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161)


아마도 선을 본 남자의 전화인 듯 한데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때는 영철이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아영이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서둘러 내려놓는 경우도 있었고




아영이 영철을 가르치고 있는 중에도 김미자가 전화왔다고 아영을 불러내는 일도 있었다.




영철이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그 남자의 전화가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그냥 싫기만 하더니 나중에는 아영이 전화 받는 모습만 봐도 짜증이 났다.




거기다 아영에게 전화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 아영이 전화를 받으면서 웃기라도 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아영이 한없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어느 일요일 집에 갔던 영철이 아영의 생각에 일찍 돌아와 보니 아영이 집에 없었다.




김미자에게 지나가는 얘기처럼 슬쩍 물어보니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고 했다.




무슨 약속이냐고 또 물어보니까 전에 집에 왔던 그 남자하고 만나는 모양이라고 




김미자도 지나가는 듯이 얘기했다.




영철은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온 몸에 맥이 쏙 빠져 버렸다.




전 같았으면 아영이 없는 틈을 타서 옳다구나 하고 김미자의 치마를 벗겼을 텐데




영철은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녁 안 먹고 왔지?.....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차려줄게!....."




"아니. 싫어!.....큰 엄마 나 밥 안 먹을래!......"




"왜? 배 안고파?....."




"안 고파!....집에서 오기 전에 뭘 먹고 왔더니 배 안 고파!......"




"그래?.....그럼, 이따가 라도 배고프면 얘기해!......"




"알았어!..........큰 엄마! 나 졸려서 내 방가서 잠 좀 잘게!......"




"그래!.....누나 오기 전에 빨리 가서 잠 좀 자둬!"




김미자도 영철이 늘 잠이 모자라 하는 걸 알기 때문인지 




아영이 집에 없는데도 영철이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굳이 영철을 잡지는 않았다.




하긴 전날 밤에 거의 잠을 못 자고 새벽까지 자신의 보지를 박아댔으니




아무리 젊고 힘 좋은 영철이라도 피곤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미자가 영철의 방에 들어와 이불을 펴주려는 것을 영철이 마다하고 김미자를 내보낸 뒤




영철이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철은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 속에는 온통 아영이 지금 그 남자와 만나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영철은 최근에야 비로소 자신이 아영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아영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아영이 공부를 가르쳐주겠다는 제의를 덥석 받아들인 것도




대학에 가고 싶은 욕심 외에 좋아하는 아영과 둘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영철은 집에 강도가 들기 전부터 아영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아영이 워낙 영철에게 차갑게 대하는 통에 영철이 접근 할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아영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대해왔던 것이었지만




늘 마음 속으로는 아영의 예쁜 얼굴을 몰래 훔쳐보며 혼자 즐거워했었다.




어떤 때는 아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영 앞에서 김미자와 일부러 더 노골적인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영이 별 다른 표정 변화도 없고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아영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랬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강도가 들었을 때 그렇게 죽기살기로 강도에게 달려들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저 예쁜 아영에 대한 관심과




그 예쁜 아영으로부터 주목받고 싶은 남자의 마음 정도였다.




영철은 아영과 같이 공부를 하면서 아영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때때로 자신에게 열심히 설명하느라 볼까지 빨개진 아영의 옆얼굴을 훔쳐보면서




이렇게 예쁜 여자와 단 둘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가 너무 즐거웠다.




그랬기에 아영이 그렇게 자신을 닦달을 해도 참고 견뎌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영이 선을 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자꾸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자신의 옆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영이 자신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영이 자신 때문에 재혼에 대한 결정을 1년 미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영이 자신을 그렇게 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1년 뒤가 걱정이 되었다.




1년 뒤에 그 남자.....아니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라도 아영이 시집을 가버린다면?......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영철은 자신이 아영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지낸 지 2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에서야 




영철은 아영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아영이 지금 다른 남자를 만나러 밖에 나갔다는 것이었다.




영철은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작은어머니!......저 다녀왔어요!....."




현관문을 들어서며 아영이 김미자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일찍 왔네!.........저녁도 안 먹고 헤어졌어?......."




"네! 그냥 일찍 왔어요!..........근데, 영철이가 벌써 왔나 보죠?..."




"응! 웬 일로 일찍 왔어!.......지금 졸립다고 지 방에서 잔다!....."




잠시 후 영철의 방문이 확 열렸다.




영철이 얼른 눈을 감았다.




"영철아!.....영철아! 너 지금 뭐 해?.......일찍 왔으면 공부할 생각 안 하고 잠은 무슨 잠이야?




빨리 일어나!.......나 금방 옷 갈아입고 올 거니까 빨리 일어나!...."




아영이 방문을 닫고 간 뒤에도 영철은 꿈쩍도 안하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얼마 후 아영이 다시 영철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 뭐야?.....아직도 안 일어났어?!.....




영철아! 영철아! 빨리 일어나!....응? 영철아!......."




아영이 영철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영철이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왜 그래요?!....................남 잠도 못 자게!......"




"어머! 얘 좀 봐!.....갑자기 웬 존댓말이야?!....잠이 덜 깼나?!......




빨리 가서 세수하고 정신차리고 와!.......잠은 밤에 자야지 초저녁부터 무슨 잠이야?!...."




영철이 느릿느릿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돌아와 털썩하고 책상머리에 앉았다.




유난히 시무룩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철을 보고는 아영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영철아! 너 왜 그래?.....무슨 일이 있었어?.........




집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아니에요!.......아무 일도 없어요!....."




".............너 왜 그러는 거야?........갑자기 나한테 안 쓰던 존댓말을 하고!.......




뭐 나한테 기분 나쁜 거 있어? 응?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아이 참!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영도 더 이상 물어봐야 영철이 대답할 것 같지를 않아 그냥 잠자코 넘어갔다.




그런데 그런 영철의 태도는 그 후로도 며칠 간 계속되었다.




"너 도대체 왜 그래?.......나한테 불만 있으면 얘기해!.........




왜 맨날 부어 갖고 말도 안하고 그러는 거야?..........




나랑 공부하기 싫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




"말을 해!.....무슨 말을 해야 알지!........나 정말 답답해 죽겠어!........"




답답하기는 영철이 더 답답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아영에게 알려줄 수도 없지만




동시에 아무리 그렇다라도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아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너 정말 이렇게 말 안 하면 나 나간다?!......




뭐든지 나한테 불만 있으면 지금 얘기하고.......




나 아니고 딴 사람한테 불만 있는 거면 거기 가서 해결하고 나한테는 이러지 마!........




나 너 화나 있는 거 싫어!........"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나!......................................"




"그래 뭔데?............뭔데? 빨리 얘기해!......."




"...................누나!.......정말 그 사람하고 나중에 결혼할 거야?"




"뭐?......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누나 전 번에 선본 사람하고 진짜로 결혼할 거냐고?!....."




"하이 참! 기가 막혀서!.............너 그거 때문에 여태까지 뚱해서 있었던 거야?...응?.....




아니 내가 결혼하던 말든 너하고 무슨 상관 있다고?!.......




요게 정말!...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생각만 한다니까!......"




아영이 영철을 장난스럽게 한 대 때리려다가 워낙 심각한 영철의 얼굴을 보고 




공중에서 손이 굳었다.




"누나!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마!...............




나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 줘!....... 나 누나하고 결혼할 거야!"




"뭐..뭐라고?!...."




아영이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때 갑자기 영철이 아영의 입술에 입을 살짝 맞췄다.




아영이 더욱 놀라서 말도 못 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영이 영철을 한참 노려보더니 휙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날 아영은 다시 영철의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5시. 아영이 또 다시 영철의 방문을 두드렸다.




둘이는 전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공부를 했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아영만을 생각하고 있던 영철은 아무래도 전날 자신이 꺼냈던 얘기를 




아영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아영과 책상머리에 마주 앉았을 때였다.




"누나! 어저께 내가 한 말...."




"그만! 더 이상 그 얘기하지마!....난 네 얘기 못 들을 걸로 할 테니까!...."




"누나! 내 말은...."




"하지 말라니까! 한 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나 이제 더 이상 너랑 공부 같이 안 할거야!




그러니까 하지 마!......"




"................................................."




하도 단호한 아영의 태도에 영철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영은 영철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철은 순간 자신이 말도 못 꺼내게 막는 아영이 원망스러웠다.




"누나! 내가 어제..."




"내가 얘기했지?....나 정말 일어나서 나간다?!..."




그 소리에 영철은 욱하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알았어!........ 나도 이제 더 이상 누나한테 안 배울 거야!.........




그 대신 누나도 내 말 들어!.....내가 어제 누나한테 한 말은 진심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친 채 한동안 멈추었다.




그러다 아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영은 정말 영철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다음날 새벽에도 영철을 깨우지 않더니 저녁에도 영철을 가르칠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그런데 그 날부터는 영철이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난데없는 변화에 어리둥절한 건 김미자 뿐이었다.




절에 며칠 다녀왔더니 갑자기 아영과 영철이 냉랭해져서 말도 안 하고 




영철이 맨날 집에 늦게 들어오는가 하면 그런 영철을 보고도 아영이 아무런 내색도 없자 




자신이 없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김미자만




중간에서 좌불안석이었다.




"왜 그래?......영철이 하고 왜 그러는 거야?......혹시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참다 못한 김미자가 낮에 아영을 붙들고 물었다.




"무슨 일은요?!......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영철이가 이제 저한테 더 배우고 싶지 않대요!......."




"왜?.....갑자기 왜 그런대?........"




"글쎄....그건 저도.......제가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네요!......




아마 제가 가르치는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아니 그래도 니가 가르쳐서 성적도 오르고 그랬잖아?!........




실력은 니가 무슨 실력이 부족해?!.........."




아영에게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김미자가 또 영철에게 물어봤다.




"영철아! 너 왜 누나하고 그래?........누나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안 좋은 일? .......아니! 그냥 아무 일도 아니야!...."




"근데 왜 누나한테 공부 안 배워?.......니가 누나한테 배우기 싫다고 그랬다며?"




"누나가 그랬어?.......참 나 웃기네!.........




자기가 나 가르치기 싫다고 하고선!........."




두 사람 말이 서로 다르니 김미자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분명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인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서로 말을 안 하니 김미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김미자는 자신의 불공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절로 향했다.




아영이 그냥 내버려두니까 영철은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해서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가기가 일쑤였고 저녁에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겨우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영철이 자정이 가까워 집에 들어서자 아영이 그 때까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영철이 너 이리 좀 와봐!......."




아영이 소파에 앉아서 영철을 불렀다.




그러자 영철이 그런 아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야 너!....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왜 부르는데 대꾸도 안 하고 그냥 들어와?........"




영철의 방까지 뒤쫓아온 아영이 영철을 향해 씩씩거렸다.




"뭔데 그래요?..........할 얘기 있으면 해요!......."




영철이 아영을 쳐다보지도 않고 교복을 벗으면서 건성으로 대꾸를 했다.




"너 정말!.............너!...........너 자꾸 이럴래?"




"내가 뭘요?......"




"내가 뭘요?!......너 정말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야? 응?........




그리고 너 왜 맨날 늦게 다녀?.......도대체 뭐하고 다니는데 이렇게 맨날 늦게 들어오는 거야?"




"..........그거야 내 일인데..... 누나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요?.........




내가 밖에서 뭘하든 말든 누나가 무슨 상관이에요?....."




"뭐? 너 정말 말 다했어?..........무슨 상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아영이 영철이 내뱉은 말을 되씹으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씨근덕대며 영철을 노려봤다.




"그래! 상관없다! 상관없어! 이 나쁜 놈아!.......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이 나쁜 놈!"




아영이 갑자기 영철에게 달려들더니 영철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때렸다.




"허어엉! 니가 뭔데?!......니가 뭔데?!.......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야?! 허어어엉!"




영철의 가슴을 때리다 말고 아영이 울음을 터뜨렸다.




"허어엉! 넌 정말 나쁜 놈이야! 나쁜 놈!.........허어어엉!....."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영철은 당황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영을 보고 영철은 아영에게도 이렇게 약한 모습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철은 마음이 아파왔다.




영철은 무의식적으로 아영을 두 팔로 껴안았다.




"놔! 이거 놔! 이 나쁜 놈아! 허어어엉!.......엉엉엉!......엉엉엉엉!....."




아영이 영철의 두 팔 속에서 몸부림을 쳤지만 영철은 그런 아영을 더욱 꼭 껴안았다.




아영은 영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누나! 울지마!.......누나! 내가 잘못했어!.......누나!........"




아영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누나! 미안해!.......누나! 정말 앞으로는 안 그럴게! 응? 누나!..."




"............알았어!......이거 좀 놔봐!........"




영철이 껴안았던 팔을 풀어주자 아영이 돌아서서 손으로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았다.




"영철아! 너 이리 좀 앉아봐!......"




아영이 방안에 놓인 앉은뱅이 책상에 앉으면서 영철을 불러 앉혔다.




"너 나한테 솔직히 말해봐!.......너 그동안 뭐하고 다녔어?......"




"........................"




"뭐하고 다니느라 맨날 늦게 들어왔냐고?!..........




니가 나한테 공부 안 배워도 좋아!......그런데 너 지금 고3이고.......




지금 한 시간이 아까운 때에 너 왜 맨날 그러고 다녀?.......




니가 지금 한가하게 딴 짓하고 다닐 때야?......"




"누나!....나 딴 짓 안 했어!..."




"딴 짓 안 했다고?.....그럼 니가 공부했어?"




"응!...."




"어디서?..."




"학교 도서관에서!......누나랑 공부할 때 보다 더 열심히 했어!"




"정말? 정말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늦게 왔다고?"




"응! 정말이라니까!.....농땡이 요만큼도 안 부리고....."




아영이 말을 못하고 잠시동안 영철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허어어엉! 이 나쁜 놈!..........난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속상했는데!.....허어어엉!....




너 때문에 나 속상해서 죽을 뻔했단 말이야! 허어어엉!....."




"내가 누나한테 얘기했잖아?!.......나 대학 졸업하고 누나하고 결혼한다고!....




그럴려면 대학부터 들어가야지!....안 그래? 누나?"




"엉엉엉! 몰라! 이 나쁜 놈아!......엉엉엉엉!"




"누나! 그만 울어!....자꾸 울면 내가 미안하잖아?!...."




영철이 우는 아영을 껴안고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엉? 왜 이래? 너 왜 이래?....."




아영이 울다말고 놀라서 영철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누나! 가만히 좀 있어!....나 뽀뽀 한 번만 할게!"




"안 돼! 하지마!......절대 안 돼!......너 내 말 안 들으면 나 정말 화낼 거야?!"




"알았어! 알았어!.....안 할게!.....그 대신 누나 그냥 가만히 좀 있어!"




영철은 아영을 껴안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누워 한동안 숨소리만 내며 가만히 있었다.




꼬르륵!




그 때 영철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뭐야? 너 배고파?........저녁 안 먹었어?"




"응!........"




"그럼 내가 지금 밥 차려 줄게!......"




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됐어! 밥 안 먹어도 되니까 누나 그냥 이렇게 있어!"




영철이 아영을 잡아서 다시 자리에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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