”

  장포를 걸친 벽력화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비강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간을 모았다.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해 보시오!”

  “미안해요. 너무 마음이 급하다보니 그만......”

  그제서야 벽력화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음성으로 말했다.

  “인사드리는 것이 늦었어요. 소매는 벽력당의 제자인 뇌화영이라고 해요. 남들은 소매를 벽력화라 불러 준답니다!”

  용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벽력화! 잘 어울리는 별호다!)

  그는 마치 불의 정령같은 눈앞의 아름답고도 귀여운 소녀를 보며 절로 미소를 지었다.

  “뇌소저셨구려! 한데 귀문에 무슨 일이라고 생겼소?”

  그 말에 벽력화 뇌화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자세한 사정은 가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선은 독에 증독된 동생이 안위가 먼저라.....”

  말과 함께 벽력화는 몸을 날렸다.

  그녀의 다급한 모습에 용비강은 할 수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얼마안가, 낡은 산신묘가 나왔다.

  그 안에는 한 명의 소년이 가부좌를 튼 채 운공하고 있었다.

  나이는 용비강보다 두세 살 어려보이는 십 오륙 세 정도로, 얼굴 선이 뚜렷하고 두 눈 부위가 움푹 파인 영준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일신에 붉은 적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의 눈썹은 물론 머리카락까지도 은은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츠으... 츠으!

  운공하고 있는 소년의 몸 주위로 불꽃같이 강렬한 화망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극독에 중독된 듯했는데 지금 내공으로 그 독기를 태우고 있었다.

  용비강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놀라고 있었다. 

  (저것은.... 벽력당 비전의 벽력신공을 구성에 이르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적포소년을 주시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인데.... 저 정도의 성취를 이루다니... 이 아이의 신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놀라움과 함께 의아함을 금치 못하는 용비강의 귀에 문득 벽력화 뇌화영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아이는 제 동생이자, 벽력당의 당대 당주인 벽력잠룡 뇌화룡이에요!”

  “벽력잠룡 뇌화룡?”

  용비강은 흠칫 놀라며 뇌화영을 돌아보았다.

  “이 소협이 벽력당의 당주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벽력당의 당대 당주는 벽력천공 뇌패천이 아니던가요?”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요!”

  뇌화영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용비강은 그녀의 말에 직감적으로 벽력당에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을 감지했다.

 벽력천공 뇌패천!

  당대 벽력당의 당주로써 극양기공과 화기제조술에 당대제일의 인물이었다.

  그의 벽력신공의 경지는 벽력당의 개파조사 벽력자 이후, 최고라고 알려졌다.

  한데 뇌패천은 일 년 전 누군가의 초청을 받고 벽력당을 나갔다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뇌화영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용비강에게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벽력천공의 아내인 저희 어머니이신 벽력대부인 모용혜께서 아버님 대신 벽력당을 관장해 왔는데 최근 더 이상 벽력당의 지존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벽력당 원로들의 주장으로 이 아이가 제 십대 벽력당주가 된 거예요!”

  말과 함께 설명을 하였다.

  황실의 압력에 부친인 벽력천공은 화기제조 기술을 포기하고 그 제조비법을 황실에 넘겼다.

  그렇게 기술전수 과정에서 부친인 벽력천공이 실종이 되자.

  황실에서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수시로 벽령당의 수뇌부들을 호출을 하였다.

  사실 나이 어린 벽력잠룡을 당주로 세운 이유, 역시 황실에 오해를 풀기 위한 한 가지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뇌화룡은 당주가 되자마자, 바로 황실에 호출이 되어, 금의위, 동창, 군부등에 조사를 받았고, 같이 온 누나인 벽력화 뇌화영과 귀환 도중 전대 거마인 음산사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음산사마의 독에 의해 호위들이 쓰러지고, 뇌화룡 역시 극독에 증독되자.

  뇌화영은 음산사마를 유인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음산사마에게 잡혀 위기에 빠진 것을 용비강의 도움으로 구함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용비강은 형형한 눈으로 벽력잠룡 뇌화룡을 주시했다.   

  츠으... 츠으...!

  그때 뇌화룡의 전신을 감싼 벽력의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그에 따라 뇌화룡의 전신 팔만사천 모공에서 검은 땀이 배어 흘러나왔다. 

  그것은 벽력신공의 극양지기에 독기가 녹아나는 현상이었다.

  독을 내공으로 태울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뇌화룡은 벽력당주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주르르...!

  헌데 문득 뇌화룡의 감은 눈썹 사이로 한 줄기 눈물이 배어 흘렀다. 

  그 모습에 용비강은 흠칫했다.

  (울다니...! 이 어린 친구에게 무언가 남에게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의 눈으로 언뜻 한 줄기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번쩍!

  그때 운공하던 뇌화룡이 벽력기를 거두며 감았던 눈을 떴다.

  "누님!“

  이어 뇌화룡은 자신의 앞에 뇌화영이 서 있는 것을 보자 안도의 빛을 지으며 벌떡 일어섰다. 

  뇌화영은 동생인 뇌화룡을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마! 나는 괜찮아, 음산사마는 이 용소협이 쓰러트렸다.”

  “...!”

  뇌화룡은 용비강이 음산사마를 죽였다는 말에 놀란 눈빛으로 용비강을 돌아보았다.

  용비강은 내심 고소를 지었으나 포권하며 말했다.

  “용비강이라고 하오, 사문은 일단은 말씀 드릴 수가 없소.” 

  “하지만, 벽령당의 장로들이라면 제 검을 본다면 사문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을 것이오.”

  용비강의 말에 뇌화룡은 용비강의 허리와 등뒤에 있는 천무혼과 혈마검을 쳐다보았다.

  그 중에서 천무혼을 보고 매우 놀란 표정으로 용비강을 바라보았다.

  “그 검은...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 분의 후예입니까?”

  뇌화룡의 말에 용비강은 미소를 지우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남매가 귀한 분을 만나군요, 일단 저희 벽력당에 초대를 하고 싶군요.”

  

  뇌화룡의 말에 용비강은 전중히 초대를 받아 주었다.

  그 후 세 사람은 산신묘에서 나와 벽력당으로 몸을 날렸다.

  산속에서 나오자, 한 채의 거대한 석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가 온통 단단하기로 유명한 청강석으로 지어진 석성이었는데 석성을 감싼 성벽이 수십 리에 뻗쳐 있어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또아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이었다. 

  벽력당!

  그렇다. 이곳이 극양무학과 화기제조에 최고인 벽력당인 것이다.

  한 눈에 봐도 벽력당의 건축양식은 중원의 건축양식이 아닌 서역이나 천축의 석조 건축물 형태였다. 

  그것은 목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중원의 건축보다 석조 중심의 건축물이 화기에 더 안전하기에 원나라 시대에 들어온 서역의 건축가의 고용하여 벽력당을 건축 하였다고 한다.

  스으... 스으...

  아침 해가 떠오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오전,

  벽력당의 정문,

  “.....!”

  “.....!”

  몇 명의 인물이 초조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늙은 노인들이었다.

  그 노인들의 전면에는 한 명의 미부가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 정도, 일신에 타는 듯 붉은 궁장을 걸친 미부였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녀의 눈썹과 머릿결은 모두 타는 듯 붉은 빛이었다. 

  적발적미인 이 미부는 매우 아름다웠다. 

  눈썹이 유난히 짙고 눈꼬리가 위로 치솟아 성격이 드세 보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덩어리의 타오르는 불길을 보는 듯했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아름다움, 그것은 젊음보다 더 빛나보였다.

  벽력대부인 모용혜,

  이것이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바로 벽력천공 뇌패천의 아내이고 벽력화 뇌화영과 벽력잠룡 뇌화룡 남매의 생모가 되는 여인이었다.

  남편 벽력천공이 일 년 전에 실종된 후부터 그녀는 벽력당을 관장해 왔다. 

  최근 아들 벽력잠룡 뇌화룡이 신임 벽력당주가 되었으나 당분간은 그녀가 계속 수렴청정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쐐액! 화라락!

  문득 산맥의 좌측 능선으로 세 개의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바로 용비강과 뇌가 남매였다.

  삼인은 뇌화룡을 선두로 질풍같이 벽력당으로 다가섰다.

  “용아! 영아!”

  화락!

  자식들을 발견한 벽력대부인 모용혜는 환하게 웃으며 삼인을 향해 마주 날아갔다.

  “아아! 무사했구나, 나의 아이들...!”

  모용혜는 와락 남매를 끌어안으며 안도의 오열을 터뜨렸다.

  용비강은 몸을 멈추며 모용혜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나갔다.

  (이 여인이... 벽력대부인 모용혜인가?)

  남매는 그런 어머니 모용혜의 가슴에 푹 파묻힌 형상으로 안겨 있었다.

  헌데,

  "...!“

  용비강은 모용혜에게 안긴 뇌화영과 다르게 뇌화룡의 표정이 아주 복잡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뇌화룡의 눈빛은 어떤 연민과 고통의 빛으로 젖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용비강은 음울한 눈으로 모용혜 모자를 지켜보았다.

  그때,

  “어머님! 소개시켜 드릴 분이 있어요!”

  문득 뇌화영이 모용혜의 품에서 벗어나 용비강을 모용혜에게 소개했다.

  모용혜는 용비강에게 시선을 돌리며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용소협. 저희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이 은혜는 저희 본 당이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별 말씀을... 그런 말을 들으려고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과도한 인사에 용비강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푸근한 모용혜의 인상에서 기억속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모용혜는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자! 어서 들어가요. 본 당에 매우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잔치라도 벌여야지요.”

  그녀는 따뜻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용비강은 순간적으로 모용혜의 미간 사이로 분홍빛 점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그는 내심 흠칫했다.

  (저것은... 일종의 고에 중독된 현상이 아닐까?)

  그는 검미를 모으며 염두를 굴렸다. 그 사이 모용혜 등은 이미 저만큼 앞서 걷고 있었다.

  용비강은 조심스럽게 눈을 번뜩였다.

  (흐음! 이것은 관찰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급히 걸음을 옮겨 중인들의 뒤를 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