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18)

< --  위대한 박애주의자  -- >“이놈, 당장 이리 와서 할아비에게 회초리를 맞지 못하겠느냐? 너 때문에 잘못하면 본문의 명예가 땅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단 말이냐?”영호관은 노기등등하여 영호성의 뒤를 쫓아 계속 신형을 날렸다. 영호성은 여러 나무 위를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날아갔다. 연약한 나뭇가지 끝을 살짝 발로 차면서 탄력을 얻어 새처럼 공중을 움직여갔다. 그러면서도 혀를 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무식한 용두강괴가 어째서 회초립니까? 그걸로 맞으면 소손은 앉은뱅이가 될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손자를 병신으로 만들면 정신적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이때 영호강도 공중으로 박차고 올라서 나무 끝을 발로 차면서 영호성을 쫓기 시작했다. 영호씨 삼대 모두가 야밤에 나무를 이용해서 허공을 나는 경공술 묘기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영호성과 영호강은 맨손이지만 영호관은 무거운 용두강괴를 들고 있어서 불리한 점이 많았다. 속 썩이는 손자 녀석을 잡아서 엉덩이에 강괴를 한 방 먹이려고 들고 왔는데 경공술을 쓸 입장에서는 방해가 되었다. 영호관은 강괴를 던져버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뒤회1/7 쪽등록일 : 09.02.07 22:29조회 : 13271/13353추천 : 71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2396

를 쫓았다.  “이놈아! 할아비 말이 말 같지 않으냐?”다섯 자 거리 옆에서 영호강이 경공술을 펴면서 덩달아 소리쳤다.“이놈아! 아비 말이 개 짖는 소리로 들리냐?”이 소리를 지른 후 두 사람은 점점 낮은 위치의 가지를 발로 차더니 금세 고도가 뚝 떨어졌다. 그러더니 결국 땅바닥에 발을 딛고 말았다. 한 호흡 돌리고 다시 땅을 박차고 솟구치려는데 그 사이에 영호성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귀에 신경을 집중해 봐도 포착되는 기척이 없었다.두 사람은 사방을 살피다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이 못된 자식아, 어디로 숨었냐?”“이 망할 손자야, 어디 있냐?”소리를 지르고 두 사람은 기대어린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청력을 최대한 돋우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갔다. 2/7 쪽

“이 녀석이 밖으로 나가버린 모양이다.”“그런 것 같습니다.”두 사람은 맥이 탁 풀린 표정이었다. 영호관은 그냥 몸을 돌리려 하는데 영호강이 안면을 벌겋게 물들이며 다시 고성을 질렀다. “영호씨 집안에 너 같은 망종은 처음이다. 네놈이 거유 백송학 선생의 며느리까지 건드리고 있음을 다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을 보고 영호관이 당황하여 입을 틀어막았다.“이 녀석아! 문도들이 깨서 나온다. 소리를 낮춰라.”영호강은 영호검문의 문주이지만 전대문주이자 부친인 영호관이 입을 막자 꼼작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영호관이 입에서 손을 떼자 영호강은 그제야 낯을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였다.“아버님, 죄송합니다. 저 녀석 때문에 하도 열이 끓다보니 저도 모르게 소리가 자꾸 높아집니다.”3/7 쪽

“그나저나 성이 녀석이 백송학의 며느리를 건드리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질문을 던지는 영호관의 눈에는 격노의 빛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 백송학(白宋鶴)이 누구인가. 귀주성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젊었을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국자감 제주를 지내고 상서 벼슬에 올랐다가 은퇴하여 고향에 내려온 인물이다. 지금은 귀주성의 성도인 귀양에서 송학서원을 차리고 지방의 학문 발달 및 후진양성에 기여하고 있어서 누구나 존경해마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백송학의 며느리와 간통을 하고 있다면 이는 천하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을 만행인 것이다. 영호강은 황급히 해명했다.“남편이 있는 여자가 아니고 과부입니다.”“과부?”그 말을 듣고 보니 영호관은 수년전에 백송학의 외동아들이 말을 타다 떨어져서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 사고가 계기가 되어 백송학이 관직에 염증을 느껴서 스스로 낙향했다는 말도 있었다.“과부라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수치스런 일이다. 신룡검회가 중요한 것4/7 쪽이 아니라 이 녀석을 반드시 잡아서 몹쓸 버릇을 고치는 게 시급하다.”그때였다. 앞 쪽의 숲속 어디선가 영호성의 천연덕스런 음성이 들려왔다. “할아버님. 백송학 선생이 누구입니까? 한때 상서 벼슬까지 올랐던 대학자이십니다. 그 분에게는 딸은 여섯 명이나 있지만 아들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사고로 죽자 백송학 선생은 크게 상심하여 스스로 낙향했습니다.”바람을 타고 그의 목소리가 조금 흐려지는 듯싶더니 다시 뚜렷해졌다.“그 분에겐 올해 다섯 살의 총명한 손자가 있습니다. 집안 내력으로 보아 그 아이 역시 장차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모친은 과부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별 일 아닌 것으로 어린 아들에게 매질을 했습니다.”영호관과 영호강은 자신도 모르게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이 색마야!”영호성의 답은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어릴 때 모친에게서 학대받은 아이는 정서불안에 빠져 포악하게 자라날 가능성이 5/7 쪽

큽니다. 장래 관리가 되었을 때 그 포악성을 드러내면 수많은 백성들이 다칩니다.”그 말이 흘러나온 후 다시 적막이 흘렀다. 영호관과 영호강은 암만 귀를 기울여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조바심이 나서 한 마디씩 날렸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이 후레손자야!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냐?”그러자 잠시 후 영호강, 영호관의 뒤쪽에서 답변이 들려오는 것이었다.“제가 그녀를 위로해주기 시작한 후 그녀는 어린 아들을 아주 따뜻하게 기르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장차 백성들을 사랑할 줄 아는 어진 관리가 될 것입니다.”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 영호관, 영호강은 등 뒤에서 소리가 흘러오자 깜짝 놀라서 몸을 돌렸다. 그때 우측에서 영호성의 말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 어찌 뜻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 한 여인의 삶을 구원하고 한 관리를 옳은 길로 이끌어 백성에게 복이 되는 일석삼조의 협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6/7 쪽영호관과 영호강의 턱이 부르르 떨렸다.“혀··· 협행이라고······!”그들이 놀란 것은 영호성이 말한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무도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신법 때문이었다. 소리의 방향으로 보아서는 그는 부친과 조부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섬전같이 돌아다니면서 말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영호강, 영호관으로서는 그런 빠른 움직임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7/7 쪽

그들이 놀란 것은 영호성이 말한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무도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신법 때문이었다. 소리의 방향으로 보아서는 그는 부친과 조부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섬전같이 돌아다니면서 말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영호강, 영호관으로서는 그런 빠른 움직임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7/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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