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은 비파가락을 타고 -- >생각을 마친 영호성은 비파를 켜기 시작했다. 현묘한 음률이 창밖으로 은은히 퍼져나갔다. 노래도 불렀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었다.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我歌月排徊 (아가월배회)我舞影凌亂 (아무영릉난)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影結無情遊 (영결무정유)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꽃 속에 묻힌 한 동이 술을 홀로 잔 기울이는데 벗조차 없구나 회1/7 쪽등록일 : 09.08.10 11:28조회 : 4256/4286추천 : 27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2396
잔 높이 들어 명월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달과 나와 셋이 되었구나 달은 전부터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흉내만 내는구나 그래도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여 봄날의 즐거움을 누려 보려 하노라 내가 노래하니 달빛은 춤을 추고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도 땅에서 흔들리는구나 깨어서는 우리 셋은 같이 기쁨 나누지만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지네언제나 세속을 떠나 사귐을 맺자고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재회하기를.. 월하독작의 가사에는 영호성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색협의 길은 알아주는 사람 없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어서 술잔에 뜬 달그림자를 벗 삼아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그가 연주와 노래를 시작하자 상대방 측에서 연주를 멎었다. 아마 듣기만 하려는 모양이었다.영호성은 월하독작에 이어 두보의 북정(北征)까지 노래한 후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월동형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내일 아침 철혈대본영을 향해 떠나고 나면 추상아를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것이다. 자신에게 순결을 앗긴 그녀를 위해 오늘밤을 기꺼이 내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2/7 쪽영호성은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창밖으로 빠져나온 그는 발등을 교대로 차는 수법으로 탄력을 얻어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연못을 건너갔다. 밤하늘의 별과 달이 연못에 놀러 와서 하늘과 물에서 짝을 이루어 반짝거리는 사이로 유영하듯 날아가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영호성은 연못 건너편 물가에 사뿐히 착지하였다. 연못 건너편에는 전각들이 몇 개 있는데 불 켜진 방이 아직도 몇 개 있었다. 그중 어느 방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영호성의 예상대로 다시 비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움직여갔다. 추상아는 자신의 방에서 비파를 켜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은 답답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심화를 달래려고 한 것이다. 장한가를 부른 후 다음에는 뭘 연주할까 뜸을 들이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비파 소리가 흘러들었다. 3/7 쪽뒤이어 사내의 음성으로 월하독작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추상아는 그 음성이 영호성의 것임을 알아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할 사람이 자지 않고 비파가락과 노래로 자신에게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떠나는 것이 너무도 미안해서. 추상아는 군산도에서 영호성과 고모, 계모가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란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말은 듣는 당시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끓어오르는 욕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할수록 심장을 파고드는 비수와 같았다. 자존심을 갈가리 찢는 무자비한 난도질이었다.그 비수를 휘두른 자가 괴로워하고 있음이 명백했다. 어이없이 순결을 잃은 자신만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추상아는 다시 비파 연주를 재개하였다. 두보의 여야서회(旅夜書懷)도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였다. 4/7 쪽별안간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반쯤 열린 월창 밖에 영호성의 얼굴이 있었다. 추상아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두 눈에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떠오른 빛이 재빨리 사라졌다. 표정도 차분해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물었다.“주무시지 않고 웬일이세요?”영호성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낭자의 노래와 연주가 소생의 영혼과 육신을 이곳으로 이끌었소이다.”추상아는 웃음기를 느꼈으나 꾹 참고 다시 물었다.“아침 일찍 떠나셔야 할 분이 이렇게 잠을 안자도 되나요?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수면부족은 당할 수 없어요.”5/7 쪽영호성은 담담히 웃었다.“창틀에 매달려 밤을 새면 피곤하겠지만 의자에 앉아서 대화로 밤을 새면 그리 피곤하지 않을 거요.”그 말에 추상아는 아미를 살짝 세우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실 생각이세요?”“주인이 허락하면 들어가고 싶소만.”추상아는 입가에 상큼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호호, 허락안하면 밤새 매달려 있겠단 얘긴가요?”영호성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밖에 더 있겠소.”추상아는 창가로 다가가서 반쯤 열린 월창을 다 열어젖혔다. “들어오세요.”6/7 쪽
“고맙소이다.”영호성은 단숨에 몸을 날려 방안으로 들어섰다. ============================ 작품 후기 ============================재미가 느껴지시면 쿠폰 좀 마구마구 쏘아주세요!!!자매작 <검풍색풍>7/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