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3)

마치 내 느낌은, 이쁜 여자친구가 장시간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로 들렸다. 

좋아, 잠시 집안 구경이나 해보자. 

수희 씨가 나간 사이, 나는 집안 곳곳을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발코니도 널찍하게 잘 트여져 있어서... 

지금 같은 한 여름에는 피서 삼아, 한가롭게 앉아서 다과와 음료를 나누며 

즐기기에 딱 좋아보인다. 센스 있게 이쁘게 잘 해놨네... 

내 방 있고, 화장실 있고, 또... 요쪽에 따로 다용도실이 있군. 

안방을 어서 가봐야제. 으히히히... 좋구만. 

응? 그런데... 

어느쪽이 안방인지 찾다보니, 이제야 알겠구만. 

방이 4개나 된다 이집. 아하~ 적어도 50평은 넘겠군. 

아흐~ 문들도 어쩜 하나같이 무늬도 이쁘게 수놓아져 있고 근사하네. 

그런데... 수희 씨 말로는 아버지 역할하는 (...) 형님이 쓰는 서재가 따로 있고, 

하나는 못들은 방인데... 뭐지?? 

덜컥, 문고리를 돌려보니 잠겨있다. 

서재와 안방은 개방된 상태인데, 이 신비로운 방의 용도는 무엇인고? 

궁금해서 몸살날 지경이네... 흐미- 얼른 돌아와요 샥시. 

다른 식구가 있기라도 한가? 

뭐 이게 중요하냐. 지금 안방 점령이 눈 앞인데. 흐흐 

달칵... 끼이- 설레는 마음으로 안방 문을 드디어, 땄다. 

조심성 없구만... 다 큰 처자가 문을 잘 잠그고 다니지 않고... 

마치 여대생 기숙사나 하숙집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좋아라. 흐후후 

오... 이 방도 정갈하게 잘 가꿔 놓았어. 

크게 눈에 띄는 사치품이라던가, 알 수 없는 용도의 자질구레한 것은 없다. 

다 있을만한 필요의, 알뜰 살뜰한 실용품 위주로 정리를 참 잘해 놓았다. 

방의 정리 상태를 보면, 그 방 주인의 성격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더니. 

어찌 됐든, 솔직히 뭔가 화려하고 멋들어진 구경거리를 내심 기대했던 나로서는- 

차분하고 수수해보이는 가구의 배치와 세간들을 접하니 살짝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검소하구랴. 벌어서 쓸데없이 사치 안부리고 내실있게 잘 아껴쓰는가베. 

보기 좋아... 그래야 내 여자답... 허험! 아니, 미안해유 수희 씨. 헤헷- 

상쾌한 방의 향기를 기분 좋게 코로 맡으며- 

방에 따로 있는 욕실의 구조도 흥미로운 눈으로 살폈다. 

가볍게 훑어본 방의 느낌이 단촐하다고 해도, 실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남의 안방을 몰래 살펴보는 짜릿한 맛은, 그 카타르시스가 강렬한 만족을 느끼게 해주니까. 

나 역시도- 단정한 여인의 은밀한 공간을 살피며... 

몰래 그녀의 사생활을 공유한다는 짜릿한 정신적 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어서 돌아와요. 여~ 침대에 드러누워서 같이 즐거운 짓 좀 합시다... 

오해는 마시오... 낭자~! 헛헛. 

티, 티비를 보든지 과일 깎아먹든지 같이 누워서 하자는 말요... 이상한 생각은 금물이오! 

에헴... 괜히 얼굴이 빨개지네 그랴. 

흐휴... 오만 잡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스치는구만... 꼴깍... 

몸은 솔직해서 거시기는 우뚝- 곤두서는디... 부끄럽다는 생각에 나 혼자 얼굴이 벌개지네. 

허허허- 아이구 좋아라. 

앞으로의 일을 상상만 하면, 설레는구만. 흐흐흐. 

사춘기 소년같이 내 마음 두근 뛰는구나. 이 일을 어이할고~~ 

상상은 얼마든지 할수록 유쾌한 법 아니겠는가. 무슨 죄가 된다고 하하. 

그리고... 비단 상상에서만 그칠 이유도 꼭... 있지는 않고. 에헤헤 

그카고 나서 다시 거실로 기나와- 풀썩, 푹신한 쿠션에 몸을 묻었다. 

음청 편안허네. 몸이 푹 잠기는게 녹는 기분이야. 좋다. 

이런 쿠션이나 소파에 몸을 의지해본 것도 얼마나 오랜만이야 글쎄... 

다시 사는 보람이 있구나. 휴... 

한가롭게 리모컨을 든 나는, 아줌마들 모셔다 놓고 히히덕 거리는 아침프로를 보고 있었다. 

재미 없당게... 뭐 볼만한 아침 드라마 없나? 

막 불륜 치정극, 암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 이런 것 말고, 건전한 드라마는 아침에는 절대 안하는겨?? (...) 

오, 케비에수에서 하는 TV 소설! 난 이게 그렇게 좋더라... 

그래 그래 내 이 나이 먹고도, 아니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잔잔하고 

옛날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오래전 배경이 참으로 좋당게... 

먹고 싶으면 아무거나 가져다가 잘 주워먹고 있으라는 말에, 

슬쩍 출출해져서 식탁위에 있던 빵 몇조각과 우유를 가져와 짭짭 거렸다. 

맛있네... 돈이 좋은 것이여. 달콤하고 입에 짝짝 붙는구마잉. 

그렇게 팔자 좋은 신선 놀음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 아!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던 것 아이가? 

나, 아니 승호... 엄연히 중학교 학생 신분이람서- 

학교는 안 다녀? -.- 아직 방학 안했을 것 아녀. 

중고딩 쉐끼들 방학 8월쯤에 하지 않어? 나도 잘 모르지만. 

갑자기 찾아온 생각은, 그때까지 내 머릿속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작은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그 비실 비실거리는 연약한 몸도 그렇고- 그 날 승강장에서 보여줬던 알 수 없는 수상한 짓... 

내 눈앞에 생생히 잔상이 남아 있던... 희뿌연 액체를 입에서 그르르... 

뿜어내며 절규하듯 울먹이면서 숨을 거두어가던 마지막 그 모습...... 

그래 맞아!......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 이 녀석은 자살하려던 것이 역시, 틀림없었다구... 

애써 그간 머릿속 한켠에 묻어왔을지 모르겠다. 

난 이자식의 행동 양식을 미루어 볼때... 

성격은 어떤지 잘 모르다만~ 덩치도 왜소하고 나약해서, 

평소에 늘 학교에서 상습 갈굼과 폭력을 당하다 못해 자살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달랑 어제와 오늘만으로는 것보다도 당장 나한테 닥친, 급변한 이 상황이 너무나 시급해서 

이 누구야, 성을 모르네 아직까지! 암튼 승호 놈의 신상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다. 

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지... 아무튼 지금이라도 생각났으니 좀 챙겨주꾸마! 

그래. 이것도 빨리 생각해낸거여. 글지 않어? 흐흐. 

워디~~ 학교는 왜 쳐 안가고 있는지 조사해보자. 

으미. 이렇게 할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수희 씨가 집에 늦게 돌아왔으면 싶네! 

빠르게 녀석의 방 책상과 옷장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뭔가 의심을 살만한 부분이라거나, 집요한 학교폭력등을 당했을만한 흔적. 

있을 거야. 틀림없어. 꼭꼭 숨겨놨겠지만... 

음, 이건 뭐지? 어렵사리 잘 열리지 않는 묵직한 책상 서랍을 당겨본다. 

시발 뭔데 이래 빡빡해... 서랍은 무게가 나가는데, 어랍쇼? 뭐 든건 없어... 

수상허다? 종이 프린트 달랑 몇장뿐인데. 가만, 뭔가 부자연스러워야? 

오호, 요 놈이 부모한테 들킬까봐 꼼수를 부려놨구만... 

예전에 언젠가 본 영화 내용이 기억이 났다. 

뉴스보니까, 이제는 공공연한 범죄수단으로 아름답게 계승되어서... 큭큭 

은밀한 장물을 빼돌릴 때 이런 식으로 은닉한다고 잘 그러더만. 설마 요놈이? 

나는 혹시... 주도면밀하게 의문의 서랍 바닥을 샅샅이 살핀다. 

오! 역시~~ 캬캬. 그럼 그렇지 네깟놈이 별 수 있냐. 

영악한 놈. 본건 있어서... 작은 볼펜 심 굵기만 간신히 넣을 수 있는 구멍을! 

서랍 제일 안쪽 한가운데 조그맣게 뚫어놓았다. 허~ 머리는 좋아. 

드르륵- 서랍을 다 꺼내놓고, 

두리번 두리번- 볼펜을 하나 따서 심을 그 서랍 아래쪽으로, 아까 그 구멍을 잘 찾아 맞게 낑차- 밀어 넣는다. 

역시, 쉽게 서랍 깊숙한 곳의 아랫장이 살짝 들리면서 공간이 나타난다. 

예상이 맞으니 이렇게 짜릿할 수가... 

벌어진 틈 사이에 있는 것은 작은 문고집 크기의 책자였다. 

보나마나 일기장이지 뭐. 후후- 나는 별 망설임없이 집어 들고 쭈루루~ 넘긴다. 

짜식 덩치는 비리비리해서... 글씨는 제법 깔끔하게 잘 쓰네. 

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어떤 자극적인 내용들이 있나 살폈더니 

그러면 그렇지. 

이 자식 학교에서 주구장창 얻어터지는 일상의 반복이었어. 

빵셔틀 도시락셔틀 물셔틀 갖은 뭔놈의 셔틀은 이리 많은지... 눈물이 앞을 가리네... 

그 기죽은 모습이나 연약한 몰골로 봤을 때, 이런 견적이리라 생각못한 건 아니야. 

그런디 직접 그동안 겪었을 참상을 목격하게 되니... 마음이 쨘하구나. 

이런 이런~~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수준도 안되는 

아주 장작개비에 불도 안붙인 핏덩어리 쇄끼네들이... 요런 잔인한 짓거리를 한다 이말이제. 

참 요즘 아해들 무섭구나... 눈하나 깜짝 안하고 사람을 찔러 죽일 애들이여. 

후우~ 깊이 심호흡을 뱉고, 일기장을 덮었다. 

볼만큼 봤응게- 다시 은밀한 비밀의 공간에 덮어두마. 

이 내용은 어차피 너랑 나만의 비밀이니... 머리와 가슴속에 잘 담고 있을게. 

걱정마라. 차후 대책은 내, 너에게 앞으로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된 몸이니... 

알아서 싸게 싸게... 어흠, 이 저렴한 말투 -.-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이 삼촌이 잘 해결해줄꾸마. 

아무 걱정말고... 편안한 곳에서 눈 잘 감도록 해라. 

아울러 엄마에 관한 일 같은 것도 나한테 마음 놓고 (...) 

잘 맡겨도 아무런 탈이 없을 꺼이다. 음하하하- 

아 수희 씨, 언제와. 빨랑좀 와요. 보고 싶어 좀이 쑤셔!

3일이 지났다. 

그러니까 사고를 당한 그 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셈이다. 

아무 경황이 없이 눈코뜰새 없이 빠르게 지난 한주였다. 

물론 이보다 황홀할 수 없는 달콤한 시간들이었지라... 

내 성씨는 한 이라카더라. 

한승호... 썩 괜찮은 어감 아닌겨? 크~ 

승호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참 얼빠진 이미지가 아주 이노마 캐릭터랑 딱이네, 했는데 

한 氏 라는 성과 접목시켜놓으니, 호오... 

놀랍게도 상당히 듬직하고 유능한 이미지로 새로 부각되는 기분이였어. 하하 

그러니, 모자란 이름 같다고 느낀 것도 내 편견이었구나... 싶어 부끄럽더라구. 

알게 모르게 나약해빠진 병신녀석이라고 생각해서, 

승호에게 속으로 욕질이나 허구 무시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운 거여. 

불과 며칠 안 지났고... 

이 종합병원처럼 골골대는 하찮은 몸을 물려준 넘이지만, 그래도 감사한 몸의 주인에게... 

어줍잖게 무시하고 함부로 여기던 내 생각을 차차 접을 수 밖에 없었어. 

날이 갈수록 점점 불쌍하고, 요녀석의 입장에서 더욱 연민이 짙어져갔지라. 

아! 그 방의 비밀을 알아냈지 뭐여!! 

흐흐... 내 별볼일 없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댁들은 뭣이라고 생각혔으? 

그것이~ 크~ 좋게 들으면 월매든지 희소식일 수 있는 것이더라, 이거야! 

나한테 누나가 있었어. 

누나란 말여! 여동생이 아니고 누나... 흐흐.. 성숙한 연상 좋구나. 

근데, 열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서 승호를 밴 수희 씨에게...? 

이게 워찌된 일인가 싶제? 나도 마찬가지여. 

수희 씨는 부끄러워서 잘 언급을 안하려 하더라구. 

나도 차마 캐물을 순 없었지... 분위기가 싸~ 해지길래 그냥 넘어갔지라. 

고교생일 때 출산을 했나? 뭐 입양이라도 한 아기인가? 

별별 생각을 나 혼자서 안 돌아가는 골통을 굴려보고 지롤을 했어. 키히~ 

제법 수희 씨랑 같이 지내는 낯 시간에도 어색하지 않게 익숙해졌고 

나한테는 큰 형님뻘에 해당하는 이 집 어르신도 하하, 앞으로 깍듯하게 모셔야하는 입장잉게 

매일 저녁즈음에 퇴근하면 부리나케 쪼로로... 달려나가 공손히 인사혔지. 

죽다 살아난 자식이라 그런지, 나를 무척이나 이뻐하고 기특하게 여기시는겨. 

처신을 내가 올바로 하긴 했지만 

글타고 딱히 참 다행이야. 어색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할 것도 없어. 

내가 이 냥반을 껄끄러워하고, 멀리 하지 않으면 되는 거제... 

수희 씨 서방이라고 생각해서 괜스레 거리를 두고,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 따위를 가지면 참으로 안되는 것이야, 아니 그런가? 

집안 분위기가 달달하고 좋아야 하는 것이지... 

아암 내가 순종하고 말들어서 나쁠 것은 없잖여! 

헤헤헤. 

손바닥 비비는 재주만큼은 아주 고생하며 살다보니, 타고 났는 지라... 

흠, 허험... 

아참, 얼굴도 아직 모르는 처자한테 막말해서 미안한디. 

그 누나라는 년 (...) 은 워디에 있고 문은 왜 잠궜냐구? 

지금 머나먼 미국땅에 유학가서 공부중이랴. 

나이가 승호보다 몇 살이나 많냐고 물어도, 그것만큼은 대답하기를 좀 꺼려햐. 

아마 모르긴 몰라도 꽤 나이차이가 나는가베...? 

궁금해 죽겠는디 차마 물어볼 순 읍었어. 

먹고 자고 나뒹굴고... 문대고 개기고 

이것이 지난 며칠간의 달콤한 천국체험이었다네. 

이런 행복한 생활을 감히 꿈 꿔볼 수도 없던 지난 날에 비교하면- 

지상낙원이라는 것이 현존했구나...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한 나날인지 몰러. 

내는 직싸게 고생을 하고 힘들게 십여년을 살아왔응게... 

이 얼마나 축복받은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 없이 잘 알제. 

승호야... 삼촌이 잘 살아볼게. 

니 못다이룬 어린 날의 꿈, 소망과 같은 포부들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여느 어린 꼬꼬마들과 마찬가지로 사춘기 아이들의 소박한 행복을 바라지 않았겄어... 

꼭, 그 잃어버린 소중함을 되찾게... 대리만족이라도 시켜주고 싶구나. 

내도, 요로코롬 사고를 당한 몸이지만- 

다시 어려진다면 정말 대오각성하고 새 사람으로 살아보자 했으니... 

연약한 몸이나마 잘 물려쓰겠구만. 거듭 감사하이. 

그 생각을 하니, 불쌍한 어린 양에게 쨘~한 향수와 애절함이 수시로 드는 것이여. 

사실 요 며칠간은 내내 그런 생각이 길었구마이. 

마냥 좋은 환경에서 희희낙락하고, 좋아서 침흘리던 시간만은 아니었쥐... 

그래, 연구! 연구에 몰두혔어. 

다름아닌 승호가 극한 상황에 몰릴 수 밖에 없었던 연유를 찾아... 

탐정 수사라도 하듯, 사소한 단서가 이 녀석의 방에 남아 있으면 찾으려 말이지. 

그런데 찾을 수가 없더라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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