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161)

영철과 아영의 사이가 좋아지자 이제는 세 사람이 같이 자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서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눠가며 웃고 떠들다보면

김미자는 문득 사람 사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졌다.

하루는 셋이 모여 과일을 먹다가 아영이 영철의 학업 얘기를 꺼냈다.

"영철이 너, 대학은 가긴 갈 생각이니?....."

"그럼요! 가야죠!........"

"어머! 숨도 안 쉬고 말은 잘 하네!........

그렇게 공부해서 퍽도 대학에 가겠다?!.........

어느 대학에서 이렇게 공부 안 하는 학생을 받아준대?........."

"그거야 뭐........지금부터 하면 되죠 뭐!"

사실 영철도 대학에 가야된다는 생각만 있지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대학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진호엄마에 이어 장희주....그리고 지금의 김미자까지

여자와 껴안고 뒹구는 재미에 빠져 그동안 공부와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내왔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늘 우등생이었던 영철은 

지금도 자신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모두가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진호아버지와 그런 일만 없었어도, 또 자신이 알게 되지만 않았어도 

영철은 자신이 여전히 착실한 모범생으로 공부를 잘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앓는 소리 같던 엄마의 그 신음소리는 여전히 귀에 생생했고

구멍이 뻥 뚤려있던 엄마의 털이 무성한 보지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처음에는 믿었던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엄마에 대한 미움 속에 알 수 없는 흥분도 같이 느껴졌다.

더욱이 친척 아저씨와 주방에서 일하는 안씨와의 일을 알게 된 후로는

미움보다는 언제나 흥분되는 마음이 먼저였다.

다른 여자들의 보지를 박아대다가도 어쩌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면

괜히 더 흥분이 돼서 더 거칠게 여자들의 보지를 박아대던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도 점차 사라져갔다.

진호엄마, 장희주, 미란과 같이 남편이 있는 여자들을 겪으면서

영철은 조금이나마 엄마인 경숙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엄마가 한 짓은 영철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철은 자신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 그나마 엄마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만일 경숙이 언제고 떨어진 성적을 갖고 자신을 나무라기만 하면

영철은 그 모든 탓을 경숙에게 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철은 자신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인 경숙도 알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자책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이제는 엄마에 대한 복수라는 개념도 없이 

그냥 습관처럼 공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경숙 조차 거론하지 않는 대학진학 문제를 아영이 들고 나온 것이다.

"큰어머니!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영철이 공부 좀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데.......뭐 실력은 별로 없지만......"

"아이구! 그러면야 좋지!......."

사실 공부 얘기가 나오면서 김미자는 속으로 뜨끔했었다.

김미자도 늘상 속으로는 자신이 영철의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미자도 늘 영철의 학업이 걱정되었지만 영철이 자신의 친 피붙이도 아닌데다

자신과 영철이 하는 짓을 생각하면 자신이 영철의 공부 걱정을 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 같이 생각되어 그동안 영철에게 말 한마디도 뻥긋하지 못했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이 영철의 앞길을 망쳐놓는 것 같아 항상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아영이 그 얘기를 꺼낸 데 이어 

영철의 공부까지 도와준다고 하니까 아니 반가울 수가 없었다.

김미자가 그동안 들어서 알기로는 아영의 시골 집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 내내 학비는 장학금을 타서 해결했고 생활비는 학생들 과외로 충당했었다.

김미자는 자신이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나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그래! 영철아, 그래라!........

이 아영이 누나가 대학 다닐 때 공부 잘해서 4년 내내 장학생이었다 너! 

그리고 너 같은 고등학생들 공부도 많이 시켜봤다고 그랬어!......내 말 맞지?..... 

그런 누나가 너 공부 가르쳐준다니까 얼마나 좋니?!........정말 잘 됐다!....."

영철도 그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여름방학 때 친구네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을 때 정석이 영철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주위에서는 대학 준비하느라 과외다 학원이다 하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영철도 속으로 불안하던 때였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하려해도 워낙 오래 놀아서 기초가 없다보니

어디서부터 뭘 공부해야할지를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아영이 자원해서 공부를 도와준다니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지금부터 해서 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왜 싫어?......누나한테 공부배우는 거 싫어?......"

영철이 즉각적인 호응이 없자 김미자가 애가 닳아서 영철에게 물었다.

"아니!....그게 아니라.......내가 너무 기초가 없어서......

가르쳐줘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그렇지 뭐!......"

"난 또 뭐라구?!..........그게 뭐 걱정이야!......모르니까 배우는 거지 다 알면 뭐하러 배워?!.......

누나가 어련히 알아서 가르쳐 줄까?!...."

"그래! 걱정하지마!......내가 영철이 실력 알아보고 맞춰서 시작할게!......."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당장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는 대로 영철이 아영과 공부를 하기로 했다.

다음날 영철과 아영이 책상을 앞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영철아! 너 내말 잘 들어봐!........

우리 지금 이렇게 시작하는 건 네가 대학 가기 위해서야!

그런데 너도 알겠지만 네가 남보다 뒤져 있으니까 남만큼 해서는 절대 대학 못 가!

그건 너도 알지?.......

그래서 나랑 시작하기 전에 네가 먼저 결심을 해야 돼!....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하겠다는....남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

그렇지 않으면 이거 시작할 필요도 없어!.....

괜히 너나 나나 다 시간만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돼!......알았지?....."

".....네!..........."

"그냥 건성으로 대답하면 안 되고 정말 마음에 결심을 해야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네가 나하고 하나 약속을 할 일이 있는데..............."

아영이 말을 하다 말고 중간에 한동안 뜸을 들였다.

"......뭔데요?....."

참다 못한 영철이 아영에게 물었다.

"내가 얘기하면 나하고 약속하고 지킬 수 있어?..........

내가 얘기했는데 네가 안 지키겠다고 하면 아예 말을 안 꺼내니 만 못 하니까!......

어때? 내가 하는 말 뭐든지 약속할 수 있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약속을 해요?......들어봐야 약속을 하지요......."

"...............하여튼 너 대학 가는데 꼭 필요해서 네가 지켜야 할 약속이야!.......

네가 무조건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 안 할래!......"

"하하! 나 참!.....뭔데 그래요?....................알았어요! 약속할게요!....."

"정말 꼭 약속하고 꼭 지켜야 돼?!...."

"알았어요! 꼭 지킬게요!......도대체 뭔데요?.......

"너!.............이제부터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큰어머니 방에서 일주일에 한번씩만 자!......토요일밤에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원래는 그것도 안 되는 거지만 그 이상하면 네가 못 지킬까봐 나도 양보한 거야!

어때? 할 수 있어? 없어?................"

영철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주문이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건 꼭 그럴 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꼭 그래야 돼요?...............그냥 자기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고.....큰 엄마 방에서 자면 안돼요?"

"안 돼!............너 지금부터는 밤을 새고 공부를 해도 시간이 모자라!.......

그런데 네가 큰어머니 방에 가서 잘 시간이 어딨어?.............

큰어머니 방에서...... 괜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학교가면 무슨 공부가 되겠어?......

그러니까 안 돼!......."

"그냥...............잠만 잘 건데요!....................."

"그러니까 잠은 네 방에서 자란 말이야!...."

".........그러면..............큰 엄마가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네가 공부하느라고 그런다는데 큰어머니가 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아니요! 그게 아니라.........여태까지 쭈욱 큰엄마랑 같이 잤는데.......

혼자 주무실려면 섭섭하고.............뭐 무섭기도 하실 것 같고.......

지난번에 집에 강도도 들어왔었잖아요?!.............."

"너 정말 자꾸 딴 소리 할래?..........

너 이것 좀 봐!......이게 뭔지 알아?........"

아영이 영철 앞에 뭐를 잔뜩 적어놓은 노트를 펼쳐 보였다.

"너 오늘 학교 가자마자 나 나가서 참고서 사 갖고 와서 너 가르칠 공부한 거야!

나도 가르친 지가 오래돼서 하루종일 집에서 이거 갖고 씨름했어!.......

내가 생색내자는 거는 아니지만......

니가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적어도 나보다는 니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어야 되는 거 아니니?..........

정 약속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나도 너 대학가든 못 가든 신경 안 쓰고 적당히 가르치면 돼지 뭐!........

어때?.......그렇게 할래?...."

".......................알았어요!.....약속할게요!....."

"괜히 내 앞에서 약속하고 뒤에 가서 딴 짓 할거면 아예 약속하지 말고!........"

"......................딴 짓 안 해요!............약속 지키면 되잖아요?!..."

말은 아영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밖에

김미자와 재미를 볼 수밖에 없게된 것이 불만이라 영철은 괜한 퉁명을 떨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영철에 대한 아영의 닦달은 예상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

무조건 집에 오기가 무섭게 시작된 공부는 식사 때와 약간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영도 옆에서 똑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영철은 힘들고 피곤해도 아야! 소리 한번 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도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아영이 영철의 방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려도 영철이 일어나지 않으면 방안으로 들어와 인정사정 없이 이불을 걷어냈다.

영철이 팬티만 입고 있건 어쨌건 사정없이 영철을 일으켜 세워 세수를 하러 보냈다.

안 하던 공부에다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되니까 영철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대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도 싶지만 아영의 열성 앞에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곤욕은 금욕생활이었다.

거의 매일 그것도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해대던 짓을

상대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바로 눈앞에 두고도 참으려니까 영철은 공부에 집중이 안 되었다.

그래서 처음 한동안 영철은 별의별 수를 다 써봤다.

공부하다 잠시 휴식 시간에 김미자의 방으로 달려가 뒤로 엎어놓고

치마를 들치고 쑤시다가 아영이 찾는 소리에 놀라서 바지춤을 올리기도 하였고

김미자를 꼬드겨 아영을 심부름 보내고 그 사이에 김미자를 올라타기도 했다.

그런데 아영의 눈치가 얼마나 빠삭한 지 그 때마다 아영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공부 안 해요?.......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래요?.........."

"공부는 무슨 내 공부하나?.......혼자 알아서 하면 되지!......."

"에이, 또 왜 그래요?...........내가 뭐 잘 못 했다구 그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알아도 본인이 더 잘 알겠지?!............

그깟 약속하나 못 지키면서 그래도 남자 노릇은 하고 싶은가 보지?!......."

이런 식이 되다보니 영철이 매번 아영에게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용서를 빌어야했고

그러자니 영철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보통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영철이 꾀를 낸 것이 아영이 잠든 틈에 김미자의 방에 잠입하는 것이었다.

한 두 번은 용케도 들키지 않고 넘어갔는데 꼬리가 길어서 그 마저도 들통이 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한참 헐떡거리다 나동그라져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가

뒤늦게 잠이 깬 김미자가 영철을 깨워 어서 빨리 방으로 돌아가라는 성화에 방문을 열고 나오니 

방문 앞에 아영이 턱 버티고 서 있다가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 섰다.

그 날 아침 밥상에서 아영이 눈을 내리깔고 김미자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큰어머니!...........지난번 강도도 들었는데 이제 밤에 주무실 때는 방문 꼭 잠그고 주무세요!"

그 소리에 김미자와 영철은 둘 다 얼굴이 뻘개졌다.

조카며느리가 혼자 애를 쓰는데 옆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나이 든 자신이 주책을 부린 꼴이 너무도 민망해서 김미자는 그 날부터 

방문을 꼭 잠그고 자는 것은 물론 영철의 어떤 은밀한 요구에도 응하질 않았다.

영철도 하는 수 없이 토요일만 기다리다가 자정이 되기 무섭게 

아영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이 김미자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도 예외 없는 아침 5시 기상이었다.

밤새 잠을 못 잔 턱에 떠지지 않는 눈으로 새벽 공부를 마치고 아침을 먹고 나자

아영이 영철의 등을 떼밀어 집에 다녀오게 했다.

이렇듯 하루아침에 뒤바뀐 생활로 영철의 하루 하루가 고달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철은 그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갔다.

아영의 가르침 속에 그동안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던 공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영의 헌신적 노력 덕분에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던 영철이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중하위권으로

그리고 다시 기말고사에서는 중위권으로 성적이 올라갔다.

정석과 경숙이 드디어 영철이 마음을 잡았나 싶어 기뻐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좋아한 사람은 김미자였다.

언제나 알게 모르게 가슴을 짓눌러오던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의 영철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벗어버린 느낌에서였다.

그래서 영철이 3학년이 되고부터는 자신이 집에 있으면 행여 영철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영철을 위한 불공도 드릴 겸 주중에는 아예 다니는 절에 가서 며칠씩 있다 오기도 했다.

그런 어느 봄날 영철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웬 손님들이 와 있었다.

손님 중에는 젊은 남자도 하나 껴있었는데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 손님들은 영철이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도 한참을 더 있다 돌아갔다.

"누나! 그 사람들 누구야?....."

다른 때 같으면 영철이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영철의 방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을 아영이 뒤늦게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영철이 물었다.

".............................."

평소보다 어두운 안색의 아영이 아무 대답 없이 앉은뱅이 책상 위에다 참고서를 펼쳤다.

"그 사람들 누구냐니까?.......누나? 누구야?........"

"아이, 몰라!........그건 니가 알아서 뭐하게?!........."

아영이 평소답지 않게 약간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나!....... 왜 괜히 나한테 신경질을 내고 그래?!........

그까짓 것 물어본 게 무슨 잘못이라고?!........."

두 사람은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영철은 며칠이 지나서야 김미자의 입을 통해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아영의 시어머니였고 젊은 남자는 아영의 신랑감 후보, 그리고 그 남자의 부모들이었다.

말하자면 며칠 전의 자리는 아영이 선을 보는 자리였다.

아영이 선보기 싫다며 끝내 약속을 안 하는 바람에 

남자 쪽에서 아영의 전 시어머니를 앞세워 김미자의 집으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원래 남자는 아영의 죽은 남편 친구로 아영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인데

어느 날 아영의 시어머니를 찾아와 아영을 흠모하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영의 시어머니는 처음에 아들 친구의 고백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아들 친구가 

아영의 재혼 배필로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영이 자신이 모르는 사람과 재혼을 해버리면 그야말로 남남이 되고 마는 건데

아들 친구와 결합하면 그래도 남남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불과 1년 남짓 같이 살았지만 언제나 예의 바르고 싹싹한 데다 웃어른 공경까지 잘해서

아들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도 욕심 같아서는 언제까지고 같이 데리고 살고 싶었지만

젊은 아영의 앞날을 생각해 김미자의 집에서 같이 사는 것에 동의를 했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아영이 재혼을 해서 떠나버리면 그나마 아영에게 남아있는 아들의 흔적마저도

모두 새벽안개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아쉬움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아영이 아들 친구와 재혼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아들 친구는 아직 총각에다 좋은 직장도 갖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아영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재혼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영의 전 시어머니가 이 혼담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었다.

아영은 시어머니가 재혼 얘기를 꺼낼 때부터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는 말로 거절을 했지만

그 상대가 남편 친구임을 알고는 더욱 질색을 했다.

아무리 남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지 

남편 친구와 재혼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영이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회피를 하자

더욱 몸이 달은 남편 친구가 시어머니를 졸라 결국 김미자의 집에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남자쪽 부모도 황당하기는 아영 못지 않았었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자신의 아들이 세상 여자 마다하고

죽은 친구의 부인하고만 결혼하겠다고 우겨대니 아들놈이 뭐에 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들 성화에 못 이겨 따라 나설 때만해도 뭔가 안 될 이유를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아영을 보고 얘기를 나누며 아영의 이런저런 모습을 꼼꼼히 살펴본 뒤 김미자의 집을 나설 때에는 

남자의 부모들도 아들이 여자하나는 제대로 골랐다 싶은 심정이었다.

예쁘기는 하되 요사스럽지 않고 차분하지만 냉랭하지 않고 

따듯하기는 하되 천해 보이지 않는 공손함이 남자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군다나 지금 재혼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친척 동생의 대학진학을 끝까지 도와주기 위해서라니!........................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아영의 마음이 아름답게까지 보였다.

물론 그런 정도의 이유에 남자가 순순히 물러날 리는 없었다.

지금부터 서로 사귀면서 서로에 대해 더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재혼은 친척 동생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 결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동조를 했고 

결국 아영도 주변 위세에 눌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시어머니가 나서서 졸라대는 데야 아영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누나! 고마워!.....그리고 미안해!........큰 엄마한테 다 들었어!"

영철이 나중에 아영에게 사과를 겸한 감사의 표시를 했다.

"너는 딴 생각말고 공부나 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학생이 공부나 하지 하여튼 별 걸 다 신경을 써?!........"

아영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받아 넘겼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아영을 찾는 전화가 부쩍 많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