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몽전
18
그날 밤,
대공자의 장원에서 한 인영이 너무도 쉽게 담을 넘어 내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내원 깊숙한 곳의 불이 밝혀져 있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도자기와 그림으로 치장된 방 안에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성과 요염한 여성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 밀실에서 음란한 짓을 하던 바로 그 남녀였다.
“확인해 보았느냐?”
“예, 삼공자와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대공자는 저녁도 같이 하면서 장 시간의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그 밀담 내용은?”
“천검문의 폭렬검후 설리의 경지가 정보보다 높아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다. 물러가라.”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인형이 사라지자 석추명은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뭔가 있어, 내가 모르는......”
석호명의 암습이 실패했을 때부터 기이한 불안감에 휩싸였던 석추명은 석호명과 그를 구한자들이 대공자인 석대명을 만났다는 사실에 그 불안감이 더 가중되었다.
그래서 즉시 부하를 시켜 알아본 것이다.
“호호,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석동생!”
“우리 준비는 완벽해, 설사 상대가 눈치를 채도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
여성은 요염하게 웃으면서 석추명을 안심을 시킬 때,
“사내가 그리 겁이 많아서야 어찌 대업을 할 수 있겠나?”
“헉!”
척!
갑자기 천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석추명은 기겁하며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중년인은 바닥에 착지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석추명과 여성을 바라봤다.
“팔좌 어르신이셨군요.”
나타난 남자를 보며, 여성은 매우 반가워 하였다.
“인사해, 동생 바로 본회에서 이번 거사에 지원오신 구대신마의 살마 호법님이야.”
그렇다 바로 이 자리에 나타난 남자가 바로 지존회의 구대신마에 한명인 살마였다.
운남 독성부에서 열화신마에 이어 또 다른 구대신마 출현한 것이다.
몸에 착 붙는 검은색 무복을 입은 살마는 자기 자리인 듯 자연스럽게 석추명의 앞자리에 앉았다.
“누가 나타나든지 간에 거사는 이루어질 것이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냐.”
“헤헤헤, 그렇겠지요?”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석추명이 자리에 앉아 살마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달콤한 주향을 풍기는 술을 한 번에 삼키며 살마는 석추명을 바라봤다.
(쓰고 버리기에는 딱 좋은 녀석이지.)
멍청한 돼지처럼 생긴 주제에 야망은 커서 제 형을 죽이고 석가장주에 오르려는 석추명은 회에 있어서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우선 석가장을 위시한 대륙상단을 삼킨 후 지존회는 서서히 무림의 자금을 말릴 계획이었기에 석가장의 흡수가 천하정복대계에서 중요한 계획이 된 것이다.
“사공녀, 그쪽의 수하들과 내 수하들의 명령 혼선을 피하기 위한 상위가 필요할 것 같은데.....”
“호호호,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팔호법님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호호, 동생 나는 호법님과 거사 준비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울게 미안해~”
“헤헤, 괜찮습니다. 누님.”
“너무 걱정하지 말게, 석가장주의 자리와 대륙상단은 자네의 것이니.”
“헤헤, 대인만 믿고 있겠습니다.”
손을 비비며 말하는 석추명을 잠시 바라보던 살마와 여인은 살마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연기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약간 몸을 굽힌 자세였던 석추명이 허리를 펴며 눈을 빛냈다.
(흐흐흐,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좀 전에 볼 수 없었던 차가운 안광이 석추명의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각에서 나온 여인과 살마는 여인이 기거하는 밀실에 들어가서, 계획을 상위하고 있었다.
“거사일에 제 부하 십여명을 지원해 들일께요.”
“괜찮게소, 사공녀 막판에 나 하고 공을 나누게 되었는데 억울하지 않소?”
“호호호... 당연히 3년을 준비한 계획인데... 당연히 억울하지 않으면 이상하지요.”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런 사소한 부분은 팔좌에게 양보를 하고 나중에 있을 일에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겠지요.”
“호오, 무언가 큰 일을 계획을 한 것 같군요, 이 늙은이의 힘까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호호호, 그건 말이예요......”
여성은 여유있게 웃으면서도 누가 들을까봐 전음으로 살마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을 하였다.
여성의 전음에 살마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저 돼지에게 그 물건이 있을 줄이야.... 매우 뜻밖이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설마 3년을 같이 살아왔는데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쁘지만.... 돼지가 세운 계획이 너무 탐이 나요.”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요.”
“돼지가 세운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나름대로 조사를 하기 위해서.... 그러니 거사 날의 모든 지휘는 팔좌께서 하세요.”
“알겠소이다, 사공녀.”
“그건 그렇고 거사를 끝내고 나서 기회를 봐서 돼지를 없애버릴까 생각했는데 포기해야 할 것 같군요.”
“호호호, 저 역시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 계획을 듣고 돼지의 목숨을 연장시킬 생각이예요.”
살마와 여인은 흉소를 내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듬었다.
한편, 그 시각
적뢰는 자신의 처소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번 석가장의 이야기는 지존천하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다.
다만 중후반 에피소드에서 천금상단과 황금비도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내용을 토대로 이 일을 계입을 한 것이다.
이번일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이 크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날 흐름을 현재의 자신이 막을 수가 있을까?
그런 걱정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고 있었다.
“휴우~ 그건 그렇고 결국 천금상단의 그녀들은 포기를 해야 하나~?”
“아니야, 잘만 하면 황금비도와 황금총 덕택에 잘하면 그녀들과 천금상단을 취할 수도 있어..... 문제는 용비강인데...?”
바로 이때 조용히 창문이 열리고 하얀 그림자 하나가 객실로 들어왔다.
여인,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려 기품이 있어 보였다.
흰빛의 비단 궁장에 가려 여인의 다른 부위는 볼 수 없었으나 아름다룬 교수가 궁장의 밖에 나와 있어 이 여인의 피부와 살결의 부드러움 그리고 이 여자의 다른 부위의 미색을 약간이나마 추측하게 하였다.
“벗어.”
여인은 적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면사로 손을 가져갔다.
“면사는 놔두고.”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여인은 겉옷을 벗고 속 상위에 손을 가져가 옷고름을 풀어 고운 몸이 드러났다.
그러자 드러나는 하얀 살덩이....
여인은 원래 속옷를 입지 않았는지 상류층의 의복중의 상위만 벗었는데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풍만한 두 젖가슴위의 유실이 여체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싶더니 스르르 치마가 아래로 내려갔다.
곧게 내려 뻗은 절색의 우윳빛 기둥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무릎이, 알맞게 살집이 오른 허벅지가, 그리고 두 다리가 만나는 곳에서의 갈라짐...
연한 수풀에 덮여있는 붉은 아랫 입술이 삐져나올듯 다리사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이리와!”
여인, 아니 불사미인 대려군은 면사를 쓴 채로 적뢰의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스레 손은 늘어뜨린 채 발가벗은 알몸이 적뢰의 눈앞에 훤한데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래로.”
대려군은 적뢰의 말이 떨어지자 적뢰의 바지춤을 끌러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위풍당당한 검붉은 살덩이가 우뚝 솟아있다.
대려군은 면사를 살짝 들고는 적뢰의 자지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핥고, 빨고, 한 손으로는 적뢰의 자지를 잡고 있고 다른 한손은 어느새 자신의 비처사이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적뢰의 아랫도리를 입으로 즐겁게 해주던 대려군이 적뢰의 자지에서 입을 떼고는 몸을 일으켜 하체를 적뢰의 자지근처에 가져가 대었다. 홍건한 물기에 젖어 등불 빛에 번들거리는 대려군의 보지.... 그렇게 석가장의 하루가 지났다.
일주일후,
드디어 천하 각지의 대륙상단의 지점주들이 모여 후계자를 정하는 대회의가 열리는 날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하늘을 보며 적뢰는 기지개를 폈다.
방안에 있던 설리와 대려군이 걸어 나오면서 적뢰의 뒤에 섰다.
“따라오시지요.”
하인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석가장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최상위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대회의는 석가장 내원에 금화정이라는 정자에서 열리는데 예로부터 중요한 사항을 정할 때 좁은 방 안에서 결정을 하지 않고 확 트인 곳에서 결정을 하는 석가장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적뢰등은 대륙상단이나 석가장 소속이 아니지만, 대공자 석대명과 삼공자 석호명들이 힘을 써서, 특별히 참석할 자격을 갖게 되었기에 하인이 직접 데리러 온 것이었다.
“저자가 이공자 석추명인가?”
금화정은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정숙한 분위기에서 하는 회의가 열리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적뢰는 우선적으로 석추명부터 찾았다.
오십여 명이 넘는 인원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한 금포를 입은 장년인을 보며 적뢰가 물었다.
“맞네, 저 사람이 둘째 형님이지.”
“죄송한 말씀이지만, 생긴 게 꼭 돼지 같은데... 두 분하고 전혀 닮지 않았는데.....?”
“살을 빼면, 닮은 것 같아요, 그리고 별명으로 금돈이라고 불린다고 해요.”
조사한 내용들을 말하며, 설리는 기분이 나쁨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책에서 표현대로 돼지처럼 생겼군.)
“옆에 있는 두사람, 상단한 실력자군.”
시선을 돌린 설리와 다르게 적뢰는 석추명의 양옆에 시립하듯 서 있는 두 명의 남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둘 다 검을 차고 있었는데 기세를 어느 정도 갈무리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둘 다 절정 문턱이군.)
“저 두 사람은 작은 형의 호위 조직인 추금대의 대주와 부대주야, 실력은 초일류라고 알려져 있네.”
“문제는 저들이 아니라 숨어 있는 자들 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쪽 사람들이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지 않나.”
석호명의 말을 들으며 적뢰는 기감을 최대한 퍼트렸다.
금화정을 중심으로 사방 십 장까지 기감을 넓혔지만 감지되는 특별한 기운은 없었다.
개미가 움직이는 기척조차 느껴졌지만 사람의 호홉이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탁탁탁!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각자 시종을 이끌고 정자 위로 올라온 이들을 향해 한 명의 노인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시끌벅적하던 정자가 일순 고요해졌다.
“흠흠, 본인은 절강성의 지점장을 맡고 있는 호정이라 하오. 다들 오랜만이외다.”
“오랜만이오~!!”
“그대가 의장을 맡은 것이오?”
“그렇소이다. 상단주계서 몸이 편치 않으시기에 이번에는 본인이 의장을 맡기로 했소이다. 이 결정에 불만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시오.”
호정이 그리 말하며 좌중을 살폈지만 아무도 불만이 없는지 손을 들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다들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이의가 없는 줄로 알고 제 294회 대륙상단 대 회의를 시작하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제 떠들었냐는 듯이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럼 오늘의 안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겠소이다. 이번 대 회의를 개회한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새로운 상단주님을 추대하기 위해서요. 현 상단주께서 몸이 많이 안좋ㅇ으시기에 상단 업무를 제대로 살필 수 없다 여겼기에 내린 결정이외다.”
“그것에 대해서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소이다.”
“그렇소!”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방식은 언제 그렇듯 세 공자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주를 가릴 것이오. 일단 삼공자는 건강상의 이유로 기권을 하였기에 대공자와 이공자중에서 선택을 할 것이오. 그에 따른 자료들을 나눠 드리겠소.”
호정이 데려온 시종들에게 눈짓을 주자 다섯 명의 시종들이 품에 한가득 책을 안고는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 책자에는 대공자가 만든 대해상단과 이공자가 만든 추금상단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적혀 있소이다. 비교분석까지 해 놓았으니 읽기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오.”
각 지점장들은 받은 책자를 천천히 넘기며 읽자 호정은 잠시 가만히 서서 지점장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각기 한 성을 책임지는 지점장들이 때로는 놀라워하고 때론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며 책자를 읽을 동안 호정은 정자 한쪽에 위치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석씨 형제들을 바라봤다.
간손한 차림의 석대명과 석호명과는 다른게 석추명은 마치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화려한 금포에 갖가지 보석으로 치장을 한 모습이었다.
특히 석추명의 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다양한 보석 반지를 보던 그는 눈살을 찡그렸다.
(흐흐흐, 당신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것은 나요!)
석추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호정의 시선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미 이곳에 온 이상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는 책자를 읽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지점장들의 시선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대공장에게는 놀란 눈빛을 보내는 것과 달리 자신에게는 한심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손을 들기만 하면 상황은 끝이지, 그동안 잠깐의 유희를 즐겨 보도록 할까?)
석추명은 의장에 몸을 깊숙이 누이며 정자의 천장을 바라봤다.
여유로운 그 모습에 호정은 그가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호부 밑에 견자가 없다고 하더니 그 말도 틀린 말이었군.)
어렸을 적부터 비교가 많이 되었던 두 사람이다.
사실 장사의 소질은 둘째인 석추명이 훨씬 나았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뒤바뀌었다.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이공자가 자신의 능력만 믿고 안주한 것과 달리 대공자는 오로지 노력 하나만 가지고 승부했고, 지금에 와서는 본능만을 믿은채 노력하지 않은 이공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단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지금의 대공자는 능히 한 개의 성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완을 가지고 있었다.
삼각이란 시간이 지나자 하 둘 책자를 덮는 이들의 눈에 보였다.
충분히 책자를 읽고 마음을 정할 시간을 주었다고 판단한 호정은 하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좌중에게 말했다.
“결정들은 다 하셨소이까?”
“다 했소이다.”
“그럼 투표를 시작하겠소.”
다시 한 번 시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투표요지를 지점장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용지를 받은 지점장들은 더 이상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고민 없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종들이 다시 투표용지를 걷고는 호정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소이다.”
정당하고 정확한 절차를 위해서 투표제를 채택했던 것인 만큼 호정은 개표도 모든 지점장들이 볼 수 있도록 한 장 한 장 꺼내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투표결과는 금방 확인이 됐다.
지점장들의 결정은 완벽한 몰표였다.
각 성의 지점장들은 모두 대공자 석대명을 석가장주이자 대륙상단주로 추대했다.
“몰표가 나왔군요.”
“으하하하!”
반수 이상이 석대명을 추대한 순간부터 이미 차대 석가장주는 정해진 것이난 다름없었다.
막 확정르 짓기 위해 호정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석추명의 입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역시 그렇군, 하긴 늙은이들이 무엇을 알까, 당신들이 어떻게 지정장이 되어 한 성의 돈줄을 관리하는 궁금하군.”
“그게 무슨 소리요. 이공자?”
“대세조차 보지 못하는 눈으로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외다.”
석추명은 지점장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번쩍 들었다.
파파파팟!
그가 손을 들기 무섭게 금화정을 향해 일단의 무리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땅속에 숨어 있었는지 온몸에 흙을 잔뜩 묻힌 자들은 하나같이 검은 무복에 복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오. 이공자.”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해야 할 게야. 그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한 개 성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상인이라면 능히 대상이라 칭할 수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이들이 바로 지점장들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특히 절강성 지점장이자 이번 회의 의장을 맡은 호정은 오히려 석추명을 노려보며 물었다.
“크크크! 무엇을 뜻하는지, 정녕 모르시겠소?”
스스슥~!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이게 너의 뜻이냐, 추명.”
“그렇소이다. 내가 새로운 석가장주가 되어 상단을 이끌 것이오!”
“당신들 같은 늙은이들 손에 움직이는 석가장이나 대륙상단이 아닌, 나 석추명의 이름으로, 오직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상단을 다시 만들 것이외다!”
“그렇군, 그렇다면 나도 내 식대로 일을 해야겠구나.”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석대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석추명의 양옆에 시립해 있던 추금대의 대주와 부대주가 검을 꺼내며 그에게 검을 휘둘었다.
“어딜~! 감히!!”
차앙~!!
하지만 석대명의 곁에는 대해대의 대주와 부대주가 있었다.
곧 네 사람은 상대방에게 살수를 펼쳤다.
“모두 죽여라! 쓸데없는 늙은이들 따위는 새로운 석가장과 대륙상단에는 필요없다!”
스스슷!
광기에 찬 모습으로 석추명이 명령을 내리자 하루 전부터 땅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지존회의 살수들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살수들의 살검에 의해 셋 명의 지점장들이 쓰러졌다.
“컥!”
“큭!”
“모두 한 곳으로 모이십시오! 대해대는 무엇을 하나!”
“크크! 소용없는 짓이다. 네놈의 대해대는 추금대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을 테니까.”
창창창~!!
석추명의 말대로 금화정의 밖에서 병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땅속에 숨어 있을 줄이야!”
“비키시오!”
지존회의 살수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적뢰는 시뻘게진 얼굴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의 무공 경지라면 충분히 살수들을 감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하였고, 그 덕택에 그의 자존심이 지금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뒤로 설리와 대려군이 달려 나갔다.
“적아우, 나와 큰형님은 내 호위 무사들인 있으니까!”
“지점장들 부탁하네!”
“그보다 석가장주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저쪽을 보니 완전히 돈 것 같은데....”
“아버님 곁에는 수호단주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은 이곳부터 정리하는게 먼저야.”
“알겠습니다.”
지점장들의 호위 무사들이 살수들을 막아서고는 있었지만 이미 수적으로 밀린 상태였고 능력 또한 뛰어났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서둘러야겠군!”
“히압!”
설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서 뿜어지는 새파란 검기에 살수들이 쓰러져 갔다.
“저쪽으로 가십시오!”
적뢰는 살수 중에 한 명이 던진 단검을 튕겨 내며 그가 노렸던 지점장 중에 한명을 뒤로 당겨 석씨 형제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네 상대는 나다.”
파파파팟!“
몸에 이십팔자가 새겨진 살수의 양손을 흔들자 그의 손에서 손가락 길이의 바늘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흡!”
독이 묻어 있는지 새카만 색깔의 바늘이 쏟아져 내리자 적뢰는 몸을 회전시켰다.
파천구식에 삼초인 파천륜을 펼치자 그의 주위로 소용돌이가 일며 검은 바늘들이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에 살수가 놀란 듯 눈에 크게 치떴다.
“받은 것을 돌려주지.”
빙글 돈 적뢰의 도가 쭉 내밀자 도풍을 타고 독바늘들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퍼퍼퍼퍽!
온몸에 독바늘이 꽂힌 살수는 눈을 부릅뜨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스으으윽!
한 명을 처리하기 무섭게 그의 좌우, 뒤로 세 명의 살수들이 검을 휘둘렀다.
파공성이 들림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간 적뢰는 몸을 회전시키며 도를 휘둘렀다.
퍽! 퍽! 퍽!
순식간에 쾌검을 펼쳐지며 달려들던 세 명의 살수들의 목이 잘렸다.
그런데 공격하는 이는 셋뿐이 아니었다.
세 명이 공격을 당해 죽은 틈 사이로 한 명의 살수가 몸을 날리며 검을 뻗어 왔던 것이다.
“이런!”
절묘한 순간에 파고 들어오는 살수의 검에 적뢰의 눈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이런 방식의 싸움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따앙!
겨우 도를 비틀어 살수의 검을 튕겨 낸 적뢰는 곧바로 도를 뒤로 뻗었다.
놀랍게도 등 뒤에서도 살수의 검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살수들의 공격에 적뢰는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절대지경인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지만 이런 차륜전은 처음이었다.
또한 살수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영활해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적뢰가 살수들의 차륜전에 고전하는 사이 살수들은 적뢰의 영역을 지나 석씨 형제가 있는 곳을 다가 갔다.
석씨 형제가 지키는 호위무사들이 있지만, 살수들을 먼저 만난 것은 불사미인 대려군이었다.
온 몸에 백광의 휩싸인 대려군은 석씨 형제의 앞에 철벽처럼 서서 적룡신창과 적룡파황권을 펼쳤다.
설사 그녀의 창과 권을 막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천년 공력에 살수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갔다.
금강불괴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육체는 어떤 암기나 무기로 상처를 낼 수가 없었다.
불사미인 대려군이라는 벽에 막혀 살수들은 더 이상 그 뒤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확실한 최종 방위선이 된 대려군의 모습을 본 적뢰는 안도의 미소를 짓고 도를 휘둘렀다.
촤하하아앗!
그의 일 도에 정면을 막고 서이 있던 두 명의 살수들의 몸이 양분되었다.
“속전속결”
“알았어!”
파앗!
적뢰가 외치자 무섭게 설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난전에 중심에선 그녀의 검에서 강기를 줄줄기 뽑아내며 살수들을 무참히 베어 버리고 있었다.
번쩍!
“한쪽으로 몰아!”
하얀 백광이 번뜩이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반짝일 때마다 지존회의 살수들이 피를 뿜어내며 죽어갔다.
(좋지 않다.)
적뢰가 설리와 함께 살수들의 중심을 파고들며 지나가자 일자가 새겨진 살수들의 우두머리인 일살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황을 빠르게 살폈다.
지점장들을 몰살시키는 본래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고 심지어 삼십여 명이 넘는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저곳.)
일살의 눈이 향한 곳에는 백광의 강기를 뿜어내는 불사미인 대려군이 있었다.
대려군을 바라보는 일살의 시선에는 분노가 서렸다.
마치 태산과도 같은 웅혼한 압도적인 내력으로 확실하게 수하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두 년놈.)
눈부신 도강을 펼치는 적뢰와 그 옆에서 설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리며 수하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특히 적뢰가 휘두르는 도강에 움직임이 날랜 살수들조차 피하기 쉽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의 싸움이 역시 끝나가고 있는지, 한 두명씩 무사들이 내원 안으로 들어와 합류하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 석추명의 추금대가 아닌, 석씨 형제의 대해대와 사해대인 것 같았다.
사실 현재 이곳에 있는 석씨형제의 호위대 일부는 설리가 급히 되리고 온 천검문의 지부에서 제자들이었다.
이 날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되어 있던 석추명의 추금대였지만, 운이 없었다.
평소에 대해대와 사해대가 상대였다면 충분히 추금대의 승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림 사패인 천검문의 검수들이 그 속에 있었다.
천검문의 검수들로 인해 추금대는 빠르게 제압당하고 천검문의 검수들이 내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일살이지만, 지금 내원으로 들어오는 무사들의 실력이 매우 높다는 것은 한 눈에 알아봤다.
(이대로 가다간 작전 실패다.)
삐이이익!
결국 일살은 손가락으로 오므린 입에 대고는 새의 울음소리처럼 가늘고 높은 음을 토해냈다.
스스슥!
그러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살수들이 즉시 공격을 멈추고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제길.”
모여든 이의 숫자를 대충 눈으로 세어 본 일살이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고작 석가장을 밀어내는 데 이 정도의 피해라니!)
구대천마의 일인인 살마의 직속 친위대인 백팔살영 전원이라면 구파일방중 한 곳은 능히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이었다.
물론 특기인 암살이 아니라 정면대결을 펼치긴 했으나 한 명 한 명이 일류 고수 수준인 백팔살영이기에 이 정도로 밀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뭐하는 것이냐! 어서 죽이 못하겠느냐!”
(돼지 새끼 주제에.....!)
전장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한쪽 구석에서 그저 지켜보던 석추명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일살은 대답하지 않았다.
석추명은 그에게 명령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움직이지 않느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싹 죽여 버리란 말이다.”
(제길! 모든 게 저놈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서.......)
석추명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석호명을 바라봤다. 하지만 석호명은 석추명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이제 끝을 내야 할 것 같은데.”
적뢰는 수장으로 보이는 일살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웃기는 상황이군. 어찌 된 것이냐. 일살!”
“주군!”
그때 허공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귀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구대천마의 한명인 살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