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61)

얘기를 다 듣고 난 정석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 수려해 보이고 깔끔해 보이던 유진이 지금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선뜻

믿어지지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맹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허!....이것 참!......."

정석으로서도 얼른 뭐라고 맞받아 쳐줄 말이 마땅치 않았다.

"형님!.....이제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래도....아직 뭐.... 확실하게 증거를 잡은 건 아니잖아?"

"증거야....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인데 그것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딨어요?"

"그거야......동생 생각이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막말로 동생이 뭘로 증거를 댈 거야?.....

거기다 저 쪽에서 끝까지 아니라고 딱 잡아떼고 우기면?.....

이거 신중히 풀어가야지 아니면 거꾸로 동생이 병신되기 십상이야!....."

"휴우우!..... 그래서 저도 걱정이에요!.......

그래서 형님한테 조언 좀 얻으려고 이렇게 왔어요!.....

어휴우! 나쁜 년 같으니라고!....

형님이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보신 게 잘 보신 거예요!

그년 결혼할 때 처녀막 수술하고 시집온 게 틀림없어요!

그런 년이 나한테 온갖 내숭 다 떨고......

내가 지 숫처녀 아니라고 지한테 뭐라 그럴 놈이에요, 뭐에요?...

이니 그러고....지가 숫처녀인 척하고 시집왔으면 맘 잡고 잘 살 생각을 해야지...

결혼한 지 얼마 됐다고 그새 또 그 지랄을 해요?....

세상에 나쁜 년도 이런 나쁜 년은 없을 거예요!.....안 그래요, 형님?"

나한철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쉬지 않고 열을 냈다.

"자! 자! 자!.....너무 열내지 말고.....

어떻게 차근차근 잘 풀어갈 건지 그 생각을 먼저 해야지!.....

그나저나 동생은.....

이게 사실로 밝혀지면 제수씨하고 어떻게 할거야?.......이혼할 거야?"

정석은 왠지 유진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물었다.

"글쎄요!....아직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뭐, 이혼해야 되지 않겠어요?....그런 여자하고 정 떨어져서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허긴... 벌써 정이란 정은 다 떨어졌는데 더 떨어질 정도 없지요 뭐!......"

"그러니까 그런 문제도 잘 생각해 보고.....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 찬찬히 잘 시간을 두고 더 지켜보자고....!"

흥신소를 이용하는 일에 정석도 동의를 하자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면 나한철이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얼마 뒤 흥신소에서 나한철에게 가져 온 자료는

정부장에 대한 신상명세와 유진이 결혼 전에 어떤 남자와 사귀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동안 유진은 매일매일 회사에서 끝나는 대로 집에 일찍 들어왔기에

나한철은 속으로 복수의 칼만 갈 뿐 달리 뭘 어찌해볼 도리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유진이 또 회사에 전화를 해서 친정 집에 다녀오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한철은 전화를 끊자마자 흥신소에 전화를 했고 흥신소에서는 유진의 뒤를 쫓아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흥신소 직원이 나한철에게 커다란 봉투를 전해주었다.

그 속에는 유진이 어떤 남자와 경양식 집에서 나오는 모습,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다시 같이 여관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에 있는 유진의 얼굴 어느 구석에도 조심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나한철은 유진의 그 당당한 모습에 더 분노가 솟아올랐고

꼭 그에 합당한 복수를 해주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을 했다.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 남자의 나이 먹은 모습에 나한철의 비위가 더 상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날 저녁 나한철은 정석을 만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이제 동생은 어떡할거야?.....

지난번 얘기처럼 제수씨하고 이혼할 거야?"

"이혼은 하겠지만 그냥 쉽게 이혼하지는 않죠!......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억울하죠!

내가 당한 고통과 내가 겪은 배신감만은 반드시 보상을 받고 이혼을 하더라도 할 겁니다!"

"뭘 어떻게 보상을 받아?.....

뭐 위자료라도 청구한다는 얘기야?"

"아니요! 내가 치사하게 이런 것 이용해서 돈이나 뜯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형님!.......

형님이 이 사진 갖고 어떻게 잘 이용해서 우리 와이프를 적당히 괴롭혀 주십시오!

아니, 그것보다 형님이 제 와이프를 한 번 따먹어 주세요!

그것도 제가 보는 앞에서......

그래서 그 년의 코가 정말 납작해지는 꼴을 제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동생 제 정신이야?"

"형님!...제가 빈 말로 하는 말 아닙니다.

형님! 제 부탁이니까 꼭 제 말을 꼭 좀 들어주세요!"

"싫어!....난 그런 거 안 해!.....

난 남 공갈치고 협박하고 그러는 거 싫어!....또 할 줄도 모르고!......"

"공갈은 이게 무슨 공갈이에요?......

형님이 내 보상을 대신 받아내는 거지.....

형님! 제가 이런 부탁 누구에게 하겠어요?.....

제가 형수님 때문에.... 형님에게 빚진 것도 있고 하니까 이러는 거예요!....네? 형님!"

"아, 싫다니까!....정 하고 싶으면 딴 사람한테 가서 알아봐!....난 싫어!"

둘이 그 문제를 놓고 한동안 옥신각신 했다.

처음에는 나한철의 제안이 황당하기 그지없더니 

정석도 가만 생각해 보니까 뭐 특별히 못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진을 처음 보고 아름답고 세련된 자태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공연히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했던 기억도 있던 터였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자신이 평생 유진과 같은 여자를 안아 볼 기회라도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부인을 협박해서

겁탈하듯이 몸을 취하는 것은 싫었다.

선뜻 태도를 바꾸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정석은 조금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튿날 나한철이 득달같이 전화가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자신이 말한 방법이 유진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같다며 정석을 재촉했다.

이제는 유진의 얼굴을 보기도 싫고 같은 침대에 자는 것도 소름이 끼친다고

정석이 하루 빨리 결심을 해서 실행을 해달라고 졸랐다.

그것만 끝나면 자신은 아무 미련없이 유진과 헤어지겠다는 것이었다.

정석도 밤새 생각해둔 것이 있어서 못 이기는 척 수락을 하고

대신에 흥신소 직원과 자신이 한 번 더 유진을 미행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절대 유진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내색을 해서도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그동안 유진은 한 번 더 야근을 했다.

나한철은 유진에게 더 이상 미련도 없고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다시는 유진의 팬티검사를 안 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결국 세탁기에서 유진의 팬티를 꺼내어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나한철은 정석에게 어떻게 빨리 좀 해결해보라고 졸라댔지만

유진이 친정간다고 나서는 날까지 기다려보자는 정석의 말에 억지로 참으며 지냈다.

그동안에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서 유진의 일 뿐만 아니라

정석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다 마침내 유진이 저녁에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 늦는다는 전화가 왔다.

나한철은 굳이 누구하고 만나느냐고 묻지도 않고 허락을 해줬다.

사실 나한철이 아는 한 유진의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애가 있는 사람들이라

남편 돌아올 저녁시간에 만날 친구는 별로 없었다.

친정간다는 소리 또 하기가 미안해 유진이 둘러대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흥신소와 정석에게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이 유진의 사무실 앞에서 만나게 해줬다.

퇴근 시간이 지나 유진이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정석은 흥신소 직원의 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가는 유진의 뒤를 쫓았다.

"지난번 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네요!..."

놓칠 듯 놓칠 듯 하면서도 잘도 택시 뒤를 쫓아가는 흥신소 직원이 설명을 해줬다.

이윽고 택시가 서고 유진이 내렸다.

"지난번에도 저기서 내려서 마주 보이는 저 경양식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차를 멀찌감치 세운 채 흥신소 직원이 또 설명을 했다.

얼마 있더니 경양식 집 앞에 차가 한 대 서더니 정석 또래의 남자가 내렸다.

"아! 저 사람 왔네요!....저기 저 차에서 지금 내린 사람이 정부장입니다."

정석은 흥신소 직원에게 지난번 유진이 갔다던 여관의 위치를 물은 다음 흥신소 직원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줄기차게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두 사람이 경양식 집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두 사람이 경양식 집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유진이 남자의 뒤에서 걷더니 여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들어서자

유진이 정부장의 팔짱을 끼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남자의 턱밑에 대고 뭔가를 소곤거렸다.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정석도 유진에 대해 은근한 분노가 솟았다.

그래도 가정을 가진 여자가 남편 모르게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최소한의 죄책감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아무 것도 거리낌이 없는 듯한 유진의 태도에 화가 났다.

흥신소 직원이 정석에게 말해줬던 여관으로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스스럼없이 들어갔다.

최소한 30분은 걸릴 것으로 정석은 계산을 했다.

근처 여관 입구가 보이는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시간을 죽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관에 드나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30분이 지나갔다.

정석도 마음에 긴장이 되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5분,10분, 15분....그렇게 해서 다시 또 20분이 지났다.

여관 문이 밖으로 슬그머니 열리는 기색이 났다.

정석은 재빨리 일어나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먼저 남자가 나왔다.

따로 따로 나올까봐 걱정을 했는데 남자가 문을 잡고 있는 모양새가 유진이 뒤따라 나오는 모양이었다.

정석은 걸음을 더 빨리 했다.

남자는 문을 연 채 다가오는 정석을 바라보았다.

정석은 남자에게 특별히 관심이 없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관 앞을 그냥 지나쳐 갈 기세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괜찮아!..."

남자의 말이 떨어지자 유진이 여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정석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유진은 정석을 못 알아보는 듯 자연스럽게 정부장의 팔짱을 꼈다.

이제 유진과 정석과의 거리는 불과 4, 5 미터에 불과했다.

"엇! 제수씨!..."

정석이 놀란 듯 큰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팔짱을 낀 채 정부장에게 기대어 막 발을 내밀려고 하던 유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다시 정석을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정부장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하지만 유진은 여전히 정석이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뒤까지 돌아보았다.

하기사 정석이 집에 갔을 때 유진과 정석이 마주 친 시간은 불과 몇 십 분에 불과했다.

거기다 집에 처음 들어올 때 빼고는 유진이 정석의 얼굴을 쳐다 볼일이 거의 없었다.

유진에게 정석은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식당을 그만둔 뒤로 정석의 차림새도 달라져 조금 촌티가 덜 나는 것도 

유진이 정석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게된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제수씨! 저 모르시겠어요?..."

이미 두 세 걸음 사이까지 다가온 정석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제야 유진은 상대방 남자가 자신을 보고 얘기하는 줄 깨달았다.

"제수씨!..."

언젠가 한 번은 들어본 호칭이었다.

하지만 형이 없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었다.

'그래! 전에 언제 우리 집에 어떤 촌티 나는 사람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진은 정석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까무러치듯 놀랐다.

"어머낫!..."

얼마나 놀랐는지 유진은 정부장의 뒤로 몸을 숨겼다.

정석은 유진의 그런 호들갑에 머쓱했다.

"허허!...아니, 뭘 그렇게 놀래서 숨고 그래요?"

유진이 정부장의 뒤에서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정석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숨었다.

"어머! 어떡해?!.."

유진이 정부장 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정부장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거의 넋이 나간 듯 했다.

"제수씨! 그럼 볼 일 보고 가세요!......

동생한테 안부도 좀 전해주고요!....."

그리고 정석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걸음은 한없이 느긋했다.

정석이 골목길 거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 뒤에서 요란한 구두 소리와 함께 정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아저씨!....아저씨! 잠깐만이요!...."

'그러면 그렇지!...네가 날 안 부르고 배겨?....

근데 하필이면 아저씨가 뭐야?......아주버님이라고 불러야지!'

정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멈추고 아주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유진이 정신 없이 뛰어오고 정부장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여관 앞에 서있었다.

"아저씨! 잠깐만!...아저씨! 잠깐만이요!..."

유진은 숨이 턱에 차서 정석을 불러댔다.

정석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유진을 바라봤다.

이윽고 유진이 정석의 코앞에까지 달려오더니 가슴에 손을 대고 숨을 골랐다.

정석은 말없이 유진이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저기요, 아저씨!...."

유진이 정석에게 말을 거는 기색에는 아직도 도도함이 있어 보였다.

사실 누구한테도 얘기를 안 했지만 정석도 나한철의 집에 갔을 때 

유진이 자신과 경숙을 깔보는 듯한 눈초리를 느꼈었다.

그 때는 그러려니 했다.

경숙이 나중에 유진의 그런 태도를 놓고 볼멘 소리를 할 때도 정석은 자격지심이라고

오히려 경숙을 나무랐다.

그렇지만 오늘 유진의 모습에서 다시 그 비슷한 기분을 느끼자 정석은 은근히 밸이 꼬였다.

'이 년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만!....정말 되지게 쓴 맛을 한 번 볼려고 그러나?!'

"저...저 사람하고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그냥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저 여관에서 말만 하고 나온 거예요!"

정석의 속마음도 모른 채 유진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벌렸다.

'허허! 이년이 누굴 아주 완전 쌩 촌놈으로 보네!

그래! 실컷 가지고 놀아라!.......'

"근데요?!..."

예상외로 차가운 정석의 대꾸에 유진이 당황한 듯 얼굴이 시뻘개졌다.

"아니...그렇다구요!..."

"내가 언제 제수씨 보고 뭐라고 그랬어요?......

왜 길가는 사람 불러 세워서 제수씨가 나한테 그런 쓸 데 없는 변명을 해요?"

"저기 뭐....혹시라도 오해하셨을까봐요!...."

"오해는 무슨?....나는 제수씨가 저 사람 팔짱끼고 여관에서 나오는 거 밖에 못 봤는데....

내가 오해할 게 뭐가 있어요?"

정석의 말에 유진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했다.

"..................."

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나 먼저 갈게요!..."

그리고 정석은 뒤로 돌아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아이, 아저씨!"

유진이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더니 정석의 팔짱을 끼고 잡아 다녔다.

'허허! 이 년이 그래도 아저씨라고 부르네?!'

"왜요? 무슨 할 말 있어요?....그리고 내가 왜 제수씨 아저씨예요?...

한철이가 내 동생인데....나 이게 도대체 무슨 놈의 족보인지 모르겠네!"

"아..아주버님!"

그제야 유진이 틀린 답을 고치듯 뜬금 없이 아주버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저기....죄송하지만 저랑 얘기 좀.."

"제수씨! 저 지금 이 근처에 약속 있어서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거든요!....

그러니까 할 얘기 있으면 여기서 빨리 하세요!"

"여기 말고...어디 좀 가서........."

"오늘은 약속 때문에 안 된다니까요!..."

"...저 정말 저 사람이랑.....아무 관계도 아닌데......."

정석이 유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유진이 정석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정석은 유진이 반성하는 기색없이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반복하는 데 화가 났다.

"제수씨!.........."

정석이 유진을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자 유진은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들고 정석을 쳐다봤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니?....."

난데없는 정석의 말투에 유진은 입이 벌어지면서 눈이 똥그래졌다.

그런 유진을 한동안 노려보던 정석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수씨! 내 말 잘 들으세요!....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그러니까....토요일....토요일에 나하고 만나서 얘기해요.

오전에 내가 제수씨 집으로 찾아갈게요!....

그리고 한가지....그 날 제수씨 태도보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결정할 거니까 

그 때까지 제수씨도 오늘 일 없었던 것처럼 하고 동생하고 지내세요!...

아니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하고 여관에서 나오는데 내가 보고 괜히 오해하더라고 먼저 얘길 하시던지...."

유진은 정석의 말에 온 몸에 한기를 느꼈다.

여태까지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정석의 이미지와 너무도 달라 마치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 말 알아 들었어요?....왜 대답이 없어요?"

"네?....네!"

"그럼 너 먼저 갈 테니까 천천히 오세요!"

정석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뒤를 돌아 가버렸다.

유진은 얼어붙어 더 이상 정석에게 말을 붙여볼 엄두도 안 났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유진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정부장은 어느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디에도 모습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