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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7/118)

< --  세 여인을 살리기위한 헌신적인 정사  -- >악양 관부에 수적들을 인계하는 절차를 다 밟고 나니 땅거미가 지려하고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다. 일행은 관리의 정중한 환송을 받으며 관부 밖으로 나온 후 대로를 따라 걸음을 옮겨놓았다. 관청 문 앞에 모였던 수많은 구경꾼들의 시선이 모두 영호성 일행에게 집중되고 있었다.영호성은 많은 눈길이 특히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유 있게 걸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삼십여 보 걷다가 고개를 돌려 세 여인을 보며 정중히 말했다.“이제 헤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그 말에 세 여인의 눈에 아쉬움의 빛이 빠르게 스쳐갔다. 특히 추상아의 표정에는 서운한 기색이 가득했다.조카의 심정을 대변하려는 것일까. 추은려가 재빨리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요? 설마 휴식도 없이 바로 출발하지는 않겠지요.”회1/7 쪽등록일 : 09.08.09 11:27조회 : 4383/4413추천 : 29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2396

“악양루 옆에 잡아놓은 객점이 있습니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밀린 수면을 취한 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입니다.”영호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추상아가 입술을 일렁였다.“저희 동정문에 가셔서 식사도 하고 수면도 취하고 내일 아침에 떠나세요.”그 말이 나오자 추은려와 한수인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세요.”“예, 그렇게 해요. 악양루 옆 객점에는 본문의 영빈전보다 시설 좋은 곳이 없어요.”장량과 오대복도 가세하고 나섰다. “소문주님! 오랜만에 고급시설에서 묵고 싶습니다.”두 수하까지 찬동하니 달리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럼 객점에 가서 풀어놓았던 짐을 챙겨서 동정문으로 가겠습니다.”2/7 쪽“그럴 필요 없어요. 저희 문도들을 보내서 짐을 가려오라고 하면 되고 세 분은 막 바로 본문으로 가시면 되어요.”영호성은 담담히 웃었다.“괜찮습니다.”영호성은 세 여인이 베푸는 친절을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이기로 하고 직접 객점으로 갔다. 세 여인도 졸졸 따라왔다. 그녀들은 영호성이 말에 짐을 싣는 것을 보다가 비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무림인 중에도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집에서 연주하는 정도이지 갖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다. 무림인이 악기를 휴대하는 경우는 음공의 고수가 병기로 쓰기 위해서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그녀들은 영호성이 음공의 재간도 있는 모양이라며 수군거렸다. 동정문이 자리한 곳은 악양성 북문 밖이었다. 인가가 띄엄띄엄 있는 농토 끝에 비스듬한 경사의 야산을 끼고 한 채의 커다란 장원이 자리하고 있었다.세 여인은 조경이 잘 꾸며진 동정문의 후원에서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식사 도중 그3/7 쪽녀들은 장량과 오대복에게도 관심을 표하고 질문을 던지며 음식을 권했다. 시비들이 나르는 요리는 초특급반점 수준이어서 영호성 일행은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특히 오대복은 배가 임산부를 닮을 정도로 먹어댔다. 식사가 끝난 후 영호성 일행 세 사람에게 영빈전 건물의 독방 세 개가 제공되었다. 세 여인은 차례로 방을 일일이 안내한 후 자신들도 빨리 자야겠다며 침소로 돌아갔다. 영호성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긴장이 풀려서 잠이 쏟아져야 옳겠지만 배에서 행한 애후직심공 덕분에 피로가 말끔히 풀리고 기력이 더욱 충전되어 정신이 맑기만 했다. 그는 창가로 가서 월창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정문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식사를 했던 후원 정자의 주변도 각종 기화요초 덕분에 아름다웠지만 영빈전 주변도 조경이 잘 되어 있었다. 초저녁 하늘을 밝히며 하나둘 떠오르는 별이 넓은 연못 위를 수놓는 모습은 일품이었다. 영호성은 야경의 풍치를 감상하면서 지난 경과를 음미하다가 지풍의 효용을 절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4/7 쪽방안에 있는 수적들을 손쉽게 제압하는 데는 전음공격보다 지풍을 활용한 점혈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영호성은 지풍이나 장풍 등을 과소평가하고 살았다. 상대가 피해버리면 막대한 내공만 허비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젯밤 겪은 일로 생각이 달라졌다.특히 지풍으로 점혈하는 것은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수법이 아닌가. 사혈을 너무 세게 맞추지만 않는다면 인명 살상을 줄이는 효과가 확실히 있는 것이다. 영호성은 오른 손 검지손가락으로 내공을 모아 보았다. 이어 창가에서 두 걸음 물러난 후 오른손을 좍 펴들어 검지 끝으로 월창에 발라져 있는 창호지를 겨냥했다. 손을 뒤로 잠깐 물렸다가 앞으로 내뻗으며 검지 끝으로 전음을 날린다는 기분으로 뿜어 보았다. 미세한 비람결을 일으키며 발출된 지력이 창호지에 푹 하고 구멍을 내버렸다. 첫 번째 지풍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사실 전음술이 더 어려운 기예였기에 영호성의 입장에서 지풍 연마는 손쉬운 일이었다.  달리기 훈련하던 자가 걷기 연습하는 꼴이었다. 원래 영호검문은 무당의 속가계열이5/7 쪽

라서 지풍도 무당 계열이라고 봐야 했다. 영호성의 부친과 조부가 사용하는 지공은 기본적으로 무당의 건원지(乾元指)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영호성이 방금 시전한 지풍을 건원지라 부를 수는 없었다. 그의 내공 대부분이 영호심법에 의해 축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이런 생각이 든 영호성은 입가에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극치열락지라 불러야하나?”이어 그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에 동시에 내공을 집중시킨 다음 뿜어 보았다. 처음보다 위력이 약했다. 두 손가락으로 분산된 때문이었다. 지풍 자체는 전음보다 쉽지만 여러 손가락으로 동시에 위력 있는 여러 가닥을 갈기는 것은 상당한 연습을 요할 것 같았다. 특히 다섯 손가락을 아니, 긴급한 경우에 두 손으로 열 손가락을 사용하여 강력한 열 가닥의 지력을 뿜어대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닐 터였다. 전음술 중에서는 육합전성이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6/7 쪽

아니 열 가닥 지풍이 열 개의 표적을 동시에 적중시키는 것은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전음성을 터뜨리는 육합전성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영호성은 여러 손가락보다도 일단은 한 손가락으로 지력의 사거리를 늘려나가는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시 검지 하나만으로 연습을 해보았다. 애꿎은 월창 창호지는 벌집 신세로 변해갔다. ============================ 작품 후기 ============================재미가 느껴지시면 쿠폰 좀 마구마구 쏘아주세요!!!자매작 <검풍색풍>7/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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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오늘밤 비파 소리를 들으니 자신도 연주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방 구석에 세워둔 비파를 꺼내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데 희미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음색으로 보아 여인이 부르는 노래였다. 가사를 들어보니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였다. 장한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였다. 야심한 시각에 비파를 연주하며 장한가를 부르는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 영호성은 크게 호기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우선 한수인과 추은려, 추상아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들은 피곤해서 빨리 자야겠다며 침소로 갔다. 군산도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수난을 겪은 후 하루 종일 자지 못했으니 잠에 골아 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면 동정문의 여제자들 중 한 명인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호남삼미 세 여인 중 한 명일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순결을 상실한 추상아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간밤에 너무도 충격적인 일을 겪는 바람에 몸은 피로할 지언정 잠은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영호성은 창가에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비파를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연주할 2/6 쪽준비는 다 갖추었지만 시작하지는 않았다.여인의 비파 연주와 장한가 노래를 다 감상하고 난 후에 시작할 생각이었다.절묘한 비파 가락과 함께 애절한 장한가의 가사가 심금을 울리더니 드디어 그 유명한 마지막 부분이 들려왔다. 臨別殷勤重奇詞(임별은근중기사)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헤어질 무렵 간곡히 다시 전할 말 부탁했는데 그 중에는 두 사람만 아는 맹세의 말이 있었네 칠월칠석에 장생전에서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리라하늘과 땅도 끝이 있고 시간조차 다함이 있으나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끝이 없으리.3/6 쪽마지막 구절이 끝나면서 비파 연주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장한가 가사의 뒷부분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란 새는 눈도 하나요 날개도 하나요 다리도 하나라서 날지도 걷지도 못하는 병신 새이다. 하지만 암수가 만나면 비로소 한 몸을 이루고 천지에 조화를 부리며 구만리를 날아간다고 한다.  연리지(連理枝)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무가 만나 본래 한 몸인 것처럼 연결된 것을 말한다. 뿌리는 다르지만 가지가 만나서 일부러 접붙인 듯 자연적으로 하나가 된 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백거이는 이처럼 당현종과 양귀비가 영원한 사랑을 추구했지만 이루지 못한 비극으로 애절하게 묘사했던 것이다.영호성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울러 연주자가 추상아라는 확신이 강하게 왔다.아마 그녀는 비익조와 연리지 같은 완전한 사랑을 꿈꾸며 살아왔을 것이다. 아름다운 한 쌍이 되어 영원하고 완벽한 사랑을 나눌 상대에게 순결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순결을 가져간 사내는 그녀와 그런 사랑을 이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4/6 쪽

그녀는 혈도가 제압된 채 욕화가 끓어오르는 상황에서 영호성과 한수인, 추은려가 나누는 대화를 분명히 들었다. 사지가 마비되어도 청각, 시각은 유지되는 법이니까. 그때 추은려와 한수인이 추상아는 청백한 몸이니까 관계를 맺은 후 그냥 가면 안된다고 했을 때 자신이 어떤 언행을 했던가.매몰찬 언행으로 추은려와 한수인을 굴복시켜 책임에서 해방된 후 정사에 임하지 않았던가. 그 상황을 다 기억하고 있는 추상아의 마음은 쓰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녀는 비파가락에 장한가를 연주함으로써 무너진 자신의 꿈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리라. 영호성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색협으로서 박애주의를 실천한답시고 위기에 빠진 여인이라면 죄다 구원의 정사를 나누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에 그가 색협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그와 사랑을 나눈 여인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명문가의 과부 설운향은 고통을 억지로 견디며 자식을 기를 것이다. 모친의 한풀이 대상으로 자라난 자식이 과연 출세한 들 얼마나 세상에 도움 되는 관리가 되겠는가. 5/6 쪽

또 진추아 등 수많은 과부들의 한은 어찌할 것인가. 그 과부들 중 추물이나 박색들은 어디 가서 여인의 본능을 해소하고 산단 말인가. 또 파밀국의 아영라 공주는 음적들에게 겁탈당하고 말았을 것 아닌가. 추상아나 추은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마음에 다소 걸리는 것은 유부녀인 백가려, 송유운, 한수인 등이었다. 그러나 그녀들 역시 그럴만한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행해진 정사였다.영호성은 지난 행적을 되새긴 결과 자신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확신을 했다. 앞으로도 색협의 길을 계속 갈 것이며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임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순결을 잃었느냐 이미 남자경험이 있는 여자였느냐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자신과의 인연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유부녀는 예외이다. 그녀들은 아무리 영호성을 원할 지라도 구원을 위한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저지른 일로 끝인 것이다. 그 원칙을 지켜나간다면 분명히 색협이라 자처할 만 했다. 6/6 쪽

라 자처할 만 했다. ============================ 작품 후기 ============================재미가 느껴지시면 쿠폰 좀 마구마구 쏘아주세요!!!자매작 <검풍색풍>6/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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