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4)

10. 뜻밖의 해후.

다음 날 용봉추가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용봉추가의 가주 추세중의 사부 신안서생의 형님이신 여의무존의 제자 제하량이 찾아온 것이었다.

추세중은 사부 신안서생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신안서생은 대쪽같은 성품이라 조금이라도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크게 꾸짖고 엄벌을 내렸다. 만약 제하량이 사부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기라도 하면 신안서생이 당장 자신을 찾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추세중은 제하량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지만 크게 반기며 연회를 준비했다. 문내의 고수들을 모두 연회석으로 불러 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관당주 필부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딸 추묘령과 내관당주 이화금의 안색이 먹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어두운 것이었다.

"총관, 필당주는 어디 있는가?"

고육생이 얼른 달려와 난색을 띄며 말했다.

"아까부터 찾았지만 없습니다"

"없다니... 그 무슨 말이냐?"

"잠시 문밖으로 나간 듯 합니다. 돌아오는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외출을 했단 말이냐! 돌아오면 뇌옥에 집어넣고 백일간 반성하라고 해라!"

"네, 주군!"

고육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물러섰다.

추세중은 연회의 준비를 살피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딸과 내관당주를 보았다.

"이당주, 표정이 어찌 그리 어두운가?"

"몸이 안 좋아 그렇습니다"

"허어,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좀 웃으시오"

"네, 주군!"

이화금은 억지 웃음을 머금었다.

"묘령아, 너도 좀 웃거라!"

"네, 아버님!"

추묘령은 대답은 했으나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간밤의 악몽 때문에 웃기가 쉽지 않았다.

"여봐라, 어서 부인을 오라고 전해라!"

추세중의 말을 들은 시녀들이 오가혜한테 달려가 이 말을 전했다.

오가혜는 막 전각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 뒤에는 그림자처럼 자향이 따르고 있다.

"넌 연회가 끝날 때까지 내 뒤에 있거라!"

"네!"

오가혜는 자향을 대동하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추세중은 그녀가 도착하며 가볍게 일별할 뿐, 아름답다는 등의 가벼운 칭찬도 해주지 않았다. 그녀 역시 별로 기대하지 않은지라 남편의 옆자리에 앉았다. 문득 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이 보였다.

"묘령아, 안색이 어둡구나"

자향이 보니 과연 안색이 좋지 않다.

'흐흐, 간밤의 보지가 찢어지도록 좋았던 기억을 잊지 못했나보군'

살짝 이화금을 살피니 그녀 또한 안색이 밝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행한 자향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속으로만 웃을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추세중은 준비가 끝나자 시녀에게 전했다.

"어서 제하량 공자를 모시고 오너라!"

시녀가 촐랑촐랑 나가고 잠시 후 멋들어진 청년이 한 명 들어왔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자향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청년, 뜻밖에도 간밤에 그를 방해했던 불청객이 아닌가!

'헉, 저 자였다니... 낭패다. 내 얼굴을 봤을지도 모르는데...'

자향은 얼른 고개를 숙여 시선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했다.

"하하, 제공자를 위해 준비한 자리니까 편하게 즐기시오"

제하량이 점잖게 응수한다.

"가주께서는 말씀을 낮추십시오. 사부님은 다르나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절 하량이라 불러주십시오"

"하하, 그래주겠는가. 이렇듯 멋진 아우를 얻으니 참으로 기쁘네. 어서 자리에 앉게!"

제하량은 추세중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회석을 훑어보았다. 추세중과 오가혜, 총관 고육생, 추묘령과 내관당주 이화금이 보였다. 추묘령과 이화금과는 안면이 있었으나 사전의 약속대로 모른 척 하였다. 그녀들도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문득 오가혜에 뒤에 서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고개를 숙여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잘생긴 미소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별로 신경쓰지 않고 추세중이 권하는 술을 받았다.

가희들이 나비처럼 춤추며 즐거운 음악을 연주했다.

"누가 아우의 잔에 술을 채워 주겠느냐"

추세중의 말에 은근히 그의 잘생긴 얼굴을 흠모하던 가희들이 우르르 몰려가 술잔을 권한다.

제하량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들의 잔을 받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을 막았다.

"하하, 이 아이들이 부족하단 말인가. 그럼 내가 아끼는 아이의 잔을 받게나. 누가 구교를 불러오너라!"

추세중은 제하량이 거절하는 것이 가희들의 미모가 부족해서 그렇다 여기고 자신이 아끼는 시녀를 불렀다.

잠시 후 아리따운 시녀 구교가 들어왔다.

"하하, 교아야. 내 아우의 시중을 들거라"

"네, 가주님!"

구교는 추세중의 명을 받아 제하량의 옆에 자리하고 술잔을 따랐다. 시녀지만 맑은 눈빛과 은은한 미소가 감히 가희들과 견줄 수 없었다.

"공자님, 소녀의 술을 받으세요"

구교는 제하량을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그의 수려한 용모는 감히 추세중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몰락한 명문가의 자녀로써 항시 제하량과 같은 멋진 공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다. 부친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세중의 시녀로 들어와 그의 노리개가 되었지만 그녀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공자가 눈앞에 있었으니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꽝거렸다.

"고맙소"

제하량이 살짝 미소를 머금자 장내의 모든 여인들이 넋을 잃었다. 바로 앞에 있던 구교도 물론이었다.

추세중은 구교가 제하량에게 마음을 빼앗기자 내심 발끈했지만 연회석인지라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중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교는 제하량의 곁에 찰싹 붙어 시중을 들었다.

오가혜는 연회석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제하량의 잘생긴 용모가 마음을 끌었지만 남성적인 매력보다 여성적인 매력이 짙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자향은 모든 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자향은 여전히 그의 뒤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가 힘들기도 했거니와 괜히 남편 추세중의 눈에 띄어 꼬투리가 잡힐까봐 그에게 말했다.

"이제 되었으니 넌 돌아가 쉬거라!"

그는 안 그래도 자리가 불편했는지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을 돌렸다. 그런데 연회장을 나가기 직전 공교롭게도 제하량을 쳐다봤는데 그만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깜짝 놀라 얼른 고개를 돌리고 연회장을 나갔다.

'저 자는...'

제하량은 방금 나간 자를 알고 있었다. 어찌 간밤의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저 자가 형수님의 시종이었다니...'

제하량은 추묘령과 이화금을 살폈으나 그녀들은 자향에 대해 모르는 듯 했다. 그건 오가혜도 마찬가지였다.

도중에 이름이 잘못 써져 있더군요...

혹시 뭔가 이상해도 다음부터 수정해서 올려지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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