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망의 3부입니다. 원래 2월말쯤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꼬이는 일이 많아서 이제서야 겨우 3부에 들어갈 수 있섰습니다. 3부의 내용은 황도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황도의 현지처와 귀족들의 섹스파티가 주요 섹스코드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캐릭터도 몇 명 등장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다음회예고>> 황도로 들어서는 칸피니스 일행 앞을 가로막는 의문의 마법사. 그 상식을 깨는 언행은 칸피니스마저 당혹하게 하는데... 왜인지 칸피니스는 아름다움 미녀인 마법사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거부하려 한다. 믿을 수 없는 모습에 경악하는 작가와 일행들. 과연 그녀와 칸피니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예고편과 본편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따위는 지지 않습니다. 배째!세요!
집무실로 들어오는 에르히 발트 파나샤 슈베르티 백작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있다. 근래 보기 드문 모습이다. 소드마스터 중의 소드마스터라 불리우는 그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실력만큼이나 제국에서의 입지가 그의 불편함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를 참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크세닌 파나샤 콘벨른!! 이 머저리같은 자식이!! 그 개자식이!! 분수도 모르는 멍청이가!! 감히!! 감히!! 그까짓 디포르챠 따위를 위해서! 그 썩을 디포르챠의 복수를 위해서! 감히! 감히! 누구를 공격한다고? 미쳤어! 미쳤어!”
“배... 백작님...”
“감히! 감히! 이 내가 권고하는데! 나 에르히 발트 파나샤 슈베르티, 소드마스터 중의 소드마스터인 내가 경고하는데 그 말을 물로 들어? 죽으려고? 아니 죽으려면 혼자 죽지 누구를 끌어들이려고! 이 미친 자식이! 이 미친 자식 때문에 20년 넘게 추진해온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야 한다고? 빌어먹을! 젠장할!”
“배... 백작님!!”
소드마스터답게 그의 분노는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저도 모르게 일어난 기세가 검기가 되어 집무실 안을 휘감는다. 나름대로 뛰어난 기사인 타일로 토르 타키조차도 감히 감당할 엄두도 내지 못할 날카로운 살기를 담은 검기다. 타일로는 급히 몸을 움직이며 에르히를 말리려 노력해본다.
“배... 백작님!! 백작님!!”
하지만 그의 노력과는 달리 에르히는 여전히 조금전 만나고 온 콘벨른의 백작 크세닌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분노를 폭출하는데에만 집중한 채 타일로 따위는 신경도 쓰고 있지 않다. 절실히 외쳐 불러보지만 에르히의 분노어린 손짓이 검기를 동반하고 방안을 휘저을 때마다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가까스로 피해내기를 반복할 뿐이다.
“타일로!”
“예!”
검기의 폭풍이 멎은 것은 방안의 모든 기물을 검기로 박살낸 이후다. 그때까지 타일로는 검기에 의해 온몸에 수십군데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하지만 에리히는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리는 타일로를 에리히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타일로는 에리히의 부하, 에리히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기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타일로는 에르히의 이같은 대우에 익숙한 듯 조금의 서운함이나 반항도 내비치지 않은 채 자세를 바로하며 에리히의 명령을 기다린다.
“크세닌 파나샤 콘벨른을 세상에서 지운다! 타차닌 전투에서 콘벨른가의 기사단이 패하게 되면 바로 크세닌과 그 자식들을 모두 죽여라! 더 이상 까불지 못하도록 아예 싸그리 없애버려! 크세닌의 직계 혈족은 더 이상 제국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알겠나?”
“예!”
익숙한 명령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그 혈족을 멸족시키는 것은. 지난 20년간 타일로와 그 전임자는 에르히의 명령에 의해 수십의 가문을 그렇게 은밀히 멸살시켜왔다. 다만 크세닌 파나샤 콘벨른이라는 이름이 이제까지의 적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게를 가질 뿐이다.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하고, 가는 길에 라쥴을 불러라. 상의할 것이 있으니 서두르라고 하고.”
“예!”
라쥴은 귀족이 아니다. 그의 부모는 상인출신이고, 더구나 라쥴은 장남도 아니어서 상인가문의 상속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타일로와 비슷하다. 타일로와는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에르히의 측근으로서 그 지닌 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델킨피에르 자작의 일이라고 전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어서 가라!”
“예!”
타일로는 왜 슈베르티 백작이 자작에 불과한 칸피니스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지 잘 알지 못한다. 전임자인 리알 토르 라파마스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슈베르티 백작의 함구령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타일로는 칸피니스의 존재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칸피니스의 정체를 아는 것과 그의 임무와는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군인 슈베르티 백작이 델킨피에르의 자작에 대해 알아보라고 명령하기 전까지 그에 대한 관심은 쓸데없는 개인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다.
“가라!”
척--!!
타일로가 군례를 올리고 급한 걸음으로 방을 나가자 에르히는 타일로가 나가는 모습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힘없이 흔적만 남은 소파에 몸을 싣는다.
“후우--!!”
힘없는 한숨과 함께 에르히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안는다. 해결하기 곤란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보이는 그의 습관이다. 그는 늘 해오던대로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하아... 도대체 어디서 꼬인거지? 왜 하필이면 칸피니스냔 말이다! 칸피니스! 하아... 그렇다고 그의 정체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도 없고... 젠장... 하아... 젠장...”
그의 고민은 타일로의 전갈을 받은 라쥴이 집무실을 청소할 하녀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설 때까 계속되었다.
다각다각다각--
다각다각다각--
두두두두두두---
8필의 말로 둘러싸인 마차 한 대가 제국동남제후령으로부터 황도로 향하는 관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사람이 걷는 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느긋하게 유람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은 붉은 색의 기사제복을 입은 여자들이다. 두 명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많아도 10대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앳띤 외모들이다. 그저 옷차림만 기사인 것은 아닌 듯 여자들의 허리에는 장식용으로 보기에는 거칠게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검이 매달린 채 흔들거리고 있다.
여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마차를 모는 것은 잿빛 머리의 여자다. 잿빛머리는 대개 거칠고 추레해 보이기 쉽다. 하지만 마차를 모는 여자는 푸르게까지 보이는 창백한 외모가 잿빛머리와 너무 잘어울려보인다. 잘어울리다못해 왠지 모르게 차갑고 섬뜩한 느낌까지 느끼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미녀다.
잿빛머리의 여자 옆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마차에 기대어 한가롭게 다리를 흔들고 있다. 마부노릇을 하고 있는 잿빛머리의 여자가 열심히 말을 몰아가고 있음에도 바로 옆에 앉은 붉은 머리의 여자는 얄미울 정도로 느긋한 자세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게으름을 피울까 연구하기라도 하는 듯 그 흐트러진 자세가 갈수록 가관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잿빛머리의 여자 마부는 그녀의 행동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의 상급자인 듯 하다.
다각다각다각---
다각다각다각---
두두두두두---
“아함... 심심해...”
마차 옆에서 느릿느릿 말을 몰아가며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소녀가 하품을 한다. 와인레드의 기사제복보다 더 선명한 붉은 빛 머리카락이 지루함으로 굳어버린 몸을 풀어보려는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소녀의 움직임을 따라 유난히 흰 피부 위로 춤추듯 너울거린다.
우두둑-- 뚝뚝---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요정과도 같은 환상적인 모습을 처절하게 배반한다. 마치 50대 중늙은이와도 같은 뼈부딪히는 소리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요란하게 들려온다. 오랜 여행에 그만큼 몸이 굳어버린 때문이다.
“파트리샤! 심심하지 않아?”
붉은 머리의 소녀는 싸한 통증과 함께 어느정도 몸이 풀린 듯 하자 왼쪽 약간 뒤에서 말을 몰고 있는 갈색머리의 소녀를 불러본다. 금빛으로 반사되는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짙은 푸른 빛의 큰 눈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소녀다. 그녀의 이름은 파트리샤 펠란제스.
파트리샤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말을 걸어오자 급히 말을 몰아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선다. 붉은 머리의 소녀가 말을 걸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상태도 붉은 머리의 소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파트리샤도 심심한가보네?”
“응.”
붉은 머리의 소녀가 날렵하고 탄력있어 보이는 강인해 보인다면 파트리샤는 보다 여리고 부드러운 기품이 느껴진다.
“아아... 와르디 구출한답시고 날뛰던 때가 좋았는데...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았거든. 특히 인신매매 길드를 습격했을 때는 정말 짜릿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지금은... 에휴...”
“헤에... 딜레인은 싸움이 좋은가봐?”
“싸움이 좋은 게 아니라 심심한 게 싫어.”
파트리샤의 물음에 단호히 대답하는 붉은 머리의 소녀의 이름은 딜레인. 풀네임은 딜레인 토르 델킨피에르로 칸피니스 포르니르 델킨피에르 자작의 첫째딸이다.
“흐흐흥... 싸움은 없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데도 지루한거야?”
파트리샤의 말에 딜레인은 얼굴을 붉힌다.
“하... 하지만... 오늘은 내... 내 차례가 없는 걸.”
신경쓰고 나지 마차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유난히 가늘고 낮게 들리는 것이 분명 동생 펠린의 신음소리다.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들어간 지 한 시간 째 되자 약간의 고통이 신음소리에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펠린 또래일 무렵의 기억이 떠오르자 갑자기 사타구니가 조이듯 저려오며 뜨겁게 젖는다.
“흐흥... 심심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파트리샤는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파트리샤와 딜레인은 같은 17살. 서로 나이가 같다. 그래서 파트리샤가 델킨피에르 성으로 들어온 2년 전부터 둘은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뭐... 그것도 있고... 솔직히 심심하긴 심심하잖아? 차례가 되서 마차 안에 들어갈 때 말고는 이렇게 할일 없이 말 안장 위에서 끄덕이고 있어야 하니 말야.”
“헤헷... 아닌 것 같은데?”
“뭐... 뭐가?”
“내 사타구니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네.”
딜레인은 파트리샤의 놀림에 얼른 자신의 사타구니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눈에 무언가에 젖어 짙은 색으로 변색된 분홍빛 바지가 보인다. 사타구니를 적신 무언가를 떠올리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딜레인이 고개를 돌리니 파트리샤의 사타구니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의 사타구니도 딜레인과 같이 짙은 색으로 펑하니 젖어있다. 아니 오히려 딜레인보다 그 범위가 넓어보인다.
“너... 너는... 파트리샤 너는...?”
“아이이이잉~~ 나는 펠린 다음이잖아~~”
저럴 땐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호오... 그러셔?”
부러움은 때때로 폭력의 의지를 동반한다. 딜레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먹이 자연스레 움켜쥐어지며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 힘의 목표는 파트리샤.
“어머머머머... 부러운가봐? 부럽니? 부럽니?”
귀여운 척 가증을 떠는 파트리샤의 모습을 보며 딜레인은 자신의 주먹의 의지를 거부하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 부러움은 폭력의 의지를 동반하지만, 파트리샤는 폭력을 현실화시킨다. 딜레인은 인생의 교훈을 하나 마음 깊이 새기며 자신의 파트리샤가 현실화시킨 폭력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려오는 주먹을 서서히 끌어올린다.
“에에에엑? 삐졌구나? 삐졌어? 어머머머머... 조금 부럽고 질투난다고 주먹이라니~~ 아아아... 이 엄마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단다. 딜레인~~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
딜레인은 칸피니스의 딸이다. 파트리샤는 딜레인의 아빠인 칸피니스의 정부다. 정부를 엄마라 부르지는 않지만 파트리샤와 같이 귀족이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부인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니 딜레인의 엄마뻘이 되는 것은 맞다. 물론 딜레인과 칸피니스의 관계를 배제할 경우다.
“파~ 트~ 리~ 샤~?”
“왜~~? 사랑스런 딸 딜레인?”
“훗훗...”
“흑... 엄마가 정식부인이 아니라고 구박하는구나? 딜레인... 어쩌자고 이렇게 난폭한 아이로 자란 것일까? 아아... 역시 내가 자작님의 본부인이 아니라서...”
“이익...”
딜레인이 마음 먹고 때리면 파트리샤가 피할 가능성은 없다. 그것은 딜레인도, 파트리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파트리샤가 검술을 배운 것은 이제 고작 5년. 하지만 딜레인은 철이 들면서부터 칸피니스에게 검술을 배웠다. 배운 기간도 기간이지만 자질의 차이도 크다.
휙--!!
휙--!!
휘릭--!!
“우앗!”
“파~ 트~ 리~ 샤~!!”
“왓!”
“너어...”
“디... 딜레인...”
“가만 안둔다~~!!”
하지만 파트리샤는 딜레인의 공격을 잘도 피해다니고 있다. 말위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때로는 말을 몰아 위치를 바꾸며 딜레인의 공격을 모두 무효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약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딜레인은 여전히 맞지 않는 주먹을 휘두른다.
살벌해 보이는 둘의 싸움을 주위에서 지켜만 보는 이유다. 도저히 헛손질할 수 없는 딜레인이 헛손질을 하면서 화를 내고, 절대 피할 수 없는 파트리샤가 피하며 약올리고 있기에 웃음으로 둘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여자들도 지루한 것이다.
캉--!!
카캉--!!
캉--!!
휘리릭---!!
차랑--!!
주먹다짐은 칼부림으로 이어진다. 딜레인이 칼을 뽑자 파트리샤도 마주 칼을 뽑아 맞부딪혀간다. 이순간만은 파트리샤의 실력은 딜레인과 대등하다. 딜레인의 공격을 모두 막으면서 때때로 반격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파트리샤! 죽엇!”
“딜레인! 내 딸아! 엄마한테 그런 소리 하면 안되는거야. 설사 내가 네 친엄마가 아니라 할지라도...”
“딸? 누가? 내가 너보다 생일도 더 빨라!”
“하지만 난 네 아빠의 정부인걸? 그것도 인정받은 정부. 네 엄마뻘이 맞단 말야.”
“흥! 나는 너보다 2년이나 먼저 아빠와 관계를 가졌어! 내가 더 선배야!”
“하지만 그래도 넌 자작님의 딸인걸? 나는 정부고...”
“이잇...”
캉--!!
카캉---!!
심심했던 만큼이나 둘의 싸움은 치열하다. 당장에라도 누구 한 사람 쓰러질 듯 살벌하기까지 한 싸움이다. 하지만 파트리샤가 딜레인과 대등하게 싸우는 동안에는 누구 한 사람 다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같은 믿음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웃음까지 지으며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을 길게 가지 못했다.
삐이익-- 삐익--
“피레샤츠?”
익숙한 새소리에 딜레인은 검을 멈추고 정면을 향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 새소리가 아닌 새소리의 정체는 섀도우엘프 특유의 경고음이다. 무기질에 가까운 냉정함을 지닌 섀도우엘프의 긴장과 경계가 만들어내는 동족을 위한 경고음이 칸피니스 일행을 위해 울려펴지고 있다.
“마법인가?”
마차 안에서 들려오던 펠린의 신음소리가 멎으며 칸피니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목소리에 대답한 것은 여전히 한가한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마부석의 클라이안이다.
“맞아. 꽤 큰 마법이야. 적어도... 5서클은 되어보이는 마법이 연사되고 있어.”
“5서클?”
“그래. 순식간에 4번 이상 사용한 것으로 봐서 8서클 이상의 마법사야.”
“8서클? 정말인가?”
“응. 어쩌면 9서클일지도.”
“9서클?”
인간의 육체와 정신력이 감당할 수 있는 마법의 한계는 9서클까지다. 9서클 이상의 인간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9서클은 인간이 마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도 모든 인간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7서클에 도달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8서클 마법사 조차도 한 시대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9서클이라니! 아무러한 칸피니스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드래곤인가?”
“아니. 인간이야.”
“인간? 9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인간...?”
“응.”
다시금 확인해오는 칸피니스의 목소리에 불안한 오러가 느껴진다. 칸피니스와 살을 맞대고 살아온 여자들은 그같은 감정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루에나, 돌아가자!”
“엑? 아빠?”
“자작님!”
“영주님!”
“삼촌!”
여자들의 당혹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칸피니스는 급히 디아스루에나를 재촉할 뿐이다.
“일단 길을 되돌아간 다음 다른 길을 택해 가든 아예 영지로 돌아가든 해야겠다. 루에나! 말을 돌려라!”
칸피니스의 지시는 절박하기까지 하다. 평소 보이지 않던 모습에 여자들은 당혹해한다. 이런 모습의 칸피니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클라이안은 여유롭게 웃을 뿐이다. 뭔가를 아는 듯 클라이안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며 장난스럽게 빛난다.
“호오... 칸피니스... 누군가가 생각난거야?”
“누... 구군가라니?”
당황해하는 것이 클라이안의 짐작이 맞은 것 같다. 클라이안의 눈이 더욱 가늘어지면서 크게 휘어진다. 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걱정마. 그 누군가가 아니니까.”
“정말인가?”
“그래.”
“어떻게 알지?”
“지금 오고 있으니까 네가 직접 확인해봐.”
“오고 있다고?”
“그래.”
뜬금없는 클라이안의 말에 칸피니스는 급히 주위에 명령한다.
“주위를 경계해! 텔레포트다!”
칸피니스의 명령에 여기사들은 급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저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는 레인과 루시가 말을 몰아 양 옆을 지키고 서자, 딜레인과 롯시가 선봉이 되어 마차 앞을 지킨다. 나머지 기사들은 마차의 뒤로 이동해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한다.
“필요없을 것 같은...”
기사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클라이안이 필요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마차 위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살려요~~!! 사람살려요~~!!! 도와주세요, 기사님들~~!!”
말의 내용과는 달리 다급함이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느긋한 말투의 주인공은 아직 20살도 안된 것 같은 어린 여자의 목소리다.
“도와주세요~~ 기사님들~~!! 도와~~”
“여... 여자 목소리? 여자 마법사인가?”
갑작스레 나타난 여자의 목소리는 놀란 칸피니스의 목소리에 눌려 멈추어졌다.
벌컥--!!
마차의 문이 열리며 칸피니스의 긴장된 표정이 드러난다. 마차에서 내려선 채 마차 위를 노려보는 그의 긴장된 손에는 어느새 날카롭게 벼리어진 바스타드 소드가 들려진 채 마차 위를 향하고 있다.
“풋... 칸피니스...!!”
칸피니스의 긴장과는 달리 클라이안은 재미있다는 듯 쿠쿡거리며 웃을 뿐이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조금의 여유조차 사라진 표정으로 그저 마차 위를 주시할 뿐이다.
“누구냐?”
칸피니스의 물음에 대한 답은 말이 아닌 다른 것으로 돌아왔다.
“다알~~~ 링~~~!!!”
그것은 여자의 몸이었다.
퍼억--!!
아무런 살기도 느껴지지 않는, 그것도 인간을 뛰어넘는 동체시력으로 미인임을 확인한 여자의 몸이 달려들자 칸피니스는 그만 몸의 긴장을 풀고 말았다. 그것은 색마의 숙명이었다. 적대하지 않는 모든 여자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는 색마가 가진 본능이며 또한 업보였다.
“크윽--!!”
“다아아아아아알~~~링~~!”
그리고 그 댓가는 컸다. 여자의 몸은 작았지만 날아오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그녀가 부딪혀오는 충격에 칸피니스조차도 일순 호흡곤란을 느꼈을 정도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데미지는 하이소프라노에 가까운 “달링”이라는 말이었다.
“다... 달링이라니!!”
“아아아아앙... 달링... 달링.... 앙앙...”
분명 생전 처음보는 여자다. 붉은 머리는 딜레인과 비슷하지만 그 색이 좀더 짙은 것이 그늘이 지면 검은 색으로 보일 정도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딜레인보다 더 하얗게 보일 정도이고 청회색 눈동자는 얼핏 눈동자가 없는 듯 보일 정도로 투명하기만 하다. 이토록 인상적인 외모의 미인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칸피니스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그런데 분명 이 여자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달링이라니.
그냥 달링이라고 부르는 정도가 아니다. 몇 십 년 헤어진 애인을 만난 듯 여자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칸피니스에게 매달린 채 몸을 부비고 있다. 미인이 이리 안겨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너무도 뜻밖의 상황이라 칸피니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달링... 흑... 왜 이제 오셨어요?”
“다... 달링이라니! 이... 이제 오냐니?”
“흑... 달링을 찾아 떠돌아 다니길 어언 5년...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면... 흑...”
“이... 이봐...”
“흑흑... 다행이에요. 이제라도 달링을 만날 수 있어서...”
“어... 어이... 아가씨...”
“흑흑... 여기서... 여기서 달링을 만날 줄이야... 그렇게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더니...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더니... 이렇게... 흑... 흑... 이렇게 만나다니...”
“뭐... 뭔소리야?”
여자마법사는 칸피니스의 반응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말만 계속 이어간다. 칸피니스가 그녀의 말을 끊어보려, 돌려보려 애써보지만 그녀의 마이페이스는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그녀의 짜증섞인 외침에도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그윽히 바라보기까지 할 정도다. 칸피니스는 그녀의 눈빛에 왠지 모를 공포와 거북함을 느끼며 눈을 피한다.
“아아... 과연 나의 달링이에요. 제가 위험에 빠진 줄 알고 이리 구하러 와주시다니. 그토록 찾아 헤매일 때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시더니, 제가 도적떼에게 정조를 잃을 위험에 빠지니까 저를 돕기 위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셨군요. 정마 고마워요. 정말... 정말... 달링을 사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너무 진지해서 칸피니스도 그녀의 말을 사실로 믿고 싶어질 정도다.
“고마워요. 달링. 이리 절 구해주시다니. 정말... 정말... 이 시안은... 시안은... 흑...”
“뭐... 뭐냐니까?”
“자, 어서 가요. 어서 절 도와주세요.”
“제발 대답 좀 해! 내 말 좀 들으라구!”
“아아... 서둘러야겠다. 그럼...”
“야! 야!
“텔레포트!”
“야....”
시동어도 없이 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여자와 함께 칸피니스도 사라졌다.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남은 일행은 그저 황당해할 뿐이다.
“뭐... 뭐야?”
“나... 납치 당한거야?”
“이... 이상한 여자다!”
“맞아, 아빠보다 더 이상한 것 같아!”
“호... 혹시 미친 거 아냐?”
“하지만 마법을 쓰는걸? 미친 사람이 마법 쓴다는 이야기 들어봤어?”
“그럼?”
“미친 게 아니라 변태야!”
“아... 아빠같은?”
“영주님보다는 조금 더 심한 것 같기는 하지만...”
“에엑? 그럼 큰일이잖아?”
“진짜 큰일이야! 영주님보다 더한 변태라니!”
“서... 설마 아닐거에요. 그렇죠?”
“나... 도 그러길... 바라지만...”
“그래야 해요!”
“그래야겠지.”
“그래야 한다니까!”
하지만 누구도 칸피니스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칸피니스의 실력을 아는 그녀들이다. 아무리 9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칸피니스를 해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의 걱정도 않는 것이다.
그녀들의 관심은 칸피니스를 데려간 여자 마법사에게 집중되었다. 칸피니스의 여자들은 칸피니스가 얼마나 대단한 색마인지를 잘 안다. 그런 칸피니스가 한 번 본 여자를 기억 못할 리 없다. 하물며 달려들어 몸을 부벼대는 미녀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는 체 하고 싶어하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그런데 칸피니스는 그녀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칸피니스의 말을 믿는 것이 옳았다. 최소한 칸피니스는 아는 여자를 모른다 할 정도로 막되먹은 색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점 만큼은 여자들에게 신용받고 있는 칸피니스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여자마법사다. 그 여자는 어찌 칸피니스를 안다 말하는 것일까? 혹시 칸피니스를 몰래 숨어서 짝사랑하던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여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들의 생각에 칸피니스는 절대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숨어서 짝사랑을 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건 분명 변태다.
“변... 태...”
비로소 조금전 여자의 행동이 납득된다. 정상을 벗어난 듯한 말과 행동. 그것은 전형적인 변태의 모습이다. 칸피니스를 짝사랑할 만큼 훌륭한 변태다. 칸피니스를 짝사랑해왔던 과거는 기억 저편으로 던져둔 채 디올린마저도 그같은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왔다. 여자들의 결론은 정해졌다.
“칸피니스 오라버니의 변태성을 사모해오던 변태 여자마법사였어~~”
여전히 마부석에서 그녀들의 심각한 토론(?)을 듣고 있던 클라이안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느닷없이 나타난 독특한 여자마법사 덕분에 클라이안은 지루한 여행길에 동행한 이후 정말 간만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여자들의 시선이야 이상한 여자 보듯 하든 말든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