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6)

새로운 시작 10

“김 여사 이거 몇 프로 DC야?”

“....”

“김 여사!”“네? 아! 사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예에~ 제가 개인적으로 좀 고민이 있어서요. 그런데 무슨?”

“이거 몇 퍼센트 DC냐고.”“아~ 이건 신상이라 DC가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사모님은 VVIP시니까,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잠시 만요, 사모님.”

해령은 이번에 신상으로 나온 파티 드레스를 들고 점장에게로 다가갔다. 사실 해령은 명품 브랜드 헤레나의 판매사원 중 가장 실적이 좋은 직원 중 하나였다.

한 달 급여라고 해봤자 겨우 최저임금에 맞춰있는 월급을 받는다. 대신 자신이 판매한 금액의 5프로를 수당으로 받는 제도다. 즉 많이 팔면 그만큼의 수당을 받아간다는 말이다.

실적이 요 몇 년 사이에 급상승한 해령은 어지간한 대기업 간부의 월급이 우스울 정도의 수당을 챙기고 있다.

“점장님, 이거 DC 좀 해줄 수 있죠?”

“김 여사님, 이거 신상이에요. 아시잖아요, 안 돼는 거.”

“점장님, 저 분 누군지 알죠?”

해령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 점장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해령이 담당하는 고객으로 진작부터 VVIP로 구분이 되어 있는 고객이었다.

“저분 남들과 똑같은 금액이 찍힌 영수증을 받으면 아마 다시는 우리 매장엔 안온다고 장담하죠.”

“끙~”

자존심이었다. 상류층에 돈이 남아돌아갈 지경에다 굳이 깎아야 한다는 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바로 VVIP 고객들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묘한 경쟁심이 있다. 바로 명품 매장에서 남들보다 더 대우를 받는 다는 것. 그리고 그 증거를 영수증에 찍힌 금액으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우리 헤레나가 요즘 채널에 디자인이 밀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아, 알았어요. 5프로 잘라드립니다.”

“호호....고맙습니다. 점장님. 그리고 한정판으로 나온 사은품 챙겨주세요.”

“김 여사, 하지만 그건 이미....”

“무조건 입니다.”

해령은 점장이 엄살을 떨기 전에 얼른 몸을 돌려 고객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모님, 5프로 해드릴게요.”

“그래요? 역시 김 여사라니까. 줘요.”

“네, 사모님 잘 하신 거 에요. 이거 한정판이거든요. 그리고 사모님께 너무 잘 어울리고요.”“호호호....그래요?”

“그럼 부가세 포함 1200만원에서 5프로 DC 하면 1140만원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번에 한정판으로 사은품이 나왔는데 제가 특별히 사모님 거 챙겨 놨어요.”

“사은품은 무슨~ 뭔데요?”

그래봤자 사은품이란 생각에 사모님은 심드렁한 표정이다. 워낙에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해령인지라 그나마 대구라도 한 것이다.

“이게요....”

해령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사모님의 귀가 솔깃해진다. 뭔가 특별하다는 뉘앙스가 풍겼기 때문이다.

“커플 언더웨어 세튼데요....아주 젊은 취향이거든요. 지난번에 같이 오셨던 아드님이랑....하여튼 포장을 풀어 보시면 바로 아실 거 에요.”

해령의 설명에 사모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해령이 한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음에 또 봐요, 김 여사~”

사모님은 1200만 원짜리 드레스보다 사은품을 더 조심스레 챙겨 매장을 나갔다. 해령이 굳이 사모님에게 사은품을 챙겨준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 같이 왔던 그 아들이란 사람과 사모님의 행동이 유별났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자지간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남들의 시선을 조심해 즐기는 연인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커플 언더웨어 사은품을 챙겨준 것이다.

‘호호....그거 너무 야하던데.’

해령도 사은품으로 나온 언더웨어를 직접 봤다. 나이 많은 여자가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는 디자인이었다. 사모님과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애인이 그걸 입었고 벌일 일을 생각하니 해령의 얼굴이 다 화끈 거렸다.

‘혹시 우리 화수도 그런 걸까?’

사모님과 같이 왔던 아들이란 젊은이를 떠올리자 문득 아들 화수의 얼굴이 오버랩이 되었다.

“남자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화수가!”미수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해령의 뇌리를 울렸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해령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미수가 했다는 금기, 근친의 사랑을 고백한 것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만큼 놀랐다. 그리곤 미수와 해령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들어온 아들 화수도 반겨주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있었다. 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머리가 메두사의 얼굴을 본 사람처럼 굳어졌는지 생각이란 게 해지지가 않았다.

그리곤 애써 지금까지 잊어버린 것처럼 외면하고 있었으나 결국 이렇게 떠올려지고 말았다.

‘하아~ 화수가 나를....이일을 어떻게 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처음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 그러다 그럼 미수는 어쩌지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우리 아들 화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아이도 안 돼는 줄 알고 무던히도 참느라 힘들어 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내 아들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데....’

부실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무능과 술이 그의 인생의 모두였다. 그래서 해령은 원망과 한탄으로 그 모진 세월을 헤쳐 왔다.

‘아이들이 내가 뜨거운 피를 식히는 걸 모두 알고 있을 줄이야.’

사실 그동안 자신을 향해 유혹의 손길을 뻗어온 사내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해령은 그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그건 남편에 대한 의리나 또는 그 비슷한 무엇도 아니었다. 오로지 아들과 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뜨거워지는 몸과 피를 그렇게 화장실에 숨어 손으로 달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이들이 보고 또 거기에서 연민을 느끼고 발전해 이젠 자신을 엄마가 아닌 여자로 생각한단다. 바로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아들 화수가.

‘미수는....미수는 어쩌지 그 아이의 마음도 가벼운 건 절대 아니야.’

미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떠올리자 해령의 마음이 아려왔다. 여적지 변변히 남자를 만난 경험도 없는 딸아이다. 그런 아이의 가슴에 다른 누구도 아닌 친동생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도대체 이일을 어쩌면 좋아....’

급기야 해령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들의 마음도 딸아이의 마음도 어쩌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힘들 때 같이 힘들어 해준 자신의 분신들이 지금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 어쩌면 좋아.’

해령이 자신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미수와 화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함~ 졸려, 누나 나 잠깐 들어가 눈 좀 부칠 게.”

화수는 낮에 볼일을 보느라 장시간 걸은 것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다. 아직 엄마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잠자리에 들 수는 없지만 떨어지는 눈꺼풀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남겨두고 자러 들어간다고? 안 돼!”

미수는 화수의 팔을 잡았다. 안 그래도 그날의 일 때문에 화수와의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 화수의 팔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누나 나 정말 피곤해, 좀 봐주라~”

“그럼 차라리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엄마 올 때까지 내가 재워 줄 게.”

미수는 화수를 향해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두드렸다. 베고 누우라는 시늉을 했다.

“하아~ 알았어. 그럼 누나 신세 좀 질게.”

화수도 미수와 서먹해진 사이가 불편했다. 그래서 못이기는 체 누나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아~ 좋다.”화수는 어색해지려는 분위를 바꾸려 더 깊이 미수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누나의 허벅지....반바지를 입어 화수의 얼굴은 맨살의 허벅지에 묻어졌다. 비누 냄새일까? 과일향과 비슷한 살내음이 화수의 코를 간질였다.

“흠~ 냄새 조오~타! 누나 이 냄새 뭐야? 혹시 몰래 향수비누 감춰두고 쓰는 거 아냐?”

화수는 누나의 냄새가 좋았다. 자신에게서 나는 땀 냄새완 다른 향긋한 냄새가 기분 좋았다. 절로 누나의 품으로 파고들게 된다.

“아냐~ 너랑 같은 비누 써, 화장실에 따로 숨길만한 곳이 어딨니?”

“그러게 하자만 정말 냄새가 좋은 걸!”화수의 얼굴이 더욱 허벅지 안으로 파고들자 미수가 상반신을 소파에 푹 파묻듯이 기대었다. 좀 더 화수가 편하게 누우라는 신호였다.

“누나....고마워.”

“응? 뭐가?”

미수는 화수의 말이 생경했다. 뭐가 고마운 걸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찰라라 표현해야 맞을까 싶은.

‘아! 그렇지....그거....’

며칠 전의 일이 왜 이렇게 먼 옛일로 기억이 될까, 미수는 화수의 머릿결을 쓸었다. 남자라서 그럴까....자신의 머리칼과는 다른 억센 힘이 느껴졌다.

“고맙긴....난....그냥 너라면 그게 뭐든 다 괜찮아.”

“누나....”

화수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아마도 자신의 말에 어떤 반응을 한 것이리라. 그게 미수는 좋았다. 그냥 덤덤히 누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으로 생각을 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미수는 가슴에 느껴지는 화수의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굳어지려 하는 긴장하는 몸을 안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화수가 불편해 하면 안 되니까.

“누나....괜찮아?”

화수의 목소리가 왠지 촉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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