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30)

16살 어린 귀족의 소녀가 뱀파이어와 함께 남자의 품에 안긴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고귀하게만 자란 여자아이가 두려움의 대상인 뱀파이어와 한 남자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어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겠는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칸피니스의 여자로서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럼 있다 루에나가 오면 그녀에게 먼저 고맙다고 인사를 해라. 그리고 꼭 안아주면 아주 좋아할거야. 뱀파이어들은 피가 차기 때문에 따뜻한 인간의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하거든.”

“그럴가요?”

“그렇단다. 그래서 고위급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에게 접근하곤 하지. 정체가 들통날 때까지는 아주 친절한 바람둥이가 되거든. 루에나는 여자지만 너는 내 여자니까 안아주면 무척 좋아할거야. 안아줄 수 있겠지?”

“네.”

디올린이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칸피니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치하해주었다. 아직도 피가 묻어있는 더러운 손이지만 크고 따뜻한 칸피니스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디올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눈을 반짝이며 칸피니스를 보는 것이 무척 기쁜 모양이다.

“그래... 훌륭하구나.”

“헷...”

디올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클라이안이 뭐가 불만인지 볼을 부풀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칸피니스는 디올린의 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 일은 성공했어?”

“내가 실패할 것 같아? 그따위 인간들을 상대로?”

“그런데 표정이 왜그래? 뭔가 애를 먹인 상대라도 있었던건가?”

“칸피니스 같은 괴물이 또 있을 리 없는데 내가 애먹을 상대가 있을 까닭이 없잖아?”

“그럼 왜?”

“도대체가 너라는 인간은 기껏 이 고귀한 몸을 불러다 실컷 부려먹고서 꼬맹이 여자애랑 노닥거리느라 아는체도 안할 수 있는 거냐?”

“아아...”

“이제 알겠어?”

클라이안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한껏 기세를 올린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저 히죽 웃어보일 뿐이다.

“질투하는 거야?”

“질투?”

“그것도 이런 꼬맹이를 상대로...”

꼬맹이라는 말이 불만이었는지 디올린의 볼이 한참 부풀어 오른다. 칸피니스는 씨익 웃어보이며 디올린의 머리에 올린 손을 내려 그녀의 뺨을 쓰다듬어준다. 눈꺼풀과 콧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주자 디올린의 부풀어오른 뺨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다.

“아냐?”

“절대 아냐!”

“그런데 왜 내가 아는 체 안했다고 그리 화내는 거지? 위.대.하.신. 드래곤께서 말야.”

“네가 나를 무시하니까 그런 거 아냐?”

“언제 무시했는데?”

“무시한 게 아님? 기껏 마법까지 써가며 그 지저분한 곳에서 칸피니스가 원한대로 아이들까지 구출해왔는데 아는 체도 않고 있잖아?”

“이해하라고. 와르디는 디올린의 언니잖아. 동생이 언니 걱정하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어? 그래서 먼저 말상대해 준거니까 참고 이해해줘.”

“디올린 때문이 아니라니까?”

“알아알아...”

“칸피니스!”

“클라이안은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이해한다니까?”

“뭘 이해하는데?”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답지 않게 클라이안은 칸피니스에 도발에 금방 넘어오고 말았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답지 않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 이해한다니까? 그래 아이들은 다 무사하고?”

“말 돌리지 말고.”

“어디 다친 데는 없지? 하긴 클라이안이 한 일인데 어련하겠어? 괜찮은거지?”

“다... 당연하지. 이몸이 직접 나선 일이란 말야. 더러운 쓰레기통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서 몸이 쇠약해지긴 했지만 그런 것 쯤이야 마법으로 간단히 치료해주었지.”

역시 레드 드래곤이 단순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장 뛰어난 지성과 지혜를 갖고 있다는 드래곤치고는 정말 너무 쉽게 넘어온다. 하지만 역시 그런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그래? 어때 자질들은?”

“자질?”

“라일리안만 한가?”

“흐음...”

클라이안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언가 칸피니스의 속내를 알아챘다는 표정. 하지만 칸피니스는 태연하기만 하다. 

“왜? 쟤들도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라일리안같은 아이들은 정말 아깝거든?”

“남 주기 아깝다는 말이지?”

“물론. 라일리안의 동생들이 라일리안 정도의 미인이고 재능을 타고났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하긴... 하지만 보통 인간들은 그런 속내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고.”

“설마 클라이안은 내가 보통 인간들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칸피니스의 너무도 뻔뻔한 태도에 클라이안은 일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클라이안이 칸피니스를 좋아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의 강함 만큼이나 그 강함에 어울리는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 레드드레곤인 그녀가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칸피니스는 보통 인간과는 다르지.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까.”

“칭찬 고마워.”

“칭찬이라 생각하는거야?”

“응. 당연히. 내 여자가 나에게 험담 같은 거 할 리 없잖아.”

“정말 속 편한 사람이군.”

“그것도 칭찬이지? 왠지 부끄러워지는데?”

“나도 칭찬이라고 생각할게.”

“그렇게 배려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어쨌든 고마워.”

“하하...”

그저 웃을 뿐이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어때?”

“괜찮아. 잘 먹지도 못한데다 정신적인 충격까지 겹쳐서 지금은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라일리안만큼이나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이야. 한 아이는 마법사로서의 재능도 있어보여. 잘 키우면 8서클의 대마도사까지 만들 수 있겠던걸?”

“흐음... 8서클이라...”

“막내로 보이는 아이는 검술에 대한 재능이 저희 언니보다도 뛰어나. 저 아이들을 가르쳐서 한 팀을 만들어 움직이게 한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거야.”

“그 정도인가?”

“그래. 아이들의 정체가 궁금해질 정도야. 출신이 어떻게 되길래 모두 저리들 남다를 재능을 타고난 것일까?”

“흐음...”

“어때? 짐작 가는데가 있어?”

“대충은... 저정도 재능이 피로 이어지면서, 그 재능이 드러나지 않을만한 집안은 그리 많지 않거든.”

“호오...? 그래? 어딘 것 같아?”

“아직은 추측일 뿐이야. 황도로 가서 알아보면 좀더 확실해지겠지.”

“황도와 관계가 있는거야?”

“아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뛰어날만도 하네.”

“클라이안도 알겠어?”

“그래. 제국이 어떻게 건국되었는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래... 실페리안의 자식들이란 말이지? 그 웃기는 여편네의...?”

“실페리안? 그건 또 누구야?”

“아아... 그런 게 있어. 인간들은 모르는 얘기야.”

“쳇... 드래곤이라고 유세하는 건가?”

“응”

클라이안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저 당당한 모습을 보니 그녀도 칸피니스의 영향으로 많이 뻔뻔해진 모양이다. 

“쳇... 알았어. 어쨌든 저 아이들이 그렇게 쓸모가 있다는 말이지?”

“물론. 그냥 쓸모가 있는 정도가 아니지. 저정도 되는 아이들을 구하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걸?”

“그런데... 동생들은 언니를 많이 닮았나?”

“흐응... 미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냐는 물음?”

“응.”

“좀 그런 음흉한 속내는 숨길 줄도 알아봐라. 저기 다 듣고 있잖냐?”

클라이안의 말대로 주위를 살펴보니 그들의 주위에 둘러선 칸피니스의 여자들이 눈을 빛내며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저 뒤에서 미적거리고 있던 라일리안과 그녀의 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칸피니스의 바로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라일리안. 들었니?”

“예.”

“모두?”

“예... 모두...”

라일리안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것도 모자라 동생들까지 노리고 있는 칸피니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다.

“어떻게 생각하니?”

라일리안 뒤에 숨어 노골적인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두 동생들을 모며 칸피니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록 비쩍 발라 볼품없는 몸매에 더럽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골격을 볼 수 있는 그에게는 그런 겉모습 따위는 상관없었다. 아이들은 분명 클라이안의 말대로 보석들이었다. 그것도 정말 탐나는.

“아... 안돼요! 도... 동생들은... 동생들만큼은... 절대... 절대...”

라일리안의 눈물까지 글썽이는 절실한 모습에도 칸피니스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네 동생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너는 앞으로 내 여자로서 나와 함께 다녀야 할텐데.”

“그... 그건...”

“내가 보호해주길 바라는 거냐?”

“예...”

“내가 왜?”

“예?”

동그랗게 뜬 눈. 아마도 칸피니스의 냉정한 말에 놀란 모양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네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지? 너와의 계약은 너의 동생들을 구해주는 것까지가 아니었던가?”

“그... 그렇지만...”

하긴 아이란 물건과도 같은 시대다. 일을 시키거나 섹스상대로라도 써먹을 수 있는 어느정도 자란 아이가 아니라면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불과한 것이 이 시대의 일반적인 가치관이다. 라일리안도 그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 아이들을 억지로 보호해달라는 것은 역시 그녀가 보기에도 억지 같았다.

“너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상관없다. 너를 보호해주는 것은 나의 의무.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 둘 정도 추가되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손해가 되지 않으니까. 아마 너도 그런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겠지?”

“예...”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아... 저...”

“너에게는 강대한 적이 있다. 맞지?”

“예.”

“네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지 않나?”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저 아이들은 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대로 세상에 나서야 한다. 잠시간 네 보호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잠시잠깐에 불과하다. 머지 않은 장래에 나의 보호 아래 있는 너와는 달리 저 아이들은 홀로 독립해서 세상에 나가 살아야 한다. 그것도 과거의 신분과는 전혀 다른 평민으로서.”

“...”

“너는 평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나? 보호해줄 보호자가 없는 평민의 여자아이들이 어찌 살아가는 지 아는가 말이다.”

“...”

라일리안의 고개가 힘없이 숙여진다. 몸이 그토록 더러워질 때까지 여행했던 것이 헛된 것은 아닌 듯,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여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칸피니스는 라일리안 모르게 만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마음에 드는 아이였다.

“보호받지 못하는 여자는 비참하다. 그 여자가 신분이 낮으면 더욱 비참해진다. 그것이 제국의 현실이다.”

“...”

라일리안의 고개가 더욱 힘없이 떨구어진다. 격정이 이는 듯 온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나의 여자가 된다면 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홀로 살아가는 데 충분한 능력을 배울 수도 있다. 너도 내가 클라이안과 나누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겠지?”

“예...”

“마법사가 될 수 있다. 검사도 될 수 있다. 어느것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능력이다. 나는 그것을 줄 수 있다.”

“사... 사실인가요? 8클래스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게? 마스터도 될 수 있고?”

라일리안이 발작적으로 물어온다. 혼란이 심한 듯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칸피니스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편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애무하듯 닦아주었다.

“물론. 델킨피에르 자작인 나 칸피니스와 레드드레곤인 라 클라이안의 말이다. 믿어도 좋다.”

“하... 하지만...”

아직은 결심이 서지 않은 듯 라일리안은 여전히 주저거리는 모습이다. 칸피니스는 그녀가 왜 망설이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눈꺼풀을 쓰다듬어주며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내 여자는 내 성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황도에 살고 있는 여자들도 있고, 평소에 세상을 떠도는 여자들도 있다. 내 성에 머물고 싶은 여자는 내 성에 머물면 된다. 머물고 싶지 않다면 자유롭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능력껏 할 수도 있다. 그저 내 여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내 여자로서 내가 요구하는 것은 그 뿐이다.”

“저... 정말인가요? 자... 자유로울 수 있는거죠? 제... 제 동생들이... 이 아이들이... 자작님의 여자가 되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거죠? 약속할 수 있나요? 자작님의 이름을 걸고?”

“물론. 나의 이름을 걸고, 나의 작위와 명예를 걸고 약속할 수 있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라일리안과 그녀의 동생들의 처지라는 것은 최악이라는 말조차도 모자란 막다른 상황이었다. 칸피니스와 그의 일행들의 능력을 직접 확인한 이상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택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마법과 검술까지 가르쳐준다고 한다. 그의 여자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결론은 한 가지 뿐이었다. 

라일리안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신의 뒤에 숨어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매마르고 더러운 동생들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돌아보았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몰린 현실이 안타까운 듯 그녀는 조용히 동생들을 바라보며 두 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언니의 손길에 안심이 되는 듯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 그렇게 할게요. 이... 이 아이들의 미래를... 자... 작님께... 델킨피에르 자작 칸피니스님께 맡길게요. 그렇게 하세요. 이... 아이들을... 자작님의... 자작님의 여자로... 흑... 그렇게...”

“언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이렇게밖에... 내가...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내가 너무 못나서... 언니로서... 너희들의 언니로서... 너희들을... 지켜... 지켜...”

감정이 복받치는지 차마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며 라일리안은 동생들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떨구어진 머리카락 저편에서 빗물처럼 땅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언니... 언니야...”

“언니...”

동생들은 언니의 우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같이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얼굴에 눈물로 얼룩을 만들며 언니를 부르고 발들 동동 구를 뿐이다. 언니만큼이나 무력한 자신들의 처지를 탓하며 그렇게 울 뿐이다.

“미안해... 미안해... 언니로서... 언니로서... 그래서는... 그래서는 안되는데... 너희들의 미래를... 아직 어린... 너희들의 미래를... 내 멋대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해서는... 팔아넘기듯 정해서는... 흑... 흑...”

칸피니스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라일리안의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역시 그의 여자가 우는 모습은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얼굴은 조그전과는 달리 슬프게 굳어져 있었다.

칸피니스의 팔이 자신을 안아옴을 느끼자 라일리안은 처음 그의 팔을 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는 팔로 쳐내기엔 칸피니스의 팔은 너무도 굳세고 무거웠다. 칸피니스는 그녀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처음 반항하던 라일리안은 단단하고 따뜻한 칸피니스의 가슴을 느끼자 그대로 통곡하듯 울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엉~~~!!!! 엉엉~~!!”

“아아아앙~~!!!”

“아아아앙~~!!! 언니!!”

“앙~~ 언니야!!”

라일리안과 그 동생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칸피니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가 원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에도 여자아이를 울렸다는 생각이 그를 아프게 찔러오고 있었다. 

그 아픔을 담아 칸피니스는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듯 라일리안을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이제 그녀와 그녀의 동생들은 그의 여자들이다. 자신의 여자가 된 이상 결코 다시는 이런 슬픈 모습은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다. 그녀들이 다시 이토록 서럽게 우는 일은 없게 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남자가 된 칸피니스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칸피니스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 의무를 지킬 것을 속으로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를 담아 라일리안은 더욱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에 살짝 키스해주었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짠내와 기름내가 나는 머리카락에 정성을 담아 키스해주었다.

클라이안이 라일리안에게 키스해주고 있는 칸피니스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그 따뜻한 느낌에 칸피니스는 비어있는 왼손을 뻗어 클라이안의 등을 감싸 자신의 몸에 붙였다.

“으음...”

칸피니스와 클라이안의 키스는 오래 계속되었다. 느닷없는 하이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칸피니~~~ 스!! 약속한 댓가를 받으러 왔어!! 자지는 씻고 기다리고 있었겠지??? 오늘밤 기필고 마계의 저편으로 칸피니스를 보내버리고 말겠어~~~!!”

막 몰론성을 흔적도 없이 무너뜨리고 온 릴레이나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