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18)

< --  삼협에서 겪은 일  -- >원정대의 시선이 모두 당가량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북궁수란이 음요나찰에게 물었다.“저곳이 맞나요?”음요나찰은 콧등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가까이 가서 사당이 있나없나 확인해보면 알겠지요.”음요나찰의 답변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라서 북궁수란은 원정대의 발길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거북이 모양의 동산으로 다가가서 무성한 수풀을 휘저으며 옛 사당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음요나찰의 말로는 거북이 모양에서 가운데 동산에 있는 사당이라고 했기에 가운데 동산을 집중 수색하였다. 놀랍게도 폐허가 된 사당을 다섯 개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음요나찰은 사당이 발견될 때마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 정도로 심하게 부서지지회1/12 쪽등록일 : 10.05.03 19:53조회 : 2364/2371추천 : 18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2396

는 않고 허름할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당가량은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다.당가량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원정대를 인솔하여 무협 쪽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그는 또 한 번 거북이와 유사한 동산 모습을 발견했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원정대가 정밀한 수색을 했지만 이번에도 헛수고였다. 해가 서산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늦은 오후였다. 당가량이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저겁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습니다.”무협이 머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필사적인 기색이 실려 있었다. 대원들이 보니 과연 거북이 모양과 유사한 지라 다시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원정대원 거의 전부가 가운데 동산을 집중수색하기 시작했다. 일손이 많은 지라 영호성은 뒤편에 물러나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각 봉우리의 꼭대기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잠시 후 영호성의 눈에 돌연 이채가 번득였다.2/12 쪽

그는 길을 오면서 겨울철에 헐벗으면 주변 봉우리와 높이가 달라질 수 있는 봉우리가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봉우리 중에서 그러한 특징이 발견되는 것이다. 세 봉우리 모두 정상 부근이 완만한 편인데 가운데 하나는 바위가 많고 잡초가 우거져 있고 다른 둘은 나무숲이 정상까지 들어차 있었다. 만약 겨울철에 양옆 동산의 나무가 모두 헐벗어 버리면 바위 동산의 높이가 낮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띄엄띄엄 있는 나무가 헐벗고 주변의 관목덤불도 사라진 상황이라면 바위 동산의 널찍한 거북이 등판처럼 보이고 좌우의 동산은 머리와 꼬리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영호성은 안력을 최대한 높여서 세 동산을 세심히 바라보았다. 이어 사방을 살펴보고 비교해 보았다. 만약 이곳에서 겨울철에 주위를 둘러본다면 다른 봉우리와 비교할 때 저 세 봉우리3/12 쪽를 거북이 모습으로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정대의 수색은 반 시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끝났다. 해는 어느덧 서산을 향해 기울어가고 있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당가량을 북궁수란이 한 번 째려본 후 중인을 둘러보며 소리쳤다.“이제 접선장소 찾기는 그만 두기로 해요. 날이 저물어가니까 야숙하기 마땅한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예요.”이때 영호성이 손을 쳐들고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북궁부인! 마지막으로 저 곳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북궁수란의 시선이 영호성이 있는 곳을 향했다.“무슨 소리예요?”영호성은 방금 당가량이 주장했던 거북이동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 중 세 곳을 가리켰다.4/12 쪽“저 세 곳 가운데 동산은 정상 부근이 암석투성이고 낮은 풀만 자라 있는데 양옆 동산은 숲으로 무성합니다. 만약 겨울이 되면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겠지요. 가운데 동산이 좌우 동산보다 길고 완만하니까 거북이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북궁수란은 아미를 좁히며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그녀는 즉시 음요나찰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음요나찰은 미간을 좁히며 영호성이 설명한 봉우리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감탄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군요. 수색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북궁수란이 원정대에게 다시 수색령을 내렸다. 당가량의 얼굴은 밥 먹다 돌 씹은 표정이 되었다.동산 입구에서 중턱에 다다르기 전에 덤불에 반쯤 가린 허름한 사당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사람 둘이 팔을 양옆으로 뻗고 들어가서 서면 딱 맞을 정도였다. 5/12 쪽

음요나찰은 말에서 내려 사당 바로 앞에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탄성을 발했다.“아! 이거 같아요.”그 말이 나오자 대원들은 모두 영호성을 탄복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북궁수란, 북궁수연 자매와 양휘려는 말할 것도 없고 신룡검회 경쟁자인 추운수와 마운천도 혀를 내둘렀다.“영호 형은 어찌 그리 탁월한 안목을 갖고 계시오! 소생은 그저 놀랍기 그지없소.”“그러게 말이외다.”부근에 있던 추운수와 마운천이 앞을 다투어 덕담을 건넸다. 영호성은 담담히 웃었다.“과찬의 말씀이오. 어쩌다 재수가 좋아서 우연히 눈에 띈 것이지요.”당가량은 소태 씹은 심정이 되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토록 찾기 힘들던 장소를 영호성이 너무도 손쉽게 찾아버리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당가량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음요나찰에게 다가갔다.6/12 쪽“이렇게 생긴 사당은 매우 흔하오. 겨울철에 본 것이라 헷갈렸을지 모르니 안에 들어가서 더 확인해야 할 것이오.”그는 아예 음요나찰의 옷깃을 잡아서 사당 앞으로 이끌었다. 음요나찰은 당가량의 성화에 사당 문 앞까지 바싹 다가섰으나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딘지 꺼림칙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급한 당가량이 문을 열기 위해서 문고리를 잡으려했다.  북궁수란이 소리쳤다.“멈춰요!”북궁수란의 일갈이 울리자 당가량은 흠칫하며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서 내부를 봐야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7/12 쪽

당가량이 따지듯 묻자 북궁수란은 눈살을 찌푸렸다.“지금은 음요나찰이 접선하러왔던 평시가 아니에요. 파밀국 정변이 회주라는 자의 정보망에 들어갔으면 이 사당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어요. 안에 무슨 기관장치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문을 열면 안되지요.”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지만 당가량에게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당가량의 안색이 은은히 붉어졌다. 수준급 무림인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당가량은 우승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이지가 흐려졌음을 깨닫고 긴 한숨을 쉰 후 옆으로 물러났다. 음요나찰도 덩달아 사당 정면에서 옆으로 움직였다. 북궁수란은 사당 문 정면 방향에는 아무도 없도록 조치한 후에 사당 측면으로 비스듬히 삼 장 가량 떨어져 섰다. 그리고는 품에서 실뭉치 하나를 꺼냈다.보기에는 평범한 실처럼 보이지만 소위 천잠사(天蠶絲)란 것이었다. 나도는 풍설로는 도검으로도 자를 수 없는 실이라는 과장된 말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일반 실보다 훨씬 질겨서 동아줄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8/12 쪽북궁수란은 천잠사 끝을 동그랗게 묶어서 올가미 모양을 만든 다음 사당 문 갈고리를 향해 뿌렸다.    천잠사가 갈고리 튀어나온 부분에 정확하게 걸리자 북궁수란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만약 문이 열렸을 때 암기 같은 것이 날아오면 무조건 피해야 해요. 무심결에 공격했다가 미혼분이나 독약분말이 들어있는 것을 터뜨리면 상대의 계략에 말리는 거예요.”이때 해는 완전히 서산으로 넘어가버려서 숲속은 깊은 밤처럼 어두웠다. 이런 상황에서 사당 문을 열었을 때 그 속에서 득달같이 날아오는 물체가 있다면 쉽게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두들 경각심을 잔뜩 높인 채 사당 문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북궁수란이 드디어 천잠사를 조심스레 잡아챘다. 삐걱 소리를 내며 사당 문이 열렸다. 쉬이익9/12 쪽

기이한 음향과 함께 뭔가 사당 밖으로 쏘아져 나왔다. 검은 점 같은 작은 물체 수십 개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원정대원들을 향해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아든 것이다. 대원들은 전광석화같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몸을 숨겼다. 북궁자매는 말할 것도 없고 양휘려, 신룡검회 참가자들도 모두 말에서 몸을 날려 멀찍이 물러났다. 파밀국에서 폭죽에 섞인 미혼분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 기민한 대응을 보인 것이다. 음요나찰과 가랍파는 하단전이 제거된 바람에 몸을 날리지 못하고 말 등에서 떨어져 바닥을 떼굴 굴렀다. 모두가 말등을 떠난 속에서 단 한 사람은 태연자약하게 말등에 앉아 있었다. 영호성이었다. 영호성은 입가에 은은한 실소를 지으며 대원들을 둘러보았다.“박쥐요. 박쥐!” 10/12 쪽

아닌 게 아니라 사당에서 튀어나온 물체들은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보니 치익! 하는 박쥐 울음소리가 허공에 은은히 울리고 있었다.원정대원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일어나 자신의 말로 돌아갔다. 북궁수란이 얼굴을 은은히 붉힌 채 다가와 물었다. “그놈들이 나오는 순간 박쥐인 것이 식별되었단 말인가요?”그녀의 음성에는 놀람과 당혹의 기색이 역력히 실려 있었다. 현재 상태를 보면 음침한 사당 내부는 암흑처럼 어두워서 보통 사람이라면 안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내공이 출중한 원정대원들도 안력을 최대한 높이고 천천히 봐야 흐릿하게 경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찰나 간에 날아 나오는 물체의 형체를 식별한다는 것은 영호성의 내공 수위가 최정상급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북궁수란은 파밀국에서의 영호성의 활약상은 보기 드문 신병이기의 덕분이 크다는 11/12 쪽

점을 알고 있었다. 현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그러했고 그녀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일어난 일로 인해서 그녀는 신병이기보다는 탁월한 내공 덕분이 훨씬 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 작품 후기 ============================쿠폰 쏘아주시는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쿠폰~  쿠우포온~성인물 자매작 <검풍색풍> <색몽기협>건전물 자매작 <신유가삼웅전> <무영검>12/12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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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원정대에서 가장 치열하게 머리를 쓰고 있는 자는 당가량이었다. 그는 영호성에게 빼앗긴 점수를 만회할 궁리를 하다가 여인 모양의 목상을 보자 별안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이곳은 신녀묘가 분명합니다.”당가량은 한 소리 외침에 이어 입에서 거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곳 무산에는 십이봉이 있는데 각 봉우리마다 신녀묘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또 다른 신녀묘가 분명합니다.”이어 그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서 신녀묘의 유래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상고의 전설에 등장하는 염제에게는 요희(妖姬)라고 불리는 셋째 딸이 있었다. 요희는 절세의 아름다움을 가진 미소녀였지만, 불행히 시집도 가기 전에 요절하고 말았다.그녀는 무산의 기슭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혔다. 그녀는 요초(妖草)라는 풀로 거듭났는데 신기하게도 요초에 달린 열매를 먹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일종의 사랑의 묘약이었던 것이다. 2/11 쪽세월이 흘러 전국 시대의 어느 날 초나라 회왕이 무산에 놀러 왔다. 회왕은 무산의 수려한 경치를 구경하다가 고당관이라는 누대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회왕은 마침 피곤이 몰려와 누대에서 잠시 낮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홀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저는 염제의 딸로서 이곳 무산의 신녀입니다. 왕의 잠자리를 받들기 위해 이렇게 왔나이다."미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요염한 자태로 회왕을 유혹하였다. 무산신녀의 모습에 반해버린 회왕은 그 자리에서 그녀와 사랑을 맺었다. 사랑의 행위가 끝난 후 그녀가 떠나려하자 회왕이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물었다."언제 또 볼 수 있겠소?"무산신녀는 요염한 미소로 대답하였다.“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회왕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회왕이 문득 정신을 차3/11 쪽리고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회왕은 한 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산기슭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회왕은 무산신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으나 아무리 잠을 자도 다시는 꿈속에 무산신녀가 등장하지 않았다.안타까운 마음에 회왕은 그녀와의 짧은 추억을 기념하여 무산의 남쪽에 조운관이라는 누대를 지었다. 조운(朝雲), 곧 아침의 구름은 무산신녀를 가리키는 말이다.세월이 흘러 회왕이 죽고 아들 양왕이 무산에 놀러 와서 고당관과 조운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때 궁정시인 송옥이 과거에 선왕이 겪었던 무산신녀와의 기이한 인연을 자세히 아뢰었다. 양왕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 일을 시로 읊을 것을 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송옥의 <고당부>와 <신녀부>이다.당가량은 원정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져있음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무산신녀의 전설을 정리하였다. “염제의 요절한 딸 요희는 요초라는 사랑의 묘약으로 거듭났으나 남의 사랑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결국 스스로 사랑의 화신 무산신녀로 다시 태어났던 거4/11 쪽지요. 아침에는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는 무산신녀와의 사랑, 이로부터 사랑의 행위를 두고 운우(雲雨)라고 칭하는 표현이 생겨났던 거랍니다. 또 무산의 봉우리마다 요희를 모시는 사당이 생겨났지요.”무산신녀의 전설을 몰랐던 타지 출신들은 모두들 흥미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량의 해박한 지식에 탄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무산신녀의 전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자들도 당가량의 풍성한 해설에 감탄한 표정이었다. 북궁수란, 북궁수연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당가량은 흐뭇한 기분을 금치 못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결정타를 한 방 더 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송옥이 무산신녀에 관해 지은 시를 읊는 것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까나. 온몸을 감싼 화려한 비단 눈부시고, 수놓은 저고리, 맵시 좋은 치마에 아름다운 몸매 돋보여라. 살랑살랑 그녀 걸어올 제 온 방 안이 화해지고, 문득 몸을 돌이킬 땐 구름 속에 노니는 용과 같아. 얇은 겉옷 위로 예쁜 몸 드러나고, 머리에선 난초 향....”당가량은 여기까지 낭랑한 목소리로 읊조리더니 돌연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난초향, 난초향!”5/11 쪽갑자기 다음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달달 외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막상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자 당가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더욱 더 붉어졌다. 대원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뜬 채 그의 입술만 주시하고 있었다. 당가량은 다음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난초향만 우물거리며 계속 버벅거렸다. 그때였다. “머리에선 난초향, 몸에선 두약 내음 풍기네. 그 어느 누가 이 같은 그녀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까?”영호성이 조용한 어조로 마지막 한 마디를 읊조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영호성은 담담히 미소 지었다.“당 형의 깊이 있는 해설과 시 낭송을 듣다보니 어디서 읽은 것 같아서 한 마디 했는데 맞았는지 모르겠소이다.”당가량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주는 말에 반색하며 얼른 답했다.“바로 맞추었소. 영호 형께서 마무리를 해주셨구려.”“당 형께서 앞 부분을 읊어주시니 우연히 떠오른 것이 적중했군요.”6/11 쪽

영호성은 송옥의 <고당부>와 <신녀부>를 모두 다 기억하고 있지만 뒷부분만 우연히 떠오르는 것처럼 말을 해주었다. 이러한 속사정을 짐작한 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호성을 탄복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을 찬찬히 보던 북궁수란이 음요나찰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내부 모습을 잘봐요. 여기가 확실한가요?”음요나찰은 미간을 찌푸렸다.“안에 여자 상이 있긴 해요. 근데 지금 내 안력으로는 보이지 않아요.”하단전 내공이 폐지된 음요나찰의 눈에는 사당 안의 모습이 식별될 수 없었다. 그저 새카만 어둠일 따름이었다.북궁수란이 행낭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사당 내부에 불빛이 비치며 경물이 어슴푸레 보였다. 음요나찰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를 질렀다.7/11 쪽“이곳이에요. 제대로 찾았어요.”그 말에 대원들 몇몇이 탄성을 발하며 박수를 쳤다. 동정문의 추운수, 회양림의 마운천이 영호성에게 차례로 덕담을 날렸다.북궁수란이 음요나찰을 취조할 때 알아낸 사항을 떠올리며 물었다. “오체복지하고 머리가 바닥에 세게 닿도록 삼배를 올린 후 기다리면 사자가 온다고 했지요? 자 어서 들어가서 삼배를 올려봐요.”음요나찰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 생각에 회주가 자신과 가랍파도 모르는 연락책을 파밀국에 몰래 심어놓았다면 파밀국의 변란은 이미 회주 측에서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당 바닥의 신호장치를 공격용 기관장치로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이때 당가량이 음요나찰의 손을 잡아끌고 성큼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소생이 해보겠소이다.”모두들 그의 용감한 태도에 눈이 번쩍 커졌다. 당가량은 음요나찰이 손발을 짚던 위8/11 쪽

치를 물은 다음 정확하게 그 지점에 대고 오체복지하여 큰절을 했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때는 쿵 소리가 세게 울리도록 강하게 들이받았다. 세 번째 절을 하는 순간 음요나찰은 사당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왔다. 당가량은 삼배를 마치고 긴장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당 안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닥 밑의 신호장치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기다려야 되지요?”북궁수란이 묻자 음요나찰은 자신 없는 어조로 답했다.“어떨 때는 반 시진, 어떨 때는 한 시진 이상 기다렸어요.”북궁수란은 잠시 생각한 후 사당 주위에 흩어져 숨을 것을 명했다. 바스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 후 정적이 찾아왔다. 영호성은 추운수, 마운천과 함께 몸을 숨긴 후 덤불 밖으로 눈만 내밀고 사당 쪽에 시선을 주었다. 날은 더욱 어두워져서 그야말로 칠흑이었다. 어디선가 야음의 정적을 뚫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마운천이 음성을 모기소리 만하게 낮추어서 말을 건네 왔다.9/11 쪽

“사당 바닥에 어떤 장치가 있기에 절을 하며 머리를 두드린 것만으로 연락이 간단 말이오?”영호성이 답하기 전에 추운수가 먼저 입술을 움직였다.“아마 땅밑으로 긴 줄이 있지않나 생각하오.”“그럼 회주라는 자의 근거지가 이 부근에 있단 뜻이오?”“그건 모르겠소.”다시 침묵이 흘렀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다. 영호성은 무산신녀를 모시는 옛 사당을 조용히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무산신녀는 남녀의 정사를 의미하는 운우(雲雨)라는 단어의 기원인 것이다. 색협으로 살아온 그가 운우의 전설이 깃든 사당을 보고 있으니 그 동안 살을 섞은 모든 여인들의 면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호성이 그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던 장면을 일일이 다 회상하고도 한참 더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띵띠리리링10/11 쪽

남서쪽 방향에서 비파를 뜯는 듯한 음률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원정대원들은 긴장을 금치 못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에 이목을 집중했다. ============================ 작품 후기 ============================쿠폰 좀 요~11/1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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