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내가 기억을 잃은 어린 아이라고 확신하자-
그 다음부터는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 여기저기를 혹시 다쳐서 이상은 없는지, 만져보고 점검하더니
이상 없겠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퇴원이 가능할까 나도 궁금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 전철역 사고 당시로부터 기절해서 입원해있은지 벌써 3일째라는 기다.
사흘간을 정신없이 의식을 잃고 자고 있던 거구나...
잠깐, 이녀석은 살아났다치고, 그럼 원래의 나는???
머리가 복잡하네. 그럼 그때 정면으로 열차와 충돌한 내 몸은-
무서운 상상이 스멀 스멀 피어오르려 한다...
신문이나 뉴스 보도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디 컴퓨터 없나?
아! 맞다. 이 녀석도 분명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거야.
나는 재빨리,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엄마라는 여인에게 물었다.
“저, 저기요... 아줌......마!”
“응? 호호호- 여보, 저보고 아줌마래요 승호가. 후후후-
그래, 아줌마라고 불러도 좋아. 당분간은 말이지, 근데 내가 너 엄마거든, 요녀석 쿠쿠”
“..... 네, 엄마... 저, 제꺼 핸드폰 어딨어요??”
“핸드폰?..............”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힘겨운 표정을 짓는다.
아마, 3일전에 있었던 무언가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생각하기 싫다는 얼굴이겠지...
남자도 난감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곧 애써 웃으며 말해준다.
“승호야, 핸드폰은 부숴졌어. 아빠가 하나 새로 사줄게 내일...”
“그, 그러면 저...! 지, 지금요! 아무거나 핸드폰좀 주실 수 있어요???”
“...?? 그거야, 내 핸드폰 주면 되지...”
“고맙습니다! 잠깐만 핸드폰 좀 구경만 할게요”
살짝 웃으며, 여인이 폰을 건네주었다.
와...... 지금 일단 좋은 구실로 폰이 있느냐고 묻긴 했는데,
손도 정말 하얘서 이쁘네...
그리고 이런 이쁜 여자의 핸드폰을 은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구마...
후미 좋구나~~ 어린 아이 역할이란거!!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얼른 뉴스를!
두 사람은 어느새 나를 데리고- 병원 입구를 나가 차에 태웠다.
뒷자리에 풀썩, 앉은 나는, 잽싸게 그녀의 핸드폰으로 3G에 접속한다.
꿀꺽............ 그 인터넷 창이 떠오르는 몇초간이 엄청 긴장되고 떨린다.
뉴스, 아니 시발! 정치 경제 스포츠 이딴거 말고, 시사, 사건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7월 7일과 8일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의외로 크게 사회란을 장식하고 있었다.
왜 크게 언급되고 있냐면...
[의로운 40세 영웅, 어린 아이를 구하고 희생하다]
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이것만 봐도 짐작이 가는구만...
이 형편없는 놈을 구해놓고, 나는 죽었으니까......
겁이 나지만 조심스럽게 기사를 훑는데...
오우... 으웩..........
예상대로였다.
기사는 적나라하게 그 날의 실상을 보도하고 있었다.
피한답시고 그때, 빠르게 달려오는 열차의 구석으로 숨었지만-
꼼짝하지 못하고 정면에 직격해서...
내 몸은 보기 좋게 사지가... 아주 처참하게 갈기 갈기 찢어졌다고 한다.
그 사실은 기사에서 완곡하게만 다루고 있길래
이게 다가 아닐 것이야, 하고 댓글들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마침, 그때 현장에 있던 목격자가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는 베플이 있었다.
피와 살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고, 뇌수며 내장이며 할 것 없이 모조리 공중분해되었다고...
아...... 읽다가 속이 메스꺼워서 토할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당한 사고라는 사실에...
도가 지나칠만큼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여운이 사무치게 몰려오는 것이다.
하마터면, 제법 비싸보이는 차 뒷좌석의 시트에 역한 토사물을 뱉을 뻔했다......
구역질이 넘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다니...........
결혼도 못하고, 나이 사십에 홀로 외로이 살다가, 변변한 직업도 없이 힘겹게 살긴 했지만
하나님, 이렇게까지 끔찍한 최후를 맞게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신이 있다면- 정말로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한 끔찍한 증오가 싹트려는 순간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짐작하는 분위기다.
자기들 아들을 구한 의인의 소식을 보고
무섭고 괴로운 감정이 동시에 찾아오며... 울컥 울컥...
닭똥같은 눈물을 “우흐으훅.......”
괴롭게 울부짖으며 쏟는 것을 들었으니까.
죽은 사람을 위해 처연한 슬픔을 담아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구나...
라고 필경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차 안의 공기가 꽤나 무거웠다.
우리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달리는 차에서 침묵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계속하여 핸드폰의 액정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옆으로 몸을 배배꼬면서 누워있자...
무척 마음 아파하며, 슬픔을 견디는 말투로 여인이 입을 연다.
아들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참으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승호야, 그 분도 분명 널 구하고... 착하고 의로운 일을 하셨으니까,
틀림없이 천국 하늘나라에 가셨을 거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 훌쩍...... 훌쩍......... 흐흑, 흐흐윽.......”
“....... 울도록 내버려 둡시다... 실컷 울고 나면 조금 나아지겠지요...”
“...... 네 여보...”
내가 그렇게 복잡다단하고 괴로운 심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부부의 크라이슬러는 눈에 익숙한 선릉역을 지나,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향해 들어섰다.
여기가 대치동인가? 역삼동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헐, 꽤 사는 집인갑네.....
차도 고급스러운 중형 세단인 것 같더니, 집도 강남 한복판에 있어...
씨발... 이거 좋아해야하나 우울해야하는 건가...
이런 좋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용역 뛰러 다닐 때 들어온 기억뿐인데.
tv 광고에서나 보던 E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타고 차가 내려간다.
시벌 주차장도 우라지게 좋구만... 있는 것들은 달라...
삐빅, 차를 세우고 조금의 자잘한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좋네...
사소한 것에도 괜시리 시선이 쏠리고,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나다.
한층에 두 집만 있는 복도 구조도 괜히 주눅이 들게 했다.
아, 물론 이렇게 생긴 건축형태는 익숙하지...
내 말은 뭐냐믄, 내가 살고 있던 환경은 늘상~
닭장처럼 따닥 따닥 붙어있는 복도형 아파트라서...
특히 부티 잘잘 나는 이런 모양새가~ 나를 더 위축되게 한다, 이 말이제.
집도 존나게 넓다.... 자꾸 욕해서 미안한데 역시나 18스럽다....
와... 좋구나!!
40평형대? 이게 몇평형이나 되는 걸까?
도무지 어린아이의 생각이라고 볼 수 없는... 이것 저것 다양한 혼자만의 견적과 상상력을 저울질하며,
나는 신기한 눈으로 구석구석을 엿보았다.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분명 자기 아들은 맞지만... 사고를 당해서 기억에 없는 집이니까.
영혼이 뒤바뀐 줄은 전혀 모를테니까...
그런 나를 배려하는 여인,
아니 이제부터... 불편하지만 편의상 그냥, 내 엄마- 라고 부르겠다.
엄... 아휴, 나의 모친되실... 그 여인은 내 방을 보여주었다.
“편하게 쉬고 있어, 호호- 우리 아들 배고프지?
엄마가 얼른 식사준비하고, 금방 부를게~ 좀 누워 있으렴”
“네... 그럴게요. 엄.... 엄마... 고마워요...”
“후훗♡... 고맙긴 뭐가 고맙니...
우리 아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기억을 잃어버려서... 예전보다 많이 착해진 것 같네...”
“하하........”
그녀가 내게로 다가올 때, 은은하게 몰려오는 향기가 아주 그윽하다...
좋다... 무슨 향기인지 나같이 무식한 놈은 모르지만,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구나... 아아... 최고다...
이 여자 몇 살일까...
음, 요 꼬맹이가 중학생이니까-
어? 가만... 중학생은 맞나? 그런 사실은 아직 모르잖아.
아아! 내가 구해줬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 눔 새이 교복입었었지...
그러면 대략 적어도 서른 중반 이상이라는 이야긴데...
도무지 그렇게는 안 보여!
어이, 젊은 아가씨~ 스물 일곱 정도로 밖에는 안보인다구...
이쁘다...
젊고 아주 피부도 팽팽하다.
곱디 고운 하얀 살결이 얼마나 뽀샤시하고 멋진지...
방금 전에 나한테 다가오면서 살짝 웃어줄 때,
씨발, 너무 꼴려서 지릴 뻔 했다...
무슨 탤런트처럼 이뻐, 여자가!!
음...
언어순화좀 해야겠구나.
나도 이제 의식적으로, 이 집의 가정환경에 맞추어,
어린 아이의 행세를 하고 살아야 하니까...
너무 저질스러운 생각은 삼가도록 하자.
그게 쉬울까 근데? 씨발... 지금도 생각에만 잠기면 욕질 투성인 저질대가린데...
휴... 천성은 쉽게 안 잊혀지는구만. 에레이~~~
이 여인네 키와 체격이 제법 크다. 신장이 얼마나 되지...
아?.... 가만, 내가 지금 뭘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지금.....
등빨 무쟈게 좋고, 어디서든 몸 하나는 남부러울게 없던~~ 그 시절의 내가 아니잖아.
그래, 난 쥐좀만한 꼬맹이 사이즈라구 지금.
글타는 말은- 지금의 축소된 몸뚱이로 봤을때는 무엇이든 다 커보이겠지...
그래, 잘 생각해보자.
나는 슬쩍, 끼이- 소리 안나게 방문을 열고, 등을 돌리고 부엌에 선 여인을 훔쳐보았다.
햐... 근사한 뒷태다... 이뽀 이뽀!
멀리서 이래 보면 그래도 객관적인 견적이 나오지. 저 정도면 키가 160대 초반은 되겄어.
허리도 늘씬하구. 몸매가 참 훈훈하구료. 흐하하... 심히 만족스럽소이다.
다시 방문을 살짝 닫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주 어린 아기가 되어버린 당혹스러운 꼬라지였어...
이 사실을 늘 잊지말고 상기해야혀. 잊으면 아주 곤란혀야.
앞날이 캄캄하구나... 흐~
그런데, 승호 이 쉐끼야... 아저씨가 하나만 말할게.
손이고 다리고 몸통이고 살펴봐도-
아후~ 이게 인간이냐??? 해골바가지지... 어린 애기한테, 정말 원색적인 표현은 삼가고 싶은데...
야 이 쉐끼야, 너 뼈만 늑골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엄마!
잘 좀 쳐먹고 컸어야지......
이거.. 이 쉐이 아주 기냥... 떽!!
내 오늘 이 순간부터라도, 니가 못 묵은 밥 꾸역꾸역 잘 먹어줄끄마!
체력 단련도 같이 하자... 일심 동체라는 마음가짐으로. 하하
누구한테 이 말을 중얼대는 건지 모르겠다.
흐, 그나저나... 나도 염치는 있지.
나보다 열댓살이나 어려뵈는 아가씨를 두고 차마, 엄마라는 가증스러운 말은... 겁내 입이 안떨어져.
낯 근지러서 하면 할수록 닭살이드만. 이거 우짜면 좋노?
헤헤..... 이래놓고, 저 이쁜 처자가 다가와서 이름 부르면카이~
또 실실 좋다고 공손한 애기를 연기하믄서
“네 엄마...”라고 아양 떨어야할 터이니...
으아아아... 상상만 해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소름이 돋는구나.
하하. 어쩌겠어-
세상 살이 뭐든지 자기가 재미붙이기 나름인 거샤!
일단은 오늘부터, 하루 하루를 무사히 새로 시작하잔 마음을 갖자구.
침대와 옷장을 비롯한 모든 방의 가구들은 값나가 보이는 고급 원목 일색이다.
돈지랄 어지간히도 했을 끼여... 안봐도 선해.
애기 방은 대충 대충 쳐넣고 살게하면 되지. 쯧.
흠... 그래도 보기 좋긴 하구... 좀 부럽기도 하구만...
나도 일찍 결혼했으면 이렇게 토끼만한 아새끼방 이쁘게 잘 꾸며서... 예쁜 마누라랑...
아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슬쩍... 앞을 가린다.
여인이 밥을 차려주면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사고의 여운이 아직...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르르르- 너무 졸리고 피로해서 갈등이 몰려온다.
이거 우짜지. 문 열고 저 오늘은 이만 자요- 라고 말해야하나.
잠시 갈등 때리다가, 의식이 스르르- 희미해짐서 골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